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인 고로
1. 개요
이주인 고로는 사쓰마번 출신의 일본 제국 해군 군인이다. 그는 세이난 전쟁 참전, 영국 유학, 이주인 신관 개발 등을 거쳐 러일 전쟁에서 쓰시마 해전 승리에 기여했다. 이후 제2함대 사령장관, 제1함대 사령장관을 역임했으며, 군령부장을 지냈다. 1907년 남작 작위를 받았고, 1917년 원수가 되었다. 1921년 사망했으며, 아오야마 묘원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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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인씨 -
이주인 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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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함대사령장관 -
고가 미네이치
고가 미네이치는 일본 제국 해군의 군인으로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연합함대 사령장관을 지냈으며, 해군병학교 졸업 후 여러 함선 근무와 주요 요직을 거쳐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후임으로 연합함대 사령장관이 되었으나 팔라우 대공습 중 사망하여 대함거포주의론자이자 영미 협조파로서 복잡한 면모를 보였던 그의 사망과 일본 해군의 몰락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
연합함대사령장관 -
요나이 미쓰마사
요나이 미쓰마사는 일본 제국 해군 군인이자 정치가로, 해군 무관으로서 국제적 경험을 쌓고 연합함대 사령장관과 해군대신을 역임했으며, 추축국 진영 참여에 반대하고 미영과의 협상을 모색하다 총리대신에 취임했으나 육군과의 갈등으로 사임, 태평양 전쟁 말기 해군대신으로 포츠담 선언 수락에 기여한 인물이다. -
훈4등 서보장 수훈자 -
메가타 다네타로
메가타 다네타로는 일본 제국의 관료이자 법률가, 교육자로, 귀족원 의원과 남작 작위를 받았으며, 하버드 대학교 졸업 후 일본 법률 및 재정 제도 정비에 기여했고, 대한제국 재정 고문으로 화폐정리사업을 실시하여 한국에서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지만 일본 근대 교육 발전에도 공헌했으며 국제연맹 총회에 일본 대표로 참석했다. -
훈4등 서보장 수훈자 -
마쓰우라 시게지로
마쓰우라 시게지로는 도쿄제국대학 졸업 후 내무성과 문부성에서 요직을 거쳐 문부차관, 경성제국대학교와 규슈제국대학교 총장을 역임하고 귀족원 의원과 문부대신을 지낸 일본의 관료, 교육자, 정치인이지만, 일제강점기 행적으로 친일 논란이 있다.
2. 생애
사쓰마번 출신인 이주인 고로는 1877년 세이난 전쟁에 참전하였다. 영국 해군사관학교와 해군대학교에서 병학을 전공하여 일본 제국 해군 내에서도 박식한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시모세 마사치카가 개발한 시모세 화약의 위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주인 신관을 개발하였다. 이 신관은 1905년 러일 전쟁 때 쓰시마 해전에서 시모세 화약과 함께 그 위력을 발휘하여 연합함대가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격파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러일 전쟁 이후에는 제2함대 사령장관, 제1함대 사령장관을 역임하였다. 제1함대 사령장관으로 재직 중일 때에 맹훈련으로 인하여 ‘월월화수목금금’이라는 말이 만들어졌고, 이후 같은 이름의 군가가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2.1. 초기 생애 및 군 경력
사쓰마번 번사 집안에서 태어나 1877년 세이난 전쟁에 참전했다. 영국 해군사관학교와 해군대학교에서 공부했다.
1877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 이주인 고로는 그리니치 왕립 해군 대학에서 과정을 수료하고 1883년 11월 27일 소위로 임관했다. 1885년 6월 20일 중위로 승진한 그는 1894년 청일 전쟁 동안 제국 해군 본부에서 참모로 복무했다. 그는 해군 사령관 야마모토 곤노효에 제독과 가까운 측근이 되었으며, 해군 기술 분야의 중요한 기획자이자 전문가였다.
1899년 9월 26일 소장으로 승진한 이주인 고로는 일본과 영국 간의 관계 개선을 강력히 주장했으며, 1902년 영일 동맹을 맺는데 기여했다. 1902년 후쿠시마 야스마사 중장과 함께 영국에 외교 사절로 파견되어 명예 대영제국 훈장(KCB) 십자 훈장을 받았다. 1903년 9월 5일 중장으로 승진했다.
