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훈
1. 개요
윤승훈은 조선 선조 때의 문신으로, 1573년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했다. 사간원 정언, 사헌부 정언 등을 역임하며 언관으로 활동했으며, 임진왜란 시기에는 사간원 사간으로서 무유어사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충청도 관찰사를 거쳐 형조판서, 이조판서, 예조판서, 병조판서를 역임하고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다. 이후 동지돈녕부사, 영중추부사로 전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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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윤승훈 (尹勝勳) |
|---|---|
| 출생 | 1984년 2월 1일 (39세) |
| 국적 | 대한민국 |
| 신체 | 180cm, 70kg |
| 가족 | 부모, 형 |
| 학력 |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
| 데뷔 | 2009년 연극 《햄릿》 |
| 소속사 | 에일리언컴퍼니 |
| 링크 | 윤승훈 인스타그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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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 -
최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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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 -
한백겸
한백겸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고증학적 방법론을 통해 조선의 역사와 지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여 실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정여립의 난 연루와 임진왜란 공훈 등의 부침을 겪었으나 《동국지리지》를 저술하여 기자정전 유적을 주장하는 등 후대 실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
1611년 사망 -
헨리 허드슨
헨리 허드슨은 잉글랜드 탐험가이자 항해사로, 북동항로와 북서항로 개척을 시도하며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를 위해 항해하던 중 허드슨 강을 발견하여 네덜란드 북미 식민지 건설에 기여했으나, 선원 반란으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
1611년 사망 -
가토 기요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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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9년 출생 -
이여송
이여송은 조선 출신 이주민 후손으로 명나라 장군이 되어 임진왜란 때 명나라 원군을 이끌고 평양성을 탈환하는 공을 세웠으나 소극적인 태도와 횡포에 대한 비판도 있어 역사적 평가가 엇갈린다. -
1549년 출생 -
임경업
이괄의 난 진압과 병자호란 때 백마산성에서 청나라 군에 저항한 임경업은 명나라와 내통 의혹으로 김자점의 모함으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후 영웅적인 면모로 전설과 설화의 주인공이 되었고 숙종 때 복권된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2. 생애
1597년(선조 30년) 형조판서가 된 윤승훈은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후 이조판서, 예조판서, 병조판서를 거쳐 우의정, 좌의정을 지내고 영의정에 올랐다. 동지돈녕부사, 영중추부사로 전임되었다.
2.1. 초기 생애와 관직 진출
1573년(선조 6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했다. 사간원 정언, 사헌부 정언 등을 역임하며 언관으로 활동했다. 정인홍, 이이 등과 함께 심의겸을 탄핵하기도 했다. 1581년(선조 14년) 신창현감으로 좌천되었다.
2.2. 임진왜란 시기의 활동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발발 직후 사간원 사간으로서 무유어사, 선유사, 조도사 등의 임무를 맡았다. 1594년 (선조 27년) 충청도 관찰사로 임명되어 민심 수습과 군량 조달에 힘썼다. 이후 형조참의, 병조참의, 호조참판, 병조참판, 대사헌 등을 연이어 지냈으며, 도승지를 거쳐 1597년(선조 30년) 형조판서가 되었다.
2.3. 정승 반열과 이후
1573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간원 정언, 사헌부 정언이 되었다. 정인홍, 이이와 함께 심의겸을 탄핵하다가 1581년 신창현감으로 좌천되었다. 1592년 사간원 사간으로서 무유어사, 선유사, 조도사를 맡았고, 1594년 충청도관찰사를 거쳐 형조참의, 병조참의, 호조참판, 병조참판, 대사헌을 연이어 지냈다. 도승지를 지낸 뒤 1597년 형조판서가 되어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후 이조판서, 예조판서, 병조판서를 거쳐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까지 올랐다. 다시 동지돈녕부사, 영중추부사로 전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