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신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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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신썬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외교관으로, 베이징 외국어 대학교를 졸업하고 홍콩 및 마카오 대사 사장, 아일랜드 주재 중국 대사 등을 역임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대한민국 주재 중국 대사로 재임하며 천안함 피격 사건, 연평도 포격, 주중국 대한민국 대사관 쇠구슬 피격 사건 등 한중 관계와 관련된 외교 현안에 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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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주재 중화인민공화국 대사 - 장팅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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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썬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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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장신썬 |
원어명 | 張鑫森 |
로마자 표기 | Jang Sinseon |
출생일 | 1953년 7월 |
출생지 | 상하이 |
국적 | 중화인민공화국 |
직업 | 외교관 |
소속 정당 | 중국 공산당 |
학력 | |
학교 | 베이징 외국어대학교 |
학교 | 중국 국가행정학원 |
학교 | 존 F. 케네디 행정대학원 |
주요 경력 | |
직책 | 아일랜드 주재 중화인민공화국 대사 |
임기 시작 | 2005년 11월 |
임기 종료 | 2007년 9월 |
직책 |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 판공청 주임 |
임기 시작 | 2007년 9월 |
임기 종료 | 2010년 3월 |
직책 | 주 대한민국 중화인민공화국 대사 |
임기 시작 | 2010년 3월 |
임기 종료 | 2013년 12월 |
전임 | 청융화 |
후임 | 추궈훙 |
2. 약력
상하이시 출신으로, 베이징 외국어 대학교를 졸업했다. 중국 국가 행정학원과 하버드 대학교 존 F. 케네디 행정대학원(케네디 스쿨)에서 비정규 학생으로 공부했다. 2002년부터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에서 주요 직책을 역임하였다.
2. 1. 주요 경력
기간 | 직책 |
---|---|
2002년 ~ 2005년 11월 | 외교부 홍콩, 마카오, 타이완 담당 사장 |
2005년 11월 ~ 2007년 9월 | 아일랜드 주재 중국 대사[3] |
2007년 9월 ~ 2010년 4월 |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 판공실 주임 |
2010년 4월 ~ 2014년 2월 | 주 대한민국 중국 대사[4] |
2010년 4월 장신썬 대사 부임 직후 천안함 피격 사건이 발생하자, 싱하이밍 당시 부대사[6]는 침몰 원인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다.[7] 얼마 지나지 않아 연평도 포격 사건이 발생했고, 김성환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은 장신썬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소환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도발 상황을 설명했다. 장 대사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3. 주한 대사 재임 기간 (2010-2014)
2011년 주중국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쇠구슬 피격 사건이 발생하여 외교적 문제가 불거졌다. 중국은 이 사건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여 한국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비판을 받았다.[8] 같은 해, 불법 조업 중이던 중국 어선을 나포하는 과정에서 한국 해경 2명이 사망하거나 다치는 사건이 발생하여 중국에 대한 국제적인 비난을 불러일으켰다.[9]
2012년에는 여수엑스포에 왕치산 중국 국무원 부총리 등 중국 고위 인사들을 초청하여 관람하도록 했다.[10] 한편, 주한 일본 대사관에 화염병을 투척한 중국인 류창의 신병 인도 문제는 센카쿠 열도 분쟁과 얽혀 중일 관계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3. 1. 주요 외교 현안
장신썬 대사는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부임 초기부터 어려운 외교적 상황에 직면했다. 특히 연평도 포격 사건 직후,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장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초치하여 북한의 도발을 설명했고, 장 대사는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다.[8]
2011년에는 주중 한국 대사관 쇠구슬 피격 사건이 발생하여 외교적 문제가 불거졌다. 중국은 이 사건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여 한국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비판을 받았다.[8] 설상가상으로 불법 조업 중이던 중국 어선 나포 과정에서 한국 해경이 사망하는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중국은 국제적인 망신을 샀다.[9]
2012년에는 여수엑스포에 왕치산 중국 국무원 부총리 등 중국 고위 인사들을 초청하여 관람하도록 했다.[10] 한편, 주한 일본 대사관에 화염병을 투척한 중국인 류창의 신병 인도 문제는 센카쿠 열도 분쟁과 얽혀 중일 관계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대한민국 외교부와 무토 마사토시 주한 일본 대사, 청융화 주일 중국 대사 등이 중재에 나섰지만, 류창의 중국 인도는 지연되었다.[12]
