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불교
1. 개요
조선의 불교는 조선 시대에 불교가 억압적인 정책 속에서도 변화와 발전을 겪은 역사를 설명한다. 조선 초기에는 억불 정책에도 불구하고 고승들이 나타났으며, 명종 때 문정왕후의 지원으로 불교 부흥을 시도하여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등용되었다. 억압 정책의 일환으로 승려의 복색이 제한되고, 종단이 축소되었으며, 승려의 재산이 강제 환수되고, 도성 출입이 금지되었다. 이러한 억압 속에서 불교 건축 양식에도 변화가 나타나, 중층 불전이 단층 전각으로 변화하는 등 교리적 변화와 억불 정책이 영향을 미쳤다.
2. 시대별 발전과 변화
조선은 억불 정책을 펼쳤으나, 불교의 법맥은 유지되고 발전되었다. 무학 자초(1327~1405), 현정론을 제시한 함허 기화(1376~1433) 등 많은 고승들이 나타났다. 명종 때에는 문정왕후의 지원으로 보우가 불교 부흥을 시도하여 도승법과 승과를 시행하였다. 그 결과 서산대사 휴정(1520~1604)과 사명대사 유정(1544~1610)이 등용되어 선종과 교종의 판사가 되었다.
연산군 2년에는 현실 한자음 음운이 활용된 《육조법보단경 언해》가 간행되었는데, 이는 문헌 기록에서 최초의 인쇄물로 확인된다. 이는 세종 시대 《동국정운》에 실린 한자음이 아니었으며, 동시대에 다른 경전 인쇄물도 현실 한자음이 활용되어 간행되었다.
2.1. 조선 초기: 억불 속 법맥 유지
조선의 억불 정책에도 불구하고 조선 시대에는 무학 자초(1327~1405)를 비롯하여 호불론의 하나인 현정론을 제시한 함허 기화(1376~1433) 등 많은 고승이 나타났다. 명종 때 문정왕후의 도움으로 허응당 보우는 불교 부흥을 시도하였는데, 판선종사가 되어 도승법과 승과를 시행하였다. 그 결과 서산대사 휴정(1520~1604)과 사명대사 유정(1544~1610)이 등용되어 각각 선종과 교종의 판사가 되었다. 이와 같이 억불 정책 속에서도 조선의 불교는 인재를 발굴하여 계속 법맥을 유지하며 발전시켰다.
조선 중기 무렵인 연산군 2년에 현실 한자음 음운이 활용된 《육조법보단경 언해》가 간행되었는데, 이는 문헌 기록에서 최초의 인쇄물로 확인된다. 이 인쇄물은 조선 초기에 세종시대 《동국정운》에 실린 한자음이 아닌 것으로, 동시대에 다른 경전 인쇄물도 현실 한자음이 활용되어 간행되었다.
3. 억압 제도와 불교
조선 시대에는 불교를 억압하는 여러 제도가 시행되었다.
* 승려 복색 제한: 세종 11년(1429년)에 승려의 흑색, 회색 의복 착용을 금지하는 승인의복흑색금지령(僧人衣服黑色禁止令)이 내려졌다. 이에 따라 승려들은 염색이 어려운 백삼을 그대로 입거나, 흑색·회색 대신 먹물을 들인 옷을 입었다.
* 종단 축소와 밀교 종단의 소멸: 1407년(태종 7년) 불교를 탄압하며 11개 종단을 7개 종단으로 폐합하고, 1424년(세종 6년)에는 7개 종단을 선종, 교종의 2개 종단으로 폐합하였다. 이 과정에서 밀교 종단인 신인종과 총지종은 명맥이 없어졌다.
* 승려 재산 강제 환수: 조선 효종 대에는 승려의 사유재산 일부분을 불교 사찰로 강제 환수하는 제도가 국가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이 제도는 고려 시대에 불교 승려 인구수 증가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 도성 출입 금지: 조선 세종 때부터 임금의 특명이 없는 승려의 도성 출입은 문정왕후 섭정 말기를 제외하고 1895년 청일전쟁이 끝나고 일본 승려가 도성 출입을 허락받을 때까지 계속 금지되었다. 경복궁 건축 때마다 승려들도 노역자로 강제 동원되었으나 흥선대원군은 도성 출입 금지를 풀지 않았다.
3.1. 승려 복색 제한
세종 11년(1429년)에 승려의 흑색, 회색 의복 착용을 금지하는 승인의복흑색금지령(僧人衣服黑色禁止令)이 내려졌다. 이에 따라 승려들은 염색이 어려운 백삼을 그대로 입거나, 흑색·회색 대신 먹물을 들인 옷을 입었다.
3.2. 종단 축소와 밀교 종단의 소멸
1407년(태종 7년) 불교를 탄압하며 11개 종단을 7개 종단으로 폐합하고, 1424년(세종 6년)에는 7개 종단을 선종, 교종의 2개 종단으로 폐합하였다. 이 과정에서 밀교 종단인 신인종과 총지종은 명맥이 없어졌다.
3.3. 승려 재산 강제 환수
조선 효종 대에는 승려의 사유재산 일부분을 불교 사찰로 강제 환수하는 제도가 국가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이 제도는 고려 시대에 불교 승려 인구수 증가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3.4. 도성 출입 금지
조선 세종 때부터 임금의 특명이 없는 승려의 도성 출입은 문정왕후 섭정 말기를 제외하고 1895년 청일전쟁이 끝나고 일본 승려가 도성 출입을 허락받을 때까지 계속 금지되었다. 경복궁 건축 때마다 승려들도 노역자로 강제 동원되었으나 흥선대원군은 도성 출입 금지를 풀지 않았다.
4. 건축 양식의 변화
조선 시대 상류 사회는 공식적으로 불교를 서서히 한쪽으로 밀어 놓았다. 불교 대승 경전에 나타나는 장엄한 불전의 모습은 주로 2층 이상의 중층 불전이었으나, 선, 화엄, 정토로 요약되던 18세기에 들어서는 몇몇 중층 전각들이 단층 전각들로 변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