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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헌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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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임헌영은 1941년 경상북도 의성에서 태어난 문학평론가이다. 1966년 문학평론가로 등단하여, 약업신문, 경향신문 기자, 잡지 《월간다리》 주간 등을 역임했다. 문학인 사건, 남민전 사건 등으로 투옥되었으나 대통령 특사로 석방되었으며,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객원교수, 한국어문학 교수를 지냈다. 역사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활동하며 친일 청산에 힘썼고,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기여했다. 1988년 한국문학작가상, 1996년 편운조병화 문학상을 수상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과 관련하여 중립성 논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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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헌영 (문학평론가)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한글 이름임헌영
한자 이름任軒永
로마자 표기Yim Heon-yeong
본명임준렬
한자 (본명)任俊烈
인물 정보
직업사회운동가
작가
언론인
문학평론가
분야시문학, 저술, 평론
소속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중앙대 국문과 겸임교수
세계한민족작가연합 공동대표
활동 기간1959년 ~ 현재
출생 정보
출생일1941년 1월 15일
출생지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의성
학력
학력중앙대학교 대학원
가족
부모아버지: 임우빈
어머니: 이술노미
형제자매임상환(형)
수상
수상 내역한국문학작가상 평론부문상
편운조병화 문학상(평론상 부문)
외부 링크
웹사이트공식 사이트
임헌영의 문학광장
임헌영 트위터

2. 생애

임헌영은 1941년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임우빈은 1950년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사망했다. 1965년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1968년 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65년부터 1972년까지 의약신문, 경향신문 기자로 활동했다. 중앙대학교 강사를 역임했다. 1996년 3월부터 1998년 8월까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객원교수, 1998년 중앙대학교 한국어문학 교수를 역임했다.

2. 1. 출생과 학력

1941년 경상북도 의성에서 아버지 임우빈(任雨牝)과 어머니 이술노미(李述露薇) 슬하의 5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 임우빈은 보도연맹원으로 몰려 사형당했고, 형 임상환(任桑鰥)은 한국전쟁 때 실종되었으나 북한에 생존해 있다가 1990년 사망, 뒤늦게 조카들의 행방을 어렵게 알게 되었다.[4]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 1947년 3월 의성군 조문초등학교에 입학, 1953년 의성중학교로 진학했다가 1956년 3월 안동사범고등학교로 진학했다. 1959년 안동사범학교를 졸업하고 2년간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했다. 그해 3월 모교인 조문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했으나, 1961년 12월 그만두었다. 이듬해 3월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로 진학하여 1965년에 학사 학위를 받았다.

2. 2. 언론 및 문학 활동

1965년부터 1972년까지 약업신문·경향신문 기자로 일하고, 10월 유신으로 폐간된 진보적 잡지인《월간다리》 주간을 지냈다.[1] 1966년현대문학》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했다.[1] 1968년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1]

이후 중앙대학교에서 강사로 활동했다.[1] 1974년 문학인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제1심에서 석방된 후 언론인으로 활동하던 중,[1] 1979년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다시 투옥, 1983년 8월 대통령 특사로 석방되었다.[1] 1996년 3월부터 1998년 8월까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객원교수, 1998년 중앙대학교 한국어문학 교수를 역임했다.[1]

2. 3. 투옥과 석방

중앙대학교에서 강사로 활동했다. 1974년 문학인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제1심에서 석방된 후 언론인으로 활동하던 중 1979년 남민전 사건의 연루자로 지목되어 다시 투옥되었다. 1983년 8월에 대통령 특사로 석방되었다.

