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부총리
1. 개요
일본의 부총리는 내각법 제9조에 따라 정식으로 지정된 직책으로, 총리가 유고 시 임시 대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역대 부총리들은 다양한 내각에서 외무대신, 재무대신 등 주요 직책을 겸임했으며, 내각의 서열을 결정하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부총리는 총리 유고 시 임시 대리 역할을 수행하며, 그 외에도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 직위 명칭 | 부총리 |
|---|---|
| 원어 명칭 | 副総理 (Fuku-sōri) |
| 영어 명칭 | Deputy Prime Minister |
| 소속 | 내각 |
| 역할 | 정부 부수반 |
| 임명권자 | 총리 |
| 임명 절차 | 천황의 인증을 받음 |
| 임기 | 임기 없음 |
| 서열 | 1위 |
| 급여 | ¥20,916,000 |
| 직위 생성일 | 1947년 5월 3일 |
| 초대 | 시데하라 기주로 |
| 마지막 | 아소 다로 |
| 웹사이트 | 내각관방 영문 홈페이지 |
| 현직 | 공석 |
|---|---|
| 임명일 | 2021년 10월 4일 |
-
일본의 국무대신 -
일본의 내각총리대신
일본의 내각총리대신은 국회의 의결을 거쳐 천황이 임명하는 일본 행정부의 수반으로, 메이지 유신 이후 다이죠다이진을 대신하여 이토 히로부미가 초대 총리대신이 되었으며, 1947년 일본국 헌법 채택 후 현행 제도가 확립되어 중의원 해산권을 포함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
일본의 국무대신 -
마키시마 가렌
마키시마 가렌은 자유민주당 소속 중의원 의원으로, 가나가와현 제17구에서 4선 의원을 지냈으며 내각부 대신 정무관, 디지털 대신 겸 내각부 특명담당대신을 역임했고, 아베노믹스 긍정 평가, 원자력 발전 재개 지지, 다양한 가족 형태 옹호, 헌법 개정 찬성 등의 정책을 추진하며 여러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
일본의 행정관직 -
일본의 내각총리대신
일본의 내각총리대신은 국회의 의결을 거쳐 천황이 임명하는 일본 행정부의 수반으로, 메이지 유신 이후 다이죠다이진을 대신하여 이토 히로부미가 초대 총리대신이 되었으며, 1947년 일본국 헌법 채택 후 현행 제도가 확립되어 중의원 해산권을 포함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
일본의 행정관직 -
자위관
자위관은 일본 자위대의 장교 및 부사관으로, 방위성 시험을 통해 선발되며 다양한 유형의 채용 시험과 무시험 채용 경로가 존재하고, 국가 공무원으로서 안정적인 직업 환경과 복지 혜택을 누린다. -
일본의 부총리 -
오카다 가쓰야
오카다 가쓰야는 1953년 미에현 출생으로 도쿄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하고 관료, 하버드 유학 후 정계에 입문하여 중의원 의원, 여러 당의 대표와 간사장, 외무대신, 부총리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입헌민주당 상임고문으로 활동한다. -
일본의 부총리 -
미키 다케오
미키 다케오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제66대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하며 록히드 사건 조사와 정치 개혁을 시도했으나, 정치적 이상과 현실 간 괴리, 강직한 성격 등으로 다양한 평가를 받았다.
