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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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주상성은 1933년 강원도 출신으로, 조선인민군에서 군단장, 총참모부 감찰관 등을 역임하고 인민군 대장으로 진급했다. 1970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 1990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2004년 인민보안상에 임명되어 사회 안전 및 질서 유지에 주력했다. 2010년 조선로동당 정치국 위원 및 당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으나, 2011년 질병으로 인민보안상과 최고인민회의 법제위원장에서 해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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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성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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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한글 이름 | 주상성 |
한자 이름 | 朱相成 |
로마자 표기 | Ju Sang-seong |
출생일 | 1933년 8월 1일 |
출생지 | 강원도 문천 |
국적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직업 | 정치인 |
2. 경력
주상성은 1933년 강원도에서 태어나 1951년 6월 조선인민군에 입대하여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했다.[1] 군 복무 중 군단 선임 작전 참모, 여단장, 사단장, 군단장 등 주요 지휘관 직책을 역임했다.[1]
1970년 제5차 당대회에서 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선출되면서 정치 활동을 시작했으며,[1] 1990년에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처음 선출되었다. 1991년 김정일이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될 때 당 중앙위원회 정식 위원으로 승진했다.[1]
1990년대 들어 그의 정치적, 군사적 위상이 높아졌다. 1992년 조선인민군 상장으로 진급했고, 1994년 김일성 국가장의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했다. 1997년에는 조선인민군 대장으로 진급하며 제4군단장에 임명되었다.[1]
2004년 최용수의 뒤를 이어 인민보안상에 임명되었고,[2] 2009년에는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어 권력 핵심부에 진입했다.[2] 2010년 인민보안성이 인민보안부로 개편되면서 초대 부장을 맡았으며, 같은 해 9월 열린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당 정치국 위원으로 선출되었다.[1]
그러나 2011년 3월 16일, 조선중앙통신사는 주상성이 질병을 이유로 인민보안부장직에서 해임되었다고 보도했다.[1] 그의 마지막 공식 석상 등장은 해임 직전인 2011년 2월 김정일 생일 기념 조선인민내무군 군악단 공연 참석이었다.[1]
2. 1. 군 경력
1951년 6월 조선인민군에 입대했으며,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했다.[1] 군 복무 기간 동안 군단 선임 작전 참모, 여단장, 사단장, 지역 사령부 참모총장, 군단장, 총참모부 감찰관 등 다양한 직책을 거쳤다.[1] 1992년에는 조선인민군 상장으로 진급했고,[1] 1997년 2월에는 김정일의 55세 생일을 맞아 조선인민군 대장으로 진급했다.[1] 같은 해 황해남도를 담당하는 제4군단장에 임명되었다.[1]2. 2. 정치 경력
주상성의 주요 정치 경력은 아래 표와 같다.연도 | 주요 경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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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 당 중앙위 후보위원 (제5차 당대회)[1] |
1990년 | 최고인민회의 제9기 대의원, 법제위원장[1] |
1991년 | 당 중앙위 위원 (제6기 19차 전원회의)[1] |
1992년 | 조선인민군 상장 |
1994년 | 김일성 국가장의위원회 위원[1] |
1995년 | 오진우 국가장의위원회 위원 |
1997년 | 조선인민군 대장[1] |
1998년 | 최고인민회의 제10기 대의원 |
2004년 | 인민보안상[2] |
2005년 | 연형묵 국가장의위원회 위원 |
2008년 | 박성철 국가장의위원회 위원 |
2009년 | 최고인민회의 제12기 대의원 겸 법제위원장, 국방위원회 위원, 인민보안상 유임[2] |
2010년 | 인민보안부장 (인민보안성 개칭), 당 정치국 위원, 당 중앙위 위원[1], 김중린·조명록 국가장의위원회 위원 |
2011년 | 인민보안부장 및 최고인민회의 법제위원장 해임 (사유: 질병)[1] |
주상성은 1933년 강원도 출생으로, 김일성군사대학 졸업 후 조선인민군에서 군단장, 총참모부 감찰관 등 주요 군 경력을 쌓았다.[1] 1970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 1990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며 정치 활동을 시작했고, 특히 1991년 김정일이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될 때 중앙위원회 정식 위원으로 승진하며 김정일 시대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으로 부상했다.[1]
주상성은 1970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선출되며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1] 1991년에는 김정일이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될 때 중앙위원회 정식 위원으로 승격했으며,[1] 1997년에는 김정일의 55세 생일을 맞아 조선인민군 대장으로 진급하는 등[1] 김정일 시대에 군과 당에서 주요 경력을 쌓았다.
