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네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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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 네이선은 은퇴한 미국의 야구 선수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에서 1999년부터 2016년까지 투수로 활약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미네소타 트윈스, 텍사스 레인저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시카고 컵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뛰었으며, 통산 377세이브를 기록하여 MLB 역대 8위에 올랐다. 2004년부터 2009년까지 6년 연속 올스타에 선정되었으며, 2005년에는 최우수 구원 투수상을 수상했다. 2019년에는 미네소타 트윈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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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네이선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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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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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 투수 |
투구/타석 | 우투/우타 |
출생지 |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
프로 입단 정보 | |
데뷔 리그 | MLB |
데뷔일 | 1999년 4월 21일 |
데뷔팀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마지막 리그 | MLB |
마지막 경기일 | 2016년 9월 27일 |
마지막 팀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통계 (MLB) | |
승-패 | 64승 34패 |
평균자책점 | 2.87 |
탈삼진 | 976 |
세이브 | 377 |
선수 경력 | |
소속팀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 미네소타 트윈스 (–, ) 텍사스 레인저스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 시카고 컵스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
수상 내역 | |
올스타 선정 | 6회 (2004년, 2005년, 2008년, 2009년, 2012년, 2013년) |
AL 롤레이즈 구원 투수상 | 2009년 |
기타 정보 | |
대학교 | 뉴욕 주립 대학교 스토니브룩 교 |
드래프트 | MLB 드래프트 6라운드 (전체 159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1995년) |
연봉 | 507,500 달러 (2016년) |
국가대표 | 미국 합중국 |
WBC | 2006년 |
2. 선수 경력
2. 1. 아마추어 시절
조 네이선은 휴스턴에서 태어났지만, 태어난 지 2주 만에 가족과 함께 미들타운, 뉴욕으로 이사했다.[6] 어렸을 때는 뉴욕 메츠의 팬이었다.[102] 1992년 뉴욕주 파인부시에 있는 파인 부시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그곳에서 농구, 야구, 육상 선수로 활동했다.[7]디비전 III 대학들만이 네이선에게 관심을 보였고, 그는 스토니브룩 대학교에 진학했다. 이는 그의 고등학교 보조 코치 제프 메이소넷과 스토니브룩 야구 코치 매트 센크가 뉴욕주립 코틀랜드 대학교 야구 프로그램의 전 동료였기 때문이다.[8] 스토니브룩 대학교에서 네이선은 스토니브룩 패트리어츠(현재는 시울브스)에서 유격수로 뛰었다.[9] 대학에서 네이선이 1루수에게 강한 송구를 하는 것을 본 센크는 그를 투수로도 시험해 보았다. 하지만 "주에 1, 2경기밖에 등판하지 않는 투수를 시키는 것보다, 매일 출전할 수 있는 야수가 낫다"라는 판단에 따라, 유격수 포지션에 머물렀다.[103] 그는 라인 드라이브 히터로서 활약했으며, 센크의 모교인 뉴욕 주립 대학교 코트랜드교와 대결했을 때 131.1미터나 되는 홈런을 날리기도 했다.[104]
