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훈 (1920년)
1. 개요
조중훈은 1920년 인천에서 태어나 한진상사를 창업하여 한진그룹을 일군 기업인이다. 그는 해원양성소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2등기관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해방 후 이연공업사를 운영하다가 한진상사를 설립하여 미군 수송 사업을 통해 회사를 성장시켰다. 1969년에는 대한국민항공을 인수하여 대한항공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항공 사업을 시작했으며, 한진해운을 설립하는 등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또한 서울 올림픽 유치에 기여하고 정석학원을 설립하는 등 사회 공헌 활동도 펼쳤으며,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1999년 대한항공 대표이사 회장에서 물러났으며, 2002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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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 사람 -
이명희 (1949년)
이명희는 이재철 前 교통부 차관의 딸이자 조양호 前 한진그룹 회장의 배우자로, 조현아, 조원태, 조현민을 자녀로 둔 대한민국의 기업인이지만, 한진그룹 일가로서 갑질 논란에 휩싸이며 사회적 비판을 받았다. -
한진 사람 -
조수호
조수호는 한진그룹 창업주 조중훈의 3남으로, 대한항공 입사 후 2003년부터 한진해운 회장을 역임하며 해운 산업 발전에 기여한 대한민국의 기업인이다. -
한진가 -
이명희 (1949년)
이명희는 이재철 前 교통부 차관의 딸이자 조양호 前 한진그룹 회장의 배우자로, 조현아, 조원태, 조현민을 자녀로 둔 대한민국의 기업인이지만, 한진그룹 일가로서 갑질 논란에 휩싸이며 사회적 비판을 받았다. -
한진가 -
조정호
조정호는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 국제경영개발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은 대한민국의 기업인이며, 조중훈의 아들이자 구자학의 사위이다. -
양주 조씨 -
조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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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조씨 -
조민희 (조선귀족)
조민희는 조선 말 관료로 대한제국 시기 요직을 거쳐 한일 병합에 기여한 공으로 일본으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았으나, 도박으로 파산하여 작위가 정지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2. 생애
조중훈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시기에 걸쳐 운송 및 항공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한 기업인이다. 1945년 한진상사를 창업하여 1969년 대한국민항공을 인수해 대한항공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운영을 시작했다. 서울올림픽 유치에 앞장섰으며, 한국항공대학교, 인하공대 등을 인수해 정석학원을 설립했다.
2.1. 초기 생애 및 기업 활동
1920년 경기도 인천부에서 조명희와 태천즙 사이의 4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8대조는 노론 4대 관료 조태채이다. 휘문고보를 중퇴하고 국비 교육기관이었던 경상남도 진해의 해원양성소(현 한국해양대학교 해사대학)에 진학했다. 2년 만에 해원양성소 기관과를 우등으로 졸업했다. 20세 때 일본에 건너가 2등기관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일본 화물선을 타기도 했다. 1942년 일본에서 돌아와 서울 종로구 효제동에 목탄차 엔진을 수리하는 이연(理硏)공업사를 차렸다. 마모된 트럭엔진을 수리하는 회사였다.
1945년 11월 이연공업사를 정리할 때 받은 보상금과 그동안 저축한 돈을 모아 인천시 해안동에서 '한진상사'를 창업했다. 당시는 트럭 한 대뿐이었다. 창업 2년 만에 화물자동차 10대를 보유하게 됐다. 1947년에는 교통부로부터 경기도 일원에 대한 화물자동차 운송사업 면허를 정식으로 받았다. 창업 5년째 되던 해에는 종업원 40명, 트럭 30대, 화물운반선 10척을 보유한 운송전문회사로 성장했다. 1957년 처음으로 미군과 70000USD짜리 수송계약을 체결했고, 이후 연평균 300%씩 급성장했다. 한진상사는 미군 운송권을 독점하다시피 했고, 1960년 한 해 계약고만 2200000USD, 용차를 포함한 가용차량이 500대에 이르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1961년 8월 주한미군 통근버스 20대를 매입해 서울-인천 구간에서 한국 최초의 '좌석버스' 사업을 시작했다. 이것이 한진고속의 시초이다.
