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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바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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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지그문트 바우만은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이다. 그는 1925년 폴란드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 대전 중 소련으로 피신하여 폴란드 의용군으로 복무했다. 종전 후에는 폴란드군에서 복무했으며, 이후 사회학을 공부하고 바르샤바 대학교에서 강사로 활동했다. 1968년 반 시오니즘 운동으로 인해 폴란드를 떠나 이스라엘을 거쳐 영국 리즈 대학교에서 사회학 교수로 재직하며, '근대성과 홀로코스트', '유동적 근대성' 등 사회학 분야의 주요 저서를 발표했다. 바우만은 근대성, 포스트모더니티, 소비주의, 세계화 등 다양한 주제를 연구했으며, 유동적 근대성 개념을 통해 현대 사회의 불안정성을 분석했다. 1990년 리즈 대학교 명예 교수가 되었으며, 2017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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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바우만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2013년의 바우만
출생일1925년 11월 19일
사망일2017년 1월 9일
출생지폴란드 제2공화국 포즈난
사망지잉글랜드 웨스트요크셔 리즈
학문적 배경
학파/전통대륙 철학
서구 마르크스주의
모교바르샤바 대학교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주요 관심사윤리학
정치 철학
사회학
포스트모더니티
포스트모던 예술
주목할 만한 사상모호함과의 투쟁으로 인한 근대성의 홀로코스트
포스트모던 윤리
"액체" 근대 비판
액체 공포
알로세미티즘
기타
로마자 표기/ˈbaʊmən/
직업사회학자
국적폴란드
주요 업적"행복론" 등

2. 생애

지그문트 바우만은 1925년 폴란드 포즈난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 대전소련으로 피신, 폴란드 의용군에 복무했다. 종전 후 바르샤바 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며 학문 경력을 시작했으나, 1968년 폴란드의 정치적 격변기에 반유대주의 운동의 여파로 추방되었다. 이후 영국 리즈 대학교에서 사회학 교수로 재직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바우만은 초기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나, 안토니오 그람시게오르크 지멜의 영향으로 폴란드 공산 정부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갖게 되었다. 교수자격시험 통과 후에도 정치적 이유로 교수직을 얻지 못했다.

가족으로는 작가 자니아 바우만과 결혼, 세 딸을 두었다. 리디아 바우만(화가), 이레나 바우만(건축가), 안나 스파르드(하이파 대학교 교육 이론 교수)이다. 손자 마이클 스파르드는 이스라엘의 시민권 운동가이자 작가이다.

2. 1. 폴란드 시기 (1925-1968)

바우만은 1925년 폴란드 포즈난에서 비유대교 유대계 폴란드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3] 1939년 폴란드가 나치 독일과 소련에 침공당하자 그의 가족은 동쪽의 소비에트 연방으로 피신했다.[4] 바우만은 소련이 지휘하는 제1폴란드군에 자원하여 정치교육 교관으로 복무했으며, 1945년 콜베르크 전투와 베를린 전투에 참가했다.[5] 1945년 5월에는 군사 무공훈장을 받았다.[6] 제2차 세계 대전 후 그는 폴란드군에서 가장 젊은 소령 중 한 명이 되었다.[7]

폴란드 국가기억연구소에 따르면, 1945년부터 1953년까지 바우만은 우크라이나 반란군과 폴란드 국내군의 잔당을 진압하기 위해 설립된 군사 정보 기관인 내무군단(KBW)에서 정치 장교로 근무했다.[8] 그러나 그의 관여의 성격과 범위, 그리고 그가 해임된 정확한 상황은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다.[8]

내무군단 소령 복장을 한 바우만(1953)
내무군단 소령 복장을 한 바우만(1953)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바우만은 제2차 세계 대전 중과 이후에 열렬한 공산주의자였으며, 그것을 비밀로 한 적이 없다고 확인했다. 그는 19세에 군사 정보부에 들어간 것은 실수였지만, 단순한 사무직에 종사했으며 누군가를 고발한 기억은 없다고 인정했다.[9] 내무군단에서 복무하는 동안 바우만은 바르샤바 정치사회과학 아카데미에서 사회학을 처음 공부했다. 1953년, 이미 소령 계급에 있던 바우만은 그의 아버지가 이스라엘 이민을 목적으로 바르샤바의 이스라엘 대사관에 접근한 후 돌연 불명예스럽게 제대했다. 바우만은 아버지의 시온주의적 경향을 공유하지 않았고 실제로 강력한 반시온주의자였기 때문에 그의 해임은 아버지와 심각하지만 일시적인 불화를 야기했다. 그 후 실업 기간 동안 그는 석사 학위를 마치고 1954년 바르샤바 대학교 강사가 되어 1968년까지 그곳에 남아 있었다.[10]