프로 야구 스카우트들은 그의 체격과 강한 어깨를 보고 투수 전향을 기대했다. 네이선은 "장래에는 야수 한 우물만 팔 생각입니다"라고 말하자 대부분 관심을 잃었지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필라델피아 필리스 두 구단은 그를 야수로 스카우트했다.[103] 네이선은 두 번의 아카데믹 올-아메리카에 선정되었으며, 골든 키 국제 명예 학회 회원으로 졸업했다.[10] 1994년 뉴잉글랜드 칼리지 야구 리그의 페어필드 스탤리온스에서도 뛰었다. 1995년 6월, 드래프트 6라운드 (전체 159위)에서 자이언츠로부터 지명된 네이선은 다음 날 입단 계약을 맺고 프로에 입문했다.[9][11][103] 자이언츠의 스카우트 앨런 마는, 네이선의 송구 시 팔의 움직임이 "마치 투수 같다"라며, 투수로서의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105]
2006년, 네이선의 등번호 22번은 스토니브룩 대학교에서 영구 결번되었으며, 그는 학교에서 이 영예를 받은 최초의 운동선수였고, 대학교 메달을 수상했다.[10][12] 2006년 스토니브룩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13] 2008년 8월, 스토니브룩 체육부에 새로운 야구 시설을 위해 50만 달러를 기부했고, 대학은 새로운 야구 경기장 이름을 조 네이선 필드로 명명했다.[14]

2. 2. 마이너 리그 시절
조 네이선은 싱글 A 벨링햄 자이언츠에서 마이너 리그 경력을 시작했다.[15] 타석에서 성공적인 한 해를 보내지 못한 후, 자이언츠는 네이선을 투수로 전향시키려 했지만 그는 거절하고 1년 동안 스토니 브룩 대학교로 돌아가 경영학 학위를 받고 졸업했다.[7] 그는 야구에서의 자신의 미래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했고, 졸업 후 자이언츠 구단으로 돌아가[16] 뛰어난 투수 유망주로 성장했다. 세일럼-케이저 볼케이노스에서 한 시즌을 보낸 후, 1998년에는 A와 AA 레벨(산호세 자이언츠와 슈리브포트 캡틴스)에서 선발 투수로 활약했다.[15] 산호세에서 활동하는 동안 그는 22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평균자책점(ERA) 3.32와 118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A 클래스 자이언츠를 캘리포니아 리그 챔피언십으로 이끌었다.[17] 1999년 더블 A 슈리브포트로 승격되었지만, 1999년 메이저 리그에 승격되기 전까지 단 두 경기에만 출전했다.[15]2017년 1월 31일, 워싱턴 내셔널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고, 같은 해 스프링 트레이닝에 초청 선수로 참가하게 되었다.
2. 3. 메이저 리그 시절
1999년 자이언츠의 스프링 트레이닝에 참가한 네이선은 Steve Soderstrom영어, 크리스 블록, Miguel Del Toro영어 등과 선발 로테이션 5선발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106] 결과는 블록이 로테이션에 들어가면서, 네이선은 개막을 AA급 슈리브포트에서 맞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4월 중에 메이저 데뷔에 성공하여, 4월 21일 플로리다 말린스전에서 메이저 첫 등판을 했다. 이 경기에서 선발 등판한 네이선은 7이닝을 던져, 1회와 6회를 제외하고 매 이닝 득점권에 주자를 내보내는 투구였지만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승리 투수가 되었다.[107] 그 후 AAA급 프레즈노 그리즐리스로의 강등과 메이저 승격을 반복하면서, 메이저에서는 19경기에 등판하여 7승 4패, 평균 자책점 4.18의 성적을 남겼다. 2000년에는 전년보다 많은 20경기에 등판했다. 하지만 시즌 후반에 오른쪽 어깨를 다쳐 수술을 받았다. 2001년에는 메이저 등판은 없었고, 마이너에서도 AAA급, AA급을 합쳐 평균 자책점 7.29밖에 기록하지 못했다.2002년 9월 11일에 메이저로 다시 복귀하여 4경기를 던지며 시즌을 마쳤다. 부상이 잦아 중계 투수로 전향하여[108], 2003년에는 리그 5위에 해당하는 78경기에 등판하여, 구원 투수로서 MLB 최다인 12승[109], 19홀드·평균 자책점 2.96을 기록했다.

2003년 11월 14일에 프란시스코 릴리아노와 부프 본서와 함께 A.J. 피어신스키와의 트레이드로 미네소타 트윈스로 이적했다. 전년까지 팀의 마무리 투수였던 에디 과다도가 시애틀 매리너스로 이적한 트윈스는 네이선을 마무리로 발탁했다.
2004년에는 시범 경기나 개막 직후 불안정한 투구를 보여줘, 클로저를 맡을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었다[110]。4월 15일부터 6월 4일에 걸친 20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고, 5월 8일부터 8월 15일에 걸쳐 구단 신기록인 27회 연속 세이브를 기록했다[112]。 처음으로 선출된 올스타에서는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2탈삼진을 기록했다. 클로저의 지위를 확고히 했고[110], 44 세이브 (리그 3위)를 기록했다. 사이 영 상 투표에서는 페드로 마르티네스,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와 동률인 4위에 올랐고[111], MVP 투표에서는 12위에 올랐다.
