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앨드리지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존 앨드리지는 잉글랜드와 스페인에서 활약한 아일랜드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다. 사우스 리버풀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하여, 뉴포트 카운티, 옥스퍼드 유나이티드, 리버풀, 레알 소시에다드, 트랜미어 로버스 등에서 뛰었다. 특히 옥스퍼드 유나이티드에서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고, 리버풀에서는 리그 우승과 FA컵 우승을 경험했다. 아일랜드 국가대표팀으로 69경기에 출전하여 19골을 기록했으며, 유로 1988, 1990년 FIFA 월드컵, 1994년 FIFA 월드컵에 출전했다. 은퇴 후에는 트랜미어 로버스의 선수 겸 감독을 맡았고, 현재는 축구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존 앨드리지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2023년의 앨드리지
본명존 윌리엄 앨드리지
출생일1958년 9월 18일
출생지리버풀, 잉글랜드
5 ft 11 in (약 180 cm)
포지션스트라이커
선수 경력
유소년 클럽1978–1979: 사우스 리버풀
클럽 경력1979–1984: 뉴포트 카운티 (170경기, 69골)
1984–1987: 옥스퍼드 유나이티드 (114경기, 72골)
1987–1989: 리버풀 (83경기, 50골)
1989–1991: 레알 소시에다드 (63경기, 33골)
1991–1998: 트랜미어 로버스 (243경기, 138골)
국가대표 경력1986–1996: 아일랜드 (69경기, 19골)
총 경기 출장 및 득점총 673경기, 362골
감독 경력
감독 클럽1996–2001: 트랜미어 로버스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잉글랜드의 남자 축구 선수 - 테디 셰링엄
    테디 셰링엄은 잉글랜드의 전 축구 선수이자 현 축구 감독으로, 프리미어리그 원년 득점왕,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트레블 달성,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극적인 동점골, PFA와 FWA 올해의 선수상 동시 수상, 2002 FIFA 월드컵 참가, 프리미어리그 최고령 득점 기록 등 1983년부터 2008년까지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 잉글랜드의 남자 축구 선수 - 데이비드 플랫
    데이비드 플랫은 잉글랜드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여러 클럽과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고, 은퇴 후에는 여러 팀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
  • 뉴포트 카운티 AFC의 축구 선수 - 벤 화이트
    벤 화이트는 잉글랜드 프로 축구 선수로, 아스널 FC에서 활약하며 센터백과 풀백을 소화하고, 브라이턴 & 호브 알비온에서 데뷔 후 임대 생활을 거쳐 리즈 유나이티드의 프리미어리그 승격에 기여했으며,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선수로도 활동했다.
  • 뉴포트 카운티 AFC의 축구 선수 - 조 레들리
    조 레들리는 웨일스 출신의 전 축구 선수로,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카디프 시티, 셀틱 등에서 뛰었고, 웨일스 국가대표팀으로 UEFA 유로 2016 준결승 진출에 기여했다.
  • 스페인의 외국인 남자 축구 선수 -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는 CSKA 소피아와 FC 바르셀로나에서 맹활약하며 유러피언 골든 부츠, 라리가 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1994년 FIFA 월드컵 득점왕, 발롱도르를 수상한 불가리아 출신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이자 논란이 많은 감독이다.
  • 스페인의 외국인 남자 축구 선수 - 카푸
    카푸는 브라질의 전 축구 선수로, 오른쪽 풀백으로 활약하며 브라질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출전 기록을 보유하고 1994년과 2002년 FIFA 월드컵 우승, 월드컵 결승전 세 번 출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인터컨티넨털컵, 세리에 A, UEFA 챔피언스리그 등 다수의 우승을 경험했으며 "일 펜돌리노"라는 별명을 얻은 리더십과 인성을 갖춘 선수이다.

2. 클럽 경력

2.1. 사우스 리버풀과 뉴포트 카운티

존 앨드리지는 1970년대 중반, 리그에 속하지 않은 구단인 사우스 리버풀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79년 5월, 20세의 나이에 3,500 파운드의 이적료로 4부 리그의 뉴포트 카운티에 입단했다.

소머턴 파크에서 그는 "알도"(Aldo)라는 별칭으로 알려졌고, 토미 티넌, 데이브 그위터와 함께 뉴포트 카운티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198번의 경기에 출전하여 87골을 기록했는데, FA컵에서는 12경기 7골을 기록했다. 이들은 뉴포트가 4부 리그에서 3부 리그로 승격하고 웨일스 컵에서 우승(1979-80 시즌)하는 데 기여했으며, 이듬해 UEFA 컵위너스컵 8강 진출에 공헌했다.

