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소크라트스
1. 개요
조제 소크라트스는 포르투갈의 토목 기술자이자 정치인으로, 1981년부터 사회당 당원으로 활동하며 1987년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95년 외무장관, 2005년부터 2011년까지 총리를 역임했으며, 2007년에는 유럽 연합 이사회 의장직을 수행했다. 총리 재임 기간 중 경제 위기로 인해 긴축 정책을 추진했으나 의회에서 부결되어 사임했고, 이후 탈세, 부정부패 혐의로 체포되었다. 현재는 사회당을 탈당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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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조제 소크라테스 카르발류 핀투 드 소자 |
|---|---|
| 출생일 | 1957년 9월 6일 |
| 출생지 | 빌라르 드 마사다, 알리조, 포르투갈 |
| 서명 | Jose Socrates signature.svg |
| 로마자 표기 | José Sócrates |
| IPA 표기 | /ʒuˈzɛ ˈsɔkɾɐtɨʃ/ |
| 훈장 | GCIH |
| 정당 | 무소속 (2018년–현재) |
|---|---|
| 이전 정당 | 사회민주당 (1974년–1981년) 사회당 (1981년–2018년) |
| 배우자 | 소피아 코스타 핀투 파바 (이혼) |
| 자녀 | 2명 |
| 모교 | 코임브라 폴리테크닉 대학교 루시아다 대학교 리스본 폴리테크닉 대학교 인데펜덴테 대학교 리스본 대학교 연구소 |
| 직책 | 포르투갈 총리 |
|---|---|
| 임기 시작 | 2005년 3월 12일 |
| 임기 종료 | 2011년 6월 21일 |
| 대통령 | 조르제 삼파이우 아니발 카바쿠 실바 |
| 전임 총리 | 페드루 산타나 로페스 |
| 후임 총리 | 페드루 파수스 코엘류 |
| 직책 | 사회당 사무총장 |
| 임기 시작 | 2004년 9월 27일 |
| 임기 종료 | 2011년 7월 23일 |
| 총재 | 안토니우 드 알메이다 산투스 |
| 전임 총장 | 에두아르두 페루 로드리게스 |
| 후임 총장 | 안토니우 조제 세구루 |
| 직책 | 사회 기반 시설부 장관 |
| 임기 시작 | 2002년 1월 23일 |
| 임기 종료 | 2002년 4월 6일 |
| 총리 | 안토니우 구테흐스 |
| 전임 장관 | 에두아르두 페루 로드리게스 |
| 후임 장관 | 루이스 발렌테 드 올리베이라 |
| 직책 | 환경부 장관 |
| 총리 | 안토니우 구테흐스 |
| 임기 시작 | 1999년 10월 25일 |
| 임기 종료 | 2002년 4월 6일 |
| 전임 장관 | 엘리자 페헤이라 |
| 후임 장관 | 이살티노 모라이스 |
| 직책 | 총리실 장관 |
| 임기 시작 | 1997년 11월 25일 |
| 임기 종료 | 1999년 10월 25일 |
| 총리 | 안토니우 구테흐스 |
| 전임 장관 | 조르제 코엘류 |
| 후임 장관 | 아르만두 바라 |
| 직책 | 환경부 차관 |
| 총리 | 안토니우 구테흐스 |
| 임기 시작 | 1995년 10월 30일 |
| 임기 종료 | 1997년 11월 25일 |
| 전임 차관 | 조아킴 포사스 마르틴스 안토니우 타베이라 다 실바 |
| 후임 차관 | 조제 게헤이루 |
| 임기 시작 | 2002년 4월 5일 |
|---|---|
| 임기 종료 | 2009년 10월 14일 |
| 선거구 | 카스텔루 브랑쿠 |
| 임기 시작 | 1987년 8월 13일 |
| 임기 종료 | 1999년 10월 24일 |
| 선거구 | 카스텔루 브랑쿠 |
-
포르투갈의 사회주의자 -
주제 사라마구
주제 사라마구는 1922년에 태어나 2010년에 사망한 포르투갈의 소설가이며, 실험적인 문체와 환상적인 설정을 특징으로 하는 작품들을 통해 199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
사회당 (포르투갈)의 정치인 -
마리우 소아르스
마리우 소아르스는 포르투갈의 정치인으로, 독재에 저항하고 총리, 대통령을 역임했으며 유럽 경제 공동체 가입을 이끌었고, 92세에 사망했다. -
사회당 (포르투갈)의 정치인 -
조르즈 삼파이우
포르투갈의 정치인이자 변호사였던 조르즈 삼파이우는 리스본 시장과 포르투갈 대통령을 역임하며 동티모르 독립 지원과 마카오 주권 이양 등의 외교 현안을 처리했고, 대통령 퇴임 후에는 유엔 특별 특사 등으로 국제 사회에 기여했다. -
포르투갈의 총리 -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는 1932년부터 1968년까지 포르투갈 총리를 지낸 권위주의적 독재자로, "에스타두 노부" 체제를 수립하여 일당 독재를 구축하고 경제 개발과 사회 통제에 주력했지만, 인권 탄압과 식민지 전쟁으로 국제적 비난을 받았다. -
포르투갈의 총리 -
페드루 파수스 코엘류
페드루 파수스 코엘류는 포르투갈의 정치인으로 사회민주당 당수를 지냈으며, 2011년부터 2015년까지 포르투갈 총리를 역임하면서 유럽 연합과 국제 통화 기금의 구제 금융 계획 이행과 긴축 재정 정책을 추진했다.
2. 생애
그는 위생 공학을 전공한 토목기술사였다. 1981년부터 사회당 당원이었으며, 1987년 공화국 의회(국회)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95년 안토니우 구테흐스의 제1차 내각에서 외무장관으로 입각했다. 2년 후 청년체육부 장관에 취임하여 포르투갈에서 개최된 UEFA 유로 2004의 주최자 중 한 명이 되었다. 1999년 제2차 구테흐스 내각에서 환경부 장관에 취임했다. 2002년 선거에서 소크라테스가 이끄는 사회당은 야당으로 물러났다. 제오르제 로드리게스가 2004년에 당 서기장직을 사퇴한 후, 2004년 9월 24일에 치러진 서기장 선거에서 득표율 80%를 획득하여 마누엘 알레그레와 주앙 소아레스를 제치고 당 서기장에 취임했다.
