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익
1. 개요
이보익은 1876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나 김보현과 결혼하여 3남 3녀를 두었다. 1937년 보천보 전투 이후 김일성의 귀순을 종용받았으나 저항했다. 1958년 10월 18일에 사망했으며, 평양 만경대에 반신상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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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명 | 리보익 |
|---|---|
| 한글 | 이보익 |
| 한자 | 李寶益 |
| 가나 | り ほうえき |
| 조선글 | 리보익 |
| 출생일 | 1876년 5월 31일 |
| 출생지 | 평안남도평양 |
| 사망일 | 1959년 10월 18일 |
| 국적 | 조선(1876~1897) 대한제국(1897~1910)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1948~1955) |
| 배우자 | 김보현 |
|---|---|
| 자녀 | 3남(장남 김형직,차남 김형권,삼남 김형록) |
| 친척 | 장손 김일성,차손 김철주,삼손 김영주,사손 김창주(삼남 김형록의 아들),증손 김정일,증손 김만일,증손녀 김경희,증손녀 김경숙,증손녀 김경진,증손자 김평일,김영일 |
| 정당 | (정보 없음) |
|---|---|
| 정치 운동 | (정보 없음) |
| 로마자 표기법 | Ri Bo-ik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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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시 출신 -
김동인
김동인은 '약한 자의 슬픔'으로 시작하여 '감자'와 같은 작품을 통해 사실주의를 개척하고, 《창조》를 창간했으며, 사후 동인문학상이 제정되었다. -
평양시 출신 -
주요한
주요한은 일제강점기 시인이자 언론인이자 정치인이며, 친일 행위로 인해 논란이 있으며, 국회의원과 상공부 장관을 역임했다. -
김일성 -
박헌영
박헌영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정치인으로, 조선공산당 창당에 참여하고 해방 후 조선공산당 재건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나, 한국 전쟁 이후 김일성 정권에 의해 처형되어 그의 생애와 활동은 논란과 재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 -
김일성 -
6.25 전쟁
6.25 전쟁은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되어 1953년 휴전 협정으로 종결되었으며, 한반도의 분단과 막대한 인명 피해를 초래한 한국 전쟁을 의미한다. -
1876년 출생 -
로베르트 미헬스
로베르트 미헬스는 사회학자이자 정치학자로, 과두제의 철칙(Iron Law of Oligarchy) 이론을 제시했으며, 정당의 관료화와 소수 엘리트 지배의 관계를 연구했다. -
1876년 출생 -
찰스 케터링
찰스 케터링은 전기식 계산대, 자동차용 전기 시동 장치, 점화 및 조명 시스템을 개발하여 자동차 대중화에 기여하고 GM 연구소 부사장을 역임한 미국의 발명가, 엔지니어, 사업가이다.
2. 생애
1876년 5월 31일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다. 소작농민 김보현과 결혼하여 김형직을 포함한 3남 3녀를 두었으며,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자녀들을 키웠다. 1937년 보천보 전투 이후, 손자인 김일성을 회유하려는 관동군의 시도에 저항한 일화가 전해진다. 1945년 광복 이후 귀국한 손자 김일성과 함께 만경대에서 생활하다가 1959년 10월 18일 83세를 일기로 사망했으며, 평양시 만경대에 안장되었다.
2.1. 초기 생애
1876년 5월 31일 평안남도 평양 (현재의 평양직할시 사동구역 오류리)에서 태어났다. 소작농민이었던 전주 김씨 김보현과 결혼하여 슬하에 3남 3녀를 두었다. 가난한 형편에 자녀를 많이 낳아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전해진다.
2.2. 항일 투쟁과 관련된 논란
1937년 6월 4일 함경남도 갑산군에서 보천보 전투가 일어난 후, 만주국의 조선인 치안 관계자들은 이 사건의 배후 인물로 김일성(본명 성주)을 지목하였다. 이들은 김일성을 귀순시키려는 목적으로 그의 할머니인 이보익을 압록강 연안과 백두산 부근의 험준한 산악 지대로 데려가 항복을 권유했다. 당시 일본 측 기록에는, 이보익이 이러한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절개를 지키며 오히려 관동군 장교들을 꾸짖으며 저항했다고 전해진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이보익의 이러한 행적을 독립운동과 연결하여 높이 평가하고 우상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우상화를 위해 없는 사실을 만들어낸 것이라는 비판이 있다.
2.3. 해방 이후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전으로 광복을 맞이한 후, 중국 동북에서 게릴라 활동을 하다가 소련 영내로 탈출했던 손자 김성주(김일성으로 개명)가 귀국했다. 이보익은 고향인 만경대에서 계속 농사를 짓고 살다가 1955년 9월 2일 남편 김보현의 임종을 보았고, 1959년 10월 18일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묘는 평양시 만경대구역 만경대에 있으며, 이곳에는 그의 반신상이 세워져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그의 행적을 독립운동과 연계시키며 우상화하고 있으나, 이는 우상화를 위하여 없는 사실을 만들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