1981년 뉴포트 카운티에서 뛰는 앨드리지 (공을 가지고 있는 모습)
1981년 뉴포트 카운티에서 뛰는 앨드리지 (공을 가지고 있는 모습)


뉴포트 카운티에서 1979-80 시즌 38경기 14골, 1980-81 시즌 27경기 7골, 1981-82 시즌 36경기 11골, 1982-83 시즌 41경기 17골을 기록했다. 1983-84 시즌에는 티넌이 팀을 떠났지만, 앨드리지는 2월까지 26골을 기록하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2.2. 옥스퍼드 유나이티드

존 앨드리지는 1984년 3월 21일 옥스퍼드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1984년 4월 7일, 월솔과의 펠로스 파크 원정 경기에서 교체 선수로 출전하며 옥스퍼드 유나이티드 데뷔전을 치렀고, 팀은 1-0으로 승리했다. 1984년 4월 20일, 볼턴 원더러스와의 홈 경기에서 옥스퍼드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첫 골을 기록하며 팀의 5-0 승리에 기여했다.

짐 스미스 감독 체제에서 3부 리그 우승을 차지한 첫 시즌에는 시즌 막바지에 합류하여 주로 벤치 멤버로 머물렀다. 하지만 1984-85 시즌, 윌리엄 해밀턴(빌리 해밀턴)과 공격진을 이루어 34골(리그 30골)을 기록하며 구단의 단일 시즌 최다 득점 기록을 경신했고, 19년 만에 2부 리그에서 30골을 기록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2부 리그 득점왕을 차지하고, 팀의 1부 리그 승격에 크게 기여하며 2부 리그 우승 메달을 목에 걸었다.

레이 호턴, 빌리 해밀턴, 피터 로즈-브라운 등과 함께 클럽 역사상 최고로 불린 팀의 일원으로서 활약하였다. 27세에 1부 리그에 데뷔한 앨드리지는 1985-86 시즌 39경기에서 23골을 기록하며 리그 득점 3위에 올랐다. 1986년 리그 컵 결승전에서 퀸스 파크 레인저스를 상대로 3-0 승리에 기여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으며, 이는 옥스퍼드 유나이티드의 유일한 우승이었다.

1984년부터 1986년까지 옥스퍼드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총 141경기에 출전하여 90골을 기록했으며, 1.5경기당 1골을 득점력을 올렸다. 17번의 리그 컵 경기에서 14번 득점을 올렸다. 1986년 9월 24일 질링엄과의 리그 컵 경기에서 4골을 기록했고, 1984년 11월 24일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1986년 11월 8일,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득점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2.3. 리버풀

1987년 1월, 리버풀은 이언 러시유벤투스로 보내면서 그의 대체자를 찾고 있었다. 1987년 1월 27일, 케니 달글리시 감독은 750,000 파운드의 이적료로 앨드리지를 영입했다. 앨드리지는 1987년 2월 21일, 빌라 파크에서 열린 애스턴 빌라와의 리그 경기에서 교체 선수로 출전하며 리버풀 데뷔전을 치렀다. 1987년 2월 28일, 안필드에서 열린 사우샘프턴과의 리그 경기에서 리버풀 소속으로 첫 골을 기록했다.

1987-88 시즌, 앨드리지는 리버풀에서 26골을 기록하며 팀의 리그 우승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새로 입단한 피터 비어슬리, 존 반스와 함께 리버풀의 공격 삼각편대를 구축했다. 리버풀은 1987-88 시즌에 단 두 번의 패만 허용하고, 이웃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승점 9점 차로 우승을 거두었다. 달글리시 감독은 앨드리지에게 이언 러시가 사용하던 9번 대신 8번 등번호를 부여했다. 앨드리지는 FA컵 준결승전에서 노팅엄 포리스트를 상대로 2골을 기록하며 팀의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그러나 1988 FA컵 결승전에서 윔블던을 상대로 페널티 킥을 실축하며 팀의 패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988-89 시즌, 이언 러시가 리버풀로 복귀했지만, 앨드리지는 꾸준히 좋은 활약을 펼치며 팀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했다. 달글리시 감독은 앨드리지와 러시를 함께 기용했다. 앨드리지는 1988 FA 채리티 실드 경기에서 윔블던을 상대로 2골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1989년 4월 15일, 힐즈버러 참사로 인해 앨드리지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1989 FA컵 결승전에서 에버턴을 상대로 득점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1988-89 시즌, 리그에서 21골, 모든 대회를 통틀어 31골을 기록하며 팀 내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

앨드리지는 리버풀 소속으로 총 104경기에 출전하여 63골을 기록했다.