2005년 포르투갈 총선에서 사회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자, 소크라테스는 2월 24일 조르주 삼파이우 대통령으로부터 조각을 위해 초청받았다. 새로운 내각 발족과 소크라테스의 총리 취임은 2005년 3월 12일에 이루어졌다. 2009년 포르투갈 총선에서 사회당은 과반수를 밑돌았지만, 제1당을 유지하여 정권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세수 감소와 재정 적자 감축 지연으로 인한 재정 위기가 표면화되어 엄격한 정권 운영을 강요받았다. 그리고 재정 재건을 위한 추가 긴축 정책이 모든 야당의 반대에 부딪혀 의회에서 부결되자, 2011년 3월 23일에 총리직에서 사퇴했다.(이후에도 과도 정부를 유지했지만, 6월 21일에 공식적으로 퇴임했다). 2011년 포르투갈 총선에서 사회당이 패배하자, 당 서기장직 사퇴를 표명했다.
현재는 이혼했으며, 두 명의 자녀가 있다.
2014년 11월 리스본에서 탈세, 부정부패, 자금 세탁 혐의로 검찰 당국에 체포되었다. 2018년 사회당을 탈당했다.
2.1. 초기 생애 및 교육
조제 소크라트스는 1957년 9월 6일 포르투에서 태어났으며, 빌라르 드 마사다에 신생아로 등록되었다.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는 아버지와 함께 코빌량에서 보냈다. 그의 부모는 페르난두 핀투 드 소우사와 마리아 아델라이데 드 카르발류 몬테이루이다. 그는 왕실 가문의 후손이다.
18세까지 코빌량의 초중등학교에 다녔으며, 1975년 코임브라로 가서 고등교육기관에 다녔다. 1979년 코임브라 공과대학에서 토목 기술 엔지니어 학위를 취득했다. 1987년부터 1993년까지 루지아다 대학교에서 법학 수업을 들었지만 졸업하지 못했다. 1996년 인디펜덴테 대학교에서 토목공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는데, 이는 2007년 논란이 되었다. 2005년 ISCTE에서 MBA 학위를 받았다. 2011년 총리직에서 물러난 후 파리 정치대학(SciencesPo)에 다녔으며, 2013년 정치학 석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그의 2013년 저서 "세계의 신뢰 – 민주주의 속의 고문에 관하여"는 석사 논문을 바탕으로 했지만 논란이 있었다.
2.2. 정치 경력
조제 소크라트스는 사회민주당(PSD) 청년 조직(JSD) 창립 멤버 중 한 명이었으나, 이후 사회당(PS)으로 옮겨 1981년부터 당원으로 활동했다. 1987년 카스텔루 브랑쿠 선거구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91년부터 1995년까지 사회당 환경 문제 대변인을 지냈다.
1995년 안토니우 구테흐스(António Guterres) 내각에서 환경부 차관으로 입각했으며, 2년 후 청소년 체육부 장관이 되어 UEFA 유로 2004 대회 조직위원 중 한 명이었다. 1999년 구테흐스 2기 내각에서는 환경부 장관을 역임했다.
2004년 페루 로드리게스(Ferro Rodrigues)가 당 대표직에서 사퇴한 후, 대표 선거에서 마누엘 알레그레(Manuel Alegre)와 주앙 소아레스를 제치고 당 대표에 당선되었다. 2005년 총선에서 사회당이 승리한 후, 조르주 삼파이우(Jorge Sampaio) 대통령으로부터 조각을 요청받아 총리에 취임했다.
2009년 9월 27일에 치러진 총선에서 재선되었으나, 2011년 경제 위기에 대한 긴축 정책 실패로 사임하고, 총선 패배 후 당 대표직에서도 사퇴했다.
2014년 11월 리스본에서 탈세, 부정부패, 자금 세탁 혐의로 검찰 당국에 체포되었으며, 2018년 사회당을 탈당했다.
3. 포르투갈 총리 (2005-2011)
2005년 포르투갈 총선에서 사회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자, 소크라테스는 2월 24일 조르주 삼파이오 대통령으로부터 조각을 위해 초청받았다. 새로운 내각 발족과 소크라테스의 총리 취임은 2005년 3월 12일에 이루어졌다. 2009년 포르투갈 총선에서 사회당은 과반수를 밑돌았지만, 제1당을 유지하여 정권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세수 감소와 재정 적자 감축 지연으로 인한 재정 위기가 표면화되어 엄격한 정권 운영을 강요받았다. 그리고 재정 재건을 위한 추가 긴축 정책이 모든 야당의 반대에 부딪혀 의회에서 부결되자, 2011년 3월 23일에 총리직에서 사퇴했다.(이후에도 과도 정부를 유지했지만, 6월 21일에 공식적으로 퇴임했다). 2011년 포르투갈 총선에서 사회당이 패배하자, 당 서기장직 사퇴를 표명했다.