2005년에는 2년 계약의 2년째로 계약을 완료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구단은 스프링 트레이닝 기간 중인 3월 4일에 2006년부터 2년 총액 1000만 미국 달러, 2008년은 옵션으로 600만 달러로 계약 연장했다[112]。 정규 시즌에서는 개막부터 5월 10일에 걸쳐 15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고, 작년에 이어 올스타에 선출되었다. 7승 4패, 리그 3위인 43세이브를 기록했고, 2년 연속 40세이브는 구단 역사상 3번째 쾌거였다[113]。
2006년 개막 전 3월에 개최된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WBC)의 미국 대표팀에 선출되었다.
시즌에서는 6월 24일의 시카고 컵스전에서 구단 역사상 5번째 통산 100세이브를 달성했고[114], 9월 9일의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전에서 통산 117세이브를 기록하며 에디 과다도를 제치고 구단 통산 세이브 기록 단독 2위가 되었다[114]。 64경기에 등판하여 7승 0패, 평균자책점 1.58, 36세이브 (리그 6위)를 기록했다. 사이 영 상에서는 5위에 올랐다.
2007년에는 37세이브 (리그 6위)를 기록했고,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4년 연속 36세이브 이상을 기록했다[115]。 트윈스 이적 후 2004년부터 4년간 마리아노 리베라와 동률인 리그 최다 통산 160세이브를 기록했다[115]。 시즌 종료 후 10월 29일에 구단이 2008년 옵션을 행사하여 잔류가 결정되었지만[116], 트레이드 이야기가 거론되었다[117]。
|right|upright|thumb|2007년 트윈스 소속의 네이선]]

2008년에는 이전부터 '은퇴할 때까지 트윈스에서 던지고 싶다'라고 공언했던 네이선에 대해, 구단은 3월 24일에 1년 총액 600만 달러의 계약을 일단 철회하고, 2008년부터 4년 총액 4700만 달러, 그리고 5년째인 2012년에는 1250만 달러의 구단 옵션에 2만 달러의 바이아웃이 붙는 내용으로 재계약했다[117]。 같은 해 정규 시즌에서는 개인 최고 평균자책점 1.33, 39세이브 (리그 4위)를 기록했지만, 세이브 실패가 개인 최악인 6회를 기록했다.
2009년에는 브라이언 푸엔테스에 이어 리그 2위인 47세이브를 기록했다.
2010년에는 토미 존 수술로 인해 시즌을 통째로 쉬었다.
2011년에 복귀했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으로 마무리했다. 트윈스에서의 통산 260세이브는 릭 아길라의 254세이브를 넘어 구단 최다 기록이다.

(2012년 3월 15일)]]
2011년 오프에 자유 계약 선수(FA)가 되어 선발 투수로 전향한 네프탈리 펠리스를 대신할 마무리 투수를 찾고 있던 텍사스 레인저스와 2년 계약(3년째는 옵션)을 맺었다.[118]
2012년에는 그 해 올스타전에 선출되었으며, 37세이브(리그 5위)를 기록했다.
2013년 4월 9일 탬파베이 레이스전에서 통산 300세이브를 달성했다. 43세이브(리그 4위)를 기록하고 오프에 FA가 되었다.

(2014년 5월 16일)]]
2013년 12월 4일에 2년 총액 2000만 달러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계약했다.[119] 타이거스 입단 1년차에는 리그 5위에 해당하는 35세이브를 기록했지만, 개인 최악의 세이브 실패 7회, 평균자책점 4.81은 개인 최악 3위, WHIP 1.53은 메이저 2년차인 2000년 이후 개인 최악 2위에 그치며 세이브 수와는 대조적으로 부진에 빠졌다.
