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준 (1896년)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이영준은 1896년 한성부에서 태어나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동경제국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인물이다.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 교수, 세브란스병원 의사, 동아일보 『지상병원』 집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장 및 사장을 역임했다. 광복 후 한국민주당에서 정계에 입문하여 제헌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고, 국회 부의장을 지냈다. 1968년 사망할 때까지 여러 정당을 거치며 국회의원 활동을 했다.

이영준 (1896년)
인물 정보
이름이영준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출생일1896년 9월 17일
출생지조선 한성부
사망지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제기동
사망일1968년 8월 18일
사망 원인노환
국적대한민국
학력도쿄제국대학 의학 박사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동문 - 원용덕
    원용덕은 일제강점기 만주국 군의관으로 복무하고 대한민국 국군 창설에 참여했으며, 정치적 사건에 개입하여 정치 군인으로 평가받았고, 4·19 혁명 이후 구속되었다가 사면된 인물이다.
  •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동문 - 문창모
    문창모는 결핵 퇴치 운동에 기여한 의사이자 자유당, 공화당, 통일국민당 소속의 정치인으로, 제14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원주기독교병원 재건과 연세대학교 원주대학 설립에 공헌했다.
  • 연세대학교 - 방우영
    방우영은 조선일보의 회장으로서 조선일보의 성장을 이끌었으며, '밤의 대통령'이라 불릴 정도로 영향력이 컸고, 언론 사업 확장과 사회 공헌 활동에도 참여한 언론인이다.
  • 연세대학교 - 정갑영
    정갑영은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이자 제17대 총장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경제학자로, 산업조직론과 국제경제학을 전공했으며 자유기업원 이사장과 동아일보 객원 논설위원을 맡고 경제학 관련 저술 및 방송 활동을 통해 대중에게 경제학을 알리는 데 기여했다.
  • 서울특별시 출신 - 정경심
    정경심은 자녀 입시 비리 혐의로 징역 4년형이 확정되어 복역 후 가석방된 대한민국의 영문학자이자 대학교수였다.
  • 서울특별시 출신 - 서형원
    서형원은 환경운동연합 활동을 거쳐 과천시의회 의원 및 의장을 역임하고 녹색당 풀뿌리정치지원단장으로 활동한 환경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2. 생애

이영준은 1896년 조선 한성부에서 태어나 1968년 8월 18일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제기동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인남학교, 대구계성고등보통학교, 경성양정고등보통학교,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동경제국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세브란스병원 의사이자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동아일보에 『지상병원』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1945년 광복 이후 한국민주당 발기회에 참여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동대문 을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국회에서 보건후생위원회 위원, 문교사회위원회 위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이후 민주국민당, 민주당, 신민당, 민정당, 신민당, 민주공화당 등 여러 정당에서 활동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국회 부의장을 역임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당선되었으나,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공천 탈락으로 출마하지 못했다.

2.1. 초기 생애 (1896년 ~ 1945년)

이영준은 1896년 9월 17일 조선 한성부에서 태어났다. 인남학교, 대구계성고등보통학교, 경성양정고등보통학교,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졸업했다. 그 과정에서 경기도소학교교원시험에 합격하고, 1924년 10월 동아일보 주최 웅변대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1931년 동경제국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조선으로 돌아와 모교인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에서 교수를 지냈다.

이후 세브란스병원 의사이자 교수로 재직하며, 동아일보에 『지상병원』이라는 제목의 글을 1934년부터 1940년까지 기고했다.

2.2. 정치 활동 (1945년 ~ 1960년)

1945년 광복 이후 한국민주당 발기회에 참여하여 정계에 입문, 한국민주당에서 중앙상무집행위원, 재정부장, 재무부장을 지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동대문 을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국회에서는 보건후생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1948년 11월 20일 최윤동 등 99명과 함께 미군 주둔 요청 결의안에 찬성했고, 12월에는 문교사회위원회 위원장에 당선되었다.

