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 (전한)
1. 개요
우영은 전한 시대의 인물로, 젊은 시절에는 술을 좋아했으나 서른 살에 몸가짐을 바르게 했다. 우정국의 임자로 시중중랑장, 장수교위를 역임했으며, 우정국 사망 시 효행으로 명성을 얻어 산기상시, 광록훈, 어사대부를 지냈다. 선제의 맏딸인 관도공주와 혼인했으며, 성제가 승상으로 기용하려 했으나 사망했다. 시호는 경이며, 작위는 아들 우염이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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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0년 사망 -
복주류약제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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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0년 사망 -
유우 (동평사왕)
유우는 전한 시대 동평사왕으로, 원제와 성제 시기에 여러 사건에 연루되었고, 감로 2년에 동평왕에 봉해진 후 죄를 용서받았으나 부적절한 행동으로 처벌받았으며, 홍가 원년에 사망하여 사라는 시호를 받았고, 그의 아들들이 왕위를 이었으나 동평국은 멸망하고 사치스러운 생활로 비판받았다. -
전한의 중랑장 -
병창
병창은 전한 시대에 관내후를 계승하고 중랑장, 박양후, 태상을 지냈으나 동군태수로 좌천되어 사망한 인물로, 그의 행적은 《한서》에 기록되어 있다. -
전한의 중랑장 -
위관 (전한)
수레 기예로 발탁되어 중랑장까지 오른 위관은 오초칠국의 난 평정 공으로 건릉후에 봉해지고 경제의 신임으로 태자태부, 어사대부, 승상을 역임했으나 무제 즉위 후 면직되었으며, 사후 경 또는 애 시호를 받았다. -
중국에 관한 -
신도가
신도가는 전한 시대의 무관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과 영포의 난에 참여하고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승상에 올랐으며, 청렴한 성품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등통을 처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을 맞이하여 절후의 시호를 받았다. -
중국에 관한 -
카자흐인
카자흐인은 15세기 카자흐 칸국 건국 이후 명칭이 사용된 튀르크계 중앙아시아 북부 유목민족으로, "자유로운 자"를 뜻하는 카자흐라는 명칭은 권위에 저항하는 집단을 지칭하는 용어에서 유래했으며, 카자흐 초원을 중심으로 실크로드 무역을 통해 번성했고, 유목 생활과 튀르크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현재 여러 국가에 디아스포라가 거주하고 있다.
2. 생애
우영은 젊은 시절 술을 좋아하고 잘못을 많이 저질렀으나, 서른 살에 행동을 바르게 하였다. 선제의 맏딸 관도공주와 혼인하였고, 행실이 발라 높은 평가를 받았다. 성제는 우영을 승상으로 임명하려 하였으나, 우영은 세상을 떠났다. 시호를 경(頃)이라 하였고, 작위는 아들 우염이 이었다.
2.1. 젊은 시절과 관직 진출
젊을 때는 술을 좋아하여 잘못을 많이 저질렀으나, 서른 살에 몸가짐을 바르게 하여 우정국의 임자로 시중중랑장(侍中中郞將)·장수교위를 역임하였다. 우정국이 죽었을 때 복상을 예법에 맞게 하여 효행으로 명성을 떨쳤고, 이로써 산기상시(散騎常侍)·광록훈·어사대부를 지냈다. 선제의 맏딸 관도공주와 혼인하였고, 행실이 발라 항상 높이 평가받았다.
2.2. 우정국 사망과 효행
우영은 젊은 시절 술을 좋아하고 잘못을 많이 저질렀으나, 서른 살에 마음을 다잡고 행동을 바르게 하였다. 우정국에서 임자로 벼슬을 시작하여 시중중랑장(侍中中郞將)·장수교위를 역임하였다. 우정국이 사망하자 예법에 맞게 복상을 치러 효행으로 이름을 알렸고, 산기상시(散騎常侍)·광록훈·어사대부를 지냈다. 선제의 맏딸 관도공주와 혼인하였으며, 행실이 곧아 항상 높은 평가를 받았다.
성제는 우영을 승상에 임명하려 하였으나, 우영은 세상을 떠났다. 시호를 경(頃)이라 하였고, 작위는 아들 우염이 이었다.
2.3. 관도공주와의 혼인
우영은 전한 선제의 맏딸 관도공주와 혼인하였고, 행실이 발라 항상 높이 평가받았다.
3. 출전
* 반고, 《한서》
권18 외척은택후표
권19하 백관공경표 하
** 권71 준소우설평팽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