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용
1. 개요
윤종용은 대한민국의 엔지니어 출신 전문 경영인으로,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을 역임하며 삼성그룹의 메모리 및 TFT LCD 분야를 세계 1위로 성장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는 1944년 경상북도 영천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삼성그룹에 입사하여, 흑백 및 컬러 TV 개발, TFT LCD 사업 진출 등을 주도했다. 또한 비메모리 분야 육성, 국제 기술 표준화, 인재 양성에도 힘썼으며,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미국산업공학회 최고 경영자 상, 포춘지 선정 아시아 경영자, 한국 과학기술 훈장 등을 수상했으며, 장남은 배우 윤태영이다.
| 이름 | 윤종용 |
|---|---|
| 출생일 | 1944년 1월 22일 |
| 출생지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천군 |
| 국적 | 대한민국 |
| 거주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 종교 | 무종교 |
| 자녀 | 아들 윤태영(배우) |
| 활동 기간 | 1966년 ~ 현재 |
| 학사 |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 |
|---|---|
| 석사 |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 슬론 경영대학원 공업경영학과 수료 |
| 주요 경력 | 삼성전자 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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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초등학교 (경북) 동문 -
김문수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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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초등학교 (경북) 동문 -
현경병
현경병은 해양수산부 공무원 출신으로 제18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나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 후 사면복권되었고, 오세훈 서울시장 비서실장을 역임했으며, 해양 영토 및 이어도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한 정치인이다. -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동문 -
전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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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동문 -
강대식
강대식은 대구 동구의회 의원과 동구청장을 거쳐 제21대, 22대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국민의힘 대구광역시당 위원장을 맡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
삼성 사람 -
이맹희
이맹희는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의 장남이자 CJ그룹 명예회장으로, 삼성그룹 후계자 수업을 받았으나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후 제일비료 회장을 지냈고, 이건희와 상속 재산 관련 법정 다툼을 벌이다 폐암으로 별세했다. -
삼성 사람 -
이병철
대한민국 기업인인 이병철은 삼성그룹의 창업주로, 무역업을 시작으로 제조업, 전자산업, 금융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여 한국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
2. 약력
* 1962년: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졸업
* 1966년: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삼성그룹 입사
* 1988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 슬론 경영대학원 Senior Executive 과정 수료
* 1992년 3월: 삼성전자 가전 부문 대표이사 사장
* 1995년: 삼성그룹 일본본사 사장
* 1996년 ~ 1999년: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
* 1998년 9월: 한국공학한림원 이사장
* 2000년 1월 ~ 2008년 5월: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 2002년 6월 ~ : 제2대 한국공학교육인증원 이사장
* 2004년 2월: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회장
* 2004년 5월: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초빙교수
* 2004년 11월: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 2008년 5월 ~ 2011년 6월: 삼성전자 상임고문
* 2008년 ~ : 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 명예회원
* 수원 삼성 블루윙즈 프로축구단 구단주
* 2009년 9월 ~ : 새만금개발사업 명예자문관
* 2011년 7월 ~ 2015년 11월: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장
* 2011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
*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경영학과 교수
*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이사장
3. 생애 및 업적
1944년 경상북도 영천에서 태어났다. 엔지니어 출신 전문 경영인으로 차세대 원천 기술 개발을 주도하여 대한민국 전자 산업을 발전시켜 기술 강국으로 이끄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분야 및 TFT-LCD 사업을 세계 1위로 성장시켜 삼성그룹 신화 창조의 기반을 만들었다.
1966년 대학교 졸업 후, 삼성에 입사하여 경력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한국비료 공장 건설 현장에서 근무하며 현장 경험을 쌓았다. 이후 삼성그룹 내 개발부에 합류하여 TV 개발을 담당하였고, 1975년 국산 흑백 TV 출시에 기여하였다. 이후 컬러 TV 개발 및 필립스에서의 기술 경험을 바탕으로 귀국 후 TFT-LCD 사업에 진출하여 해당 분야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시켰다.
또한, 반도체 비메모리 분야를 육성하고, 인텔이 독점하던 CPU 및 복합칩 사업에도 진출하였다. 인재 양성에도 힘써 국내외 연구소를 설립하고, 국내 대학교에 발전기금을 후원하는 등 핵심 인재 육성에 기여했다. 국제표준화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여 대한민국의 기술적 위상을 강화했다.
3.1. 삼성그룹 입사 및 초기 경력
1966년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삼성 계열사였던 한국비료 공장의 건설 현장에 취직해, 공장을 건설하고 시운전하는 2년 동안 공장의 구조와 시스템 운영 방법 등을 배우며 현장 경험을 쌓았다.
입사 3년 후, 삼성그룹이 신규 사업 개발을 위해 삼성물산 내부에 조직한 ‘개발부’에 합류했다. 이후 TV 설계를 맡았으며, 1975년 처음으로 국산품 흑백TV를 출시했다. 컬러TV까지 성공적으로 만들어낸 뒤, 1986년 네덜란드 필립스 본사로 가서 기술 경험을 익혔다.
3.2. 삼성전자 반도체 및 TFT-LCD 사업 성장 주도
1944년 경상북도 영천 출생으로, 엔지니어 출신 전문 경영인이다. 차세대 원천 기술 개발을 주도하여 대한민국 전자 산업을 발전시키고 기술 강국 건설에 기여했다.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분야 및 TFT-LCD 사업을 세계 1위로 성장시켰으며, 이는 삼성그룹 신화 창조의 기반이 되었다.
귀국 후에는 '영상산업의 꽃'이라 불리는 TFT-LCD 사업에 진출, 1993년 세계 최초로 14.2인치 VGA TFT를 개발했다. 1996년에는 21.2인치 EWS용 UXGA, 1997년 30인치급 UXGA, 2001년 HDTV 대응 40인치 WIDE-XGA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며 고부가가치 디스플레이 시장을 선점했다.
1996년부터는 반도체 비메모리 분야 육성에 주력하여 3년 만에 연간 비메모리 매출 1를 달성했다. 인텔의 독점 사업인 CPU와 차세대 복합칩 사업도 추진했다.
3.3. 인재 양성 및 기술 표준화 노력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인재 양성을 위한 전문 연구소 운영 등 핵심 우수 인력 육성에 매진했고 국내외 9개 연구소를 설치해 '해가 지지 않는 연구소'를 운영했다. '우수한 인재 없이는 우수한 회사는 없다'는 경영철학에서 알 수 있듯이 평소 종업원 하나하나의 소중함을 강조해왔다.
신설한 첨단기술연구소, 글로벌 마케팅연구소, 리더개발센터 등 전문화된 3개의 연구소는 조직 구성원들에게 자기개발의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삼성전자가 세계 어느 선진기업보다도 우수한 인적자원을 보유하게 된 밑거름이 되었다. 또한 기업뿐만 아니라 국내 대학(서울대학교,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경북대학교, 영남대학교)의 공학 교육 경쟁력 강화를 위해 2 규모의 발전기금을 후원하여 미래 핵심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힘썼다.
국제표준화 단체에서의 리더십 발휘를 통한 국가 이미지 및 경쟁력 제고에도 힘썼다. '국제기술 표준화 연구회'를 구성해 체계적인 표준화 활동의 기반을 마련하고, 표준화 추진 조직을 신설해 삼성전자의 표준화 전략방향을 제시했다. 업계 협력 및 한국의 기술적 위상 강화, 차세대 기술 표준화를 위한 사전 정보 교류 등 유무형의 성과도 거뒀다.
4. 수상
5. 가족
장남은 태왕사신기에 출연한 배우 윤태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