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전한)
1. 개요
주가(周苛)는 전한 초기의 인물로, 유방을 섬기며 한나라 건국에 기여했다. 그는 유방이 한왕에 봉해지면서 어사대부가 되었으며, 형양 전투에서 항우에게 포위된 유방을 대신하여 형양을 지키다 항우에게 죽임을 당했다. 유방은 주가의 사촌 동생 주창을 후임 어사대부로 임명하고, 그의 아들 주성을 고경후에 봉하여 공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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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03년 사망 -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는 제2차 포에니 전쟁 당시 로마의 장군이자 정치가로서, 한니발과의 정면 대결을 피하는 '파비우스 전략'으로 "로마의 방패"라 불리며, 그의 전략적 사고는 후대에 영향을 미쳤다. -
기원전 203년 사망 -
마고 바르카
마고는 카르타고 엘리트 계층에서 흔한 이름으로, 카르타고 제국 건설자, 제2차 포에니 전쟁의 장군, 농업 서적 저술가 등 역사 속 여러 인물들이 존재한다. -
전한의 열후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전한의 열후 -
신도가
신도가는 전한 시대의 무관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과 영포의 난에 참여하고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승상에 올랐으며, 청렴한 성품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등통을 처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을 맞이하여 절후의 시호를 받았다. -
전한의 관료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
전한의 관료 -
석편
석편은 전한 시대의 관료로, 기원전 138년에 내사에 임명되어 석경의 뒤를 이어 내사를 지냈으며, 정당시가 그의 후임자이다.
2. 생애
원래는 종제 주창과 함께 진나라의 사수군의 졸사를 지냈다. 유방이 패현에서 봉기하고 사수수를 무찌르면서 주창과 함께 유방을 섬겼으며 빈객의 대우를 받았다. 주가는 수하가 되었다. 유방을 따라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유방이 한나라 왕이 되자 최초의 어사대부가 되었다.
기원전 206년, 유방이 한왕에 봉해지면서 주가는 어사대부가 되었다.
한왕 3년(기원전 204년) 7월, 서초패왕 항우와 형양에서 싸우던 한왕이 형양에서 포위돼 곤경에 처하자, 한왕이 형양을 빠져나오면서 위표, 종공과 함께 형양 수비를 맡았다. 위표가 서위의 왕일 때 한나라를 배반하고 초나라 편으로 갈아탄 적이 있으므로, 주가는 이런 사람과는 같이 성을 지킬 수 없다 하여 종공과 공모해 위표를 죽였다. 가을 8월의 일이다. 그러나 결국 형양은 항우에게 함락되었고, 항우가 상장군과 3만 호를 주겠다고 회유했으나, 주가는 도리어 항우를 매도했다. 주가는 "너는 빨리 한나라에 항복하지 않으면, 곧 포로가 될 것이다. 너 따위는 한왕의 적수가 아니다"라고 욕설을 퍼부었고, 분노한 항우는 주가를 자형했다. 또한 종공도 처형되었다.
유방은 주가의 사촌 동생 주창을 후임 어사대부로 임명했다. 천하 통일 후, 유방은 주가의 공을 기려, 주가의 아들 주성을 고경후에 봉했다.
2.1. 진나라 말기 활동
원래는 종제 주창과 함께 진나라의 사수군의 졸사를 지냈다. 유방이 패현에서 봉기하고 사수수를 무찌르면서 주창과 함께 유방을 섬겼으며 빈객의 대우를 받았다. 주가는 수하가 되었다. 유방을 따라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유방이 한나라 왕이 되자 최초의 어사대부가 되었다.
2.2. 형양 전투와 최후
기원전 206년, 유방이 한왕에 봉해지면서 주가는 어사대부가 되었다.
한왕 3년(기원전 204년) 7월, 서초패왕 항우와 형양에서 싸우던 한왕이 형양에서 포위돼 곤경에 처하자, 한왕이 형양을 빠져나오면서 위표, 종공과 함께 형양 수비를 맡았다. 위표가 서위의 왕일 때 한나라를 배반하고 초나라 편으로 갈아탄 적이 있으므로, 주가는 이런 사람과는 같이 성을 지킬 수 없다 하여 종공과 공모해 위표를 죽였다. 그러나 결국 형양은 항우에게 함락되었고, 항우가 상장군과 3만 호를 주겠다고 회유했으나, 주가는 도리어 항우를 매도했다. 주가는 "너는 빨리 한나라에 항복하지 않으면, 곧 포로가 될 것이다. 너 따위는 한왕의 적수가 아니다"라고 욕설을 퍼부었고, 분노한 항우는 주가를 자형했다. 또한 종공도 처형되었다.
유방은 주가의 사촌 동생 주창을 후임 어사대부로 임명했다. 천하 통일 후, 유방은 주가의 공을 기려, 주가의 아들 주성을 고경후에 봉했다.
3. 가계
주가(周苛)는 사촌 동생 주창과 함께 진나라 사수군의 졸사였는데, 유방이 거병하여 사수군수와 감을 격파하자, 두 사람 모두 폐공 유방을 따랐고, 주가는 수하가 되었다. 유방을 따라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유방이 한나라 왕이 되자 최초의 어사대부가 되었다.
고조 3년 여름, 유방이 형양에서 항우에게 포위되자 (형양 전투), 유방은 기신을 미끼로 탈출에 성공했고, 주가는 서위왕 위표, 종공과 함께 형양을 지켰다. 항우가 기신을 화형에 처하고, 궁지에 몰린 주가는 종공에게 "위표가 언제 반란을 일으킬지 모른다"고 말하며, 함께 모의하여 위표를 살해했다. 가을 8월의 일이다.
형양은 한 달 정도 지나 함락되었고, 주가 등도 포로로 잡혔다. 항우는 "내 장수가 된다면 상장군에 임명하고 봉읍 3만 호를 주겠다"고 유혹했지만, 주가는 "너는 빨리 한나라에 항복하지 않으면, 곧 포로가 될 것이다. 너 따위는 한왕의 적수가 아니다"라고 욕설을 퍼부었기에, 항우는 주가를 자형했다. 또한 종공도 처형되었다.
유방은 그의 사촌 동생 주창을 후임 어사대부로 임명했다. 천하 통일 후, 유방은 주가의 공을 기려, 주가의 아들 주성을 고경후에 봉했다. 그러나 그는 문제 시대에 모반으로 투옥되어 사망했다. 경제 시대에 주성의 손자 주응(주응)이 승후로 부활했다. 무제 시대에, 그의 아들 주평은 죄를 얻어, 소유지를 몰수당했다. 선제 시대에 주성의 현손 주사(주사)가 다시 승후에 봉해졌지만, 주사에게는 아들이 없어 결국 주가의 계통은 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