=== 제17대 및 제18대 헌법 정부 ===
조제 소크라트스(José Sócrates)는 2005년 3월 12일부터 제17대와 제18대 포르투갈 헌법 정부(Governos Constitucionais)를 이끌었다.
| 부처 | 역임자 | 임기 |
|---|---|---|
| 국토 및 행정부 | 안토니우 코스타 | 2005년 3월 13일 – 2007년 5월 17일 |
| 루이 페헤이라 | 2007년 5월 17일 – 2011년 6월 21일 | |
| 국무 및 외교부 | 디오구 프레이타스 두 아마랄 | 2005년 3월 13일 – 2006년 7월 3일 |
| 루이스 아마두 | 2006년 7월 3일 – 2011년 6월 21일 | |
| 국무 및 재정부 | 루이스 캄푸스 이 쿠냐 | 2005년 3월 13일 – 2005년 7월 21일 |
| 페르난두 테이셰이라 두스 산투스 | 2005년 7월 21일 – 2011년 6월 21일 | |
| 대통령부 | 페드루 실바 페헤이라 | 2005년 3월 13일 – 2011년 6월 21일 |
| 국방부 | 루이스 아마두 | 2005년 3월 13일 – 2006년 7월 3일 |
| 누누 세베리아누 테이셰이라 | 2006년 7월 3일 – 2009년 10월 26일 | |
| 아우구슈투 산투스 실바 | 2009년 10월 2일 – 2011년 6월 21일 | |
| 사법부 | 알베르투 코스타 | 2005년 3월 13일 – 2009년 10월 26일 |
| 알베르투 마르틴스 | 2009년 10월 26일 – 2011년 6월 21일 | |
| 환경부 | 프란시스쿠 누네스 코헤이야 | 2005년 3월 13일 – 2009년 10월 26일 |
| 둘세 알바루 파사루 | 2009년 10월 26일 – 2011년 6월 21일 | |
| 경제, 혁신 및 개발부 | 마누엘 피뉴 | 2005년 3월 13일 – 2009년 7월 2일 |
| 페르난두 테이셰이라 두스 산투스 | 2009년 7월 2일 – 2009년 10월 26일 | |
| 조제 비에이라 다 실바 | 2009년 10월 26일 – 2011년 6월 21일 | |
| 농업부 | 자이메 실바 | 2005년 3월 13일 – 2009년 10월 26일 |
| 안토니우 소아레스 세라누 | 2009년 10월 26일 – 2011년 6월 21일 | |
| 공공사업 및 통신부 | 마리우 리누 | 2005년 3월 13일 – 2009년 10월 26일 |
| 안토니우 아우구슈투 멘돈사 | 2009년 10월 26일 – 2011년 6월 21일 | |
| 노동 및 사회연대부 | 조제 비에이라 다 실바 | 2005년 3월 13일 – 2009년 10월 26일 |
| 마리아 엘레나 안드레 | 2009년 10월 26일 – 2011년 6월 21일 | |
| 보건부 | 안토니우 코헤이야 드 캄푸스 | 2005년 3월 13일 – 2008년 1월 30일 |
| 아나 조르제 | 2008년 1월 30일 – 2011년 6월 21일 | |
| 교육부 | 마리아 드 루르데스 로드리게스 | 2005년 3월 13일 – 2009년 10월 26일 |
| 이자벨 알사다 | 2009년 10월 26일 – 2011년 6월 21일 | |
| 과학, 기술 및 고등교육부 | 마리아누 가구 | 2005년 3월 13일 – 2011년 6월 21일 |
| 문화부 | 이자벨 피레스 드 리마 | 2005년 3월 13일 – 2008년 1월 30일 |
| 조제 안토니우 핀투 리베이루 | 2008년 1월 30일 – 2009년 10월 26일 | |
| 가브리엘라 카나빌리아스 | 2009년 10월 26일 – 2011년 6월 21일 | |
| 의회 담당 부처 | 아우구슈투 산투스 실바 | 2005년 3월 13일 – 2009년 10월 26일 |
| 조르제 라캉 | 2009년 10월 26일 – 2011년 6월 21일 |
=== 주요 정책 ===
조제 소크라테스는 포르투갈 총리로서 2007년 7월부터 12월까지 순환되는 유럽 연합 이사회 의장직을 맡았다. 이 기간 동안 소크라테스와 그의 팀은 EU-브라질( 제1차 EU-브라질 정상회담) 및 EU-아프리카 연합( 2007 아프리카-EU 정상회담) 관계와 리스본 조약 비준에 중점을 두었다. 포르투갈 의회는 2008년 4월 23일 리스본 조약 비준을 위한 투표를 실시했다. 2008년 6월 12일 아일랜드 국민투표에서 리스본 조약이 부결되자, 조제 소크라테스 총리는 포르투갈 수도에서 EU 지도자들이 조약에 서명한 후 아일랜드의 "반대"를 "개인적인 패배"로 여겼다고 말했다. 2009년 아일랜드에서 두 번째 국민투표가 실시되었고, 그 결과 아일랜드를 포함한 모든 EU 회원국이 리스본 조약을 승인했다.
=== 경제 위기와 긴축 정책 ===
2000년대 후반, 유럽 국가 부채 위기로 인해 포르투갈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2010년 9월, 포르투갈 정부는 다른 유로존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세금 인상과 공무원 급여 삭감을 통해 2011년까지 예산 적자를 절반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긴축 재정안을 발표했다. 2009년 포르투갈의 재정 적자는 9.4%로, 유럽 연합의 안정 및 성장 협약에서 정한 3% 한도를 훨씬 초과하는 수치였다.
디아리우 드 노티시아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1974년 카네이션 혁명 이후 포르투갈 정부는 과도한 지출과 투자 거품을 조장했으며, 이는 비효율적인 외부 자문 위원회 및 회사 지원, 공공 사업에서의 회계 차이, 불필요한 공무원 증가, 위험한 신용 및 국가 부채 생성, 잘못 관리된 유럽 구조 및 결합 기금 등으로 이어졌다. 소크라테스 내각은 2005년에 최초로 경제 위기 징후가 나타났을 때 이를 예측하거나 예방하지 못했고, 2011년 국가가 파산 직전에 놓였을 때 상황을 개선하지 못했다.
2011년 3월 23일, 소크라테스는 재정 삭감과 세금 인상에 대한 의회의 불신임안이 통과되자 사임했다. 이후 2011년 4월 6일, 소크라테스는 IMF과 유럽금융안정기구에 재정 지원을 요청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소크라테스가 구제금융 조치가 필요하지 않다고 부인한 지 48시간 만에 이루어졌다. 2011년 6월 5일, 총선에서 패배한 후 소크라테스는 사회당 사무총장직에서 사퇴했다.