런던 정경대학에서 로버트 맥켄지를 지도 교수로 하여 영국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를 수행했고, 이것이 그의 첫 번째 주요 저서가 되었다. 1959년 폴란드어로 처음 출판된 이 책은 개정판이 1972년 영어로 출판되었다. 바우만은 ''Socjologia na co dzień''("일상 사회학", 1964)을 포함한 다른 책들을 계속 출판했는데, 이 책은 폴란드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고 나중에 영어 교과서 ''Thinking Sociologically''(1990)의 기초가 되었다. 처음에 바우만은 정통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가까이 있었지만, 게오르그 지멜과 안토니오 그람시의 영향을 받아 폴란드 공산 정부에 대해 점점 비판적이 되었다. 이 때문에 그는 교수 자격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교수직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전임 교수인 줄리안 호흐펠트가 1962년 파리 유네스코 사회과학부 부국장이 된 후, 바우만은 실제로 호흐펠트의 자리를 물려받았다.[11]

미에치스와프 모차르가 이끄는 정치적 숙청과 관련된 정치적 압력이 증가함에 따라, 폴란드 공산당 보안경찰의 수장인 바우만은 1968년 1월 집권 폴란드 통일 노동자당 당적을 포기했다. 1968년 폴란드 정치 위기는 유대인 출신의 많은 공산당 폴란드인들을, 공산 정부와 관계가 악화된 지식인들을 포함하여, 국외로 추방하는 숙청으로 절정에 달했다. 바르샤바 대학교 교수직을 잃은 바우만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폴란드를 떠날 수 있도록 폴란드 시민권을 포기해야 했다.

2. 2. 망명과 리즈 대학교 시기 (1968-1990)

미에치스와프 모차르가 주도한 반(反)시오니즘 운동과 정치적 압력이 고조되자, 바우만은 1968년 1월 집권 폴란드 통일 노동자당을 탈당했다. 같은 해 3월, 폴란드의 정치적 위기와 함께 반시오니즘 운동은 공산 정부의 신임을 잃은 많은 지식인을 포함하여, 남아있는 대부분의 폴란드 유대인들을 국외로 추방하는 결과를 낳았다. 바르샤바 대학교에서 해직된 바우만도 그중 한 명이었다. 폴란드를 떠나기 위해 폴란드 시민권을 포기한 후, 그는 처음에 이스라엘로 가서 텔아비브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지만, 이후 영국리즈 대학교에서 사회학 교수직을 수락했고, 간헐적으로 학과장직을 맡기도 했다. 이후 바우만은 그의 세 번째 언어인 영어로만 저술 활동을 하였고, 그의 명성은 국제적으로 크게 높아졌다.

1990년대 후반부터 바우만은 반세계화 또는 대안 세계화 운동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12]

2. 3. 은퇴 이후 (1990-2017)

1990년 리즈 대학교 명예 교수가 되었다. 1998년에는 테오도르 아도르노 상을, 2011년에는 아스투리아스 황태자상(커뮤니케이션 및 휴머니즘 부문)을 수상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반세계화 또는 대안 세계화 운동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12]

2011년 폴란드 주간지 ''폴리티카''와의 인터뷰에서 바우만은 시오니즘과 이스라엘을 비판하며, 이스라엘은 평화에 관심이 없고 "홀로코스트를 이용하여 비양심적인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다"고 말했다.[13] 그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사명은 세상에 구원을 가져다주고 또 다른 재앙으로부터 세상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숨겨져 있지만 여전히 중요한 악의 경향을 드러내어 문명에 대한 두 번째 수치를 막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특정 맥락에서 그는 이스라엘 서안 장벽을 수천 명의 유대인이 홀로코스트로 사망한 바르샤바 게토의 벽에 비유했지만, "고통을 가하는 것은 고통을 가하는 자들을 비하하고 도덕적으로 파괴하며, 믿음과는 달리 고통받는 자들을 전혀 고상하게 만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14] 폴란드 주재 이스라엘 대사인 Zvi Bar는 바우만의 발언을 "반쪽짜리 진실"과 "근거 없는 일반화"라고 불렀다.[15]

2013년 바우만은 1970년 이후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하여 이스라엘 사회학회가 ISS 연례 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이스라엘 박사 과정 사회학 학생들과 세미나를 진행하도록 초청을 받아들였다.[17]

