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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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리아 2세는 조지아 정교회의 제4대 카톨리코스-총대주교이다. 1933년 러시아에서 이라클리 구두샤우리-시올라슈빌리라는 이름으로 태어나 모스크바 신학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사제 서품을 받았다. 1977년 조지아 정교회 수장이 되었으며, 소련 붕괴 이후 교회의 부흥을 이끌었다. 그는 러시아와의 관계, 사회적 활동, 보수적인 입장 등으로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으며, 조지아에서 가장 신뢰받는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일리아 2세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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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 2세 (2004년)
존칭성하
좌하
직함전체 조지아의 카톨리코스 총대주교
므츠헤타-트빌리시 대주교
비치빈타와 츠훔-압하즈 교구의 수도 대주교
본명이라클리 구두샤우리-시오라슈빌리
출생일1933년 1월 4일
출생지소비에트 연방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북오세티야
블라디카프카스
국적조지아인
종교동방 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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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 2세 서명
사목
서품1957년
수도 서품1959년
주교 서품1963년
착좌1977년 12월 25일
교회조지아 정교회
이전다비트 5세
모교모스크바 신학 아카데미
직업카톨리코스 총대주교
전공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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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일리아 2세는 1933년 오르조니키제(현재의 블라디캅카스)에서 태어나, 1957년 부제, 1959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1960년 모스크바 신학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조지아로 돌아와 바투미 대성당에서 사제로 임명되었다. 이후 헤구멘(수도원장), 대수도원장으로 승진했다. 1963년 바투미와 셰모크메디의 주교 및 총대주교 대리로 임명되었고, 므츠헤타 신학 세미나리 초대 학장을 역임했다. 1967년 츠후미와 압하지아 주교를 거쳐 1969년 대주교로 승격되었다.

1977년 다비드 5세 총대주교 사후, 조지아의 새로운 카톨리코스-총대주교로 선출되었다. 총대주교로서 소련 치하에서 억압받던 조지아 정교회의 개혁을 이끌어 교회의 영향력과 명성을 회복시켰고, 현대 조지아어 성경 번역 및 출판을 감독했다.

1989년 4월 9일 트빌리시에서 벌어진 소련 통치 반대 시위에 참여, 유혈 사태를 막으려 했으나 소련 군대의 진압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1990년대 조지아 내전 중에는 평화로운 해결을 촉구했다.

1978년부터 1983년까지 세계 교회 협의회(WCC) 공동 의장을 역임했으나, 1997년 보수 성직자들의 비판으로 WCC에서 탈퇴했다. 2002년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 대통령과 정교 협약을 체결, 조지아 정교회의 특권과 총대주교의 법적 면책권을 확보했다. 트빌리시의 성 삼위일체 대성당 건설을 주도하여 2004년 성 게오르기우스 축일에 봉헌했다.

2.1. 유년기 및 교육

1933년 1월 4일, 소비에트 연방 러시아 SFSR 북오세티야 자치 공화국 블라디캅카스에서 이라클리 구두샤우리-시올라슈빌리(ირაკლი ღუდუშაური-შიოლაშვილი조지아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조지아 카즈베기 구역 출신이다. 아버지 기오르기 시올라슈빌리는 스노 마을 출신으로, 헤비 고지대에서 영향력 있는 가문이었다. 어머니 나탈리아 코바이제는 시오니 마을 출신이었다.

이라클리 구두샤우리는 모스크바 신학 세미나리를 졸업하고, 1957년 일리아라는 이름으로 부제 서품을, 1959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1960년 모스크바 신학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조지아로 돌아와 바투미 대성당에서 사제로 임명되었다. 1961년에는 헤구멘(수도원장), 나중에는 대수도원장으로 승진했다. 1963년 8월 26일, 바투미와 셰모크메디의 주교로 선택되었으며, 총대주교 대리로 임명되었다. 1963년부터 1972년까지 당시 조지아의 유일한 성직자 학교였던 므츠헤타 신학 세미나리의 초대 학장이었다.

1967년, 일리아는 츠후미와 압하지아의 주교로 서임되었고, 1969년에는 대주교로 승격되었다.

2.2. 성직 활동

일리아 2세는 1960년 모스크바 신학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조지아로 돌아와 바투미 대성당에서 사제로 임명되었다. 1961년에는 헤구멘(원장), 나중에는 대주교로 승진했다. 1963년 8월 26일, 그는 바투미와 셰모크메디의 주교로 서품되었으며, 총대주교 대리로 임명되었다.

1963년부터 1972년까지 그는 당시 조지아의 유일한 성직자 학교였던 므츠헤타 신학 세미나리의 초대 학장이었다.

1967년, 일리아는 츠후미와 압하지아의 주교로 서임되었고, 1969년에는 대주교로 승격되었다. 논란이 많았던 총대주교 다비드 5세가 사망한 후, 그는 1977년 12월 25일 조지아의 새로운 카톨리코스-총대주교로 선출되었다.