2. 4. 군사정권 몰락 이후

1990년 1월 월간 <<한길문학>>의 주간 및 한국문학학교 대표가 되었고, 1996년 3월부터 1998년 8월까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1996년 9월에는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 아카데미 원장이 되었다.[5] 한편, 그는 국군보안사령부의 사찰 대상 중 한 사람이 되어 노태우 정부로부터 감시를 받기도 했다.[5]

2. 5. 사회단체 활동

1986년부터 1989년까지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 역사문제연구소 운영위원을 거쳐 2001년 민족문제연구소 부소장을 역임했다. 2003년부터 2011년까지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으로 일하며 친일 청산에 힘썼으며, 2009년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기여했다.[4]

3. 저서 및 논문

wikitext

임헌영 저서 및 논문 목록
번호종류제목출판사출판년도
1저서한국 근대 소설의 탐구범우사1974
2평론집문학의 시대는 갔는가평민사1978
3평론집창조와 변혁형성사1979
4에세이집새벽을 위한 밤의 연가범우사1979
5평론집민족의 상황과 문학사상한길사1986
6산문선모래야 나는 얼만큼 작으냐금문당1986
7저서한국 현대 문학 사상사한길사1988
8평론집문학과 이데올로기실천문학사1988
9평론집변혁운동과 문학범우사1989
10저서분단시대의 문학태학사1992
11평론집우리시대의 소설읽기1992
12해설서노래가 된 서른일곱편의 시웅진문화1992
13평론집우리 시대의 시 읽기공동체1993
14해설서명작 속의 여성 73공동체1993
15저서문학을 시작하려면생활지혜1994
16산문집자유인에서 자유인으로문예마당1995
17참고서명작과 함께하는 주제별 논술한샘출판사1996



임헌영은 위 표에 정리된 저서, 평론집, 에세이집, 산문선, 해설서, 참고서 외에도 편저, 공저, 번역 등 20여 권과 논문, 평론, 산문 등 1000여 편을 발표했다. 또한 해외 학술대회에서 20여 차례 발제, 사회, 질의를 맡았다.

3. 1. 주요 저서

임헌영 주요 저서 목록
종류제목출판사출판년도
저서한국 근대 소설의 탐구범우사1974
평론집문학의 시대는 갔는가평민사1978
평론집창조와 변혁형성사1979
에세이집새벽을 위한 밤의 연가범우사1979
평론집민족의 상황과 문학사상한길사1986
산문선모래야 나는 얼만큼 작으냐금문당1986
저서한국 현대 문학 사상사한길사1988
평론집문학과 이데올로기실천문학사1988
평론집변혁운동과 문학범우사1989
저서분단시대의 문학태학사1992
평론집우리시대의 소설읽기1992
해설서노래가 된 서른일곱편의 시웅진문화1992
평론집우리 시대의 시 읽기공동체1993
해설서명작 속의 여성 73공동체1993
저서문학을 시작하려면생활지혜1994
산문집자유인에서 자유인으로문예마당1995
참고서명작과 함께하는 주제별 논술한샘출판사1996



이 외에도 편저, 공저, 번역 등 20여 권, 논문, 평론, 산문 등 1000여 편이 있다. 또한 해외 각종 학술대회에 참가하여 20여 차례 발제, 사회, 질의 등을 하였다.

4. 상훈 경력


  • 1988년 한국문학작가상 평론부문상을 수상하였다.
  • 1996년 편운조병화 문학상(평론상 부문)을 수상하였다.

5. 논란

지만원 등 보수 인사들은 임헌영이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에 대해 진정성과 정치적 의도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러한 의혹 제기는 '색깔론'이라는 반론이 있다.[7][8]

친일인명사전 편찬에는 민족문제연구소뿐만 아니라 역사문제연구소, 독립기념관 연구위원, 국사편찬위원회 등 각 분야의 권위 있는 역사학자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다.[9][10] 인물 선정은 일제강점기 공문서, 신문, 잡지 등 3천여 종의 문헌자료를 수집하여 250만 건의 인물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2만 5천 건의 친일혐의자를 추출하여 20여 분야의 전문분과회의와 상임위원회 심의를 거쳐 4430명을 선정하는 과정으로 진행되었다.[9] 선정된 인물들은 각 분야별 학계 권위자들과 상의하고 재차 검토 및 자문을 거쳐 전체회의에서 확정되었다.[8]

이 과정에서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임헌영에게 영향을 준 백철, 임종국의 부친 임문호, 백낙청의 부친 백붕제 등이 수록되었다.[9]