바우만은 국제연합의 민주적 개혁과 더 책임 있는 국제 정치 시스템의 창출을 옹호하는 단체인 국제연합 의회 의회 설립 캠페인을 지지했다.[18]

2017년 1월 9일 리즈에서 사망했다.[55] 향년 91세. 사인은 불명.[54]

3. 주요 사상

바우만은 1990년대 중후반부터 포스트모더니티와 소비주의에 주목했다.[36] 그는 20세기 후반, 현대 사회가 생산자 중심 사회에서 소비자 중심 사회로 변화했으며, 이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근대적" 타협, 즉 더 많은 자유(구매, 소비, 삶을 즐기는 자유)를 위해 안전을 포기하는 것을 뒤집은 것이라고 보았다. 1990년대 저서에서 바우만은 이를 "모더니티"에서 "포스트모더니티"로의 변화로 기술했다.

밀레니엄 이후, 바우만은 "포스트모더니티"라는 용어를 둘러싼 혼란을 피하기 위해 "유동적인"과 "고체적인" 근대성이라는 은유를 사용했다. 현대 소비주의에 관한 저서에서 그는 여전히 "고체적인" 근대성에서 묘사했던 불확실성에 대해 썼지만, 이 책들에서는 두려움이 더욱 확산되고 파악하기 어려워졌다고 보았다. "유동적인 두려움"이라는 그의 책 제목은 무정형이고 쉽게 식별할 수 없는 아동 성애에 대한 두려움 등을 예시로 사용해 표현되었다.[37]

바우만은 유대인을 "타자"(Other)로 보는 친유대주의적 태도와 반유대주의적 태도를 모두 포함하는 용어인 "동종반유대주의"를 만들어낸 것으로 인정받는다.[38][39] 그는 소셜 미디어가 "자신의 얼굴을 반영한 것만" 보는 '덫'이라고 비난하며, 이것이 유권자의 선택에 미치는 부정적인 정치적 영향을 예측했다고 전해진다.[40]

바우만의 저서 중 하나는 감상의 유동성에 의해 영향을 받는 예술 개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우리는 보통 끊임없는 '되어감', 즉 영구적인 '되어감'의 성향으로 구성되는 실현을 갈망하고 추구한다"는 생각을 제시한다.[41] 본질적으로 우리의 목표는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동경 행위 그 자체이며, 최악의 위험은 완전한 만족에 도달하는 것이다.

바우만은 세계화에 대해서도 저술했는데, 《세계화: 인간적 결과》(1998)에서 세계화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루었다. 이 책은 2010년에 한국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또한 《부수적 피해: 세계화 시대의 사회적 불평등》(2011)에서 세계화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다루었으며, 이 책은 《코라테랄 데미지: 글로벌 시대의 부수적 피해》로 번역되어 2011년에 한국에 출간되었다.

3. 1. 근대성과 합리성 비판

바우만은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근대성과 관료제, 합리성 및 사회적 배제 사이의 관계를 다룬 여러 권의 책을 출판했다.[64] 그는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따라 유럽 근대성을 일종의 타협으로 보았다. 즉, 유럽 사회가 더 높은 개인적 안전을 얻는 대가로 일정 수준의 자유를 포기하는 데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바우만은 '견고한' 형태의 근대성이 불확실성과 미지의 것들을 제거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보았다. 여기에는 자연에 대한 통제, 계층적 관료제, 규칙과 규정, 통제 및 범주화가 포함되며, 이 모든 것은 개인의 불안감을 점진적으로 해소하고 인간 삶의 혼란스러운 측면을 질서 있고 친숙하게 보이도록 시도했다.[31]

그러나 바우만은 여러 책에서 그러한 질서 형성이 결코 원하는 결과를 달성하지 못한다는 견해를 발전시켰다.[32] 그는 삶이 친숙하고 관리 가능한 범주로 조직될 때, 관리, 분리, 통제가 불가능한 사회 집단이 항상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저서 "근대성과 양가성"에서 '낯선 사람'이라는 비유적 인물을 통해 그러한 불확정적인 사람들을 이론화했다. 게오르크 지멜의 사회학과 자크 데리다의 철학을 바탕으로, 바우만은 낯선 사람을 현재 존재하지만 친숙하지 않은 사람, 즉 사회의 '결정 불가능한 존재'로 묘사했다.

