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산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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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왕산악은 고구려 시대의 인물로, 진나라에서 전해진 칠현금을 바탕으로 거문고를 제작하고 100여 곡을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왕산악은 칠현금의 제도를 고쳐 새로운 악기를 만들고 연주했는데, 검은 학이 춤을 추었다고 전해진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거문고의 원형으로 추정되는 악기가 그려져 있어, 왕산악이 기존의 악기를 개량했거나, 새로운 악기를 발전시킨 인물로 추정된다.

왕산악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hangul: 왕산악
hanja: 王山岳
로마자 표기Wang San-ak
한국어 표기왕산악
일본어 표기오우 산가쿠
인물 정보
국적고구려
직업음악가
악기거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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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진(晉)나라(서진 또는 동진) 사람이 칠현금(七絃琴)을 고구려에 보내 왔는데 고구려 사람들이 칠현금을 연주하는 방법을 몰라서 나라에서 상을 걸고 연주하는 사람을 구하였다. 제2상(第二相)인 왕산악이 칠현금의 모양을 그대로 두고 제도를 많이 고쳐서 새로운 악기를 만들었다. 이것으로 100여곡을 지어 타니 검은 학이 내려와 춤을 추었으므로 이 악기를 '현학금'(玄鶴琴)이라고 하고 뒤에 말을 줄여서 '현금'(玄琴)이라고 하였다."라는 기록이 전한다.

동국통감》(東國通鑑)을 비롯한 여러 문헌에 왕산악과 관련된 기록이 남아있다. 그러나 안악 3호분, 무용총과 같은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 거문고 원형이 그려져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왕산악을 예전부터 존재했던 거문고의 원형을 개조한 연구가·작곡가로 추측하기도 한다.

2.1. 거문고 제작

진(晉)나라에서 칠현금을 보내왔으나 고구려 사람들이 연주법을 몰라 왕산악이 이를 개량하여 거문고를 만들었다. 왕산악은 칠현금의 모양을 기본으로 하되, 고구려의 음악적 특성에 맞게 제도를 고쳐 새로운 악기를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왕산악이 만든 거문고로 100여 곡을 지어 연주하니 검은 학이 내려와 춤을 추었으므로, 이 악기를 '현학금'(玄鶴琴)이라 불렀고, 후에 '현금'(玄琴)으로 줄여 불렀다고 한다.

안악 3호분, 무용총과 같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 거문고 원형이 그려져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왕산악은 이전부터 존재했던 거문고의 원형을 개조한 인물로 추정되기도 한다. 한국 전통 음악은 고대부터 중국 음악의 영향을 받았으며, 악기 제도와 음악 이론을 수용하면서도 이를 한국화하였다.

2.2. 작곡 활동

왕산악은 진나라(晉) 사람이 칠현금(七絃琴)을 고구려에 보내오자, 이를 바탕으로 거문고를 만들고 100여 곡을 작곡하였다.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왕산악이 칠현금의 모양은 그대로 두고 제도를 많이 고쳐 새로운 악기를 만들고, 이 악기로 100여 곡을 지어 연주하니 검은 학이 내려와 춤을 추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이 악기를 '현학금'(玄鶴琴)이라 불렀고, 후에 '현금'(玄琴)으로 줄여 불렀다고 한다.

안악 3호분, 무용총과 같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 거문고의 원형으로 추정되는 악기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볼 때, 왕산악은 이전부터 존재했던 거문고를 개량하고 발전시킨 인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한국 음악은 고대부터 중국 음악의 영향을 받았지만, 왕산악의 거문고 작곡과 같이 고유한 발전을 이루었다.

2.3. 고분 벽화와의 연관성

3. 역사적 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