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전한)
1. 개요
주가(周苛)는 전한 초기의 인물로, 유방을 섬기며 한나라 건국에 기여했다. 그는 유방이 한왕에 봉해지면서 어사대부가 되었으며, 형양 전투에서 항우에게 포위된 유방을 대신하여 형양을 지키다 항우에게 죽임을 당했다. 유방은 주가의 사촌 동생 주창을 후임 어사대부로 임명하고, 그의 아들 주성을 고경후에 봉하여 공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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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03년 사망 -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는 제2차 포에니 전쟁 당시 로마의 장군이자 정치가로서, 한니발과의 정면 대결을 피하는 '파비우스 전략'으로 "로마의 방패"라 불리며, 그의 전략적 사고는 후대에 영향을 미쳤다. -
기원전 203년 사망 -
마고 바르카
마고는 카르타고 엘리트 계층에서 흔한 이름으로, 카르타고 제국 건설자, 제2차 포에니 전쟁의 장군, 농업 서적 저술가 등 역사 속 여러 인물들이 존재한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
기원전 204년 사망 -
전광
전광은 기원전 205년 제나라 왕으로 옹립되었으나 한나라와 초나라 사이에서 배신과 연합을 반복하다가 한신에게 패하여 살해당했다. -
기원전 204년 사망 -
기신
기신은 초한쟁 당시 유방을 섬긴 인물로, 형양성 포위 때 유방으로 위장하여 항우에게 항복하는 척하며 유방의 탈출을 돕고 화형당했으며, 그의 충성심은 후대에 높이 평가되었고, 사기에 기록된 기신과 한서에 기록된 기성이 동일 인물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다.
2. 생애
원래는 종제 주창과 함께 진나라의 사수군의 졸사를 지냈다. 유방이 패현에서 봉기하고 사수수를 무찌르면서 주창과 함께 유방을 섬겼으며 빈객의 대우를 받았다. 주가는 수하가 되었다. 유방을 따라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유방이 한나라 왕이 되자 최초의 어사대부가 되었다.
기원전 206년, 유방이 한왕에 봉해지면서 주가는 어사대부가 되었다.
한왕 3년(기원전 204년) 7월, 서초패왕 항우와 형양에서 싸우던 한왕이 형양에서 포위돼 곤경에 처하자, 한왕이 형양을 빠져나오면서 위표, 종공과 함께 형양 수비를 맡았다. 위표가 서위의 왕일 때 한나라를 배반하고 초나라 편으로 갈아탄 적이 있으므로, 주가는 이런 사람과는 같이 성을 지킬 수 없다 하여 종공과 공모해 위표를 죽였다. 가을 8월의 일이다. 그러나 결국 형양은 항우에게 함락되었고, 항우가 상장군과 3만 호를 주겠다고 회유했으나, 주가는 도리어 항우를 매도했다. 주가는 "너는 빨리 한나라에 항복하지 않으면, 곧 포로가 될 것이다. 너 따위는 한왕의 적수가 아니다"라고 욕설을 퍼부었고, 분노한 항우는 주가를 자형했다. 또한 종공도 처형되었다.
유방은 주가의 사촌 동생 주창을 후임 어사대부로 임명했다. 천하 통일 후, 유방은 주가의 공을 기려, 주가의 아들 주성을 고경후에 봉했다.
2.1. 진나라 말기 활동
원래는 종제 주창과 함께 진나라의 사수군의 졸사를 지냈다. 유방이 패현에서 봉기하고 사수수를 무찌르면서 주창과 함께 유방을 섬겼으며 빈객의 대우를 받았다. 주가는 수하가 되었다. 유방을 따라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유방이 한나라 왕이 되자 최초의 어사대부가 되었다.
2.2. 형양 전투와 최후
기원전 206년, 유방이 한왕에 봉해지면서 주가는 어사대부가 되었다.
한왕 3년(기원전 204년) 7월, 서초패왕 항우와 형양에서 싸우던 한왕이 형양에서 포위돼 곤경에 처하자, 한왕이 형양을 빠져나오면서 위표, 종공과 함께 형양 수비를 맡았다. 위표가 서위의 왕일 때 한나라를 배반하고 초나라 편으로 갈아탄 적이 있으므로, 주가는 이런 사람과는 같이 성을 지킬 수 없다 하여 종공과 공모해 위표를 죽였다. 그러나 결국 형양은 항우에게 함락되었고, 항우가 상장군과 3만 호를 주겠다고 회유했으나, 주가는 도리어 항우를 매도했다. 주가는 "너는 빨리 한나라에 항복하지 않으면, 곧 포로가 될 것이다. 너 따위는 한왕의 적수가 아니다"라고 욕설을 퍼부었고, 분노한 항우는 주가를 자형했다. 또한 종공도 처형되었다.
유방은 주가의 사촌 동생 주창을 후임 어사대부로 임명했다. 천하 통일 후, 유방은 주가의 공을 기려, 주가의 아들 주성을 고경후에 봉했다.
3. 가계
주가(周苛)는 사촌 동생 주창과 함께 진나라 사수군의 졸사였는데, 유방이 거병하여 사수군수와 감을 격파하자, 두 사람 모두 폐공 유방을 따랐고, 주가는 수하가 되었다. 유방을 따라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유방이 한나라 왕이 되자 최초의 어사대부가 되었다.
고조 3년 여름, 유방이 형양에서 항우에게 포위되자 (형양 전투), 유방은 기신을 미끼로 탈출에 성공했고, 주가는 서위왕 위표, 종공과 함께 형양을 지켰다. 항우가 기신을 화형에 처하고, 궁지에 몰린 주가는 종공에게 "위표가 언제 반란을 일으킬지 모른다"고 말하며, 함께 모의하여 위표를 살해했다. 가을 8월의 일이다.
형양은 한 달 정도 지나 함락되었고, 주가 등도 포로로 잡혔다. 항우는 "내 장수가 된다면 상장군에 임명하고 봉읍 3만 호를 주겠다"고 유혹했지만, 주가는 "너는 빨리 한나라에 항복하지 않으면, 곧 포로가 될 것이다. 너 따위는 한왕의 적수가 아니다"라고 욕설을 퍼부었기에, 항우는 주가를 자형했다. 또한 종공도 처형되었다.
유방은 그의 사촌 동생 주창을 후임 어사대부로 임명했다. 천하 통일 후, 유방은 주가의 공을 기려, 주가의 아들 주성을 고경후에 봉했다. 그러나 그는 문제 시대에 모반으로 투옥되어 사망했다. 경제 시대에 주성의 손자 주응(주응)이 승후로 부활했다. 무제 시대에, 그의 아들 주평은 죄를 얻어, 소유지를 몰수당했다. 선제 시대에 주성의 현손 주사(주사)가 다시 승후에 봉해졌지만, 주사에게는 아들이 없어 결국 주가의 계통은 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