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회
1. 개요
이유회는 한국 전쟁 참전 군인으로, 육군 특무부대장 김창룡 암살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당했다. 그는 양주 송추국민학교 급사를 하다가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3년간 복무했다. 이후 김창룡 암살 사건에 가담하여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옥중에서 천주교로 개종한 뒤 1957년 9월 24일 옛 상관 허태영과 함께 사형이 집행되었다. 덕소보통학교, 경성제2고등보통학교, 육군보병학교를 졸업했다.
| 이름 | 이유회 |
|---|---|
| 현지어 표기 | 李留會 |
| 출생일 | 1930년 11월 05일 |
| 출생지 | 일제강점기 조선 경기도 양주 |
| 사망일 | 1957년 09월 24일 |
| 사망지 | 대한민국 경상북도 대구 교도소 사형장 (사형, 총살형) |
| 종교 | 개신교(장로회) → 천주교(세례명: 나자렛의 요셉) |
|---|---|
| 학력 | 대한민국 육군보병학교 |
| 배우자 | 無 |
| 자녀 | 無 |
| 친척 | 누나 이춘자(李春子) |
| 본관 | 상산(商山) |
| 근무 | 육군 서울중앙지역병사구사령부 |
| 지휘 | 분대장 |
| 정당 | 무소속 |
| 복무 기간 | 1950년 7월 14일 ~ 1956년 6월 1일 |
| 주요 참전 전투/전쟁 | 한국 전쟁 |
| 최종 계급 | 대한민국 육군 중사 |
| 서훈 내역 | 을지무공훈장 |
| 기타 이력 | 1956년 1월 30일 김창룡 장군 암살 사건을 중요 임무 종사 및 방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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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산 이씨 -
이민도
이민도는 조선 초기의 인물이며, 《조선왕조실록》과 《쌍계유고》에 그의 생애에 대한 기록이 나타난다. -
덕소초등학교 동문 -
김성수 (195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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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제이고등보통학교 동문 -
권옥연
권옥연은 함경남도 함흥 출신의 서양화가로, 앵포르멜과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아 추상화를 그렸으며, 1948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청회색 톤의 작품을 선보이고 무의자박물관을 운영하다 2011년 작고했다. -
경성제이고등보통학교 동문 -
박열
박열은 일제강점기 한국의 무정부주의자이자 독립운동가로, 일본에서 가네코 후미코와 함께 천황 암살을 기도하다 체포되어 '박열 사건'으로 알려졌으며, 해방 후 재일 조선인 단체 활동과 한국 전쟁 중 납북되어 북한에서 생을 마감했고,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헌을 기려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2. 일생
2.1. 주요 이력
경기도 양주에서 출생하였으며 1949년 경기도 양주 송추국민학교 급사 등을 잠시 9개월 남짓 지내다가 1950년 1월 연초 당시에 그만두고 1950년 7월, 전쟁 당시에 대한민국 육군 을종하사관으로 임관한 그는 1950년 7월 당시에서부터 1953년 7월 27일 종전 때까지 한국 전쟁에 3년 남짓을 참전하였다.
2.1.1. 한국 전쟁 참전
경기도 양주에서 출생하였으며 1949년 경기도 양주 송추국민학교 급사 등을 잠시 9개월 남짓 지내다가 1950년 1월 연초 당시에 그만두고 1950년 7월, 전쟁 당시에 대한민국 육군 을종하사관으로 임관한 그는 1950년 7월 당시에서부터 1953년 7월 27일 종전 때까지 한국 전쟁에 3년 남짓을 참전하였다.
2.2. 1956년 1월 30일 김창룡 장군 암살 사건과 그 후
그는 육군 제2군사령관 강문봉 장군의 배후로써 직속 상관 허태영 육군 대령과 함께 1956년 1월 30일을 기하여 결국엔 육군 특무부대장 김창룡 장군을 사살하는 데에 동참, 이른바 "김창룡 장군 암살 사건"을 중요 임무 종사 방조하여 군사재판(군법회의)에 기소되었다. 재판 끝에 사형이 선고되어 육군 중사 강제 예편된 그는 김홍섭 판사의 권유를 받아 옥중에서 개신교를 이탈하고 천주교로 개종하였으며 1957년 9월 24일을 기하여 옛 직속 상관 허태영 예비역 육군 대령과 함께 사형(총살형)이 집행되었다.
2.2.1. 김창룡 암살 사건 가담
그는 육군 제2군사령관 강문봉 장군의 배후로써 직속 상관 허태영 육군 대령과 함께 1956년 1월 30일을 기하여 결국엔 육군 특무부대장 김창룡 장군을 사살하는 데에 동참, 이른바 "김창룡 장군 암살 사건"을 중요 임무 종사 방조하여 군사재판(군법회의)에 기소되었다. 재판 끝에 사형이 선고되어 육군 중사 강제 예편된 그는 김홍섭 판사의 권유를 받아 옥중에서 개신교를 이탈하고 천주교로 개종하였으며 1957년 9월 24일을 기하여 옛 직속 상관 허태영 예비역 육군 대령과 함께 사형(총살형)이 집행되었다.
2.2.2. 군사재판과 사형
그는 육군 제2군사령관 강문봉 장군의 배후로써 직속 상관 허태영 육군 대령과 함께 1956년 1월 30일을 기하여 결국엔 육군 특무부대장 김창룡 장군을 사살하는 데에 동참, 이른바 "김창룡 장군 암살 사건"을 중요 임무 종사 방조하여 군사재판(군법회의)에 기소되었다. 재판 끝에 사형이 선고되어 육군 중사 강제 예편된 그는 김홍섭 판사의 권유를 받아 옥중에서 개신교를 이탈하고 천주교로 개종하였으며 1957년 9월 24일을 기하여 옛 직속 상관 허태영 예비역 육군 대령과 함께 사형(총살형)이 집행되었다.
2.3. 학력
경기도 양주 덕소보통학교, 경성제2고등보통학교, 대한민국 육군보병학교를 졸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