3.1. 제17대 및 제18대 헌법 정부
조제 소크라트스(José Sócrates)는 2005년 3월 12일부터 제17대와 제18대 포르투갈 헌법 정부(Governos Constitucionais)를 이끌었다.
| 부처 | 역임자 | 임기 |
|---|---|---|
| 국토 및 행정부 | 안토니우 코스타 | 2005년 3월 13일 – 2007년 5월 17일 |
| 루이 페헤이라 | 2007년 5월 17일 – 2011년 6월 21일 | |
| 국무 및 외교부 | 디오구 프레이타스 두 아마랄 | 2005년 3월 13일 – 2006년 7월 3일 |
| 루이스 아마두 | 2006년 7월 3일 – 2011년 6월 21일 | |
| 국무 및 재정부 | 루이스 캄푸스 이 쿠냐 | 2005년 3월 13일 – 2005년 7월 21일 |
| 페르난두 테이셰이라 두스 산투스 | 2005년 7월 21일 – 2011년 6월 21일 | |
| 대통령부 | 페드루 실바 페헤이라 | 2005년 3월 13일 – 2011년 6월 21일 |
| 국방부 | 루이스 아마두 | 2005년 3월 13일 – 2006년 7월 3일 |
| 누누 세베리아누 테이셰이라 | 2006년 7월 3일 – 2009년 10월 26일 | |
| 아우구슈투 산투스 실바 | 2009년 10월 2일 – 2011년 6월 21일 | |
| 사법부 | 알베르투 코스타 | 2005년 3월 13일 – 2009년 10월 26일 |
| 알베르투 마르틴스 | 2009년 10월 26일 – 2011년 6월 21일 | |
| 환경부 | 프란시스쿠 누네스 코헤이야 | 2005년 3월 13일 – 2009년 10월 26일 |
| 둘세 알바루 파사루 | 2009년 10월 26일 – 2011년 6월 21일 | |
| 경제, 혁신 및 개발부 | 마누엘 피뉴 | 2005년 3월 13일 – 2009년 7월 2일 |
| 페르난두 테이셰이라 두스 산투스 | 2009년 7월 2일 – 2009년 10월 26일 | |
| 조제 비에이라 다 실바 | 2009년 10월 26일 – 2011년 6월 21일 | |
| 농업부 | 자이메 실바 | 2005년 3월 13일 – 2009년 10월 26일 |
| 안토니우 소아레스 세라누 | 2009년 10월 26일 – 2011년 6월 21일 | |
| 공공사업 및 통신부 | 마리우 리누 | 2005년 3월 13일 – 2009년 10월 26일 |
| 안토니우 아우구슈투 멘돈사 | 2009년 10월 26일 – 2011년 6월 21일 | |
| 노동 및 사회연대부 | 조제 비에이라 다 실바 | 2005년 3월 13일 – 2009년 10월 26일 |
| 마리아 엘레나 안드레 | 2009년 10월 26일 – 2011년 6월 21일 | |
| 보건부 | 안토니우 코헤이야 드 캄푸스 | 2005년 3월 13일 – 2008년 1월 30일 |
| 아나 조르제 | 2008년 1월 30일 – 2011년 6월 21일 | |
| 교육부 | 마리아 드 루르데스 로드리게스 | 2005년 3월 13일 – 2009년 10월 26일 |
| 이자벨 알사다 | 2009년 10월 26일 – 2011년 6월 21일 | |
| 과학, 기술 및 고등교육부 | 마리아누 가구 | 2005년 3월 13일 – 2011년 6월 21일 |
| 문화부 | 이자벨 피레스 드 리마 | 2005년 3월 13일 – 2008년 1월 30일 |
| 조제 안토니우 핀투 리베이루 | 2008년 1월 30일 – 2009년 10월 26일 | |
| 가브리엘라 카나빌리아스 | 2009년 10월 26일 – 2011년 6월 21일 | |
| 의회 담당 부처 | 아우구슈투 산투스 실바 | 2005년 3월 13일 – 2009년 10월 26일 |
| 조르제 라캉 | 2009년 10월 26일 – 2011년 6월 21일 |
3.2. 주요 정책
조제 소크라테스는 포르투갈 총리로서 2007년 7월부터 12월까지 순환되는 유럽 연합 이사회 의장직을 맡았다. 이 기간 동안 소크라테스와 그의 팀은 EU-브라질( 제1차 EU-브라질 정상회담) 및 EU-아프리카 연합( 2007 아프리카-EU 정상회담) 관계와 리스본 조약 비준에 중점을 두었다. 포르투갈 의회는 2008년 4월 23일 리스본 조약 비준을 위한 투표를 실시했다. 2008년 6월 12일 아일랜드 국민투표에서 리스본 조약이 부결되자, 조제 소크라테스 총리는 포르투갈 수도에서 EU 지도자들이 조약에 서명한 후 아일랜드의 "반대"를 "개인적인 패배"로 여겼다고 말했다. 2009년 아일랜드에서 두 번째 국민투표가 실시되었고, 그 결과 아일랜드를 포함한 모든 EU 회원국이 리스본 조약을 승인했다.
3.3. 경제 위기와 긴축 정책
2000년대 후반, 유럽 국가 부채 위기로 인해 포르투갈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2010년 9월, 포르투갈 정부는 다른 유로존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세금 인상과 공무원 급여 삭감을 통해 2011년까지 예산 적자를 절반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긴축 재정안을 발표했다. 2009년 포르투갈의 재정 적자는 9.4%로, 유럽 연합의 안정 및 성장 협약에서 정한 3% 한도를 훨씬 초과하는 수치였다.