2015년 4월 6일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시즌 첫 등판하여 세이브를 기록했다.[120] 그러나, 그 후 팔꿈치에 이상을 느껴 마이너에서 조정 등판을 했지만, 거기서 통증이 더 심해져 검사를 받은 결과, 결국 본인 2번째 토미 존 수술을 받게 되었다.[121] 40세라는 고령인 점도 있어, 이대로 은퇴할 가능성도 거론되었지만, 네이선 본인은 부활을 목표로 은퇴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121] 11월 3일에 FA가 되었다.[122]
2016년 5월 17일에 시카고 컵스와 메이저 계약을 맺었다. 구단은 60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올렸다.[123] 7월 24일에 메이저에 복귀하여, 같은 날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경기에서 이적 후 첫 등판에서 승리 투수가 되었다.[124] 8월 5일 부상자 명단에 있던 호르헤 솔레르가 복귀하면서, MLB 등록 자리를 비우기 위해 40인 로스터에서 제외되어 사실상 전력 외가 되었다.[125]
2016년 8월 16일, 옛 소속팀인 자이언츠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다.[126] 9월 3일에는 메이저 계약을 맺고 로스터에 등록되었으며, 9월 4일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에서 연장 12회말에 등판하여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127] 11월 3일에 자유 계약 선수(FA)가 되었다.
2. 3. 1.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1999-2003)
조 네이선은 1999년 4월 20일, 왼쪽 팔꿈치 수술 후 부상자 명단에 오른 슈퍼스타 슬러거 배리 본즈의 로스터 자리를 대신하여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승격되었다.[18] 그는 다음 날 메이저 리그 데뷔전을 치렀고, 7이닝 무실점 투구를 펼치며 플로리다 말린스를 상대로 4–0으로 승리하며 메이저 리그 첫 승을 거두었다.[19] 이후 그는 시즌의 나머지 기간을 트리플 A 프레즈노 그리즐리스와 자이언츠에서 보냈다. 그리즐리스에서는 13번의 선발 등판에서 6승 4패, 평균자책점 4.43을 기록했다.[15] 메이저 리그에서는 자이언츠에서 19경기(14선발)에 출전하여 7승 4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4.18을 기록했다.[20] 그는 5월 16일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상대로 통산 첫 세이브를 올렸다.[21]2000년 마이너 리그에서 짧은 기간을 보낸 후, 네이선은 시즌 대부분을 메이저 리그에서 보냈고, 20경기(15선발)에서 5승 2패, 평균자책점 5.21을 기록했으며, 심지어 홈런 2개를 치기도 했다.[20] 그러나 그는 제구력에 어려움을 겪었고, 93이닝 동안 63개의 볼넷을 내주었다.[20] 그는 2번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5월 17일부터 6월 6일까지는 오른쪽 어깨 건염으로, 7월 14일부터 8월 18일까지는 오른쪽 어깨 염증으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으며,[22] 시즌 말에 해당 어깨에 관절경 수술을 받아야 했다.
네이선은 2001년을 트리플 A 프레즈노와 더블 A 슈리브포트에서 선발과 구원 모두 번갈아 가며 보냈으며,[15] 31경기(17선발)에서 3승 11패, 평균자책점 7.29로 실망스러운 성적을 기록했다.[20]
네이선은 2002년 프레즈노에서 31경기(25선발)에 출전하여 6승 12패, 평균자책점 5.60으로 약간의 개선을 보였지만,[15] 마침내 수술 후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9월에 자이언츠로 복귀하여 3이닝 무실점 구원 투구를 했다.[20]
네이선은 2002년 11월 5년간 사귄 여자친구 리사 레몬첼리와 결혼한 후 2003년 시즌 전체를 불펜에서 자이언츠와 함께 보냈다.[23] 2003년은 네이선에게 획기적인 해였는데, 그는 시즌을 23이닝 무실점으로 시작했다.[24] 그는 시즌을 78번의 구원 등판에서 12승 4패, 평균자책점 2.96으로 마쳤다.[20] 그의 78번의 등판은 시즌에서 가장 많이 기용된 투수 목록에서 상위권에 올랐으며, 7월 18일부터 8월 20일까지 15번의 등판에서 무실점을 기록하며 NL 최고의 셋업맨 중 한 명으로 활약했다.[24] 그의 12번의 구원승은 메이저 리그에서 가장 많은 기록이었다.[17] 자이언츠는 내셔널 리그 서부에서 15게임 차로 우승했고, NLDS에서 내셔널 리그 와일드 카드 우승팀인 플로리다 말린스를 상대했다. 네이선은 그 시리즈에서 고전했고, 2차전에서 유일한 세이브 기회를 날렸다.[25] 그의 팀 또한 상황이 더 나아지지 않았는데, 제이슨 슈미트의 완봉승으로 1차전을 승리한 후 다음 세 경기를 모두 패했다.[26]
2. 3. 2. 미네소타 트윈스 (2004-2011)
11월 14일에 프란시스코 릴리아노와 부프 본서와 함께 A.J. 피어신스키와의 트레이드로 미네소타 트윈스로 이적했다.[27] 전년까지 팀의 마무리 투수였던 에디 과다도가 시애틀 매리너스로 이적한 트윈스는 네이선을 마무리로 발탁했다.에는 시범 경기나 개막 직후 불안정한 투구를 보여줘, 클로저를 맡을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었다[110]。4월 15일부터 6월 4일에 걸친 20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고, 5월 8일부터 8월 15일에 걸쳐 구단 신기록인 27회 연속 세이브를 기록했다[112]。 처음으로 선출된 올스타에서는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2탈삼진을 기록했다. 클로저의 지위를 확고히 했고[110], 44 세이브 (리그 3위)를 기록했다. 사이 영 상 투표에서는 페드로 마르티네스,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와 동률인 4위에 올랐고[111], MVP 투표에서는 12위에 올랐다.