해군 기술자 시모세 마사치카가 개발한 시모세 화약의 위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이주인 신관을 개발했다. 이 신관은 1905년 러일 전쟁 때 쓰시마 해전에서 시모세 화약과 함께 그 위력을 발휘하여 연합함대가 러시아 발틱함대를 격파하는데 큰 요인이 되었다. 이 때문에 이주인은 "쓰시마 해전 승리의 숨은 공로자"라고 불린다.
다음은 초기 생애 및 군 경력을 시간 순서대로 나열한 표이다.
| 연도 | 사건 |
|---|---|
| 1852년 | 사쓰마 번사 이주인 사이노죠의 장남으로 태어남 |
| 1871년 | 해군병학료 유년학사 입학 |
| 1876년 | 군함 「쓰쿠바」 승무 |
| 1877년 | 영국 유학(후카오 히로미와 함께 “학업진보”로 선발됨), 세이난 전쟁 참전 |
| 1878년 | 영국 해군 전함 「트라이엄프」(HMS Triumph) 승무 |
| 1880년 | 「트라이엄프」 항해사 |
| 1882년 | 「트라이엄프」 퇴함, 그리니치 해군대학교 입학 |
| 1883년 | 그리니치 해군대학교 졸업, 해군 중위 임관 |
| 1884년 | 「나니와」,「타카치호」,「우네비」 3척 무기감독 |
| 1885년 | 해군 대위 임관,「나니와」 승무 |
| 1886년 | 귀국, 참모본부 해군부 제1국 과원 |
| 1888년 | 해군참모본부 제1국원 |
| 1889년 | 해군참모부 제1과원, 「치요다」 회항위원·영국 출장 |
| 1890년 | 「치요다」 부장 직무대행, 해군 소좌 임관·「치요다」 부장 |
| 1891년 | 귀국 |
| 1892년 | 상비함대 참모 |
| 1893년 | 해군참모부 제2과원, 해군군령부 제1국 국원 |
| 1894년 | 대본영 참모관, 겸 해군군령부 제2국장 직무대행, 해군 대좌 임관·해군군령부 제2국장 겸 대본영 참모관 |
| 1895년 | 해군군령부 제1국장 |
| 1897년 | 겸 해군군령부 제2국장 |
| 1898년 | 해군군령부 제2국장 면직, 해군군령부 차장 직무대행 |
| 1899년 | 해군 소장 임관·해군군령부 차장 겸 장관회의 의원 |
| 1902년 | 상비함대 사령관 |
| 1903년 | 해군 중장 임관·해군군령부 차장 겸 장관회의 의원 |
2.2. 청일 전쟁과 이주인 신관 개발
사쓰마번 출신으로, 1877년 세이난 전쟁에 참전하였다. 영국 해군사관학교 및 해군대학교에서 병학을 전공하여 일본 제국 해군 내에서도 박식한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해군사관학교 5기 출신이다.
시모세 마사치카 해군기술사가 개발한 시모세 화약의 위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주인 신관을 개발하였다. 이 신관은 1905년 러일 전쟁 때 쓰시마 해전에서 시모세 화약과 함께 그 위력을 발휘하여 연합함대가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격파하는데 큰 요인이 되었다. 이 때문에 이주인은 "쓰시마 해전 승리의 숨은 공로자"라고 불린다.
2.3. 러일 전쟁 이후와 말년
사쓰마번 출신인 이주인 고로는 1905년 러일 전쟁 당시 쓰시마 해전에서 시모세 화약과 함께 사용된 이주인 신관을 개발하여 연합함대가 러시아 발틱 함대를 격파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로 인해 "쓰시마 해전 승리의 숨은 공로자"라고 불린다.
러일 전쟁 이후 제2함대 사령장관, 제1함대 사령장관을 역임하였다. 제1함대 사령장관 재직 시절 맹훈련으로 인해 ‘월월화수목금금’이라는 말이 생겼고, 같은 이름의 군가가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1917년 원수가 되었다.
다음은 이주인 고로가 러일 전쟁 이후와 말년에 거친 주요 직책들이다.
3. 외교 활동 및 영일 동맹
이주인 고로는 일본과 영국 간의 관계 개선을 강력히 주장했으며, 영일 동맹(1902년)을 맺는데 기여했다. 그는 1902년 후쿠시마 야스마사 중장과 함께 영국에 외교 사절로 파견되어 명예 대영제국 훈장(KCB) 십자 훈장을 받았다.
4. 가족
* 장남: 이주인 마쓰지 (해군 중장)
* 차남: 오오노 다케지 (해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