디아리우 드 노티시아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1974년 카네이션 혁명 이후 포르투갈 정부는 과도한 지출과 투자 거품을 조장했으며, 이는 비효율적인 외부 자문 위원회 및 회사 지원, 공공 사업에서의 회계 차이, 불필요한 공무원 증가, 위험한 신용 및 국가 부채 생성, 잘못 관리된 유럽 구조 및 결합 기금 등으로 이어졌다. 소크라테스 내각은 2005년에 최초로 경제 위기 징후가 나타났을 때 이를 예측하거나 예방하지 못했고, 2011년 국가가 파산 직전에 놓였을 때 상황을 개선하지 못했다.
2011년 3월 23일, 소크라테스는 재정 삭감과 세금 인상에 대한 의회의 불신임안이 통과되자 사임했다. 이후 2011년 4월 6일, 소크라테스는 IMF과 유럽금융안정기구에 재정 지원을 요청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소크라테스가 구제금융 조치가 필요하지 않다고 부인한 지 48시간 만에 이루어졌다. 2011년 6월 5일, 총선에서 패배한 후 소크라테스는 사회당 사무총장직에서 사퇴했다.
4. 논란 및 사건
2014년 11월 리스본에서 탈세, 부정부패, 자금 세탁 혐의로 검찰 당국에 체포되었다. 2018년 사회당을 탈당했다.
== 인데펜덴테 대학교 학위 논란 ==
2007년 3월, 조제 소크라트스가 인데펜덴테 대학교에서 취득한 토목공학 학사 학위(licenciatura)가 대중의 큰 주목을 받았다. 학위 취득 과정에서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는 의혹과 함께, 5개의 학문 분야 중 4개가 사회당 정부 임명자인 안토니오 조제 모라에스(António José Moraes) 교수 한 명에 의해 부여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다섯 번째 학문 분야인 "기술 영어"는 인데펜덴테 대학교의 총장이 가르쳤다. 소크라트스가 자신의 학위와 토목공학 학위를 받은 방식에 대해 허위 진술을 했을 가능성에 대한 강력한 증거도 제시되었다. 인데펜덴테 대학교의 토목공학 학위는 인증되지 않은 학위였고, 해당 대학교에는 토목공학과가 아직 설립되지 않았으며, 한 시험은 팩스로 보내졌고, 소크라테스의 졸업장은 대학교가 항상 문을 닫는 일요일에 발급되었다는 점도 논란이 되었다.
일부 포르투갈 언론 전문가들은 소크라트스 또는 그의 직원들이 전화를 통해 기자들을 상대로 법적 조치를 위협하고 그의 UnI 수여 학사 학위에 대한 보도를 중단하려고 시도했다고 밝혔다. 2007년 4월 9일, 인데펜덴테 대학교는 조사에서 이 사립대학 운영에 여러 심각한 부정 행위가 보고된 후 정부 당국에 의해 폐쇄되었다.
2007년 4월 11일, 소크라테스는 RTP 1 TV 채널과 RDP 라디오의 생방송 인터뷰에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총리는 자신이 학위를 얻기 위해 인데펜덴테 대학교로부터 특혜를 받지 않았다고 말했고, "심술궂은 비난"의 표적이 되었으며, 완전히 자격을 갖춘 토목기사는 아니라고 인정했지만 학위의 진위를 옹호했다. 포르투갈 정부 공식 웹사이트의 공식 약력에서 소크라테스는 이미 기사 자격을 취득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중에 이것이 "실수"였다고 인정했고, 정부 웹사이트는 그의 이력서를 수정하여 "토목 기사"를 "토목공학 졸업장"으로 낮추었다. 그는 학위를 받기 전에 단순히 "기술 기사"였을 때 자신을 "기사"라고 소개했다. 소크라테스의 개인 정보에 대한 공식 정보가 담긴 포르투갈 의회 문서가 발견되어 이러한 불일치를 증명했다. 소크라테스와 그의 직원들은 이에 대해 의회 서비스의 오해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그는 학사 학위(licenciatura) 졸업장을 받은 후 인데펜덴테 대학교의 인증되지 않은 토목공학 학위가 포르투갈의 엔지니어 협회(Ordem dos Engenheiros)에 의해 규제되는 직업인 "기사"라는 직함을 사용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공식 문서에서 "기사"라는 직함을 사용했다.
익스프레소(Expresso) 신문의 편집장인 니콜라우 산토스(Nicolau Santos)는 푸블리쿠(Público)에 발표된 일련의 논란이 되는 사건들을 비판하고, 상세한 보도에도 불구하고 푸블리쿠(Público)의 조사가 "결정적인 결론"에 이르지 못했고 다른 문제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SIC 뉴스(SIC Notícias)의 기자인 리카르도 코스타(Ricardo Costa)와 같은 다른 여러 언론인들은 푸블리쿠(Público) 신문의 모회사인 소네(SONAE)가 소네(SONAE)의 통신 사업자가 가장 큰 포르투갈 통신사인 포르투갈 텔레콤(Portugal Telecom)을 인수하려는 시도가 실패하면서 논란이 시작되었다는 점을 논란의 여지가 있게 시사했다.
소크라테스의 절친인 아르망두 바라(Armando Vara)도 국가 운영 카이샤 제랄 데 데포시토스(Caixa Geral de Depósitos)에서 고위직 은행 관리직에 임명되기 며칠 전에 인데펜덴테 대학교로부터 졸업장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주 당국은 조세 소크라테스(José Sócrates)에게 제기된 위조 및 불법행위 의혹이 공식적으로 증명 불가능함이 밝혀짐에 따라 해당 사건을 조사하고 관련 파일을 보관했다. 한편, 인디펜덴테 대학교(Universidade Independente)는 교육 당국의 조사를 받았으며, 학문적 엄격성과 교육 질의 부족, 그리고 전반적인 관리 및 재정 혼란으로 인해 2007년 10월 강제 폐교 조치되었다.
== 프리포트 아울렛 관련 논란 ==
2002년, 조제 소크라트스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총리 내각의 환경부 장관 재직 당시, 영국 기업 프리포트(Freeport)의 알코셰테 아울렛 건설을 허가하는 과정에서 환경 규제를 면제해주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 프로젝트는 리스본 외곽 타구스(Tagus) 강 근처에 위치한 보호 구역 일부를 포함한 부지에 건설되었다.