2005년에는 2년 계약의 2년째로 계약을 완료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구단은 스프링 트레이닝 기간 중인 3월 4일에 부터 2년 총액 1000만 미국 달러,은 옵션으로 600만 달러로 계약 연장했다[112]。 정규 시즌에서는 개막부터 5월 10일에 걸쳐 15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고, 작년에 이어 올스타에 선출되었다. 7승 4패, 리그 3위인 43세이브를 기록했고, 2년 연속 40세이브는 구단 역사상 3번째 쾌거였다[113]。
개막 전 3월에 개최된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WBC)의 미국 대표팀에 선출되었다.
시즌에서는 6월 24일의 시카고 컵스전에서 구단 역사상 5번째 통산 100세이브를 달성했고[114], 9월 9일의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전에서 통산 117세이브를 기록하며 에디 과다도를 제치고 구단 통산 세이브 기록 단독 2위가 되었다[114]。 64경기에 등판하여 7승 0패, 평균자책점 1.58, 36세이브 (리그 6위)를 기록했다. 사이 영 상에서는 5위에 올랐다.
에는 37세이브 (리그 6위)를 기록했고,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4년 연속 36세이브 이상을 기록했다[115]。 트윈스 이적 후 2004년부터 4년간 마리아노 리베라와 동률인 리그 최다 통산 160세이브를 기록했다[115]。 시즌 종료 후 10월 29일에 구단이 2008년 옵션을 행사하여 잔류가 결정되었지만[116], 트레이드 이야기가 거론되었다[117]。
|right|upright|thumb|2007년 트윈스 소속의 네이선]]
|right|upright|thumb|네이선, 2008년 메이저 리그 올스타전 레드 카펫 퍼레이드
에는 이전부터 '은퇴할 때까지 트윈스에서 던지고 싶다'라고 공언했던 네이선에 대해, 구단은 3월 24일에 1년 총액 600만 달러의 계약을 일단 철회하고, 2008년부터 4년 총액 4700만 달러, 그리고 5년째인 2012년에는 1250만 달러의 구단 옵션에 2만 달러의 바이아웃이 붙는 내용으로 재계약했다[117]。 같은 해 정규 시즌에서는 개인 최고 평균자책점 1.33, 39세이브 (리그 4위)를 기록했지만, 세이브 실패가 개인 최악인 6회를 기록했다.
에는 브라이언 푸엔테스에 이어 리그 2위인 47세이브를 기록했다.
에는 토미 존 수술로 인해 시즌을 통째로 쉬었다.
에 복귀했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으로 마무리했다. 트윈스에서의 통산 260세이브는 릭 아길라의 254세이브를 넘어 구단 최다 기록이다.
