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황민당
1. 개요
일본황민당은 1972년 이나모토 토라오가 가가와현 다카마쓰시에 설립한 우익 단체이다. 1980년 정치 단체로 신고했으며, 서일본 사자회에 가맹되어 있다. 1987년 다케시타 노보루에 대한 가두 연설('황민당 사건')으로 전국에 알려졌으며,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총영사관 방화, 오자와 이치로 자택 화염병 투척 미수 사건 등 여러 사건에 연루되었다. 2023년에는 총재 오시마 류민 등이 공갈 미수 혐의로 체포되었다. 주요 비판 대상은 좌익으로 분류되는 국가나 단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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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익 정치 -
보수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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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익 정치 -
우익 포퓰리즘
우익 포퓰리즘은 민족주의, 사회보수주의, 경제적 국가주의를 결합하여 '토착주의'를 내세우며 권위주의적 성향을 띠고 사회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대립을 조장하며, 반이민 정책, 세계화에 대한 의구심, 기존 정치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기반으로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하여 지지자를 규합하는 이데올로기이다. -
1972년 설립된 단체 -
국기원
국기원은 태권도의 발전과 세계화를 목표로 설립된 대한민국 특수법인으로, 기술 개발 및 연구, 교육 사업, 지도자 양성, 시범단 운영, 국제 교류, 행사 개최, 태권도인 복지 향상 등을 주요 사업으로 수행하며 태권도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
1972년 설립된 단체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는 1972년 설치된 북한의 국가 권력 기관으로, 김정일 시대에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으나 김정은 시대에 국무위원회로 대체되어 폐지되었다. -
일본의 우익 단체 -
행동하는 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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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우익 단체 -
미시마 유키오
미시마 유키오는 1925년 도쿄에서 태어나 소설, 희곡, 평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일본의 전통과 현대 사이의 갈등을 작품에 담아낸 20세기 일본 문학의 중요한 인물이며, 1970년 자위대에서 쿠데타를 시도하다 실패하고 할복 자살했다.
2. 연혁
* 1972년, 전일본애국자단체회의 의장 오기시마 미네고로의 문하생이었던 이나모토 토라오가 다카마쓰시에 우익 단체로 설립하였다. 초대 총재는 이나모토였다.
* 1980년 5월 22일, 정치 단체로 신고하였다.
* 1987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한 다케시타 노보루에 대한 '칭찬 살인' 가두 연설 (황민당 사건)을 통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 1990년 2월 21일, 전일본교직원조합협의회의 교연집회 개최에 반대하기 위해 교토시에 가두 선전 차량을 동원했다가 교토부 경찰의 폐기 문서를 훔쳤다는 혐의(절도죄)로 수사를 받았다.
* 1990년 12월, 걸프 위기 당시 이라크에 일본인 인질 석방을 위해 방문한 참의원 의원 안토니오 이노키를 호위한다는 명목으로 이나모토를 포함한 일본황민당 대원들이 동행했다.
* 1991년 가을, 이나모토 총재가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오시마 류민이 이나모토의 뒤를 이어 총재에 취임했다.
* 1997년 3월, 일본황민당은 다카마쓰시에 본부 건물을 건설했다.
* 2004년, 오사카시에 있는 중화인민공화국 총영사관에 가두 선전 차량을 돌입시켜 방화한 사건으로 운전자 등 2명이 체포되었다.
* 2010년 1월 15일, 오자와 이치로 당시 민주당 간사장 자택에 화염병 투척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 2011년 8월 21일, 도쿄도 미나토구 오다이바에 있는 후지 TV 본사 주변에서 벌어진 후지 TV 항의 데모에 편승, 가두 선전 활동을 했다.
* 2011년 11월 24일, 전 구성원 남성을 도쿄도 세타가야구의 회사 사무실에 감금하고 부상을 입힌 혐의로 구성원이 체포되었다.
* 2017년 10월 2일, 건설 회사로부터 현금을 갈취하려 한 혐의(공갈 미수)로 간부가 체포되었으나, 같은 달 20일 다카마츠 지검은 불기소 처분했다.
* 2023년 10월 11일, 문제 해결료 명목으로 지인에게서 현금을 갈취하려 한 혐의(공갈 미수)로 오시마 류민 총재와 넘버 2인 본부장이 체포되었다.
2.1. 설립 초기 (1972년 ~ 1980년대)
1972년, 전일본애국자단체회의 의장 오기시마 미네고로의 문하생이었던 이나모토 토라오가 다카마쓰시에 우익 단체로 설립하였다. 이나모토는 초대 총재가 되었다. 이나모토는 난도회 산하 시라카미구미 소속이었고, 같은 난도회 산하 후쿠이구미의 다쿠미 마사루(후에 5대 야마구치구미 와카가시라)와 의형제 관계였다.
