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철 (1835년)
1. 개요
이재철은 덕흥대원군의 12대손으로, 1835년에 태어나 1894년에 사망한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1859년 증광시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가 건원릉, 홍릉, 예릉, 융건릉 등의 참봉을 역임했다. 이후 여러 현감과 군수를 거쳐 온양 군수를 지냈으며, 1891년 진상된 전복 부패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1900년 고종의 특명으로 무옥에 희생된 이명좌의 봉사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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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궁 -
이해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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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궁 -
달선군
달선군 이영은 덕흥대원군의 7대손으로 동지돈녕부사 이형종의 아들이었으나 낙천군 이온에게 입양되어 달선군에 봉해졌고, 양어머니와의 불화로 요절 후 파양되어 본가로 돌아갔다. -
조선의 문신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조선의 문신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
1894년 사망 -
김개남
김개남은 조선 말기 동학 농민 운동의 지도자 중 한 명으로, 1894년 전봉준과 함께 동학 농민 운동을 주도하며 전라도 남원을 중심으로 활동했으나 제2차 봉기 때 체포되어 처형되었고, 전봉준과 함께 핵심 인물로 평가받지만 노선과 연계 등에 대한 논란이 있다. -
1894년 사망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보물섬》,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등으로 유명한 스코틀랜드의 소설가, 시인, 수필가, 여행 작가로, 병약한 몸으로 세계를 여행하며 얻은 경험과 남태평양 사모아에서의 삶이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생애
1835년(헌종 1) 11월 22일 진사 이익의 아들로 태어났다. 1859년(철종 10) 증광시 생원 1등 2위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건원릉 참봉, 홍릉 참봉, 예릉 참봉 등 주로 왕릉을 관리하는 직책을 맡았다. 1868년(고종 5년)에는 이름을 철주(哲周)에서 재철(載哲)로 바꾸었다.
1875년(고종 12) 돈녕부 참봉, 종묘 부봉사를 거쳐 1876년(고종 13) 상서원 부직장, 직장, 사옹원 주부, 호조 좌랑 등 중앙 관직을 역임했다. 1877년(고종 14)에는 거독옥책안 집사와 거옥책안 집사로 봉무하여 각각 아마 1필과 상현궁 1장을 하사받았다.
1878년(고종 15) 건릉 령을 시작으로 1879년(고종 16)에는 건릉 동지제에서 대축을 대행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1881년(고종 18) 영희전 령, 휘릉 령, 수릉 령 등 다시 왕릉 관리직을 맡았다.
1882년(고종 19)부터는 지방관으로 나가 충청우도 신창 현감, 낭천 현감, 임피 현령, 전의 현감, 온양 군수, 고창 현감, 서산 군수 등을 역임했다. 1891년(고종 28) 서산 군수 재직 시절에는 진상한 전복이 부패하는 사건으로 곤욕을 치렀다.
1894년 1월 4일 60세로 사망하였다. 사후 1900년(광무 4) 고종의 특명으로 임인사화 때 희생된 도정궁 이명좌의 봉사손(奉祀孫)이 되었다.
2.1. 가계와 배경
덕흥대원군의 12대손이며, 응천군 이돈의 9대손이고, 충정공 이홍술의 7대손이며, 무옥(임인사화)에 희생된 도정궁 제6.5대 이명좌의 봉사손이다. 아버지는 진사 이익이고, 계모는 부사 진천인 송재의의 딸 진천 송씨, 생모는 순천인 박해익의 딸 순천 박씨이다. 부인은 군수 은진인 송석로의 딸 영인 은진 송씨이다.
2.2. 관직 생활
1859년(철종 10) 증광시 생원 1등 2위에 급제하여 1864년(고종 1) 건원릉 참봉에 제수되었다가 홍릉 참봉을 역임하였다.
1868년(고종 5년) 이름을 철주(哲周)에서 재철(載哲)로 개명하고, 1869년(고종 6) 예릉 참봉에 제수되었다.
1875년(고종 12) 돈녕부 참봉에 제수되었다가 이해 3월 1일 종묘 부봉사에 제수되었다.
1876년(고종 13) 상서원 부직장에 제수되고, 이해 7월 16일 상서원 직장, 사옹원 주부, 호조 좌랑에 제수되었다.
1877년(고종 14) 거독옥책안 집사로 봉무하여 아마 1필을 하사받고, 이해 1월 11일 거옥책안 집사로 봉무하여 상현궁(시위를 얹은 상품의 활) 1장을 하사받았다.
1878년(고종 15) 건릉 령에 제수되었다.
1879년(고종 16) 민영규가 건릉 동지제의 헌관 이돈상의 서계를 보고, 전사관 겸 대축 이병고가 오지 않아 이재철을 대축으로 대행시킨 일에 대해 황공하여 아뢰길, 해당 대축을 엄중히 감죄해야 하고, 살피지 않고 채워 차출한 이조 당상도 경책하지 않을 수 없으니 엄하게 추고 할것을 아뢰었고, 대축은 해부를 시켜 나문하여 엄히 감죄하고 이조 참의에게는 견파하는 법을 시행하며, 헌관은 대죄하지 말라는 전교를 받았다.
1881년(고종 18) 영희전 령에 제수되었다가 이해 3월 21일 휘릉 령에 제수되고, 이해 10월 4일 수릉 령에 제수되었다.
1882년(고종 19) 충청우도 신창 현감에 제수되었다.
1885년(고종 22) 낭천 현감에 제수되었다가 이해 11월 22일 임피 현령에 제수되었다.
1886년(고종 23) 전의 현감에 제수되었다가 이해 7월 18일 온양 군수에 제수되었다.
1888년(고종 25) 고창 현감에 제수되고, 1890년(고종 27) 서산 군수에 제수되었다.
1891년(고종 28) 충청 감사 송세헌이 진상한 날전복이 전부 부패되어 제대로 봉하여 올리지 못한 해당 봉진관인 수사 민치일, 태안 부사 이봉호, 서산 군수 이재철, 결성 현감 김영준, 남포 현감 민영헌, 비인 현감 홍우룡 등을 현고를 받고 파출하도록 아뢰었는데, 이용선에게 대죄하지 말라고 회유하라는 전교를 받았다.
2.3. 진상 전복 부패 사건
1891년(고종 28) 충청 감사 송세헌(宋世憲)은 진상한 날전복이 모두 썩어, 제대로 봉하여 올리지 못한 봉진관인 수사 민치일(閔致一), 태안 부사 이봉호(李鳳鎬), 서산 군수 이재철, 결성 현감 김영준(金永駿), 남포 현감 민영헌(閔泳憲), 비인 현감 홍우룡(洪祐龍) 등을 현고(現告)를 받고 파출(罷黜)하라고 장계를 올렸다. 이에 대해 고종은 이용선에게 대죄하지 말라고 회유하라는 전교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