2. 3. 3. 텍사스 레인저스 (2012-2013)
2011년 11월 21일, 네이선은 텍사스 레인저스와 2년 계약에 합의했으며, 3년째에 900만 달러 또는 50만 달러의 바이아웃 옵션이 포함된 1,450만 달러가 보장되었다.[61][62][63]
네이선은 레인저스에서 첫 시즌을 성공적으로 보냈으며, 2012년 MLB 올스타전에 레인저스를 대표하여 출전하게 되었는데, 이는 그의 통산 5번째 올스타 선정이었다. 그는 2012 시즌을 3승 5패, 37세이브, 2.80의 평균자책점으로 마쳤다. 2013년 4월 8일 탬파베이 레이스와의 경기에서, 네이선은 홈 플레이트 심판 마티 포스터의 논란이 있는 스트라이크 판정으로 벤 조브리스트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통산 300세이브를 달성했다. TV 카메라에 네이선이 판정 후 "와!"라고 말하는 모습이 잡혔다.[64]
네이선은 2013년 그의 여섯 번째 올스타전에 선발되었고, 아메리칸 리그에서 세이브를 기록했다. 네이선은 2012년 시즌보다 향상된 성적을 거두어 6승 2패, 43세이브, 1.3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67경기를 마쳤다.[20] 네이선은 레인저스에서의 선수 경력을 9승 7패, 80세이브, 2.09의 평균자책점, 0.98의 WHIP로 마쳤다.[20]
2011년 오프에 자유 계약 선수(FA)가 되어 선발 투수로 전향한 네프탈리 펠리스를 대신할 마무리 투수를 찾고 있던 텍사스 레인저스와 2년 계약(3년째는 옵션)을 맺었다.[118]
2012년에는 그 해 올스타전에 선출되었으며, 37세이브(리그 5위)를 기록했다.
2013년 4월 9일 탬파베이 레이스전에서 통산 300세이브를 달성했다. 43세이브(리그 4위)를 기록하고 오프에 FA가 되었다.
2. 3. 4.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2014-2015)

2013년 12월 4일, 타이거스는 조 네이선과 2016년 구단 옵션이 포함된 2년 2천만 달러 계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그는 전 동료이자 전 미네소타 트윈스의 스타 토리 헌터와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 동료였던 이안 킨슬러와 다시 만났다.[65] 같은해 12월 4일에 2년 총액 2000만 달러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계약했다.[119]
2014년 5월 5일, 네이선은 통산 347번째 세이브를 기록하여 랜디 마이어스와 함께 역대 세이브 순위 9위에 올랐다. 이틀 후, 네이선은 통산 348번째 세이브를 기록하며 역대 세이브 순위 9위에 단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7월 9일, 네이선은 통산 358번째 세이브를 기록하며 트로이 퍼시벌과 함께 역대 세이브 순위 8위에 올랐다. 8월 23일, 네이선은 통산 368번째 세이브를 기록하며 제프 리어든을 제치고 역대 세이브 순위 7위에 올랐다. 9월 16일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네이선은 시즌 7번째 세이브 실패를 기록했는데, 이는 2008년 트윈스에서 뛰었을 때 기록했던 6번의 세이브 실패를 넘어선 개인 최고 기록이었다.[66] 타이거스 입단 1년차에는 리그 5위에 해당하는 35세이브를 기록했지만, 개인 최악의 세이브 실패 7회, 평균자책점 4.81은 개인 최악 3위, WHIP 1.53은 메이저 2년차인 2000년 이후 개인 최악 2위에 그치며 세이브 수와는 대조적으로 부진에 빠졌다. 네이선은 타이거스에서의 첫 시즌을 62경기에 출전하여 5승 4패, 42번의 세이브 기회에서 35세이브를 기록했고, 평균자책점(ERA) 4.81을 기록하며 마무리했다.[20] 그는 2014년 포스트시즌에 한 차례 출전하여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아메리카 리그 디비전 시리즈(ALDS) 2차전에서 세이브 상황이 아닌 상황에서 상대 타자 3명을 모두 아웃시켰다. 타이거스는 이 시리즈에서 3:0으로 스윕을 당했다.[67]
