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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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은 조선 왕조의 종친부 건물로, 왕실 관련 업무를 처리하고 왕족들의 사무를 관장하던 곳이다. 흥선대원군 집권 시기에 종친부 권한 확대와 함께 경근당이 중건되었고, 옥첩당과 함께 종친부의 중심 건물로 사용되었다. 1907년 종친부가 폐지된 후 경근당과 옥첩당은 다른 곳으로 이전되었다가 2013년 원래 위치로 복원되었다. 경근당은 이익공 팔작지붕 건물, 옥첩당은 초익공 팔작지붕 건물로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으며, 19세기 관아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위치 정보
기본 정보
이름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
한자 표기宗親府 敬近堂과 玉牒堂
유형유형문화재
지정 번호9
지정일1972년 5월 25일
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소격동 165-10
시대조선시대
소유불명
참고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면적507.6m2
수량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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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종친부는 조선 시대 왕실의 여러 사무를 담당하던 관청이었다. 처음에는 '재내제군소'라고 불렸으나, 여러 차례 이름과 기능이 바뀌다가 세종 12년(1430)에 종친부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흥선대원군 집권 시기인 1866년에는 왕권 강화를 위해 종친부의 권한과 조직이 확대되면서 건물도 크게 늘어났다. 순종 융희 1년(1907)에는 종친부가 폐지되고 그 기능이 규장각으로 옮겨졌다.

원래 삼청동에 있었으나, 1981년 8월 정독도서관으로 이전되었다가 2013년에 원래 위치로 다시 돌아왔다. 종친부는 역대 제왕의 어보(왕의 도장)와 어진(초상화)을 보관하고, 왕과 왕비의 의복을 관리하며, 종실제군(왕족)의 관혼상제 등 모든 사무를 맡아보던 관청이었다. 경근당은 왕실 사무를 처리하던 전각이고, 옥첩당은 고위 관리들의 집무처로 사용되었다.

2.1. 조선 시대

조선 왕조 역대 모든 제왕의 어보(왕의 도장)와 영정(초상화)을 보관하고, 왕과 왕비의 의복을 관리하며 종실제군(宗室諸君)의 봉작, 승습, 관혼상제 등 모든 사무를 맡아보던 곳이다. 조선 전기에는 ‘재내제군소’라 하였으나 여러 차례 그 명칭과 기능이 바뀌었다가, 세종 12년(1430)에 종친부라 하였다.

흥선대원군 집권 당시 왕권 강화의 일환으로 종친부의 권한과 조직을 확대하면서 종친부 건물이 대규모로 늘어날 당시(1866) 중건되었다. 당시 경근당(敬近堂)은 대군, 왕자군 등 종친들의 대청으로 종친부의 중심 건물로서, 좌우로 각각 옥첩당(玉牒堂)과 이승당(貳丞堂)을 두고 복도각으로 연결되어 있었지만 이승당은 1950년대 이후 사라졌다.

순종 융희 1년(1907)에는 이를 폐지하고, 이곳 사무를 규장각으로 옮겼다.

2.2.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

융희 1년(1907)에 종친부가 폐지되고, 이곳 사무는 규장각으로 옮겨졌다.

흥선대원군 집권 당시 왕권 강화의 일환으로 종친부의 권한과 조직을 확대하면서 1866년 종친부 건물이 대규모로 늘어났다. 당시 경근당(敬近堂)은 대군, 왕자군 등 종친들의 대청으로 종친부의 중심 건물이었으며, 좌우로 각각 옥첩당(玉牒堂)과 이승당(貳丞堂)을 두고 복도각으로 연결되어 있었지만, 이승당은 1950년대 이후 사라졌다.

원래 삼청동에 있던 것을 국군기무사령부 내 테니스장을 짓기 위하여 1981년 8월 정독도서관으로 옮겼으나, 2013년에 원래 위치로 이전하였다.

3. 건축

종친부는 조선 왕조 역대 제왕의 어보(왕의 도장)와 어진(왕의 초상화)을 보관하고, 왕과 왕비의 의복을 관리하며, 왕족의 관혼상제 등 모든 사무를 맡아보던 관청이다. 경근당은 왕실의 사무를 처리하던 전각이며, 옥첩당은 고위 관리들의 집무처로 사용되었다. 두 건물은 1981년 정독도서관으로 옮겨졌다가,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건립하면서 원래 위치로 이전 복원되었다.

3.1. 경근당

경근당은 정면 7칸, 옆면 4칸으로 된 이익공 공포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정면에는 넓은 월대를 두었다. 옥첩당은 정면 5칸, 옆면 3칸으로 된 초익공의 팔작지붕으로, 건축물의 규모나 공포의 형식 모두 경근당보다 격을 낮추어 위계를 두었다.

경근당과 옥첩당은 고종 때 302칸에 달했던 종친부 건축군의 중심 전각으로서 19세기 중앙 관아 건축의 배치와 구성, 연결 방식을 잘 보존하고 있는 사례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는다. 1981년 경근당과 옥첩당은 다른 곳으로 이전하였다가 2013년 다시 원래 위치로 이전되었지만, 당초의 모습을 최대한 유지하며 많은 부재를 재사용했다는 점에서 건축물의 진정성도 인정된다. 경근당은 종친부 건물 중에서 왕실의 사무를 처리하던 전각이다.

3.2. 옥첩당

옥첩당은 정면 5칸, 옆면 3칸의 초익공 팔작지붕 건물로, 경근당보다 격을 낮추어 위계를 두었다. 1981년 정독도서관으로 옮겨졌다가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과 함께 원래 위치로 이전 복원되었다. 옥첩당은 고위 관리들의 집무처로 사용되었다.

3.3. 건축사적 의의

종친부 경근당은 정면 7칸, 옆면 4칸으로 된 이익공 공포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정면에는 넓은 월대를 두었다. 옥첩당은 정면 5칸, 옆면 3칸으로 된 초익공의 팔작지붕으로, 건축물의 규모나 공포의 형식 모두 경근당보다 격을 낮추어 위계를 두었다.

경근당과 옥첩당은 고종 대 302칸에 달했던 종친부 건축군의 중심 전각으로서 19세기 중앙 관아 건축의 배치와 구성, 연결 방식을 잘 보존하고 있는 사례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는다. 또한, 1981년 경근당과 옥첩당은 다른 곳으로 이전하였다가 2013년 다시 원래 위치로 이전되었지만, 당초의 모습을 최대한 유지하며 많은 부재를 재사용했다는 점에서 건축물의 진정성도 인정된다.

4. 현황

경근당과 옥첩당은 각각 왕실 사무와 고위 관리 집무를 처리하던 건물이다. 이 두 건물은 1981년 정독도서관으로 이전되었다가,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과 함께 원래 위치로 복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