오쿠다이라 마사유키
1. 개요
오쿠다이라 마사유키는 일본의 다이묘이자 정치인으로, 이요국 우와지마번 번주 다테 무네나리의 아들이다. 오쿠다이라 마사토모의 양자가 되어 가독을 이었고, 메이지 유신 후 번정 개혁을 추진하며 선거법을 도입하는 등 진보적인 정책을 펼쳤다. 판적봉환 이후 나카츠번 지사가 되었으며, 폐번치현 후에는 유신의 공으로 상전록을 받았다. 게이오기주쿠에서 수학하고 미국 유학을 다녀온 후 도쿄부 시바구장을 역임했으며, 나카츠시 학교를 설립하는 등 지역 발전에 기여했다. 30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기 전 백작에 서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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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 | 에도 시대 말기 - 메이지 시대 |
|---|---|
| 출생 | 안세이 2년 4월 1일 (1855년 5월 16일) |
| 사망 | 메이지 17년 (1884년) 11월 26일 |
| 관위 | 종5위하・미마사카노카미 |
| 막부 | 에도 막부 |
| 번 | 부젠나카츠번 번주→나카츠번지사 |
| 씨족 | 우와지마 다테 가문→오쿠다이라씨 |
| 부모 | 아버지: 다테 무네나리, 어머니: 다가와 (오오카씨), 양아버지: 오쿠다이라 마사토모 |
| 형제 | 사나다 유키타미、다테 무네아쓰、하츠코、사토시、마사유키、히로시、준、다키와키 노부히로、이쿠、마키노 다다요시、다테 무네토모、야스、다테 무네요、마키타 히로시게 등 |
| 배우자 | 정실: 시즈코 (미즈노 다다키요의 딸) |
| 자녀 | 마사야스、마사쿠니、에이노스케 |
| 로마자 표기 | Okudaira Masayuk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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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로쿠샤 사람 -
니시무라 시게키
니시무라 시게키는 메이지 시대에 유교적 도덕관에 기반한 교육 정책을 추진하고 일본 고유의 가치를 지키면서 서양 문명을 수용할 것을 주장한 일본의 계몽 사상가이자 교육자이다. -
우와지마번 사람 -
다카노 조에이
다카노 조에이는 무쓰국 센다이 번 출신의 난학자로서 의학, 과학, 정치 분야에서 활동하며 쇄국 정책을 비판하고 《무술몽어》를 저술했으나 투옥되었고, 탈옥 후 은신 생활을 하다가 체포 과정에서 사망했다. -
막말 나카쓰번 사람 -
후쿠자와 유키치
후쿠자와 유키치는 메이지 시대 일본의 사상가, 교육자, 언론인으로, 서양 문물 연구와 저서, 게이오기주쿠 설립을 통해 근대 일본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아시아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은 '탈아론'으로 논쟁적인 인물이기도 하며 1만 엔 지폐에 초상이 실릴 정도로 일본 근대사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
막말 나카쓰번 사람 -
오쿠다이라 마사타카
오쿠다이라 마사타카는 사쓰마 번주 시마즈 시게히데의 차남으로 태어나 오쿠다이라 마사오의 양자가 되어 가문을 상속받았으며, 난학에 관심을 갖고 서양 문화와 과학 도입에 기여하다가 1855년 사망했다.
2. 생애
오쿠다이라 마사유키는 이요국 우와지마번 번주 다테 무네나리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오쿠다이라 마사토모의 양자가 되어 나카츠번의 가독을 이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번정 개혁을 추진하고 판적봉환과 폐번치현을 거치며 백작 작위를 받았다. 게이오기주쿠에서 수학하고 후쿠자와 유키치등의 권유로 미국 유학을 다녀왔으며, 귀국 후에는 도쿄부 회의원, 시바구장 등을 역임하고 나카츠시 학교를 설립하는 등 교육 분야에 기여했다. 그러나 미국 유학 시절 얻은 병으로 1884년 30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2.1. 초기 생애 및 번주 즉위
이요국 우와지마번 번주 다테 무네나리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분큐 3년(1863년) 5월, 오쿠다이라 마사토모의 양자가 되었다. 게이오 4년(1868년) 5월, 마사토모의 은거로 가독을 이었다. 메이지 2년(1869년) 메이지 유신에 따라 번정 개혁에 나섰는데, 특히 인재 등용에서 선거법을 채택하는 등 가산세습법을 타파한 새로운 방법을 도입했다. 같은 해 판적봉환으로 나카츠번 지사가 되었고, 메이지 4년(1871년) 폐번치현 후 유신의 공으로 상전록 2000냥을 받아 백작이 되었다.
2.2. 메이지 유신과 번정 개혁
1869년 메이지 유신에 따라, 오쿠다이라 마사유키는 번정 개혁에 나섰다. 특히 인재 등용에서 선거법을 채택하는 등, 가산 세습법을 타파한 새로운 방법을 도입했다. 같은 해, 판적봉환에 의해 나카쓰번 지사가 되었고, 1871년 폐번치현 이후 유신의 공으로 상전록 2천 량을 받아 백작이 되었다.
2.3. 게이오기주쿠 수학 및 미국 유학
게이오기주쿠에 입학한 오쿠다이라 마사유키는 전 번사였던 후쿠자와 유키치와 오바타 토쿠지로의 권유로 미국 뉴저지주 뉴브런즈윅으로 유학을 떠났다. 메이지 5년 (1872년) 2월 20일 후쿠자와 에이노스케에게 보낸 서한에는 "어제 미국에서 편지가 왔는데, 도노사마(殿様)도 진산(甚さん)도 무사히 솔레이키라는 곳까지 갔다고 합니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여기서 '도노사마'는 마사유키를, '진산'은 유학 수행원 오바타 진자부로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