4월 6일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시즌 첫 등판하여 세이브를 기록했다.[120] 4월 8일, 네이선은 오른쪽 팔꿈치 부상으로 15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등재되었다. 4월 22일 톨레도 머드 헨스에서 재활 등판 중, 네이선은 단 10개의 공을 던진 후 팔꿈치를 다시 다쳤다.[68] 그러나, 그 후 팔꿈치에 이상을 느껴 마이너에서 조정 등판을 했지만, 거기서 통증이 더 심해져 검사를 받은 결과, 결국 본인 2번째 토미 존 수술을 받게 되었다.[121] 같은 날 밤, 네이선은 MRI 검사를 받았고, 그 결과 팔꿈치의 척골 측부 인대와 원회내근의 파열이 확인되었으며, 토미 존 수술을 받게 되어 네이선의 2015 시즌은 종료되었다.[69][70] 40세라는 고령인 점도 있어, 이대로 은퇴할 가능성도 거론되었지만, 네이선 본인은 부활을 목표로 은퇴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121] 소식통들은 이 수술이 네이선의 선수 생활을 끝낼 수 있다고 예상했지만, 그는 아직 은퇴할 계획은 없었다.[71] 11월 3일에 FA가 되었다.[122]
2015년 오프시즌 동안, 타이거스는 2016 시즌 네이선에 대한 1천만 달러의 구단 옵션을 거부하고 100만 달러의 바이아웃을 실행했다.[72]
2. 3. 5. 시카고 컵스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2016)
2016년 5월 17일, 네이선은 시카고 컵스와 계약을 맺었다. 그는 계약 직후 이전의 토미 존 수술에서 회복하기 위해 60일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73][123] 2016년 7월 24일, 밀워키 브루어스를 상대로 컵스 데뷔전을 치렀으며, 1이닝을 던지며 삼진 3개를 잡고 1안타 1볼넷을 허용하며 승리 투수가 되었다.[74][124] 3번의 등판 이후, 컵스는 2016년 8월 6일 호르헤 솔레르가 부상자 명단에서 복귀하면서 네이선을 40인 로스터에서 제외하여 사실상 전력 외로 분류했다.[75][125] 컵스는 그 해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하여 네이선은 첫 번째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를 획득했다.[75]2016년 8월 16일, 네이선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체결했다.[76][126] 9월 3일, 네이선은 트리플 A 리치몬드 플라잉 스쿼럴스에서 자이언츠의 9월 확장 로스터로 콜업되어 메이저 계약을 맺고 로스터에 등록되었다.[77] 9월 4일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에서 연장 12회말에 등판하여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127] 11월 3일에 자유 계약 선수(FA)가 되었다.
2. 4. 국가대표 경력
3. 은퇴 이후
조 네이선은 2017년 9월 3일 미네소타 트윈스와 함께 기자 회견을 열고, 미네소타에서 선수 경력을 마무리하기 위해 하루 계약을 체결한 후 은퇴를 발표했다.[82] 그날 밤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경기에서 시구를 했다.[82] 네이선은 377세이브를 기록하며 은퇴했는데, 이는 당시 메이저 리그 역사상 8번째로 많은 기록이었다.[82] 또한 2.87의 평균자책점과 89.3%의 세이브 성공률을 기록했는데, 이는 250세이브 이상을 기록한 모든 구원 투수들 중 가장 높은 수치였다.[82]
2019년 8월 3일, 네이선은 트윈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83] 8월 30일에는 친정팀인 미네소타 트윈스를 통해 현역 은퇴를 발표했으며,[129] 동시에, 동 구단의 수석 부사장으로 취임했다.[101]
4. 투구 스타일
네이선은 4가지 구종을 던졌다. 그의 주된 구종인 포심 패스트볼은 한때 90마일 중후반대의 속도를 기록했지만, 91~94마일 사이에서 안정되었다. 그의 주된 브레이킹 볼은 80마일 후반대, 때로는 90마일에 육박하는 강속구 슬라이더였다.[99] 그는 좌타자를 상대로 슬라이더를 덜 사용하고, 80마일 초반대의 커브볼을 선호했다.[99] 또한 좌타자를 상대로 투심 패스트볼을 던지기도 했다.[99] 그의 슬라이더는 2007년 이후 헛스윙율 42%를 기록하며, 가장 헛스윙을 유도하는 구종이었다.[99]
원래 구종은 최고 160.9km/h, 평균 150km/h의 포심 패스트볼과 평균 128km/h의 커브, 평균 133km/h의 체인지업 3가지였다. 2003년에는 평균 142km/h의 슬라이더를 습득했고, 이후 주된 변화구를 커브에서 슬라이더로 변경했다.