2.3. 총대주교 재임

일리아 2세는 논란이 많았던 총대주교 다비드 5세가 사망한 후, 1977년 12월 25일 조지아의 새로운 카톨리코스-총대주교로 선출되었다.

새로운 총대주교는 소련 이데올로기에 의해 억압받았던 조지아 정교회의 개혁을 시작하여, 1980년대 후반까지 이전의 영향력과 명성을 상당 부분 회복할 수 있게 했다. 1988년에는 180명의 사제, 40명의 수도사, 15명의 수녀가 있었으며, 신자 수는 1백만에서 3백만 명으로 추산되었다. 교회는 200개, 신학교 1개, 수녀원 3개, 수도원 4개가 있었다. 소련 말기에는 조지아의 사회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일리아 2세는 고르바초프 시대에 현대 조지아어 성경 번역 및 출판을 감독했다.

1989년 4월 9일, 일리아 2세는 트빌리시에서 소련 통치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했으며, 유혈 사태를 피하기 위해 시위대에게 근처의 카슈에티 교회로 철수할 것을 간청했지만 소용없었다. 이 평화 시위는 소련 군대에 의해 진압되어 22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당했다. 1990년대 조지아 내전 동안, 그는 분쟁 당사자들에게 위기의 평화로운 해결책을 찾을 것을 촉구했다.

1978년부터 1983년까지 일리아 2세는 세계 교회 협의회(WCC)의 공동 의장이었다. 조지아 정교회는 1962년 다른 소련 교회들과 함께 이 에큐메니칼 기구에 가입했다. 1997년 5월, 보수적인 정교회 성직자 그룹이 일리아 2세가 "에큐메니칼 이단"에 참여했다고 비난하며 분열을 위협하자, 총대주교는 서둘러 성 시노드를 소집하고 WCC에서 탈퇴를 발표했다. 2002년, 당시 조지아 대통령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와 일리아 2세는 정교 협약에 서명하여 조지아 정교회에 여러 특권이 부여되었고, 총대주교 직책을 가진 사람들에게 법적 면책권이 주어졌다.

일리아 2세는 트빌리시 중심부를 흐르는 쿠라 강 동쪽 언덕 위에 성 삼위일체 대성당 건설을 주도했다. 1988년 8월 24일, 트빌리시 시의회 의장에게 성당 건설을 위한 부지 확보를 요청했고, 100건이 넘는 설계 공모를 거쳐 1995년에 착공하여 2004년 11월 23일 (성 게오르기우스 축일)에 봉헌되었다.

3. 러시아와의 관계

2008년 남오세티야 전쟁 당시 일리아 2세는 러시아 정치 지도부와 러시아 정교회에 "정교회 러시아인들이 정교회 조지아인들을 폭격하고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러시아가 점령한 조지아 중부 도시 고리와 주변 마을을 방문하여 식량과 구호품을 전달하고, 사망한 조지아 군인과 민간인의 시신 수습을 지원했다. 또한, 2008년 9월 1일 조지아 전역에서 수만 명이 참여한 "러시아 중단" 인간 띠 시위를 축복했다.

2008년 12월, 일리아 2세는 알렉시 2세 모스크바 총대주교의 장례식 참석차 모스크바를 방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회담했다. 이는 8월 전쟁 이후 양국 간의 첫 고위급 공식 접촉이었다. 일리아 2세는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긍정적인 합의"를 맺었으며, 정치인들의 "신중하고 외교적인"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2023년 3월, 일리아 2세는 바르톨로메오스 1세에게 서한을 보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큰 슬픔"을 표명하고, 모스크바 총대주교 산하 우크라이나 정교회가 키예프 페체르스크 라브라 수도원 사용 권한을 갱신하지 못한 것에 우려를 표명했다. 이 발언은 조지아에서 모스크바 총대주교와 러시아에 대한 지지로 해석되어 비판을 받았다.

4. 사회적 활동 및 논란

일리아 2세는 사회적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쳤으며, 몇몇 발언과 행동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2007년 말, 일리아 2세는 조지아의 출산율 감소에 우려를 표하며, 자녀가 2명 이상인 가정의 셋째 아이부터 직접 세례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이는 조지아 정교회 신자들에게 큰 영예로 여겨져 국가적인 베이비 붐을 일으키는 데 기여했다.

그는 입헌군주제를 지지하며, 2007년에는 바그라티오니 왕가 아래 입헌군주제 수립을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2013년, 일리아 2세는 동성애를 "질병"으로 묘사하고 마약 중독에 비유하며,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기념 동성애자 권리 집회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그의 발언 이후 2013년 트빌리시 반동성애 시위가 발생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자유주의에 비판적이며, 동성애낙태를 비판하고, 학교 교과서의 "부족한 애국심"을 비난했다. 그는 다른 종교에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는 것에 반대하며, 국제 교육 교환 및 해외 취업을 "비애국적"이라고 비난했다.

