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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제례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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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종묘 제례악은 종묘 제례에 맞춰 연주되는 음악으로, 악(음악), 가(노래), 무(춤)로 구성된다. 세종 때 창제되어 임진왜란 등을 거치며 변화를 겪었으며, 세조 때 종묘 제례악으로 채택되었다. 보태평과 정대업을 기본으로 하며, 아악기, 당악기, 향악기를 섞어 편성하여 연주한다. 1946년까지 연주되다 중단되었으나, 1971년부터 다시 시작되어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종묘 제례악은 장악원, 구황궁아악부, 국립국악원을 거쳐 전승되었으며, 박, 편종, 편경 등 다양한 악기로 연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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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제례악
기본 정보
이름종묘제례(宗廟祭禮) 및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영어 이름Royal ancestral ritual in the Jongmyo shrine and its music
종묘제례
종묘제례
영역행위예술
지역아시아 및 태평양
회차3
등재 연도2001년
참조16
등재 번호16
목록대표목록(2008년)
문화재 정보
이름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유형국가무형문화재
종묘제례악의 악기 연주
종묘제례악의 악기 연주
지정일1964년 12월 7일
전승지서울특별시
보유자성경린(成慶隣) 외, 종묘제례악보존회

2. 역사

세종 때 만들어진 종묘 제례악은 임진왜란병자호란을 겪으며 일부가 사라졌으나, 세조 때 종묘 제례악으로 채택된 보태평과 정대업을 중심으로 명맥을 이어왔다. 보태평은 문덕을 기리는 11곡, 정대업은 무공을 기리는 11곡으로 구성되었으며, 조상의 공덕을 칭송하는 악장과 함께 아악기, 당악기, 향악기를 섞어 편성하여 연주했다. 또한 문무와 무무를 일무로 추도록 하여 연향에서 공연하였다.

1946년까지 제향에서 연주되다가 중단되었던 종묘 제례악은 1971년부터 다시 시작되어 매년 5월과 11월에 종묘 제례와 함께 공연되고 있다.[4] 조선 말기에는 장악원 악사, 일제강점기에는 구황궁아악부 악사, 광복 후에는 국립국악원 악사들이 종묘 제례악을 전승하고 있다.[4]

2. 1. 조선 초기

세종 31년(1449년), 세종은 조상들의 공덕과 나라를 세울 때의 어려움을 나타내기 위해 직접 〈용비어천가〉를 지었다. 한문 용비어천가 일부를 사용하여 여민락을, 국문 용비어천가 전체(125장)를 사용하여 '치화평 상(1), 중(2), 하(3)'와 '취풍형'을 만들었다. 〈용비어천가〉는 태조의 6대 조상의 공덕을 칭송하는 내용이며, 〈정대업〉과 〈보태평〉은 태조 이전의 4대 조상과 태조, 태종의 공을 칭송하는 내용이다.

세종은 고취악(鼓吹樂)과 향악(鄕樂)을 바탕으로 보태평, 정대업, 발상(發祥), 창수곡(創守曲), 경근곡(敬勤曲), 봉래의(여민락, 치화평, 취풍형 음악에 궁중무용을 결합시킨 기악·성악·무용이 어우러진 거대편성) 등 새로운 음악을 만들었다. 임진왜란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일부 음악이 사라졌지만, 여민락, 보태평, 정대업은 원래 모두 회례연(會禮宴)의 악무(樂舞)로 쓰이다가 여민락은 임금의 거둥(임금의 나들이) 음악으로, 보태평과 정대업은 세조 때 종묘 제례악으로 채택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1463년 세조 9년에 보태평과 정대업을 개편하여 세조 10년에 처음으로 종묘 제향에서 연주되었다. 이 제례악은 선조 때 임진왜란으로 약화되었으나 광해군 때 점차 복구되었으며, 1626년 인조 4년에 보태평 중 《정명장》(定明章) 다음에 《중광장》(重光章)을 삽입하였다.[4]

2. 2. 조선 중기

세종은 1449년(세종 31년)에 〈용비어천가〉를 짓고, 한문 용비어천가 일부를 사용하여 여민락을, 국문 용비어천가 전장(125장)을 사용하여 '치화평 상(1), 중(2), 하(3)'와 '취풍형'을 지었다. 또한 고취악과 향악을 토대로 보태평, 정대업, 발상, 창수곡, 경근곡, 봉래의 등 새 음악을 창제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일부 음악이 분실되었다.[4]

1463년 세조 9년에 보태평과 정대업을 개편하여 세조 10년에 처음으로 종묘제향에서 연주되었다. 이 제례악은 선조임진왜란으로 약화되었으나 광해군 때 점차 복구되었으며, 1626년 인조 4년에 보태평 중 《정명장》 다음에 《중광장》을 삽입하였다.[4]

2. 3. 조선 후기 및 현대

임진왜란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종묘 제례악의 일부가 소실되었다.[4] 그중 여민락은 임금의 거둥(임금의 나들이) 음악으로 채택되었고, 보태평, 정대업은 세조 때 종묘 제례악으로 채택되어 오늘에 이른다.[4]

1463년 세조 9년에 보태평과 정대업을 개편하여 세조 10년에 처음으로 종묘 제향에서 연주되었다.[4] 이 제례악은 선조임진왜란으로 약화되었으나 광해군 때 점차 복구되었으며, 1626년 인조 4년에 보태평 중 《정명장》(定明章) 다음에 《중광장》(重光章)을 삽입하였다.[4] 1946년까지 제향에서 연주하였고, 그 후 중단되었다.[4]

1971년부터 다시 시작되어 해마다 매년 2회, 즉 양력 5월 첫째 일요일 및 11월 첫째 토요일에 종묘 제례와 《종묘 제례악》을 공연한다.[4]

종묘 제례악은 조선 말기까지 《장악원》(掌樂院) 악사(樂士)들에 의하여 전승되었고, 일제 때에는 《구황궁아악부》(舊皇宮雅樂部) 악사에 의하여 전승되었으며, 광복 후에는 《국립국악원》 악사들에 의하여 전승되고 있다.[4]

3. 구성

종묘 제례악은 악(樂), 가(歌), 무(舞)로 구성된다. 악은 음악 연주, 가는 노랫가락, 무는 춤을 의미한다.

3. 1. 악기

편경


종묘 제례악에 사용되는 악기는 다음과 같다.

참조

[1] 문서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은 [[국가무형문화재]]이다.
[2] 문서 즉, '樂'이라고 해서 단순히, '음악'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스트루먼트의 연주, 보컬의 노래 그리고 댄서의 춤을 모두 포함하는 넓은 의미이다.
[3] 웹사이트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
[4] 웹사이트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http://www.rf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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