2008년 리버풀을 대표하는 앨드리지
2008년 리버풀을 대표하는 앨드리지

2.4. 레알 소시에다드

1989년 9월 초, 리버풀은 앨드리지의 이적에 대한 레알 소시에다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앨드리지는 이 이적을 통해 수십 년 만에 레알 소시에다드와 계약한 최초의 비(非)바스크 선수가 되었으며, 소시에다드는 선택적인 선수 영입 정책을 변경했다. 앨드리지는 아토차에서 75번의 경기에 출전하여 40골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모습을 보였다. 특히, 강호 FC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4경기 6득점, 캄프 누에서 2골을 넣는 활약을 보였다.

하지만, 그의 가족이 바스크 자치 지방의 다른 생활 방식에 적응하지 못했고, 몇몇 레알 소시에다드 지지자들은 그가 바스크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경기장에 그를 험담하는 낙서가 새겨졌고, 앨드리지가 거리를 건널 때 지지자들은 바닥에 침을 뱉기도 했다. 결국 1991년, 앨드리지는 또다른 리버풀의 전 공격수이자 신임 감독인 존 토샥에게 이적 요청을 하였고, 2년 만에 바스크 주를 떠났다.

2.5. 트랜미어 로버스

1991년 7월 11일, 앨드리지는 트랜미어 로버스로 이적하며 머지사이드로 복귀했다. 그는 프렌턴 파크에서의 첫 시즌에 구단 역대 최다인 40골을 기록했다. 1991년 8월 17일, 브라이튼 & 호브 앨비언과의 경기에서 트랜미어 로버스 데뷔전을 치렀고, 이 경기에서 2골을 기록하며 팀의 2-0 승리를 이끌었다.

앨드리지는 트랜미어 로버스에서 7년 동안 선수로 활약하며 총 294경기에 출전하여 174골을 기록했다. 그의 뛰어난 득점력은 트랜미어가 1993년, 1994년, 1995년에 2부 리그 최상위 6위 안에 드는 데 공헌했지만, 플레이오프 준결승에서 번번이 패하며 프리미어리그 승격에는 실패했다. 1993-94 시즌 리그 컵에서는 준결승전에서 애스턴 빌라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했다. 앨드리지는 1997-98 시즌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은퇴했다.

1996년 3월 12일, 앨드리지는 존 킹 감독의 뒤를 이어 트랜미어 로버스의 선수 겸 감독으로 부임했다. 감독으로서 앨드리지는 트랜미어를 2000 풋볼 리그 컵 결승전에 진출시켰으나 레스터 시티에게 패했다. 2000년과 2001년에는 FA컵 8강에 진출했다. 2000년 풋볼 리그 컵 결승전에서 앨드리지는 클린트 힐을 퇴장시킨 주심의 결정에 환호했던 레스터의 테오도로스 자고라키스의 뺨을 때렸고, 잉글랜드 축구 협회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앨드리지는 따귀를 때린 사건에 대해 "저는 그[자고라키스]가 클린트의 선수 생활 최고의 순간에 모욕했다고 생각했기에 저는 그의 따귀를 때렸습니다"라고 말했다. 트랜미어 로버스는 2001년을 끝으로 3부 리그로 강등되었고, 앨드리지는 2001년 3월에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3. 국가대표팀 경력

존 앨드리지는 조모가 애슬론 출신이었기 때문에 아일랜드 국가대표팀에서 뛸 자격이 있었다. 1986년 3월 26일, 랜스던 로드에서 열린 웨일스와의 경기에서 아일랜드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으며, 이 경기는 잭 찰턴 감독 체제에서 치러진 첫 경기이기도 했다.

앨드리지는 잭 찰턴 감독 체제에서 서독에서 열린 유로 1988 본선에 진출한 아일랜드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다. 이는 아일랜드의 사상 첫 국제대회 본선 진출이었다. 아일랜드는 잉글랜드를 1-0으로 이기고 소련과 1-1로 비겼지만, 나중에 우승을 차지한 네덜란드에게 패하면서 토너먼트전 진출이 좌절되었다. 앨드리지는 1988년 10월 19일, 랜스던 로드에서 열린 튀니지와의 경기에서 아일랜드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첫 골을 기록했다.