2005년과 2009년, 포르투갈과 영국 언론은 소크라트스가 그의 삼촌과 사촌의 개입을 통해 프리포트에 특혜를 제공했다고 보도했다. 포르투갈 당국은 소크라트스가 조사 대상이 아니며 용의자도 아니라고 주장했고, 영국의 중대 사기 사무소(Serious Fraud Office)는 포르투갈 보도의 진위 여부 확인을 거부했다. 소크라트스는 프리포트 프로젝트가 당시 모든 법적 요구 사항을 준수했다고 밝혔다.
2009년 3월, 영국 경찰이 소지하고 있던 DVD가 포르투갈 언론에 공개되었는데, 프리포트 알코셰테 허가 관련 컨설턴트인 찰스 스미스는 소크라트스가 "부패했다"고 진술하며 사촌을 통해 돈을 받고 프로젝트 승인을 내주었다고 말했다. TVI가 공개한 녹음에는 찰스 스미스, 존 카브랄, 앨런 퍼킨스 간의 대화가 담겨 있었으며, 앨런 퍼킨스는 당시 총리에게 "뇌물"을 지불하기 위해 회사에서 나간 돈에 대해 질문했다. 찰스 스미스는 2002년 선거 3일 전, 타구스 강 어귀 특별 보호 지역(ZPET) 변경과 관련된 부패 의혹과 관련하여 프리포트 사건의 피고인 중 한 명이었다.
2006년에 이루어진 이 대화는 프로젝트 승인 당시 런던에 있는 회사 본사에서 발생한 대규모 자금 유출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TVI에 따르면, 소크라트스는 영국 경찰의 주요 용의자로 남아있으며, 영국 경찰은 이 사건에 대해 수행한 모든 조사 내용 25권을 포르투갈 당국에 보낼 예정이었다. 그러나 중대 사기 사무소는 포르투갈 당국의 협조 부족으로 활동에 제한을 받았다. 2008년 11월 17일, 헤이그(The Hague)에 있는 유로저스트(Eurojust) 본부에서 첫 공식 회의가 열렸으나, DCIAP 책임자인 칸디다 알메이다 판사는 영국의 공동 조사 제안을 거부하고 DVD 증거를 기각했다.
유로저스트는 포르투갈 출신 수장 조제 다 모타가 소크라테스와 관련된 부패 조사를 중단하기 위해 검찰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에 대해 거리를 두었다. 조제 다 모타는 소크라테스와 1990년대 후반 같은 정부에서 일했던 관계로, 2007년 유로저스트 수장으로 선출될 당시 프리포트 사건은 이미 포르투갈에서 시작된 상태였다.
2012년 5월 22일, 2005년부터 2006년까지 프리포트 관리자였던 앨런 퍼킨스는 법정에서 선서하에 당시 환경부 장관이었던 소크라테스에게 불법적인 지급이 이루어졌다고 증언했다.
== 페이스 오쿨타 (Face Oculta) 스캔들 ==
2009년 10월 28일, 경찰은 오바르(Ovar)에 본사를 둔 기업 집단에 대한 부패 수사를 시작했으며, 이 과정에서 아르망두 바라(Armando Vara)가 조제 소크라트스와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져 연루 의혹이 제기되었다. 소크라테스는 친구와 이야기했을 뿐이라며 어떠한 연루도 부인했다. 2011년 2월, 포르투갈 텔레콤(Portugal Telecom)에 속한 TMN사는 정보학적 문제로 인해 아르망두 바라(BCP 전 부사장), 루이 페드루 소아레스(PT 전 관리자), 마리우 리누(전 장관), 파울루 페네두스(PT 전 보좌관)와 관련된 사건에 대한 모든 정보와 데이터가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디아리우 드 노티시아스(Diário de Notícias) 신문의 편집장인 다비드 디니스(David Dinis)는 정보 유출을 막으라는 João Marcelino 감독의 압력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소크라테스는 "페이스 오쿨타" 수사의 일환으로 기소되지 않았지만, 부패 혐의에 대한 수사는 "마르키스 작전(Operation Marquis)" 하에 계속되었다.
== 부패 혐의 체포 및 기소 (2014) ==
2014년 11월, 조제 소크라트스는 탈세, 부패, 자금 세탁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의 측근이 수백만 유로를 그의 이익을 위해 보관하고 있던 사실이 정부의 '마르키스 작전(Operation Marquis)'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소크라트스는 친구에게 돈을 빌렸다고 주장했지만, 빌린 금액에 대한 기록은 없었고, 파리에서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위한 자금으로 사용된 것이 인정되었다. 그는 에보라(Évora) 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2015년 9월 리스본에 있는 친척 집에서 가택 연금되었다. 2015년 10월 가택 연금에서 풀려났지만, 수사가 완료될 때까지 포르투갈에 머물러야 하고 사건의 다른 용의자들과 접촉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2017년, 소크라트스는 뇌물 수수, 자금 세탁, 탈세 등 부패 혐의로 공식 기소되었다. 문서 위조, 탈세, 자금 세탁, 직권 남용 혐의는 소네(Sonae)의 포르투갈 텔레콤(Portugal Telecom) 인수, 발레 두 로보(Vale do Lobo) 확장 프로젝트, 고속철도 노선 건설과 관련된 거래를 기반으로 했다.
2021년 4월 9일, 포르투갈 판사는 부패 혐의를 기각하고 자금 세탁 및 문서 위조 혐의는 유지했다.