2024년 11월, 일리아 2세는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된 국회의원 선거에서 사회적으로 보수적인 집권당의 승리를 축하하는 성명에 서명하여 논란이 되었다.

4.1. 출산율 장려 정책

2007년 말, 일리아 2세는 조지아의 출산율 감소에 우려를 표명하며, 이미 자녀가 최소 2명 이상인 가정에서 태어난 셋째 아이부터 직접 세례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단, 새로운 아이는 그의 발표 이후에 태어나야 했다. 그는 연 4회 대규모 세례 의식을 거행했다. 총대주교의 이 계획은 국가적인 베이비 붐에 기여했는데, 이는 총대주교에게 세례를 받는 것이 조지아 정교회 신자들에게 상당한 영예이기 때문이다. 일리아 2세는 47,000명 이상의 대자를 두고 있다.

4.2. 입헌군주제 지지

일리야 2세는 조지아의 정부 형태로 입헌군주제를 지지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2007년 10월 7일, 그는 설교에서 19세기 초 러시아 제국에 의해 조지아 왕위를 박탈당한 바그라티오니 왕가 아래 입헌군주제 수립을 고려할 것을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이 요청은 미헤일 사카슈빌리 대통령 정부와 야당 간의 갈등이 고조되는 시점에 이루어졌으며, 야당의 많은 구성원들은 대주교의 제안을 환영했다. 일리야 2세는 다비드 바그라티오니 무크라니 공을 지지했다.

일리야 2세 총대주교와 다비드 바그라티오니 무크라니
일리야 2세 총대주교와 다비드 바그라티오니 무크라니

4.3. 동성애 혐오 발언

2013년, 일리아 2세는 동성애를 "질병"으로 묘사하고 마약 중독에 비유했다. 그는 조지아 당국에 2013년 5월 17일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기념하여 트빌리시에서 계획된 동성애자 권리 집회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며, 집회가 "다수의 권리 침해"이며 조지아 전통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 이후, 조지아 정교회 사제를 비롯한 수천 명의 조지아인들이 동성애자 권리 집회에 항의하기 위해 트빌리시 거리로 나섰다. 집회 참가자에 대한 폭력이 심화되면서, 집회는 중단되었고 활동가들은 경찰의 호위 속에 버스를 타고 안전하게 대피했다. 일리아 2세는 이 사건에 대한 답변에서 폭력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4.4. 자유주의 비판

일리아 2세는 동성애낙태를 비판하고, 텔레비전에서 성적인 내용을 검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학교 교과서의 "부족한 애국심"을 비난하고, "극단적 자유주의"와 외국에서 유입되는 "사이비 문화"에 대해 경고했다.

2013년, 일리아 2세는 동성애를 "질병"으로 묘사하며 마약 중독에 비유했다. 그는 트빌리시에서 열린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기념 게이 권리 집회를 중단할 것을 조지아 당국에 촉구하며, 이 집회가 "다수의 권리 침해"이자 조지아 전통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 이후, 조지아 정교회 사제를 비롯한 수천 명의 조지아인들이 트빌리시 반동성애 시위에 참여했다. 이 시위에서 집회 참가자들에 대한 폭력이 발생하여 집회는 중단되었고, 활동가들은 경찰의 호위 속에 버스로 대피했다. 일리아 2세는 이 사건에 대해 폭력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조지아 법 아래 다른 종교에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는 것에 반대했으며, 국제 교육 교환 및 해외 취업을 "비애국적"이라고 비난했다.

4.5. 보수 정당 지지 논란

일리야 2세는 입헌군주제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 10월 7일, 그는 설교에서 바그라티오니 왕가(19세기 초 러시아 제국에 의해 조지아 왕위를 박탈당함) 아래 입헌군주제 수립을 고려할 것을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2024년 11월, 조지아 정교회는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된 국회의원 선거에서 사회적으로 보수적인 집권당의 승리를 축하하는 일리야 2세의 서명이 담긴 성명을 발표했다.

5. 수상 및 명예

안티오키아,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 러시아, 그리스,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거의 모든 정교회로부터 최고 훈장을 받았다.

세인트 블라디미르 정교 신학원 (뉴욕), 크레테 과학원, 세인트 티콘 정교 신학원 (펜실베이니아)에서 신학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지아 과학 아카데미 명예 학술원(2003) 회원이자 미국 족보학, 문장학, 기록 과학 학교 명예 회원이다.

2008년에는 다비드 구라미쉬빌리 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다비드 바그라티온 오브 무흐라니 왕자로부터 조지아 독수리 훈장 대훈장을 받았다.

6. 평가

일리야 2세는 2010년 CNN으로부터 "조지아에서 가장 신뢰받는 인물"로 평가받았으며, 2013년 11월 국제공화연구소의 여론 조사에서는 조지아 정치인 중 가장 높은 호감도(94%)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