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1. 개요
제8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는 1968년 7월 7일에 실시되었으며, 총 126석(보궐 1석 포함)을 선출했다. 선거권자는 65,886,145명이었으며, 지역구와 비례대표제로 진행되었다. 자유민주당이 69석으로 제1당을 유지했지만 득표율은 감소했고, 연예인 후보들의 대거 출마와 텔레비전을 활용한 선거전이 특징이었다. 선거 결과 사회당 지도부가 교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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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선거 -
1968년 프랑스 총선
1968년 프랑스 총선은 5월 혁명으로 인한 혼란 속에서 드골 대통령이 국회를 해산하고 치러진 선거로, 우파가 "공산주의 위협"에 맞선 "공화국 방어"를 내세워 압승하고 좌파는 참패했으며, 퐁피두 총리 사임과 쿠브 드 뮈르빌 총리 임명으로 프랑스 정치 지형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
1968년 선거 -
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
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혼란스러운 시대 속에서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이 민주당의 휴버트 험프리를 누르고 당선되었으며, 미국 독립당의 조지 월리스도 상당한 득표를 기록한 선거로, 닉슨의 승리는 미국 정치 지형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
1968년 7월 -
1968년 일본 프로 야구 올스타전
1968년 일본 프로 야구 올스타전은 센트럴 리그와 퍼시픽 리그의 대결로, 센트럴 리그가 1, 2차전을 승리하고 퍼시픽 리그가 3차전을 승리했으며, 각 경기 MVP는 에토 신이치, 시바타 이사오, 고이케 겐지가 수상했다. -
1968년 7월 -
제18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제18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는 루이스 가르시아 베를랑가 감독이 심사위원장을 맡아 《그를 누가 죽였는가?》가 황금곰상을 수상했으며, 다양한 국가의 영화들이 경쟁하고 신진 캐나다 영화 감독들의 작품이 소개되었다. -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
제3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제3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는 1953년 4월 24일 치러졌으며, 자유당이 46석을 얻어 제1당을 유지했으나 과반수에는 미치지 못했고, 투표율은 63.18%를 기록했다. -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
제7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2. 선거 정보
1968년 7월 7일에 실시된 일본 참의원 선거는 자유민주당이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했지만, 1965년 일본 참의원 선거에 비해 득표율이 감소한 첫 선거였다.
2.3. 공시일
공시일은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공시 내용이 확정된 날짜이다. 다만, 법령이나 규칙 등에 공시일을 특정하는 다른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 규정에 따른다. 예를 들어, 주주총회 결의 공시는 상법에 따라 주주총회 종료일 또는 결의 확정일이 공시일이 될 수 있다. 공시 대상 및 내용, 공시 방법 등에 따라 공시일의 의미 및 적용 방법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관련 법령 및 규정을 참고해야 한다.
2.4. 개선수
총 126석(보궐 1석 포함, 임기 3년)이다.
* 지방구: 75석
* 비례대표: 51석(보궐 1석 포함, 임기 3년)
2.5. 선거 제도
| 구분 | 내용 |
|---|---|
| 소선거구제 | 의석 수 25석 2인 선거구(선출 1명, 단기투표): 25개 선거구 |
| 중선거구제 | 의석 수 50석 4인 선거구(선출 2명, 단기투표): 15개 선거구 6인 선거구(선출 3명, 단기투표): 4개 선거구 8인 선거구(선출 4명, 단기투표): 2개 선거구 |
전국구는 대선거구제를 채택했으며, 의석 수는 51석이었다(그중 1석은 보충을 위해 임기 3년).
비밀 투표, 만 20세 이상 남녀에게 선거권이 주어졌다.
