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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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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윤치병은 대한제국 말기의 군인으로, 윤영렬과 한진숙의 아들이다. 육군 정위를 지냈으며, 1910년 한일 합방 조약 체결 후 관직을 사퇴하고 은거했다. 슬하에 아들이 없어 형 윤치소의 아들 윤택선을 양자로 들였다. 윤보선과 윤원선은 그의 조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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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병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윤치병
출생일1880년 음력 6월 4일
출생지조선 충청도 아산군 둔포면 신항리
사망일1940년 양력 1월 24일
사망지일제강점기 조선
거주지조선,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국적조선, 대한제국, 대한민국
별명자는 강령(康寧), 호는 간송(澗松)
종교기독교
배우자허병숙
자녀양자 윤택선
부모아버지 윤영렬, 어머니 청주한씨 한진숙
친척윤치소(형), 윤치오(형), 윤치영(동생), 윤보선(조카), 윤원선(조카), 윤웅렬(백부), 윤치왕(사촌 동생), 윤치창(사촌 동생), 윤영구(종손), 윤경남(손녀)
생애1880년 음력 6월 4일 - 1940년 양력 1월 24일
직업 및 직책
직업군인, 관료
직책무신
군사 경력
복무대한제국 육군
복무 기간? ~ 1910년 10월
최종 계급육군 정위
기타
웹사이트해평윤씨 홈페이지

2. 생애

윤치병은 윤영렬과 한진숙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사촌 형은 정치가 겸 독립운동가, 계몽운동가 윤치호였다. 둘째 형 윤치소의 장남은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 윤보선이었고, 셋째 형 윤치성은 군인이었다.

1900년(광무 3년) 5월 23일 육군 보병 참위에 임명되어 진위 보병 제6연대 제2대대부(鎭衛步兵第六聯隊第二大隊附)에 배속되었다.[1] 1901년 2월 30일 휴직했다가 3월 초 복직하였다.[1] 1905년 1월 27일 효정왕후 인산에 참여한 관료들을 포상할 때 아마 1필을 선물로 받았다.[1] 1905년(광무 8년) 8월 7일 면직되었다가[1] 같은 날 진위 보병 제1대대부에 발령받고 소대장이 되었으며, 11월 18일 육군 보병 부위로 승진하였다.[1] 1906년 9월 1일 보병 부위직과 제1대대부 소대장직에서 면직되었다.[1]

1906년 9월 1일 육군 보병 정위에 임용되고, 군부(軍部) 본부 군무국 보병과원(軍務局步兵課員)에 발령되었다.[1] 1907년(광무 10년) 1월 조경단 주룡(主龍)의 무너진 곳을 개보수할 때 참여하여, 1월 20일 조경단 주룡 보수관료를 포상할 때 6품으로 승진했다.[1] 8월 30일 보직에서 해임되어 대기발령되었고,[1] 9월 3일 총리대신 이완용이 왕족 이외의 무보직 장교들을 해임하라고 건의하자, 육군 정위직에서 해임되었다.[1]

대한제국 말기에 육군 정위(正尉)를 지냈다.[1] 1910년 8월 27일 정3품에서 정2품 가선대부로 승진했으나, 그해 10월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자 관직을 사퇴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체의 공직활동을 거절하고 은거하였다. 아들이 없어 형 윤치소의 다섯째 아들 윤택선을 양자로 들였다.[1] 윤택선의 아들로 Kist의 직원이었던 윤창구는 그의 양손자였다.

2. 1. 생애 초반

윤영렬과 한진숙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사촌 형은 정치가 겸 독립운동가, 계몽운동가 윤치호였다. 둘째 형 윤치소의 장남은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 윤보선이었고, 셋째 형 윤치성은 군인이었다.

