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국사
1. 개요
원경국사는 고려 인종과 공예왕후의 아들로, 고려 의종, 명종, 신종의 형제이다. 승려가 되어 증세승통에 임명되었으며, 1183년에 사망했다. 그는 흥왕사에서 음모를 꾸몄다는 혐의를 받았으나 무혐의로 풀려났고, 모후의 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궁녀들과 수안궁주와 문란한 관계를 맺어 비난을 받기도 했다. 원경국사는 영월 보덕사의 건물들을 중건했으나,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조선 시대 후기 양식이다.
| 이름 | 왕충희 |
|---|---|
| 한자 표기 | 王冲曦 |
| 다른 이름 | 왕현희 |
| 한자 표기 | 王玄曦 |
| 작위 | 왕자, 국사 |
| 별칭 | 증세승통 (拯世僧統) |
| 시호 | 원경국사 (元敬國師), ('National Preceptor Primary Respectful') |
| 왕가 | 왕가 |
|---|---|
| 왕조 | 고려 왕조 |
| 아버지 | 고려 인종 |
| 어머니 | 공예왕후 임씨 |
| 친척 | 고려 예종(조부), 고려 의종(형), 고려 명종(형), 고려 신종(동생), 고려 희종(조카), 고려 강종(조카) 등 |
| 출생 | 1131년 ~ 1144년 사이 추정 |
|---|---|
| 출생지 | 고려 |
| 사망 | 1182년 또는 1183년 |
| 사망 장소 | 고려 |
| 종교 | 불교 |
| 칭호 | 원경국사 (元敬國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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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3년 사망 -
공예왕후
공예왕후는 고려 인종의 왕후이자 장흥 임씨 임원후의 딸로, 이자겸의 난 이후 왕비로 간택되어 인종과 혼인하여 5남 5녀를 낳았으며, 인종 사후 대비가 되어 정치에 관여했으나 무신정변 이후 불운한 말년을 보냈다. -
1183년 사망 -
경대승
경대승은 1154년에 태어나 1183년에 사망한 고려 시대의 무신으로, 정중부 일파를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하여 도방을 설치했으나, 무신들의 반발과 잦은 숙청으로 정권 기반이 불안정했다. -
한국사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한국사 -
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2. 생애
원경국사 충희는 고려 인종과 공예태후 임씨의 넷째 아들로, 의종, 명종, 신종과 친형제 간이다. 정확한 출생 연도는 알 수 없으나, 형제들의 출생 연도를 볼 때 1131년에서 1144년 사이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148년(의종 2년) 음력 11월 충희는 흥왕사의 법존이었는데, 맏형 의종이 증세승통으로 삼았다. 1157년(의종 11년) 음력 1월 13일 의종이 보는 앞에서 약 200여 명의 승려들과 함께 기복재를 올렸고, 1167년(의종 21년) 음력 4월 15일 청녕재에서 연회를 열고 의종과 여러 대신들을 초청하기도 하였다.
1177년(명종 7년) 흥왕사의 한 중이 "승통 충희가 여러 승려들과 몰래 음모를 꾀하고 있다."라고 고변하였다. 이로 인해 충희의 시종을 국문하였으나, 아무런 혐의를 찾을 수 없어 모두 석방되었다.
1180년(명종 10년) 모후 공예태후가 유종을 앓자 명종은 충희를 불러 치료하게 하였다. 그러나 궁에 들어온 충희는 여러 궁녀들 뿐 아니라 수안궁주와도 문란한 관계를 가졌다. 이러한 소문이 궁 밖으로 퍼지자 당시 우사간이었던 최선은 충희의 난잡한 행동을 고하며 궁에서 내보낼 것을 간하였다. 하지만 최선의 상소문을 읽은 명종은 크게 놀라며, "뜻밖에 사간이 우리 형제를 이간질 하는구나."라고 하면서 오히려 최선을 파직시켰다. 이후 대간들은 충희가 어떠한 행동을 해도 감히 간하지 못하였고, 대신들은 모두 충희에게 붙어 공공연하게 뇌물을 바치기도 하였다.
1183년(명종 13년) 충희가 사망하였다. 호는 원경국사이다. 충희가 죽자 명종은 모후 공예태후가 비통해할 것을 두려워하여 일부러 알리지 않았다. 수개월이 지나서야 아들 충희가 죽은 것을 알게 된 공예태후는 여러 장수들이 충희를 죽였다고 생각하고 분하게 여기다가 결국 병이 들었다
2.1. 가계 및 왕자 시절
고려 인종과 공예태후 임씨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성은 왕, 이름은 충희(冲曦) 또는 현희(玄曦), 본관은 개성이다. 의종, 명종, 신종 등과 친형제 간이다. 정확한 출생 연도는 알 수 없으나, 형제들의 출생 연도(1131년, 1144년)를 볼 때 1131년에서 1144년 사이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148년(의종 2년) 음력 11월 충희는 흥왕사(興王寺) 법존(法尊)이었는데, 맏형 의종이 증세승통(拯世僧統)으로 삼았다. 1157년(의종 11년) 음력 1월 13일 의종이 보는 앞에서 약 200여 명의 승려들과 함께 기복재(祈福齋)를 올렸고, 1167년(의종 21년) 음력 4월 15일 청녕재(淸寧齋)에서 연회를 열고 의종과 여러 대신들을 초청하기도 하였다.