4.1. 인데펜덴테 대학교 학위 논란
2007년 3월, 조제 소크라트스가 인데펜덴테 대학교에서 취득한 토목공학 학사 학위(licenciatura)가 대중의 큰 주목을 받았다. 학위 취득 과정에서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는 의혹과 함께, 5개의 학문 분야 중 4개가 사회당 정부 임명자인 안토니오 조제 모라에스(António José Moraes) 교수 한 명에 의해 부여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다섯 번째 학문 분야인 "기술 영어"는 인데펜덴테 대학교의 총장이 가르쳤다. 소크라트스가 자신의 학위와 토목공학 학위를 받은 방식에 대해 허위 진술을 했을 가능성에 대한 강력한 증거도 제시되었다. 인데펜덴테 대학교의 토목공학 학위는 인증되지 않은 학위였고, 해당 대학교에는 토목공학과가 아직 설립되지 않았으며, 한 시험은 팩스로 보내졌고, 소크라테스의 졸업장은 대학교가 항상 문을 닫는 일요일에 발급되었다는 점도 논란이 되었다.
일부 포르투갈 언론 전문가들은 소크라테스 또는 그의 직원들이 전화를 통해 기자들을 상대로 법적 조치를 위협하고 그의 UnI 수여 학사 학위에 대한 보도를 중단하려고 시도했다고 밝혔다. 2007년 4월 9일, 인데펜덴테 대학교는 조사에서 이 사립대학 운영에 여러 심각한 부정 행위가 보고된 후 정부 당국에 의해 폐쇄되었다.
2007년 4월 11일, 소크라테스는 RTP 1 TV 채널과 RDP 라디오의 생방송 인터뷰에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총리는 자신이 학위를 얻기 위해 인데펜덴테 대학교로부터 특혜를 받지 않았다고 말했고, "심술궂은 비난"의 표적이 되었으며, 완전히 자격을 갖춘 토목기사는 아니라고 인정했지만 학위의 진위를 옹호했다. 포르투갈 정부 공식 웹사이트의 공식 약력에서 소크라테스는 이미 기사 자격을 취득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중에 이것이 "실수"였다고 인정했고, 정부 웹사이트는 그의 이력서를 수정하여 "토목 기사"를 "토목공학 졸업장"으로 낮추었다. 그는 학위를 받기 전에 단순히 "기술 기사"였을 때 자신을 "기사"라고 소개했다. 소크라테스의 개인 정보에 대한 공식 정보가 담긴 포르투갈 의회 문서가 발견되어 이러한 불일치를 증명했다. 소크라테스와 그의 직원들은 이에 대해 의회 서비스의 오해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그는 학사 학위(licenciatura) 졸업장을 받은 후 인데펜덴테 대학교의 인증되지 않은 토목공학 학위가 포르투갈의 엔지니어 협회(Ordem dos Engenheiros)에 의해 규제되는 직업인 "기사"라는 직함을 사용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공식 문서에서 "기사"라는 직함을 사용했다.
익스프레소(Expresso) 신문의 편집장인 니콜라우 산토스(Nicolau Santos)는 푸블리쿠(Público)에 발표된 일련의 논란이 되는 사건들을 비판하고, 상세한 보도에도 불구하고 푸블리쿠(Público)의 조사가 "결정적인 결론"에 이르지 못했고 다른 문제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SIC 뉴스(SIC Notícias)의 기자인 리카르도 코스타(Ricardo Costa)와 같은 다른 여러 언론인들은 푸블리쿠(Público) 신문의 모회사인 소네(SONAE)가 소네(SONAE)의 통신 사업자가 가장 큰 포르투갈 통신사인 포르투갈 텔레콤(Portugal Telecom)을 인수하려는 시도가 실패하면서 논란이 시작되었다는 점을 논란의 여지가 있게 시사했다.
소크라테스의 절친인 아르망두 바라(Armando Vara)도 국가 운영 카이샤 제랄 데 데포시토스(Caixa Geral de Depósitos)에서 고위직 은행 관리직에 임명되기 며칠 전에 인데펜덴테 대학교로부터 졸업장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주 당국은 조세 소크라테스(José Sócrates)에게 제기된 위조 및 불법행위 의혹이 공식적으로 증명 불가능함이 밝혀짐에 따라 해당 사건을 조사하고 관련 파일을 보관했다. 한편, 인디펜덴테 대학교(Universidade Independente)는 교육 당국의 조사를 받았으며, 학문적 엄격성과 교육 질의 부족, 그리고 전반적인 관리 및 재정 혼란으로 인해 2007년 10월 강제 폐교 조치되었다.
4.2. 프리포트 아울렛 관련 논란
2002년, 조제 소크라트스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총리 내각의 환경부 장관 재직 당시, 영국 기업 프리포트(Freeport)의 알코셰테 아울렛 건설을 허가하는 과정에서 환경 규제를 면제해주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 프로젝트는 리스본 외곽 타구스(Tagus) 강 근처에 위치한 보호 구역 일부를 포함한 부지에 건설되었다.
2005년과 2009년, 포르투갈과 영국 언론은 소크라트스가 그의 삼촌과 사촌의 개입을 통해 프리포트에 특혜를 제공했다고 보도했다. 포르투갈 당국은 소크라트스가 조사 대상이 아니며 용의자도 아니라고 주장했고, 영국의 중대 사기 사무소(Serious Fraud Office)는 포르투갈 보도의 진위 여부 확인을 거부했다. 소크라트스는 프리포트 프로젝트가 당시 모든 법적 요구 사항을 준수했다고 밝혔다.
2009년 3월, 영국 경찰이 소지하고 있던 DVD가 포르투갈 언론에 공개되었는데, 프리포트 알코셰테 허가 관련 컨설턴트인 찰스 스미스는 소크라트스가 "부패했다"고 진술하며 사촌을 통해 돈을 받고 프로젝트 승인을 내주었다고 말했다. TVI가 공개한 녹음에는 찰스 스미스, 존 카브랄, 앨런 퍼킨스 간의 대화가 담겨 있었으며, 앨런 퍼킨스는 당시 총리에게 "뇌물"을 지불하기 위해 회사에서 나간 돈에 대해 질문했다. 찰스 스미스는 2002년 선거 3일 전, 타구스 강 어귀 특별 보호 지역(ZPET) 변경과 관련된 부패 의혹과 관련하여 프리포트 사건의 피고인 중 한 명이었다.