미네소타 트윈스 이적 후에는 드물게 컷 패스트볼도 던지게 되었고, 전체적으로 구속도 올라갔다. 전성기에는 커브를 던지는 빈도도 대폭 줄었고, 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2가지 구종으로 투구 전체의 약 90% 이상을 차지했다.
토미 존 수술 이후인 2011년부터는 투심 패스트볼도 습득했고, 다시 커브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또한, 속구 (포심 패스트볼, 투심 패스트볼)의 비율을 줄이고,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이 약 40~45%를 차지하게 되었다. 구속과 구위의 저하를 커버하기 위해 파워 피쳐 타입에서 기교파 스타일로 변화했다.
탈삼진이 많았고, 구원 투수로 전향한 2003년 이후 5년 연속 탈삼진 수가 투구 이닝 수를 넘었으며, 그 기간의 탈삼진율은 10.91에 달했다. GO/AO(땅볼 아웃/'''G'''round '''O'''ut과 플라이 아웃/'''A'''ir '''O'''ut의 비율)가 1을 밑돌아 전형적인 플라이볼 투수였지만, 그 비율이 2007년에는 1.04로 1을 넘었고, 2008년에는 1.42로 해마다 상승했다.
제구는 다소 불안정한 편이며, 조니 데이먼은 "네이선은 강력한 공을 던지지만, 공이 여기저기 흩어질 때가 있다"고 평했다. 투구 모션이 커서 도루 저지율이 낮지만, 구원 투수 전향 후에는 볼넷으로 불필요하게 주자를 내보내는 일은 없었고, 볼넷 허용률은 트윈스,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에 걸쳐 2점대 이하를 기록했다.
포스트시즌에서는 통산 10경기에 등판했지만, 평균자책점 8.10으로 좋지 않았고, 각 시리즈를 돌파한 적이 없다.
5. 수상 및 기록
조 네이선은 2021년 11월 22일에 발표된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2022년 입후보자 명단에 포함되었다.[84]
업적 | 기록 | 참고 |
---|---|---|
정규 시즌 | ||
MLB 역사상 최고 세이브 성공률 (SV/SVO) (최소 200세이브 완료)[85] | 89.33% | [86] |
아메리칸 리그 역대 두 번째 최다 세이브[87] | 374 | [88] |
35세이브 이상 시즌 3번째 최다[89] | 9 (2004–2009, 2012–2014) | [90] |
40세이브 이상 시즌 공동 3위[91] | 4 (2004, 2005, 2009, 2013) | [90] |
1.89 이하 평균자책점 시즌 2위 (각 시즌 최소 60이닝 투구)[92] | 5 (2004, 2005, 2009, 2013) | [90] |
35세이브 이상, 1.89 이하 평균자책점, 1.00 이하 WHIP 시즌 최다 타이기록 (각 시즌 최소 60이닝 투구)[93] | 4 (2004, 2005, 2009, 2013) | [90] |
업적 | 기록 | 참고 |
---|---|---|
정규 시즌 | ||
통산 최다 세이브 | 260 | [94] |
단일 시즌 최다 세이브 | 47 (2009) | [94] |
통산 최고 탈삼진/볼넷 비율 (최소 450이닝 투구) | 4.19 | [94] |
통산 최저 WHIP (최소 450이닝 투구) | 0.96 | [94] |
최다 연속 세이브 성공 | 27 | [95] |
- 최우수 구원 투수상(MLB): 1회 (2005년)
- 로 릴리프 맨 상: 1회 (2009년)
- DHL 딜리버리 맨 오브 더 먼스: 3회 (2006년 7월, 2008년 7월, 2009년 6월)
- 주간 MVP: 2회 (2004년 5월 16일, 2005년 7월 3일)
- 올 메트로돔 팀 (2009년)[132]
- 올스타전 출전: 6회(2004년, 2005년, 2008년, 2009년, 2012년, 2013년)
- 통산 세이브: 377개 (역대 8위)
- 통산 세이브 성공률: 89.3% (역대 1위, 200세이브 이상 대상)
- 시즌 47세이브 (미네소타 트윈스 구단 기록[133])
- 통산 세이브: 260개 (미네소타 트윈스 시대·구단 기록[134])
- 시즌 40세이브 이상: 4회 (2004년, 2005년, 2009년, 2013년)
6. 연도별 투수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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