1990년 FIFA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에서 앨드리지는 몰타를 상대로 2골을 기록하며 아일랜드의 월드컵 본선 진출에 기여했다. 1990년 FIFA 월드컵에서 아일랜드는 8강에 진출하였고, 앨드리지는 비록 골은 기록하지 못했지만 (네덜란드전에서 골이 취소됨) 모든 경기에 출전하며 주역으로 활약했다.

유로 1992 예선에서 아일랜드는 무패를 기록했지만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다. 앨드리지는 터키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3골을 넣었다. 1994년 FIFA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에서는 6골을 기록하며 아일랜드의 월드컵 본선 진출에 기여했다. 1994년 FIFA 월드컵 조별 리그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앨드리지는 교체 투입 과정에서 심판진과 마찰을 빚었지만, 결국 투입되어 골을 기록하며 아일랜드의 16강 진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유로 1996 예선에서 앨드리지는 라트비아를 상대로 4골을 기록하는 등 활약했지만, 아일랜드는 네덜란드와의 플레이오프에서 패배하며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앨드리지는 1996년 10월 9일, 마케도니아와의 경기를 끝으로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다.

앨드리지는 아일랜드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69경기에 출전하여 19골을 기록했으며, 그 중 8골은 라트비아를 상대로 기록한 것이다.

4. 은퇴 후의 행보

앨드리지는 은퇴 후 여러 매체에서 축구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라디오 시티 96.7에서 리버풀 경기 해설을 맡고 있으며, LFC TV의 정규 경기 분석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또한, 리버풀 퇴역 선수단의 일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1998년에는 하이더 자와드의 대작으로 자서전 "존 앨드리지: 내 이야기"를 출판했다.

2006년, 아일랜드 라디오-텔레비전(RTÉ)의 채리티 유어 어 스타 대회에 참가하여 우승했고, 상금을 템플 스트리트 대학교 아동 병원에 기부했다. 앨드리지는 가는 곳마다 팬들의 환영을 받았는데, 특히 머지사이드에서 인기가 높았다. 이는 리버풀 공식 웹사이트 투표에서 '콥을 들썩이게 한 선수 100인' 중 26위에 오른 것으로 증명된다.

2008년, CD 자서전 존 앨드리지와 함께한 60 미니트 제작에 참여하여 자신의 경력에 대해 심층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2009년까지 앨드리지는 리버풀 빅토리아 로의 알도 주점과 협력했다. 그는 2008년에 설립된 AFC 리버풀의 후원자이기도 하다.

2000년대 중반, 뉴스 오브 더 월드 해킹 스캔들에 연루되었다. 2011년 트위터 계정을 만들었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과의 언쟁으로 인해 계정을 폐쇄했다가 이듬해 복귀했다. 그는 선데이 월드리버풀 에코에 사설을 기고하고 있다.

2023년 싱가포르에서 리버풀을 대표하는 앨드리지
2023년 싱가포르에서 리버풀을 대표하는 앨드리지

5. 경력 통계

5.1. 클럽

존 앨드리지는 선수 생활 동안 여러 클럽에서 활동했다. 1979년부터 1984년까지 뉴포트 카운티에서 뛰며 총 213경기에 출전해 89골을 기록했다. 1983-84 시즌에는 옥스퍼드 유나이티드로 이적하여 1986-87 시즌까지 132경기에서 90골을 넣었다.

1986-87 시즌 도중 리버풀로 이적한 앨드리지는 1989-90 시즌까지 104경기에 출전하여 63골을 기록했다. 특히 1987-88 시즌에는 36경기에서 26골을 넣으며 팀의 주축 공격수로 활약했다. 이후 스페인의 레알 소시에다드로 이적하여 1991년까지 75경기에서 40골을 기록했다.

1991-92 시즌부터는 트랜미어 로버스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활동하며 1998년까지 248경기에 출전해 140골을 기록하는 등 맹활약했다. 앨드리지는 잉글랜드와 스페인 리그에서 통산 782경기에 출전하여 422골을 기록했다.