2006년에 이루어진 이 대화는 프로젝트 승인 당시 런던에 있는 회사 본사에서 발생한 대규모 자금 유출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TVI에 따르면, 소크라트스는 영국 경찰의 주요 용의자로 남아있으며, 영국 경찰은 이 사건에 대해 수행한 모든 조사 내용 25권을 포르투갈 당국에 보낼 예정이었다. 그러나 중대 사기 사무소는 포르투갈 당국의 협조 부족으로 활동에 제한을 받았다. 2008년 11월 17일, 헤이그(The Hague)에 있는 유로저스트(Eurojust) 본부에서 첫 공식 회의가 열렸으나, DCIAP 책임자인 칸디다 알메이다 판사는 영국의 공동 조사 제안을 거부하고 DVD 증거를 기각했다.
유로저스트는 포르투갈 출신 수장 조제 다 모타가 소크라테스와 관련된 부패 조사를 중단하기 위해 검찰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에 대해 거리를 두었다. 조제 다 모타는 소크라테스와 1990년대 후반 같은 정부에서 일했던 관계로, 2007년 유로저스트 수장으로 선출될 당시 프리포트 사건은 이미 포르투갈에서 시작된 상태였다.
2012년 5월 22일, 2005년부터 2006년까지 프리포트 관리자였던 앨런 퍼킨스는 법정에서 선서하에 당시 환경부 장관이었던 소크라테스에게 불법적인 지급이 이루어졌다고 증언했다.
4.3. 페이스 오쿨타 (Face Oculta) 스캔들
2009년 10월 28일, 경찰은 오바르(Ovar)에 본사를 둔 기업 집단에 대한 부패 수사를 시작했으며, 이 과정에서 아르망두 바라(Armando Vara)가 조제 소크라트스와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져 연루 의혹이 제기되었다. 소크라테스는 친구와 이야기했을 뿐이라며 어떠한 연루도 부인했다. 2011년 2월, 포르투갈 텔레콤(Portugal Telecom)에 속한 TMN사는 정보학적 문제로 인해 아르망두 바라(BCP 전 부사장), 루이 페드루 소아레스(PT 전 관리자), 마리우 리누(전 장관), 파울루 페네두스(PT 전 보좌관)와 관련된 사건에 대한 모든 정보와 데이터가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디아리우 드 노티시아스(Diário de Notícias) 신문의 편집장인 다비드 디니스(David Dinis)는 정보 유출을 막으라는 João Marcelino 감독의 압력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소크라테스는 "페이스 오쿨타" 수사의 일환으로 기소되지 않았지만, 부패 혐의에 대한 수사는 "마르키스 작전(Operation Marquis)" 하에 계속되었다.
4.4. 부패 혐의 체포 및 기소 (2014)
2014년 11월, 조제 소크라트스는 탈세, 부패, 자금 세탁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의 측근이 수백만 유로를 그의 이익을 위해 보관하고 있던 사실이 정부의 '마르키스 작전(Operation Marquis)'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소크라트스는 친구에게 돈을 빌렸다고 주장했지만, 빌린 금액에 대한 기록은 없었고, 파리에서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위한 자금으로 사용된 것이 인정되었다. 그는 에보라(Évora) 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2015년 9월 리스본에 있는 친척 집에서 가택 연금되었다. 2015년 10월 가택 연금에서 풀려났지만, 수사가 완료될 때까지 포르투갈에 머물러야 하고 사건의 다른 용의자들과 접촉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2017년, 소크라트스는 뇌물 수수, 자금 세탁, 탈세 등 부패 혐의로 공식 기소되었다. 문서 위조, 탈세, 자금 세탁, 직권 남용 혐의는 소네(Sonae)의 포르투갈 텔레콤(Portugal Telecom) 인수, 발레 두 로보(Vale do Lobo) 확장 프로젝트, 고속철도 노선 건설과 관련된 거래를 기반으로 했다.
2021년 4월 9일, 포르투갈 판사는 부패 혐의를 기각하고 자금 세탁 및 문서 위조 혐의는 유지했다.
5. 퇴임 이후
2011년 포르투갈 총선에서 사회당이 패배하자, 조제 소크라트스는 당 서기장직 사퇴를 표명했다. 2014년 11월 리스본에서 탈세, 부정부패, 자금 세탁 혐의로 검찰 당국에 체포되었으며, 2018년 사회당을 탈당했다.
6. 기타
6.1. 개인 생활
조제 소크라트스는 엔지니어인 소피아 코스타 핀토 파바와 이혼했으며, 두 아들 호세 미겔 파바 핀토 드 소우사(1993년생)와 에두아르도 파바 핀토 드 소우사(1995년생)를 두고 있다. 소피아는 건축가인 호세 마누엘 카르발류 파바와 엔지니어이자 아르망두 메스키타와 팔미라 다 코스타 핀토의 딸인 클로틸데 메스키타의 딸이다.
소크라트스는 리스본에 거주하지만, 과거에는 코빌량 시의 유권자로 등록되어 있었으며, 법이 바뀌기 전까지 그곳에서 투표했다. 2018년 후반부터는 에리세이라에 거주하고 있다. 그는 SL 벤피카의 팬이다.
6.2. 건강
조제 소크라트스는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 리우데자네이루의 코파카바나, 루안다, 리스본 등지에서 아침 조깅을 하는 자신의 사진을 찍었다.
2008년 1월 포르투갈의 공공 건물과 대중교통에서 흡연 금지가 시행되었지만, 소크라트스는 5월에 우고 차베스를 만나러 가는 베네수엘라로 향하는 사적인 국가 전세기에서 흡연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후 실수였다고 인정하고 사과하며 금연을 약속했다. 또한 그는 그 당시 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012년, 그가 주목받지 않게 된 후 포르투갈 신문 Diário de Notícias는 그가 더 이상 금연자가 아니라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