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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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1년은 후한 초평 2년에 해당하며, 신미년에 해당한다. 주요 사건으로는 동탁이 낙양에서 장안으로 천도하고, 손견이 양인 전투에서 승리한 것 등이 있다. 고구려에서는 고국천왕이 을파소를 국상으로 임명했으며, 파르티아의 볼로게세스 4세가 사망하고 볼로게세스 5세가 왕위를 계승했다. 주요 사망 인물로는 손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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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년 | |
|---|---|
| 191년 | |
| 기년 | |
| 간지(干支) | 신미년 (흰 양띠) |
| 단기 | 2524년 |
| 불기 | 735년 |
| 황기 | 851년 |
| 히브리력 | 3951~3952년 |
| 연대 | |
| 2세기 | 180년대 190년대 200년대 |
| 년도 | |
| 사건 | |
| 음력 | 2월, 후한의 동탁이 장안으로 천도하다. |
| 탄생 | |
| 사망 | |
2. 연호
- 후한(後漢) 초평(初平) 2년
- 간지 : 신미
- 일본
- * (천황 공위: 편의상 성무천황 61년으로 표기되기도 함)
- * 황기 851년
- 조선
- * 고구려 : 고국천왕 13년
- * 신라 : 벌휴왕 8년
- * 백제 : 사구왕 26년
- * 단기 2524년
- 불멸기원 : 734년
- 유대력 : 3951년 - 3952년
3. 기년
4. 사건
- '''후한'''
후한에서는 2월 17일(음력 1월 6일, 신축(辛丑)일)에 크게 사면을 내렸다.[2] 3월 25일(음력 2월 12일, 정축(丁丑)일)에는 동탁이 스스로 태사(太師)가 되었다.[3] 음력 2월, 원소 · 원술 등이 이끄는 반동탁 연합군의 손견 군과 동탁이 이끄는 중앙 정부군이 사례 하남윤 양현의 양인(陽人) 땅에서 충돌하여, 손견이 승리하였다. (양인 전투)[4] 동탁은 낙양의 여러 황제의 능을 발굴하게 하였다.[5] 음력 4월, 동탁이 장안(長安)에 들어왔다.[6] 8월 1일(음력 6월 23일 병술(丙戌)일)에는 지진이 있었다.[7] 음력 7월, 사공 종불(種拂)이 면직되고, 광록대부 제남(濟南) 사람 순우가(淳于嘉)가 사공이 되었다. 태위(太尉) 조겸(趙謙)이 파직되고, 태상(太常) 마일제(馬日磾)가 태위가 되었다.[8] 11월 5일(음력 10월 1일 임술(壬戌)일), 동탁이 위위(衛尉) 장온(張溫)을 죽였다.[9] 음력 11월, 청주(青州)의 황건적이 태산(太山)에 쳐들어갔으나, 태산태수 응소(應劭)가 이를 격파하였다. 황건적은 방향을 바꾸어 발해(勃海)에 쳐들어갔고, 공손찬(公孫瓚)이 황건적과 더불어 동광(東光)에서 싸워, 다시 이를 대파하였다. 이때, 장사(長沙)에는 죽었다가 달[月]을 지나 부활한 사람이 있었다.[10]
한구관(Hangu Pass) 동쪽의 중국 군벌 연합이 헌제를 인질로 잡은 동탁에 대한 토벌 작전을 시작한다. 연합군에게 몇 차례 패배한 후, 동탁은 수도를 낙양에서 장안(Chang'an)으로 강제로 천도한다. 떠나기 전에 동탁은 그의 군대에게 한(漢) 황제들의 무덤을 약탈하고, 연합군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기 위해 낙양을 불태우라고 명령한다. 계교 전투에서는 원소(Yuan Shao)가 북중국(China)에서 공손찬(Gongsun Zan)을 간신히 물리쳤다.
- '''고구려'''
고국천왕이 을파소를 국상으로 임명하였다.
4. 1. 후한
후한에서는 2월 17일(음력 1월 6일, 신축(辛丑)일)에 크게 사면을 내렸다.[2] 3월 25일(음력 2월 12일, 정축(丁丑)일)에는 동탁이 스스로 태사(太師)가 되었다.[3] 음력 2월, 원소 · 원술 등이 이끄는 반동탁 연합군의 손견 군과 동탁이 이끄는 중앙 정부군이 사례 하남윤 양현의 양인(陽人) 땅에서 충돌하여, 손견이 승리하였다. (양인 전투)[4] 동탁은 낙양의 여러 황제의 능을 발굴하게 하였다.[5] 음력 4월, 동탁이 장안(長安)에 들어왔다.[6] 8월 1일(음력 6월 23일 병술(丙戌)일)에는 지진이 있었다.[7] 음력 7월, 사공 종불(種拂)이 면직되고, 광록대부 제남(濟南) 사람 순우가(淳于嘉)가 사공이 되었다. 태위(太尉) 조겸(趙謙)이 파직되고, 태상(太常) 마일제(馬日磾)가 태위가 되었다.[8] 11월 5일(음력 10월 1일 임술(壬戌)일), 동탁이 위위(衛尉) 장온(張溫)을 죽였다.[9] 음력 11월, 청주(青州)의 황건적이 태산(太山)에 쳐들어갔으나, 태산태수 응소(應劭)가 이를 격파하였다. 황건적은 방향을 바꾸어 발해(勃海)에 쳐들어갔고, 공손찬(公孫瓚)이 황건적과 더불어 동광(東光)에서 싸워, 다시 이를 대파하였다. 이때, 장사(長沙)에는 죽었다가 달[月]을 지나 부활한 사람이 있었다.[10]한구관(Hangu Pass) 동쪽의 중국 군벌 연합이 헌제를 인질로 잡은 동탁에 대한 토벌 작전을 시작한다. 연합군에게 몇 차례 패배한 후, 동탁은 수도를 낙양에서 장안(Chang'an)으로 강제로 천도한다. 떠나기 전에 동탁은 그의 군대에게 한(漢) 황제들의 무덤을 약탈하고, 연합군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기 위해 낙양을 불태우라고 명령한다. 계교 전투에서는 원소(Yuan Shao)가 북중국(China)에서 공손찬(Gongsun Zan)을 간신히 물리쳤다.
4. 2. 고구려
고국천왕이 을파소를 국상으로 임명하였다.4. 3. 파르티아
파르티아의 볼로게세스 4세 왕이 44년의 통치 후 사망하고, 그의 아들 볼로게세스 5세가 계승한다.5. 인물
5. 1. 탄생
5. 2. 사망
참조
[1]
서적
A Biographical Dictionary of Later Han to the Three Kingdoms 23-220 AD
Brill
[2]
서적
후한서 제9권
[3]
서적
후한서 제9권
[4]
서적
후한서 제9권
[5]
서적
후한서 제9권
[6]
서적
후한서 제9권
[7]
서적
후한서 제9권
[8]
서적
후한서 제9권
[9]
서적
후한서 제9권
[10]
서적
후한서 제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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