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이치조 미카코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이치조 미카코는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정실로, 원래 이치조 타다카의 딸인 이치조 테루코가 요시노부와 약혼했으나 천연두로 인해 미카코가 대역으로 간택되었다. 1855년에 결혼하여 1858년 딸을 낳았지만 요절했고, 요시노부가 쇼군 후견직을 맡아 교토로 가면서 별거 생활을 시작했다. 요시노부가 쇼군이 된 후에도 에도 성 오오쿠에 들어가지 못했으며, 메이지 유신 이후 '미카코'로 개명했다. 요시노부의 근신 해제 후 시즈오카에서 함께 살았고, 1894년 유방암으로 사망했다. 그녀의 삶은 소설과 드라마의 소재로도 활용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막말의 오오쿠 관련자 - 덴쇼인
    덴쇼인은 에도 막부 말기, 쇼군의 부인으로서 도쿠가와 가문의 구제를 위해 헌신하고 메이지 유신 이후 도쿠가와 이에사토를 양육 및 지원하며 긍정적, 부정적 평가가 공존하는 인물이다.
  • 막말의 오오쿠 관련자 - 호켄인
    호켄인은 에도 막부 쇼군 도쿠가와 이에사다의 측실로, 이에사다 사후 사쿠라다 고요야시키로 거처를 옮겼다는 설과 오오쿠로 복귀했다는 설이 있으며, 메이지 유신 이후의 삶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중 매체에서 다뤄지기도 했다.
이치조 미카코
기본 정보
쇼켄 황후
쇼켄 황후
이름이치조 미카코
로마자 표기Ichijō Mikako
출생1849년 10월 28일
사망1914년 11월 9일 (65세)
배우자메이지 천황
신분황후
사치코 (幸子)
가계
아버지이치조 다다요시
어머니이마데가와 나오코 (今出川 直子)
양어머니간닌지 마사코 (勧修寺正子)

2. 약력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정실. 원래 이름은 노부키미였으나, 이후 쇼코(將子)로 개명했다가 메이지 유신 이후 미카코(美賀子)로 다시 개명했다.

이치조 타다카의 딸 테루히메와 요시노부가 약혼했으나, 혼례 직전 테루히메가 천연두에 걸려 노부키미가 대신 요시노부의 정실이 되었다. 노부키미는 타다카의 양녀가 된 후 쇼코로 개명하고, 가에이 6년 5월 18일(구력)에 약혼하여 에도로 갔다. 안세이 2년 11월 15일에 정식 약혼을 하고, 같은 해 12월 3일에 결혼했다.[1]

안세이 5년 7월 16일에 딸을 낳았지만, 20일 만에 요절했다. 이후 요시노부가 쇼군 후견직이 되어 교토로 가면서 긴 별거 생활을 했다. 게이오 2년 요시노부가 쇼군이 되었지만, 요시노부는 교토에 있었고, 쇼코는 에도 성 오오쿠에 들어가지 않았다. 게이오 3년 12월 왕정복고의 대호령으로 요시노부가 쇼군직에서 물러나면서 "미다이도코로"에서 "고렌추"로 존칭이 변경되었다.[1]

게이오 4년 1월, 요시노부가 에도로 돌아왔지만 쇼군직을 반납한 후였고, 우에노 간에이지를 거쳐 슨푸 호다이인에서 근신 생활을 하여 쇼코와 만나지 못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쇼코에서 미카코로 개명했다.

메이지 2년 9월, 요시노부의 근신이 해제되고 2개월 후 미카코는 시즈오카로 가서 10년 만에 함께 살게 되었다. 요시노부는 신무라 신, 나카네 사치라는 측실을 두었지만,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 미카코가 친어머니로 하여 길렀다.

메이지 27년 유방암을 앓아 5월에 치료를 위해 도쿄 도쿠가와 이에사토 저택으로 옮겨졌다. 19일 다카마쓰 료운 집도로 수술을 받았지만, 폐수종을 함께 앓는 등 경과가 좋지 않아 7월 9일 사망했다. 향년 60세. 원호는 테이슈쿠인(貞肅院)이며, 묘소는 도쿄 야나카 영원이다.

시즈오카에서 요시노부에게 보낸 와카는 미카코의 사세구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다.

: "이렇게 괴롭게 이별을 하는 길에, 끝없는 여운은 연못의 흰 눈처럼"

2. 1. 혼인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원래 관백 이치조 타다카의 딸 치요키미(테루히메)와 약혼했으나, 혼례 직전 치요키미가 마마에 걸렸다. 그래서 대역으로 미카코가 선택되었다. 미카코는 타다카의 양녀가 되어 "쇼군"으로 개명, 가에이 6년 5월 18일(구력)에 약혼이 성사되어 에도로 내려갔다. 안세이 2년 11월 15일에 정식 약혼을 하고, 같은 해 12월 3일에 결혼했다.[1]

2. 2. 요시노부와의 관계

도쿠가와 요시노부와의 혼례는 원래 이치조 타다카의 딸 치요키미(테루히메)와 이루어질 예정이었으나, 혼례 직전 치요키미가 마마에 걸리는 바람에 미카코가 대신하게 되었다.[1] 미카코는 타다카의 양녀가 되어 가에이 6년 (1853년) 5월 18일(구력)에 약혼하고 에도로 내려갔으며, 안세이 2년 (1855년) 11월 15일에 정식 약혼을 하고 같은 해 12월 3일에 결혼했다.