"근대성과 양가성"에서 바우만은 현대 사회가 낯선 사람에게 취하는 다양한 접근 방식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한편으로는 소비자 지향 경제에서 낯설고 친숙하지 않은 것은 항상 매력적이라고 주장했다. 다양한 음식, 패션, 관광에서 이러한 매력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낯섦에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는데, 통제하거나 질서 있게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낯선 사람은 항상 두려움의 대상이며, 사회 영역 밖에서 끊임없이 위협하는 잠재적 강도와 같다.[33]

바우만의 가장 유명한 책 중 하나인 "근대성과 홀로코스트"는 이러한 두려움의 위험에 대한 설명을 시도한 것이다. 한나 아렌트와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전체주의와 계몽에 관한 책을 바탕으로, 바우만은 홀로코스트를 단순히 유대인 역사의 사건이나 근대 이전의 야만성으로의 퇴보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홀로코스트가 근대성과 그 질서 형성 노력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고 보았다. 절차적 합리성, 노동 분업, 다양한 종의 분류학적 범주화, 규칙 준수를 도덕적으로 훌륭한 것으로 보는 경향 모두 홀로코스트 발생에 일정한 역할을 했다. 그는 이러한 이유로 현대 사회가 홀로코스트의 교훈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바우만의 은유를 사용하자면, 벽에 걸린 그림처럼 보이며, 거의 교훈을 제공하지 않는다. 바우만의 분석에서 유대인들은 유럽에서 최고의 '낯선 사람'이 되었다.[65] 최종 해결책은 사회가 그 안에 존재하는 불편하고 불확정적인 요소들을 제거하려는 극단적인 예로 묘사되었다. 바우만은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과 마찬가지로 홀로코스트에서 작용했던 동일한 배제 과정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35]

3. 2. 포스트모더니티와 소비주의

바우만은 1990년대 중후반부터 포스트모더니티와 소비주의라는 두 가지 주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66] 그는 20세기 후반, 현대 사회가 생산자 중심 사회에서 소비자 중심 사회로 변화했다고 보았다. 이러한 변화는 안전을 위해 자유를 포기했던 프로이트의 "근대적" 가치 교환 개념을 뒤집은 것이다. 즉, 현대 사회는 안전을 포기하고 더 많은 자유, 특히 인생을 즐기고, 구매하고, 소비하는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67]

1990년대에 바우만은 이러한 변화를 "모더니티"에서 "포스트모더니티"로의 전환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그는 "유동적(liquid)" 모더니티와 "고정적(solid)" 모더니티라는 은유를 사용하여 "포스트모더니티"라는 용어를 둘러싼 혼란을 피하고자 했다. 그는 현대의 소비주의에 관한 저작에서 여전히 "고정된" 모더니티에서 묘사했던 불확실성에 대해 언급했지만, 이 두려움은 더욱 산만하고 억제하기 어려워졌다고 보았다. 그는 이러한 두려움을 "유동적 공포(liquid fears)"라고 불렀는데, 이는 형태가 없고 쉽게 식별할 수 없는 대상을 의미한다.[67]

3. 3. 유동적 근대 (Liquid Modernity)

게오르크 지멜의 사회학과 자크 데리다의 철학에 기반하여, 바우만은 '사회'의 "미결정"이고 아직 "익숙치 않은" 사람을 이방인으로 묘사했다.[64]

"근대성과 양가성"에서 바우만은 근대 사회가 낯선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서로 다른 접근법들을 설명하려 했다. 그는 한편으로는 소비자 지향의 경제에서 낯섦과 익숙치 않음은 항상 매혹적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스타일의 음식, 다른 패션과 여행, 뭔가 익숙하지 않은 매력을 경험했을지 모를 여행에서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 낯섦에는 부정적인 면도 있다. 이방인들은 통제되거나 규제받을 수 없기 때문에 항상 공포의 대상이다. 그는 잠재적인 강도이거나, 사회 영역 밖에서 끊임없이 위협하는 사람들이다. 바우만의 가장 유명한 책 "근대성과 홀로코스트"는 이러한 종류의 공포에 대한 위험성을 설명하려는 시도이다.[64]

1990년대 중후반, 바우만의 책들은[66] 포스트모더니티와 소비주의라는 두 가지의 서로 관련된 주제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바우만은 20세기 후반기에 현대 사회에서 생산자들의 사회에서 "소비자들"의 사회로 바뀌는 어떤 전이가 발생했다는 견해를 전개했다. 이 치환은 바우만이 주장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근대적" 가치 교환 개념을 뒤집었다. 이때 안전은 증가된 자유, 즉 인생을 즐기고 구매하고 소비하는 자유를 위해 포기되었다.