2.2. 대한항공 인수 및 성장
趙重勳일본어은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적자였던 대한국민항공을 인수하여 대한항공으로 사명을 바꾸고 운영을 시작하였다. 1977년 5월에는 대진해운을 해체하고 컨테이너 전용 해운사인 한진해운을 설립했다. 대한항공이 에어버스 A300 여객기를 성공적으로 도입, 운용하면서 에어버스는 그 이후부터 유럽 외 지역으로 판매를 확대했다. 그 공로로 1990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 중 2등급인 그랑도피시에를 받았다. 이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 중 사실상 가장 높은 훈장으로, 가장 높은 훈장인 그랑크루아 등급은 프랑스 대통령에게만 수여된다. 1999년 4월 22일 대한항공 대표이사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고, 장남 조양호를 그룹 회장에 낙점했다.
2.3. 한진그룹 성장과 사회 공헌
1957년 처음으로 미군과 70000USD짜리 수송계약을 체결했고, 이후 연평균 300%씩 급성장했다. 한진상사는 미군 운송권을 독점하다시피 했고, 1960년 한 해 계약고만 2200000USD, 용차를 포함한 가용차량이 500대에 이르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1961년 8월 주한미군 통근버스 20대를 매입해 서울-인천 구간에서 한국 최초의 '좌석버스' 사업을 시작했는데, 이것이 한진고속의 시초이다.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적자인 대한국민항공을 인수하여 대한항공으로 사명을 바꾸고 운영을 시작하였다.
1977년 5월에는 대진해운을 해체하고 컨테이너 전용 해운사인 한진해운을 설립했다. 서울올림픽 유치에 앞장섰다. 한국항공대학교, 인하공대 등을 인수해 정석학원을 설립했다. 대한항공이 성공적으로 A300 여객기를 도입, 운용하면서 에어버스는 그 이후부터 유럽 외 지역의 판매로를 열었다. 그 공로로 1990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 중 2등급인 그랑도피시에를 받았다. 이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 중 사실상 가장 높은 훈장으로, 가장 높은 훈장인 그랑크루아 등급은 프랑스 대통령에게만 수여된다.
2.4. 말년
1999년 4월 22일 대한항공 대표이사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고, 장남 조양호를 그룹 회장에 낙점했다. 2002년 11월 17일 인하대학교 부속병원에서 82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에 있다.
3. 주요 경력
4. 서훈
5. 가족 관계
| 관계 | 이름 | 출생-사망 | 비고 |
|---|---|---|---|
| 아버지 | 조명희(趙命熙) | 1895년 - 1971년 | |
| 어머니 | 태천즙(太天楫) | 1895년 - 1971년 | |
| 형 | 조중렬(趙重烈) | 1915년 6월 14일 - 1999년 4월 19일 | |
| 형수 | 최학희(崔鶴熙) | 1925년 6월 18일 - | |
| 부인 | 김정일 | 1923년 9월 8일 - 2016년 12월 15일 | |
| 장녀 | 조현숙 | 1944년 1월 - | |
| 장남 | 조양호 | 1949년 3월 8일 - 2019년 4월 8일 | |
| 며느리 | 이명희 | 1950년 2월 5일 - | 이재철 전 교통부차관, 인하대 총장의 딸 |
| 손녀 | 조현아 | 1974년 10월 5일 - | |
| 손자 | 조원태 | 1976년 1월 25일 - | |
| 손녀 | 에밀리 리 조 | 1983년 8월 31일 - | |
| 차남 | 조남호 | 1951년 2월 12일 - | |
| 3남 | 조수호 | 1954년 6월 21일 - 2006년 11월 26일 | |
| 며느리 | 최은영 | 1962년 5월 3일 - |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여동생 신정숙(동화면세점 사장)의 딸. 현 유수홀딩스 대표이사. |
| 4남 | 조정호 | 1958년 10월 5일 - | |
| 동생 | 조정옥 | 1922년 - | |
| 매제 | 전윤진 | 1916년 - | |
| 동생 | 조정원 | 1924년 - | |
| 매제 | 박두진 | 1926년 - | |
| 동생 | 조도원 | 1928년 - 2007년 9월 5일 | |
| 매제 | 박태원 | 1926년 - 2014년 5월 14일 | 전 한국과학기술원 이사장, 전 인하대 총장 |
| 동생 | 조경숙 | 1929년 - | |
| 매제 | 박소희 | ||
| 동생 | 조중건(趙重建) | 1932년 12월 29일 - | 화암재단 이사장 |
| 제수 | 이영학 | 1937년 3월 29일 - | 이상실 전 상공은행장의 딸 |
| 동생 | 조중식 | 1935년 2월 28일 - | 전 한진건설 사장 |
| 제수 | 김복수 | 1937년 1월 11일 - | 김성덕 전 교육자의 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