안세이 5년 (1858년) 7월 16일에 딸을 낳았지만, 20일 만에 요절했다.[1] 이후 요시노부가 쇼군 후견직을 맡아 이에모치와 함께 교토로 가면서 오랜 별거 생활을 시작했다. 게이오 2년 (1866년)에 요시노부가 쇼군이 되었지만, 미카코는 에도 성오오쿠에 들어가지 못하고 계속 떨어져 살았다.[1]

2. 3. 메이지 유신 이후

1867년 왕정복고의 대호령으로 요시노부가 쇼군직에서 물러나면서, 미카코에게 사용되던 "미다이도코로"라는 존칭은 "고렌추"로 변경되었다.[1] 1868년 요시노부가 쇼군직을 반납한 후, 우에노 간에이지슨푸 호다이인에서 근신 생활을 하게 되면서 미카코와 대면할 수 없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쇼코"에서 "미카코"로 개명하였다.

1869년 9월 요시노부의 근신이 해제되자, 미카코는 2개월 후 시즈오카로 가서 10년 만에 요시노부와 함께 살게 되었다. 요시노부는 신무라 신, 나카네 사치라는 두 명의 측실을 두었는데,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 미카코가 친어머니처럼 양육하였다.

2. 4. 사망

메이지 27년 (1894년) 유방암을 앓아, 5월에 치료를 위해 도쿄의 도쿠가와 이에사토의 저택으로 옮겨졌다. 19일에 다카마쓰 료운의 집도로 수술을 받았으나 폐수종을 함께 앓는 등 경과가 좋지 않아, 7월 9일에 사망했다.[1] 향년 60세. 원호는 "테이슈쿠인"이며, 묘소는 도쿄의 야나카 영원이다.

시즈오카에서 요시노부에게 보낸 와카는, 미카코의 사세구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다.

: "이렇게 괴롭게 이별을 하는 길에, 끝없는 여운은 연못의 흰 눈처럼"

3. 인물

만년의 이치조 미카코


이치조 미카코는 도쿠가와 요시노부와 결혼했으나 원만한 관계는 아니었다. 하지만 미카코의 친정인 이마데가와 가문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며, 요시노부가 쇼군 후견직을 맡았을 때 이마데가와 가문의 신세를 졌다. 요시노부가 쇼군 재직 시 에도 성에 입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카코는 쇼군 정실임에도 오오쿠(大奥)에 들어간 적이 없었다.[3]

3. 1. 성격 및 요시노부와의 관계

요시노부와의 약혼 자체가 대역으로 급하게 결정된 것이었고, 요시노부는 의붓할머니[1]에 해당하는 잇시 요시나가의 미망인 도쿠신인과 매우 사이가 좋았기 때문에, 미카코는 매우 외로운 신혼 생활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게다가 결혼 후 3년 만에 겨우 얻은 여자아이도 곧 죽었기 때문에 더욱 성격이 우울해졌다고 한다. 요시노부의 근신[2] 해제 후, 비로소 요시노부의 생모 데이호인과 도쿠신인의 주선으로 시즈오카로 가서 동거했다. 그 후에는 그럭저럭 부부 사이도 회복된 듯하다. 다만, 미카코는 병약했던 탓도 있어서 두 번 다시 아이를 갖지 못했다.[3]

미카코와의 사이는 원만하지 못했던 요시노부였지만, 미카코의 친가와의 사이는 좋아서, 쇼군 후견직을 맡고 있었을 때는 이마데가와 가문의 신세를 졌다.

3. 2. 친정과의 관계

요시노부는 미카코와 원만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미카코의 친정인 이마데가와 가문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요시노부는 쇼군 후견직을 맡고 있었을 때 이마데가와 가문의 신세를 졌다.[2]

3. 3. 에도 성 오오쿠

요시노부가 쇼군 재직 시 에도 성에 입성하지 않았던 탓에, 미카코도 쇼군 정실이면서 한 번도 에도 성 오오쿠(大奥)에 들어간 적이 없었다.[3]

4. 관련 작품

이치조 미카코 관련 작품은 다음과 같다.

'''소설'''



'''텔레비전 드라마'''

  • 오오쿠 (1968년, 간사이 TV, 타니구치 카오리 출연)
  • 오오쿠 (1983년, 간사이 TV, 하야마 요코 출연)
  • 오와리 막말 풍운록 (1998년, TV 도쿄, 마츠다이라 유키 출연)
  • 도쿠가와 요시노부 (1998년, NHK대하드라마, 이시다 히카리 출연, 배역 이름은 "미가")
  • 푸른 하늘을 달려라 (2021년, NHK 대하드라마, 카와에이 리나 출연, 배역 이름은 "미가 님")[2][3]

4. 1. 소설

4. 2. 텔레비전 드라마


  • 오오쿠 (1968년, 간사이 TV 출연: 타니구치 카오리)
  • 오오쿠 (1983년, 간사이 TV 출연: 하야마 요코)
  • 오와리 막말 풍운록 (1998년, TV 도쿄 출연: 마츠다이라 유키)
  • 도쿠가와 요시노부 (1998년, NHK대하드라마 출연: 이시다 히카리) 단, 배역 이름은 첫 등장부터 "미가"였다.
  • 푸른 하늘을 달려라 (2021년, NHK 대하드라마 출연: 카와에이 리나) 단, 배역 이름은 요시노부쇼군 취임 전 첫 등장부터 "미가 님"이었다.[2][3]

참조

[1] 간행물 徳川慶喜大将軍ヲ罷ムルヲ以テ令シテ其称呼ヲ改ム アジア歴史資料センター
[2] 웹사이트 登場人物 静岡編|大河ドラマ「青天を衝け」 https://web.archive.[...] NHK 2021-09-26
[3] 웹사이트 【青天を衝け】第6回「栄一、胸騒ぎ」あらすじ “篤君”上白石萌音が登場 https://www.oricon.c[...] oricon ME 2021-03-20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