2004년 인민보안상에 임명되었고,[2] 2009년에는 국방위원회가 확대 개편될 때 위원으로 선임되었다.[2] 2010년에는 인민보안성이 인민보안부로 개칭되고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지휘 하에 놓이면서 인민보안부장을 맡았으며,[1] 같은 해 당 대표자회에서 정치국 위원으로 선출되어 권력 핵심부에 진입했다.[1]
그러나 2011년 3월, 질병을 이유로 인민보안부장과 최고인민회의 법제위원장직에서 갑작스럽게 해임되었다.[1] 그의 마지막 공식 활동은 해임 직전인 2011년 2월 김정일 생일 기념 군악단 공연 참석이었다.[1]
3. 주요 활동 및 평가
1990년대 그의 위상은 더욱 높아져, 1992년과 1997년 두 차례에 걸쳐 대장으로 진급했으며, 1994년 김일성 장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황해남도 제4군단장을 역임하는 등 군부 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1] 이는 그가 김정일의 신임을 받는 주요 측근이었음을 보여준다. 2004년 사회안전상(이후 인민보안성으로 개칭)에 임명되었고,[2] 2009년에는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어[2] 김정일의 군부 중심 통치 체제 강화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2010년 조선로동당 정치국 위원으로 선출되며 정치적 위상이 높아졌으나,[1] 2011년 3월 해임되었다.[1]
3. 1. 인민보안상 재임
2003년 말 평양으로 소환된 주상성은 2004년 최용수의 후임으로 사회안전상에 임명되었다.[2] 2009년에는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는데, 이는 당시 국방위원회 위원을 늘리려는 계획의 일환이었다.[2]
2010년 봄, 사회안전성은 국가안전보위부 직속으로 편입되고 인민보안성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조선인민내무군에 대한 모든 책임을 맡게 되었다.[1] 이때 주상성은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었던 장성택의 지휘 아래 인민보안상으로 임명되었다.[1] 같은 해 9월 열린 조선로동당 제3차 대표자회에서는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다시 선출되었고, 정치국 위원으로 승진하며 그의 정치적 위상이 더욱 높아졌다.[1]
주상성의 마지막 공식 활동은 2011년 2월 김정일의 69세 생일을 기념하는 조선인민내무군 군악단 공연 참석이었다.[1] 이후 2011년 3월 16일, 국방위원회 결정에 따라 공식적으로 해임되었다. 조선중앙통신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인민보안상 주상송 동지가 병환 관계로 직무에서 해임되었다"고 보도했다.[1]
3. 2. 해임
주상성이 마지막으로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1년 2월 김정일의 69세 생일을 기념하는 조선인민내무군 군악단 공연이었다. 이후 2011년 3월 16일, 국방위원회 결정에 따라 인민보안상 직에서 공식 해임되었다. 조선중앙통신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인민보안상 주상송이 질병으로 직무에서 해임되었다"고 보도했다.[1]
참조
[1]
뉴스
Profiles of Presidium and Members of Political Bureau
https://web.archive.[...]
KCNA
2010-09-29
[2]
웹사이트
Gen. Chu Sang-song
http://nkleadershipw[...]
[3]
뉴스
北朝鮮が朱相成人民保安部長を解任、朝鮮中央通信
http://japanese.yonh[...]
[4]
웹사이트
주상성
https://nkinfo.uni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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