3. 선거 결과
1968년 7월 7일에 실시된 일본 참의원 선거 결과, 자유민주당이 69석을 획득하여 제1당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자유민주당 역사상 처음으로 직전 선거인 1965년 일본 참의원 선거에 비해 득표율이 감소하였다. 일본 사회당은 28석, 공명당은 13석, 민사당은 7석, 일본 공산당은 4석, 무소속은 5석을 획득하였다.
| 정당 | 지역구 | 비례대표 | 의석 합계 | |||
|---|---|---|---|---|---|---|
| 득표수 | 비율 | 의석수 | 득표수 | 비율 | 의석수 | |
| 자유민주당 | 19,405,546 | align="right" | 48 | 20,120,089 | 46.7% | 21 | 69 |
| 일본사회당 | 12,617,680 | align="right" | 16 | 8,542,199 | align="right" | 12 | 28 | |
| 공명당 | 2,632,528 | align="right" | 4 | 6,656,771 | align="right" | 9 | 13 | |
| 민주사회당 | 3,010,089 | align="right" | 3 | 2,578,581 | align="right" | 4 | 7 | |
| 일본공산당 | 3,577,179 | align="right" | 1 | 2,146,879 | align="right" | 3 | 4 | |
| 기타 정당 | 106,587 | align="right" | 0 | 157,501 | align="right" | 0 | 0 | |
| 무소속 | 1,910,371 | align="right" | 3 | 2,872,279 | align="right" | 2 | 5 | |
| 합계 | 43,259,980 | align="right" | 75 | 43,074,298 | align="right" | 51 | 126 |
3.2. 정당별 득표 결과
3.3. 주요 정당 및 정치인
4. 선거의 특징 및 영향
1968년 7월 7일에 실시된 제8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는 일본 정치사에 있어 몇 가지 주목할 만한 특징과 영향을 남겼다.
이 선거에서 자유민주당은 최다 의석을 확보했으나, 1965년 선거에 비해 득표율이 감소한 첫 참의원 선거였다. 이는 유권자들의 민심 변화와 자민당에 대한 견제 심리가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한편, 일본사회당은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1968년 10월 집행부를 전면 교체했다. 나리타 도모미가 새 중앙집행위원장으로, 에다 사부로가 서기장으로 각각 선출되었다.
4.1. 연예인 후보 돌풍
1962년 중의원 의원 임기 만료에 따라 실시된 제8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는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 후보들이 대거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시하라 신타로, 아오시마 유키오, 요코야마 녹쿠 등 신인 연예인 후보 5명의 득표수는 670만 표를 넘었다. 특히 이시하라 신타로는 301만 표를 돌파했으며, 아오시마 유키오도 120만 표가 넘는 득표를 얻어 전국구 1, 2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결과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새로운 변화에 대한 열망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 순위 | 이름 | 소속 정당 |
|---|---|---|
| 1 | 이시하라 신타로 | 자유민주당 |
| 2 | 아오시마 유키오 | 무소속 |
| 25 | 요코야마 녹쿠 | 무소속 |
4.2. 텔레비전 선거전 본격화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 후보가 다수 출마하여 당선된 것 외에, 텔레비전을 이용한 선거전이 본격적으로 실시된 것이 특징이다. 정당의 텔레비전 광고(CM)가 다수 방영되었고, 텔레비전을 통한 정당 토론회가 종래보다 증가했으며, 유세 연설회 중계도 29개 현의 지역구에서 실시되었다. 또 민영방송인 매일방송에서는 후보자에게 설문 조사를 실시하여, 그 결과를 유권자의 판단 자료로서 「킨키(近畿)의 얼굴」에서 방송했다. 그리고 개표 속보에서 NHK와 TBS, 후지텔레비 3개국이 컴퓨터를 처음으로 사용한 것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4.3. 자민당 득표율 감소와 야당 약진
자유민주당은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했지만, 1965년 일본 참의원 선거에 비해 득표율이 감소한 첫 참의원 선거였다.
4.4. 사회당의 지도부 교체
일본사회당은 선거 패배의 책임을 물어 1968년 10월에 집행부를 전면 교체했다. 그 결과 새 중앙집행위원장에는 나리타 도모미가, 서기장에는 에다 사부로가 선출되었다.
5. 한국과의 관계
1968년은 박정희 대통령의 권위주의 통치하에 있었고, 일본과의 관계는 여전히 복잡한 문제들을 안고 있었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 이후에도 과거사 문제, 경제 협력, 재일교포 문제 등 여러 현안을 둘러싸고 미묘한 긴장 관계가 지속되었다. 이 시기 일본의 정치는 한일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는데, 특히 일본 내 정당들의 정책 방향과 권력 관계 변화는 한국의 대일 외교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1968년 제8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결과는 자유민주당의 장기 집권에 대한 견제 심리가 작용했음을 보여주며, 이는 한일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