1177년(명종 7년) 흥왕사 중이 "승통 충희가 여러 승려들과 음모를 꾀하고 있다."라고 고하였으나, 혐의를 찾을 수 없어 석방되었다.
1180년(명종 10년) 모후 공예태후가 유종(乳瘇)을 앓자 명종은 충희를 불러 치료하게 하였다. 그러나 충희는 궁녀들과 수안궁주와 문란한 관계를 가졌고, 이 소문이 퍼지자 우사간 최선(崔詵)이 충희를 내보낼 것을 간하였다. 하지만 명종은 최선을 파직시켰고, 이후 대신들은 충희에게 뇌물을 바치기도 하였다.
2.2. 명종 대의 비위 행위
1177년(명종 7년) 흥왕사의 한 중이 "승통 충희가 여러 승려들과 몰래 음모를 꾀하고 있다."라고 고변하였다. 이로 인해 충희의 시종을 국문하였으나, 아무런 혐의를 찾을 수 없어 모두 석방되었다.
1180년(명종 10년), 공예태후가 유종을 앓게 되자 명종은 충희를 불러 치료하게 하였다. 그러나 궁에 들어온 충희는 여러 궁녀들 뿐 아니라 수안궁주와도 문란한 관계를 가졌다. 이러한 소문이 궁 밖으로 퍼지자 당시 우사간이었던 최선은 충희의 난잡한 행동을 고하며 궁에서 내보낼 것을 간하였다. 하지만 최선의 상소문을 읽은 명종은 크게 놀라며, "뜻밖에 사간이 우리 형제를 이간질 하는구나."라고 하면서 오히려 최선을 파직시켰다. 이후 대간들은 충희가 어떠한 행동을 해도 감히 간하지 못하였고, 대신들은 모두 충희에게 붙어 공공연하게 뇌물을 바치기도 하였다.
2.3. 사망
명종 13년 (1183년) 충희가 사망하였다. 매장지 등은 기록되어 있지 않아 알 수 없고, 호는 원경국사(元敬國師)이다. 충희가 죽자 명종은 모후 공예태후가 비통해할 것을 두려워하여 일부러 알리지 않았다. 수개월이 지나서야 아들 충희가 죽은 것을 알게 된 공예태후는 여러 장수들이 충희를 죽였다고 생각하고 분하게 여기다가 결국 병이 들었다. 때마침 충희의 바로 아랫동생인 평양공(平諒公, 훗날의 신종)도 병이 생겨 공예태후에게 찾아오지 못하고 있었는데, 공예태후는 평양공도 충희와 함께 화를 당했다고 생각하였다. 결국 얼마 후 평양공이 직접 공예태후에게 찾아오면서 공예태후는 기력을 약간 회복하였으나, 공예태후도 이 해 음력 11월 22일 75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3. 기타
원경국사가 중건한 보덕사의 건물들은 조선 시대 후기 양식으로, 당시 원경국사가 중건한 건물은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흥교사(흥교사hangul)에 충희를 기념하기 위한 탑비(충희선사탑비hangul)가 세워졌으나, 오늘날까지 유지되지 못해 이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4. 가족 관계
| 관계 | 이름 | 출생 - 사망 | 비고 |
|---|---|---|---|
| 부왕 | 인종 | 1109년 - 1146년 | 고려 제17대 왕 (재위: 1122년 - 1146년) |
| 모후 | 공예태후 임씨 | 1109년 - 1183년 | |
| 형 | 의종 | 1127년 - 1173년 | 고려 제18대 왕 (재위: 1146년 - 1170년) |
| 형 | 대령후 경 | 1130년 - ? | |
| 형 | 명종 | 1131년 - 1202년 | 고려 제19대 왕 (재위: 1170년 - 1197년) |
| 조카 | 강종 | 1152년 - 1213년 | 고려 제22대 왕 (재위: 1211년 - 1213년) |
| 동생 | 신종 | 1144년 - 1204년 | 고려 제20대 왕 (재위: 1197년 - 1204년) |
| 조카 | 희종 | 1181년 - 1237년 | 고려 제21대 왕 (재위: 1204년 - 1211년) |
| 남매 | 승경궁주 | 생몰년 미상 | |
| 남매 | 덕녕궁주 | ? - 1192년 | |
| 남매 | 창락궁주 | ? - 1216년 | |
| 남매 | 영화궁주 | 1141년 - 1208년 |
원경국사 충희는 인종과 공예왕후의 넷째 아들로, 1131년 이후 1144년 이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형제로는 의종, 대령, 명종, 신종이 있었고, 남매로는 승경, 덕녕, 창락, 영화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