5. 1. 친일인명사전 편찬의 중립성 논란

지만원 등 보수 인사들은 임헌영이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에 대해 진정성과 정치적 의도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러한 의혹 제기는 '색깔론에 불과하다'는 반론이 있다.[7][8] 친일인명사전 편찬에는 민족문제연구소뿐만 아니라 역사문제연구소, 독립기념관 연구위원, 국사편찬위원회 등 각 분야의 권위 있는 역사학자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다.[9][10]

친일인명사전의 인물 선정은 일제강점기 공문서, 신문, 잡지 등 3천여 종의 문헌자료를 수집하여 250만 건의 인물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2만 5천 건의 친일혐의자를 추출하여 20여 분야의 전문분과회의와 상임위원회 심의를 거쳐 4430명을 선정하는 과정으로 진행되었다.[9] 선정된 인물들은 각 분야별 학계 권위자들과 상의하고 재차 검토 및 자문을 거쳐 전체회의에서 확정되었다.[8]

이 과정에서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임헌영에게 영향을 준 백철, 임종국의 부친 임문호, 백낙청의 부친 백붕제 등이 수록되었다.[9]

5. 1. 1. 의혹 제기

지만원 등 보수 인사들은 임헌영이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에 대해 진정성과 정치적 의도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2009년 12월 9일, 지만원과 정창인 등은 임헌영이 과거 '문인간첩단사건'과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활동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점을 들어 비난했다.[6]

5. 1. 2. 반론

보수 언론에서 제기하는 '선정위원들의 성향'에 대한 논란은 '색깔론에 불과하다'는 반론이 있다.[7][8]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에는 민족문제연구소뿐만 아니라 역사문제연구소, 독립기념관 연구위원, 국사편찬위원회 등 각 분야의 권위 있는 역사학자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다.[9][10]

친일인명사전의 '인물선정 작업'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일제강점기 공문서, 신문, 잡지 등 3천여 종의 문헌자료를 수집하여 250만 건의 인물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한다. 이를 통해 2만 5천 건의 친일혐의자 모집단을 추출하고, 20여 분야의 전문분과회의와 상임위원회 심의를 거쳐 4430명을 선정하였다.[9] 선정된 인물들은 각 분야별 학계 권위자들과 상의하고 재차 검토 및 자문을 거쳐 전체회의에서 확정된다.[8]

이 과정에서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임헌영의 대학 시절 정신적으로 많은 영향을 준 대학교수인 백철, 친일파 연구 권위자인 임종국의 부친 임문호, 대한민국에서 진보 성향의 대표적인 인물인 백낙청의 부친 백붕제 등이 수록되었다.[9]

참조

[1] 웹사이트 ハンギョレが会った人 "恥知らずな親日残滓ら、疎通できない怪物になった" https://japan.hani.c[...] 2023-01-16
[2] 뉴스 政府、「親日人名辞典」募金を許可(東亜日報記事) http://japan.donga.c[...] 東亜日報 2004-01-27
[3] 웹사이트 "(83)풍천 임씨(豊川任氏)-99,986명" http://www.seoulecon[...] 2022-08-17
[4] 웹인용 CAUON https://web.archive.[...] 2011-02-04
[5] 웹인용 보안사, 저명인사 1300명 사찰 - 탈영사병 양심선언 https://web.archive.[...] 천주교인권위원회 2009-02-17
[6] 뉴스 "'친일인명사전' 만든 임헌영이 누군가 했더니…" http://www.newdaily.[...] 뉴데일리 2009-12-17
[7] 뉴스 조중동, 친일인명사전이 그렇게도 두려운가 https://news.naver.c[...]
[8] 간행물 역사비평 2010년 봄호 계간지 http://www.minjok.or[...]
[9] 뉴스 "사회 각 분야와 우리 지성사에 충격적인 기록될 것" http://www.ohmynews.[...]
[10] 문서 편찬위원단 http://www.banmin.or[...]
[11] 웹인용 역사문제연구소 걸어온 길 1986년 https://web.archive.[...] 2013-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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