2. 일본국 헌법 하의 역대 부총리
| 부총리||내각|| nowrap="nowrap" |서열||지정 기간||역직||정당 | ||||||
|---|---|---|---|---|---|---|
| 시데하라 기주로 | 제1차 요시다 내각 | - | 1947년 5월 3일 - 1947년 5월 24일 | 복원청 총재 | 일본진보당 | |
| -- | 하야시 조지 | 제2차 요시다 내각 | 필두 | 1948년 10월 19일 - 1949년 2월 16일 | 후생대신 | 자유당 |
| 제3차 요시다 내각 | 1949년 2월 16일 - 1951년 3월 13일 | 후생대신 이후, 국무대신(무임소) | ||||
| -- | 오가타 다케토라 | 제4차 요시다 내각 | 필두 | 1952년 11월 28일 - 1953년 5월 21일 | 국무대신 (내각관방장관) 이후, 국무대신(무임소) | |
| 제5차 요시다 내각 | 1953년 5월 21일 - 1954년 12월 10일 | 국무대신 (무임소) 이후, 홋카이도 개발청 장관 | ||||
| -- | 시게미쓰 마모루 | 제1차 하토야마 이치로 내각 | 필두 | 1954년 12월 10일 - 1955년 3월 19일 | 외무대신 | 자유민주당 |
| 제2차 하토야마 이치로 내각 | 1955년 3월 19일 - 1955년 11월 22일 | 외무대신 | ||||
| 제3차 하토야마 이치로 내각 | 1955년 11월 22일 - 1956년 12월 23일 | 외무대신 | ||||
| -- | 고노 이치로 | 제3차 이케다 내각 | 필두 | 1964년 7월 18일 - 1964년 11월 9일 | 국무대신(무임소) | |
| 제1차 사토 내각 | 1964년 11월 9일 - 1965년 6월 3일 | |||||
| -- | 미키 다케오 | 제1차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 | 필두 | 1972년 8월 29일 - 1972년 12월 22일 | 국무대신(무임소) 이후, 환경청 장관 | |
| 제2차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 | 1972년 12월 22일 - 1974년 7월 12일 | 환경청 장관 | ||||
| 후쿠다 다케오 | 미키 내각 | 필두 | 1974년 12월 9일 - 1976년 11월 6일 | 경제기획청 장관 | ||
| 하타 쓰토무 | 호소카와 내각 | 필두 | 1993년 8월 9일 - 1994년 4월 28일 | 외무대신 | 신생당 | |
| 자유민주당 | ||||||
| 오카다 가쓰야 | 노다 내각 | 필두 | 2012년 1월 13일 - 2012년 12월 26일 | 행정개혁 담당 사회보장·세 일체 개혁 담당 공무원 제도 개혁 담당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 (행정 쇄신 담당) | ||
| -- | 아소 다로 | 제2차 아베 내각 | 필두 | 2012년 12월 26일 - 2014년 12월 24일 | 재무대신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 (금융 담당) 디플레이션 탈피·엔고 대책 담당 | 자유민주당 |
| 제3차 아베 내각 | 2014년 12월 24일 - 2017년 11월 1일 | |||||
| 제4차 아베 내각 | 2017년 11월 1일 - 2020년 9월 16일 | |||||
| 스가 요시히데 내각 | 2020년 9월 16일 - 2021년 10월 4일 | |||||
3. 부총리의 역할과 권한
일본에는 정식 관직명으로서 '부총리', '부수상', '내각부총리대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의 국무대신은 내각총리대신을 제외하고 지위나 대우에 우열이 없기 때문에, 당시 총리에 필적하는 권위를 가진 정치인이나, 연립 정권에서 총리 소속 정당 이외 정당의 당수를 입각시킬 때 등, 그 인물이 '부총리급'으로 입각했음을 나타낼 목적으로 내각총리대신 임시대리 예정자로 지정하고, 비공식적으로 '부총리'라는 직함을 사용했다.
2000년 4월까지는 내각총리대신 임시대리 예정자를 정식으로 지정(관보 게재)한 사람을 '부총리'라고 불렀다. '부총리'는 실제로 내각총리대신의 임시대리를 시키기 위함이라기보다는 각료의 각내에서의 상대적인 중요성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
고부치 게이조 총리가 갑작스러운 병으로 쓰러진 2000년 4월 이후, 내각총리대신 임시대리 예정자 5명을 미리 정식으로 지정하고, 그 중 '내각법 9조에 따른 임시대리 예정자 순위' 제1위인 사람을 내각관방장관인 국무대신으로 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부총리'로 불리지 않았다.
2009년 9월에 발족한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은 히라노 히로후미를 '내각법 9조에 따른 임시대리 예정자 순위' 제2위, 간 나오토를 제1위로 지정하고, 간을 '부총리'라고 칭했다. 이후 부총리 직함은 내각관방장관 이외의 각료를 '내각법 9조에 따른 임시대리 예정자 순위' 제1위로 지정한 경우에 사용하게 되었다. 노다 내각의 오카다 카츠야, 제2차 아베 내각 및 스가 요시히데 내각의 아소 다로가 이 의미에서의 '부총리'로 지정되었다.
수상 관저 웹사이트에서는 '부총리'라는 직함이 사용되지만, 관보에는 이 표기가 사용된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