2. 2. 군인 활동

1900년(광무 3년) 5월 23일 육군 보병 참위에 임명되어 진위 보병 제6연대 제2대대부(鎭衛步兵第六聯隊第二大隊附)에 배속되었다.[1] 1901년 2월 30일 휴직을 명받았으나 3월 초 복직하였다.[1] 1905년 1월 27일 효정왕후의 인산에 참여한 관료들을 포상할 때 아마 1필을 선물로 하사받았다.[1] 1905년(광무 8년) 8월 7일 면직되었다가[1] 같은 날 진위 보병 제1대대부에 발령받고 소대장이 되었으며, 11월 18일 육군 보병 부위로 승진하였다.[1] 1906년 9월 1일 보병 부위직과 제1대대부 소대장직에서 면직되었다.[1]

1906년 9월 1일 육군 보병 정위에 임용되고, 군부(軍部) 본부 군무국 보병과원(軍務局步兵課員)에 발령되었다.[1] 1907년(광무 10년) 1월 조경단 주룡(主龍)의 무너진 곳을 개보수할 때 참여하여, 1월 20일 조경단 주룡 보수관료를 포상할 때 6품으로 승륙되었다.[1] 8월 30일 보직에서 해임되어 대기발령되었고,[1] 9월 3일 총리대신 이완용이 왕족 이외의 무보직 장교들을 해임하라고 건의하자, 육군 정위직에서 해임되었다.[1]

2. 3. 생애 후반

대한제국 말기에 육군 정위(正尉)를 지냈다.[1] 1910년 8월 27일 정3품에서 정2품 가선대부로 승진했으나, 그해 10월 한일 합방 조약이 체결되자 관직을 사퇴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체의 공직활동을 거절하고 은거하였다. 슬하에 아들이 없어 형 윤치소의 다섯째 아들 윤택선을 양자로 들였다.[1] 윤택선의 아들로 Kist의 직원이었던 윤창구는 그의 양손자였다.

3. 사후

일제강점기 당시 공직활동을 하고 있지 않았으므로 그는 친일파로 몰리지는 않았다. 양자 윤택선은 해방 후 국회전문위원을 역임하였고, 손자 윤창구는 물리학자로 카이스트에서 연구 활동을 하였다.[1]

4. 가족 관계

윤치병은 윤영렬과 한진숙 사이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둘째 형 윤치소의 장남은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 윤보선이었고, 윤치호는 사촌 형이었다. 셋째 형 윤치성도 군인이었다.

4. 1. 역사학자 이병도 가문과의 관계

역사학자 두계 이병도윤치소의 사돈이자 윤치영의 처남으로, 윤치병과 이중으로 사돈 관계를 맺었다.

윤치병의 둘째 형 윤치소의 넷째 딸 윤계경(1918년 2월 13일 ~ ?)은 이재영(? ~ ?)과 결혼했다.[2] 이재영은 이병도의 형 이병묵의 아들이자[2], 수군절도사 이봉구의 손자이다.

윤치병의 여섯째 동생 윤치영은 이병영(1900년 ~ )과 결혼했는데, 이병영은 수군절도사 이봉구의 딸이자 사학자 이병도의 여동생이었다.

이병도와 이병묵은 윤치병의 동생 윤치영의 처남인 동시에, 윤치병의 형 윤치소의 딸이 이병도의 조카와 결혼하여 윤치소의 사돈이었다. 또한 이병도와 이병묵의 6촌 형 이병림은 윤치소윤치영의 매제, 매형이 된다. 윤치소의 여동생이자 윤치영의 둘째 누나인 윤정숙은 이병도, 이병묵의 6촌 형 이병림과 결혼했다. 형 윤치오의 아들인 윤승선이병도의 6촌 여동생인 이을남과 결혼했다. 조카며느리 이을남은 윤치영의 첫 부인 이병영의 6촌 여동생이 된다.

5. 기타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을 지낸 윤보선, 경기도지사를 지낸 윤원선은 그의 조카였다.

그의 처조부 허계는 흥선대원군 집권 시절 경복궁 영건도감에 관여하기도 했다.

참조

[1] 서적 윤치호 일기 - 한 지식인의 내면세계를 통해 본 식민지 시기 역사비평사 2002
[2] 서적 윤치호 일기 역사비평사 2002-05-15
[3] 웹사이트 안동교회 90년사 http://www.andong-ch[...]
[4] 문서
[5] 서적 윤치호 일기:1916-1943 역사비평사 2001
[6] 웹사이트 http://www.ionyang.c[...]
[7] 간행물 해평윤씨대동보 권삼 1983
[8]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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