이나모토는 다카마쓰의 대일본의화단 이와사키 토시아키와도 의형제였으며, 이후 중국, 시코쿠, 규슈의 130개 우익단체를 묶은 협의 단체 서일본 사자회를 결성하여 이 단체의 이사장이 되었다. 1980년 5월 22일, 정치 단체로 신고하였다. 일본황민당은 현재도 서일본 사자회에 가맹하고 있다.
2.2. 황민당 사건과 그 이후 (1987년 ~ 1990년대)
1987년, 일본황민당은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한 다케시타 노보루에 대한 '칭찬 살인' 가두 연설 (황민당 사건)을 통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가네마루 신 당시 부총리의 요청을 받은 도쿄 사가와급변 사장 와타나베 히로야스가 이나가와회 2대 회장 이시이 스스무를 통해 자금 공작을 했다는 사실이 1992년 도쿄 사가와급변 사건 수사 과정에서 밝혀졌다.
1990년 2월 21일, 전일본교직원조합협의회의 교연집회 개최에 반대하기 위해 교토시에 가두 선전 차량을 동원한 황민당 대원이 교토부 경찰의 폐기 문서를 훔쳤다는 혐의(절도죄)로 수사를 받으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이에 황민당은 교토부 경찰 본부와 교토지방재판소 재판관에 대한 항의 시위를 벌였고, 오시마 류민 등 간부 3명이 체포·구류되었다. 교토부 지사 선거를 앞두고 황민당은 구스노키 미사오 등 3명을 옹립하며, 경찰의 입후보 철회 시도에도 불구하고 선거 활동을 통해 교토부 경찰 본부장을 비판했다. 사가와 키요시의 중재로 황민당은 정견 방송에 출연하지 않고 선거 운동을 중단하고 가가와현 다카마츠시로 철수했다.
같은 해 12월, 걸프 위기 당시 이라크에 일본인 인질 석방을 위해 방문한 참의원 의원 안토니오 이노키를 호위한다는 명목으로 이나모토를 포함한 일본황민당 대원들이 동행했다. 이들은 미군 주도의 다국적군을 비난하고 쿠웨이트를 점령한 사담 후세인 정권을 옹호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사가와는 이노키의 후원자였으며, 인질 구출을 위한 터키 항공 전세기 비용도 마련했다. 이노키는 사가와의 지시에 따라 일본황민당에 편의를 제공한 것을 인정했다. 사가와가 전세기 비용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일본황민당의 동행을 요구했다는 주장도 있다.
1991년 가을, 이나모토 총재가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하타 토키오가 장례 위원장을 맡았고, 오카무라 고이치, 나카무라 타케히코, 시가 토시유키, 다카하시 마사요시, 기무라 히데지 등 주요 우익 인사들이 장례 고문으로 참여했다. 오시마 류민이 이나모토의 뒤를 이어 총재에 취임했다.
1997년 3월, 일본황민당은 다카마쓰시에 본부 건물을 건설했다. 등기부 상 저당권 설정이 확인되지 않아, 자비로 건설 비용을 충당한 것으로 보이며 상당한 재력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2.3. 2000년대 이후 활동
2004년, 오사카시에 있는 중화인민공화국 총영사관에 가두 선전 차량을 돌입시켜 방화한 사건으로 운전자 등 2명이 체포되었다.
2010년 1월 15일, 오자와 이치로 당시 민주당 간사장 자택에 화염병 투척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2011년 8월 21일, 도쿄도 미나토구 오다이바에 있는 후지 TV 본사 주변에서 벌어진 후지 TV 항의 데모에 편승, 가두 선전 활동을 했다.
2011년 11월 24일, 전 구성원 남성을 도쿄도 세타가야구의 회사 사무실에 감금하고 부상을 입힌 혐의로 구성원이 체포되었다.
2017년 10월 2일, 건설 회사로부터 현금을 갈취하려 한 혐의(공갈 미수)로 간부가 체포되었으나, 같은 달 20일 다카마츠 지검은 불기소 처분했다.
2023년 10월 11일, 문제 해결료 명목으로 지인에게서 현금을 갈취하려 한 혐의(공갈 미수)로 오시마 류민 총재와 넘버 2인 본부장이 체포되었다.
3. 주요 비판 대상
중화인민공화국(중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등 냉전 시대부터 좌익으로 분류되는 국가나 단체, 일본공산당(일공), 전일본교직원조합(전교), 일본교직원조합(일교조) 등이 주요 비판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