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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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병갑은 조규순의 서자이자 조두순의 서조카로, 민영준에게 뇌물을 주고 매관매직으로 고부 군수가 되었다. 고부 군수 재직 시절 만석보를 축조하고 수세를 징수하는 등 가혹한 수탈을 자행하여 농민들의 반발을 샀으며, 모친상 부조금을 이유로 사람을 곤장으로 때려 죽이는 등 악행을 저질렀다. 그의 폭정은 동학 농민 혁명의 원인이 되었으며, 이후 복권되어 최시형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고등재판관이 되었다.

조병갑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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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갑
이름조병갑
한자 표기趙秉甲
로마자 표기Jo Byeong-gap
출생1844년
사망1911년
본관풍양(豊壤)
관력
주요 관직고부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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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조병갑은 조규순의 서자이자 조두순의 서조카로 알려져 있다. 동학 농민 운동으로 1년여 동안 강진군 고금도에서 근신하는 척하다가 복권되었고, 이후 동학 교주 최시형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고등재판관으로 승진하였다.

2.1. 고부 군수 재직 시절

조규순의 서자이자, 조두순의 서조카로 알려져 있다. 조병갑은 민영준을 통해 민비에게 70000냥을 뇌물로 바쳐 매관매직으로 고부 군수가 되었다. 1892년 고부 군수 재직 중 관내 농민들을 강제로 동원해 만석보를 쌓았다. 그는 이곳의 물을 받는 논에 첫해에는 수세를 물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수세를 징수하였다. 이후 조병갑의 폭정에 격분한 농민들은 1894년 1월 관아를 습격하고 만석보를 헐었다.

그 뒤 자신의 모친상 때 부조금 2000냥을 거둬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창혁에게 곤장형을 가하여 때려죽였다.

조병갑은 악행, 악정(惡政)으로 굶주린 주민들을 착취하는 것으로 악명높았다. 무고한 이를 잡아다 온갖 죄를 뒤집어씌워 보석금을 지불하게 하는가 하면, 대동미를 쌀 대신에 돈으로 거두고 그것으로 저질의 쌀로 교환해 중앙에 상납하고 차액은 횡령, 착복했다. 이는 전봉준 등 농민들의 반발을 초래했고 동학 농민 혁명을 초래하였다. 전라도 고부 지역에서 시작된 동학 농민 혁명은 주변 지역으로 삽시간에 확대됐다.

2.2. 동학 농민 혁명의 원인 제공

조병갑은 조규순의 서자이자, 조두순의 서조카로 알려져 있다. 그는 민영준을 통해 민비에게 7만 냥을 뇌물로 바쳐 매관매직으로 고부 군수가 되었다. 1892년 고부 군수 재직 중 관내 농민들을 강제로 동원해 만석보를 쌓고, 물을 받는 논에 첫해에는 수세를 물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수세를 징수하였다. 1894년 1월 조병갑의 폭정에 격분한 농민들은 관아를 습격하고 만석보를 헐었다.

이후 조병갑은 자신의 모친상 때 부조금 2000냥을 거둬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창혁에게 곤장형을 가하여 때려죽였다.

조병갑은 악행과 악정(惡政)으로 굶주린 주민들을 착취하는 것으로 악명 높았다. 무고한 사람을 잡아다 온갖 죄를 뒤집어씌워 보석금을 지불하게 하는가 하면, 대동미를 쌀 대신 돈으로 거두고 그것으로 저질의 쌀로 교환해 중앙에 상납하고 차액을 횡령, 착복했다. 이는 전봉준 등 농민들의 반발을 초래했고 동학 농민 혁명을 초래하였다. 전라도 고부 지역에서 시작된 동학 농민 혁명은 주변 지역으로 삽시간에 확대됐다.

중앙 정계에 든든한 배경을 갖고 있었던 그는 동학 농민 운동으로 1년여 동안 당시 강진군 고금도에서 근신하는 척하다가 복권되었다. 그 뒤 동학 교주 최시형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고등재판관으로 승진하였다.

2.3. 동학 농민 혁명 이후

조병갑은 민영준을 통해 민비에게 7만 냥을 뇌물로 바쳐 고부 군수가 되었다. 1892년 고부 군수 재직 중 관내 농민들을 강제로 동원해 만석보를 쌓았다. 그는 이곳의 물을 받는 논에 첫해에는 수세를 물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수세를 징수하였다. 이후 조병갑의 폭정에 격분한 농민들은 1894년 1월 관아를 습격하고 만석보를 헐었다. 그 뒤 자신의 모친상 때 부조금 2000냥을 거둬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창혁에게 곤장형을 가하여 때려죽였다.

조병갑은 악행, 악정(惡政)으로 굶주린 주민들을 착취하는 것으로 악명높았다. 무고한 이를 잡아다 온갖 죄를 뒤집어씌워 보석금을 지불하게 하는가 하면, 대동미를 쌀 대신에 돈으로 거두고 그것으로 저질의 쌀로 교환해 중앙에 상납하고 차액은 횡령, 착복했다. 이는 전봉준 등 농민들의 반발을 초래했고 동학 농민 혁명을 초래하였다. 전라도 고부 지역에서 시작된 동학 농민 혁명은 주변지역으로 삽시간에 확대됐다.

중앙 정계에 든든한 배경을 갖고 있었던 그는 동학 농민 운동으로 1년여 동안 당시 강진군 고금도에서 근신하는 척하다가 복권되었다. 그 뒤 동학교주 최시형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고등재판관으로 승진하였다.

3. 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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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비고
고조부조영극(趙榮克)
증조부조종철(趙宗喆, 1737 ~ ?)
조부조진익(趙鎭翼, 1762 ~ 1825 이후)
조모반남 박씨박종악의 딸
큰아버지조두순(趙斗淳, 1796 ~ ?)
큰아버지조태순(趙台淳, 1798 ~ ?)
아버지조규순(趙奎淳, 1799 ~ ?)태인 군수를 지냄
어머니미상(? ~ 1893 추정)
형님조병섭(趙秉燮)교관, 큰아버지 조두순(趙斗淳)에게 입양
형님조병협(趙秉協, 1830 ~ ?)대교
전처전주 이씨 이병양(李秉兩)판서 이병문(李秉文)의 딸
장남조강희(趙岡熙, 1889 ~ ?)
손자조중완(趙重完)
후처청송 심씨부사 심영규(沈永奎)의 딸
차남조찬희(趙瓚熙, 1880 ~ ?)진사 역임
장녀김태규(金泰圭)에게 시집 감
삼남조창희(趙昌熙, 1876 ~ ?)생원시 급제
사남조승희(趙昇熙)
오남조정희(趙晶熙)
숙조부조진정(趙鎭靖)
숙조부조진민(趙鎭敏)
숙조부조진강(趙鎭剛, 1775 ~ ?)숙증조부 조의철(趙宜喆)에게 입양.
숙증조부조인철(趙寅喆)
숙증조부조헌철(趙憲喆, 1742 ~ ?)
숙증조부조의철(趙宜喆, 1745 ~ ?)
숙증조부조우철(趙宇喆)

4. 대중매체에서의 묘사

* 《녹두꽃》 (SBS, 2019년; 배우: 장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