5.2. 국가대표팀

존 앨드리지는 1986년부터 1996년까지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69경기에 출전하여 19골을 기록했다. 앨드리지는 1988년 10월 19일 더블린 랜스던 로드에서 열린 튀니지와의 친선 경기에서 국가대표팀 첫 골을 기록했으며, 경기는 4-0으로 승리했다. 1989년 11월 15일 몰타 타알리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몰타와의 1990년 FIFA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 경기에서는 두 골을 넣어 2-0 승리를 이끌었다.

1990년 10월 17일 더블린 랜스던 로드에서 열린 터키와의 UEFA 유로 1992 예선 경기에서는 세 골을 몰아치며 5-0 대승을 견인했다. 1994년 FIFA 월드컵에서는 멕시코를 상대로 골을 기록했으나, 팀은 1-2로 패배했다. 앨드리지는 1995년 10월 11일 랜스던 로드에서 열린 라트비아와의 UEFA 유로 1996 예선 경기에서 두 골을 기록하며 2-0 승리를 이끌었고, 이것이 그의 국가대표팀 마지막 골이었다.

앨드리지가 출전한 경기에서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은 1986년 7경기 0골, 1987년 6경기 0골, 1988년 8경기 1골, 1989년 7경기 2골, 1990년 9경기 3골, 1991년 4경기 0골, 1992년 9경기 5골, 1993년 6경기 2골, 1994년 6경기 4골, 1995년 5경기 2골, 1996년 2경기 0골을 기록했다.

6. 수상

; 클럽

뉴포트 카운티 AFC
* 웨일스컵 : 1979-80

옥스퍼드 유나이티드 FC
* 풋볼 리그 2부 : 1984-85
* 풋볼 리그 3부 : 1983-84
* 풋볼 리그 컵 : 1985-86

리버풀 FC
* 풋볼 리그 1부 : 1987-88
* FA컵 : 1988-89
* FA 커뮤니티 실드 : 1988, 1989

; 개인
* 풋볼 리그 2부 베스트 일레븐 : 1984-85, 1991-92, 1992-93, 1994-95
* 풋볼 리그 1부 득점왕 : 1987-88
* 풋볼 리그 2부 득점왕 : 1984-85, 1994-95, 1995-96
* FAI International Football Awards영어 올해의 선수상 부문 : 1992

6.1. 선수

존 앨드리지는 선수 시절 여러 클럽에서 다양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뉴포트 카운티에서는 1979–80 시즌 웨일스 컵 우승을, 옥스퍼드 유나이티드에서는 1983-84 시즌 풋볼 리그 3부 우승, 1984-85 시즌 풋볼 리그 2부 우승, 1985–86 시즌 풋볼 리그 컵 우승을 차지했다. 리버풀에서는 1987-88 시즌 풋볼 리그 1부 우승, 1988-89 시즌 FA컵 우승, 1988, 1989 FA 채리티 실드 우승을 경험했다.

개인적으로는 PFA 올해의 팀에 여러 차례 선정되었고, 1984-85 시즌 잉글리시 세컨드 디비전 득점왕, 1987-88 시즌, 1994-95 시즌, 1995-96 시즌 퍼스트 디비전 득점왕을 차지했다. 1987-88 시즌과 1988-89 시즌에는 BBC 시즌의 골을 수상했고, 1992년에는 FAI 올해의 시니어 국제 선수로 선정되었다.

6.2. 개인

존 앨드리지는 여러 클럽과 개인 자격으로 다양한 상을 받았다. 뉴포트 카운티에서 웨일스컵(1979–80) 우승을, 옥스퍼드 유나이티드에서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1984–85), 풋볼 리그 서드 디비전(1983–84), 풋볼 리그 컵(1985–86) 우승을 경험했다. 리버풀에서는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1987–88), FA컵(1988–89), FA 커뮤니티 실드(1988, 1989)에서 우승했다.

개인적으로는 PFA 올해의 팀에 여러 번 선정되었고,(1991–92년 세컨드 디비전, 1992–93년 퍼스트 디비전, 1994–95년 퍼스트 디비전) 잉글랜드 2부 리그 득점왕(1984–85), 잉글랜드 1부 리그 득점왕(1987–88), 풋볼 리그 1부 득점왕(1994–95, 1995–96)을 차지했다. BBC 시즌의 골(1987–88, 1988–89)과 FAI 올해의 성인 국가대표팀 선수(1992)로 선정되기도 했다.

6.3. 감독

존 앨드리지는 트랜미어 로버스 감독 시절, 리그컵 준우승을 1999–2000 시즌에 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