1949년 2월 공과대학교의 학생 수 증가에 따라 예산을 늘리자는 취지의 건의안을 발의했으며, 사회부 산하 보건국의 독립을 촉구했다. 문교사회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관세법, 대한민국교육법, 여순사건 이재민 구호 대책 등을 국회에서 논의했다.

민주국민당 창당 후, 한국민주당을 탈당하고 민주국민당으로 당적을 옮겨 대책위원, 재무부장을 지냈다. 1949년 6월 군사고문단 설치 환영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다.

1950년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동대문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민주국민당에서 재정부장, 총무부장을 역임했다.

1954년 대한민국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동대문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55년 민주당 창당에 기여, 총무위원, 서울시당 상무위원을 역임했으며 민주당 구파에 소속되어 활동했다.

2.3. 민의원 부의장 및 이후 활동 (1960년 ~ 1968년)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을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이후 국회 부의장에 선출되었다. 1960년 10월 11일 곽상훈 의장과 함께 사표를 제출했으나 국회에서 반려되었다.

1960년 12월경 구파를 중심으로 한 신민당 창당에 기여했으며, 당의 중진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5.16 군사정변으로 당이 해체되자 민정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을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조용히 정치 활동을 했으며, 신민당으로 다시 당적을 변경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신민당 소속으로 출마하려 했으나 공천에서 탈락하여 출마하지 못했다. 이후 민주공화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1968년 8월 18일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제기동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3. 학력 및 경력

👆
좌우로 밀어서 보기
구분내용
학력
경력

4. 정계 활동

1945년 광복 이후 한국민주당 발기회에 참여하여 정계에 입문, 한국민주당에서 중앙상무집행위원, 재정부장, 재무부장을 지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자유특별시 동대문 을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국회에서는 보건후생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1948년 11월 20일 최윤동 등 99명과 함께 미군 주둔 요청 결의안에 찬성했고 12월에는 문교사회위원회 위원장에 당선되었다.

1949년 2월 공과대학교의 학생 수가 증가함에 따라 예산을 늘리자는 취지의 건의안을 발의했으며 사회부 하에 있던 보건국의 독립을 촉구했다.

문교사회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관세법, 대한민국교육법, 여순사건의 이재민 구호 대책 등을 국회에서 논의했다.

민주국민당이 창당되자 한국민주당을 탈당, 민주국민당으로 당을 옮겨 대책위원, 재무부장을 지냈다. 1949년 6월 군사고문단 설치 환영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자유특별시 동대문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민주국민당에서 재정부장, 총무부장을 역임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자유특별시 동대문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55년 민주당 창당에 기여, 총무위원, 서울시당 상무위원을 역임했으며 민주당 구파에 소속되어 활동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을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국회의 문교위원회와 사회보건위원회에 들어가 활동했다.

민주당에서는 구파와 신파의 갈등이 대통령 임명 문제로 최고조에 다다르자 중앙상위의장단으로서 양 파 간 갈등을 중재해보려 노력했으며 선거대책위원회의장에 임명되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을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국회에서 부의장에 당선되었다. 이후 1960년 10월 11일 곽상훈 의장과 함께 사표를 제출했으나 국회에서 반려되었다.

1960년 12월경 구파를 중심으로 한 신민당 창당에 기여했으며 당의 중진으로 활동했으나 5.16 군사정변으로 당이 해체되자 민정당으로 당을 옮겼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을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조용히 정치 활동을 했으며 신민당으로 당을 다시 한번 더 옮겼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소속으로 출마하려 했으나 공천에서 떨어져 출마하지 못했다. 이후 민주공화당으로 당을 옮겼다.

5. 역대 선거 결과

👆
좌우로 밀어서 보기
연도선거 종류소속 정당득표수 (득표율)순위당락비고
1948년총선한국민주당14,695표 (37.20%)1위당선초선
1950년총선민주국민당7,388표 (17.84%)3위낙선
1954년총선민주국민당7,870표 (20.50%)2위낙선
1958년총선민주당18,765표 (50.27%)1위당선재선
1960년총선민주당33,247표 (59.90%)1위당선3선
1963년총선민정당24,219표 (38.82%)1위당선4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