3. 1. 1. 천안함 피격 사건 (2010년)
2010년 4월 장신썬 대사가 처음 부임할 때 천안함 피격 사건이 발생하였다. 당시 싱하이밍 부대사[6]의 말을 인용하면, 시간이 흘러도 뒤집히지 않을 만한 내용이라는 근거를 두고, 피격 및 침몰된 천안함은 아직도 검토할 것이 많고 천안함이 어떻게 침몰했는지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내용이 있다.[7]
3. 1. 2. 연평도 포격 사건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 직후 부임한 장신썬 대사는 싱하이밍 당시 부대사의 말을 인용, 침몰 원인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7] 얼마 지나지 않아 연평도 포격 사건이 발생하자, 김성환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은 장신썬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소환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도발 상황을 설명했다. 장 대사는 '조속히 안정적으로 처리되기를 희망한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8]
3. 1. 3. 주중 한국 대사관 쇠구슬 피격 사건 (2011년)
2011년 주중국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쇠구슬 피격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외교적으로 무례한 행위였으며, 한국을 일본이나 북한보다 낮은 국가로 취급하는 문제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멀쩡한 강화 유리가 파손되는 등 묵묵부답으로 일관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8]
3. 1. 4. 중국 어선 불법 조업 문제
장신썬 대사가 처음 부임한 2010년 4월에는 천안함 피격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싱하이밍 부대사[6]는 시간이 흘러도 뒤집히지 않을 내용이라는 근거를 들어, 피격 및 침몰된 천안함은 아직 검토할 것이 많고 침몰 원인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다.[7]
얼마 지나지 않아 연평도 포격 사건이 발생하자, 그날 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외교부 청사에서 장신썬 주한 중국 대사를 소환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도발 상황을 설명했고, 장 대사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외교부에 따르면 장 대사는 "조속히 안정적으로 처리되기를 희망한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고 말을 아꼈다.
2011년에는 주중국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쇠구슬 피격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외교적으로 무례한 행위였으며, 중국이 한국을 일본이나 북한보다 낮은 국가로 취급하는 문제로 이어졌다. 이 사건으로 강화 유리가 파손되었지만, 중국 측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8]
이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 불법 조업 중이던 중국 어선을 나포하는 과정에서 한국 해경 2명이 사망하거나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중국에 대한 국제적인 비난을 불러일으켰다.[9]
3. 1. 5. 센카쿠 열도 분쟁 관련 외교 갈등 (2012년)
2012년 센카쿠·댜오위다오의 영유권 분쟁으로 중일 관계가 악화되면서, 이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제3국까지 확대되었다. 이 외교적 갈등을 해결하고, 주한 일본 대사관에 화염병을 던진 중국인 류창을 중국으로 신속히 인도하기 위해 양국 정부와 당시 무토 마사토시 주한 일본 대사, 대한민국 외교부, 주일 중국 대사 청융화(과거 주한 중국 대사 역임[11]) 등 중재 담당 기관 및 관련자들의 설득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류창의 중국 인도는 시간이 지연되었다.[12]
참조
[1]
뉴스
中国驻韩国大使张鑫森一行参观中国馆
http://finance.sina.[...]
2012-06-17
[2]
뉴스
中国新任驻韩大使张鑫森履新
http://www.chinanews[...]
2010-04-02
[3]
웹사이트
张鑫森卸任驻爱尔兰大使
http://news.xinhuane[...]
新华网
2010-09-26
[4]
웹사이트
张鑫森出任驻韩国大使
http://www.fmprc.gov[...]
中华人民共和国外交部
2010-09-26
[5]
뉴스
연합뉴스
http://news.naver.co[...]
[6]
문서
싱하이밍은 현재 주중국 대한민국 대사로 재직하고 있다. 그러나 당초에는 "형해명"이라고 알려져 왔다.
[7]
뉴스
장신썬 中대사 "천안함 사건 확실한 증거 없다"
https://news.naver.c[...]
프레시안
2021-04-19
[8]
뉴스
‘오만한 中華’ 한국대사관을 쐈다
https://news.naver.c[...]
동아일보
2021-04-19
[9]
뉴스
정부, '해경 피살' 中 정부에 강력 항의 (종합)
https://news.naver.c[...]
머니투데이
2021-04-19
[10]
뉴스
"[여수엑스포]왕치산 中 부총리 일행 관람"
https://news.naver.c[...]
뉴시스
2021-04-19
[11]
문서
2008~2010년 사이에 걸쳐 부임하였다. 또한 주한 대사 재임 시절에는 [[노무현]] 대통령 관련 장례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12]
뉴스
정부, 중국인 방화범 신병처리.. 中日 사이에서 딜레마
https://news.naver.c[...]
뉴스1
2021-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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