1990년대 그의 책에서 바우만은 "모더니티"로부터 "포스트모더니티"로의 전환처럼 이 전환에 대해 썼다. 밀레니엄 이후, 그의 책들에서 "유동적" 그리고 "고정적" 모더니티라는 은유를 사용함으로써, 그는 "포스트모더니티"라는 용어를 둘러싼 혼란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현대의 소비주의에 관한 그의 책에서 바우만은 아직 "고정된" 모더니티에 관해, 그의 저작에서 묘사한 것과 같은 어떤 불확실한 것에 관해 쓰고 있다. 그러나 이 책들에서 그는 속박하기 위해 더 산만해지고 곤란하게 하는 이 두려움들에 대해 쓰고 있다. 사실 그것들은 그의 책 중 하나에 제목으로 사용된 "유동적 공포"(liquid fears) - 예를 들면 무형성이고 쉽게 식별할 수 없는 대상 - 이다.[67]

3. 4. 세계화와 불평등

바우만은 1990년대 중후반부터 포스트모더니티와 소비주의라는 두 가지 주제에 주목했다.[66] 그는 20세기 후반에 현대 사회가 생산자 사회에서 "소비자" 사회로 전환되었다고 보았다. 바우만은 이러한 전환이 안전을 위해 인생을 즐기고 구매하며 소비하는 자유를 포기하는, 프로이드의 "근대적" 가치 교환 개념을 뒤집었다고 주장했다.

1990년대 저서에서 바우만은 "모더니티"에서 "포스트모더니티"로의 전환에 대해 썼다. 밀레니엄 이후, 그는 "유동적" 및 "고정적" 모더니티라는 은유를 사용하여 "포스트모더니티"라는 용어를 둘러싼 혼란을 피하고자 했다. 현대 소비주의에 관한 그의 책에서 바우만은 "고정된" 모더니티에서 묘사된 불확실성에 대해 썼지만, 이 책들에서는 속박하기 더 어렵고 산만하게 하는 두려움, 즉 무형성이고 쉽게 식별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해 썼다.[67]

바우만은 세계화에 대해서도 저술했는데, 그의 저서 《세계화: 인간적 결과》(1998)에서 세계화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루었다.Globalization: The Human Consequences영어 이 책의 한국어 번역본은 2010년에 출판되었다.글로벌라이제이션한국어 또한 그는 《부수적 피해: 세계화 시대의 사회적 불평등》(2011)에서 세계화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다루었다.Collateral Damage: Social Inequalities in a Global Age영어 이 책은 한국어로 《코라테랄 데미지: 글로벌 시대의 부수적 피해》로 번역되어 2011년에 출간되었다.코라테랄 데미지: 글로벌 시대의 부수적 피해한국어

4. 주요 저작

바우만은 57권의 책과 100편이 넘는 논문을 출판했다.[22] 이 저술들의 대부분은 세계화, 근대성과 탈근대성, 소비주의, 도덕성과 같은 공통된 주제를 다룬다.[23][24][25]

바우만의 첫 영어 출판물은 1960년 폴란드에서 출판된 영국 노동 운동과 계급 및 사회 계층화의 관계에 대한 연구이다.[26] 그는 1980년대 초까지 계급과 사회 갈등을 주제로 계속 저술했으며, 마지막 저서는 ''계급의 기억''이었다.[27] 후기 저서에서는 계급 문제를 직접 다루지 않지만, 자신을 사회주의자로 묘사하며 마르크스주의를 완전히 거부하지 않았다.[28] 안토니오 그람시게오르크 지멜과 함께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 중 하나였다.[29]

바우만 (2011년 브로츠와프)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 바우만은 근대성, 관료제, 합리성, 사회적 배제 간의 관계를 다룬 여러 권의 책을 출판했다.[30]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따라 유럽 근대성을 일종의 타협으로 보았는데, 유럽 사회가 더 큰 개인적 안전을 얻기 위해 일정 수준의 자유를 포기하는 데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바우만은 '견고한' 근대성이 불확실성과 미지의 요소를 제거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자연 통제, 계층적 관료제, 규칙, 규정, 통제, 범주화를 포함하며, 개인의 불안감을 점진적으로 해소하고 인간 삶의 혼란스러운 측면을 질서 있고 친숙하게 보이도록 시도했다.[31]

이후 바우만은 여러 책에서 그러한 질서 형성이 결코 원하는 결과를 달성하지 못한다는 견해를 발전시켰다.[32] 그는 삶이 친숙하고 관리 가능한 범주로 조직될 때, 관리, 분리, 통제할 수 없는 사회 집단이 항상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근대성과 양가성''에서 바우만은 '낯선 사람'이라는 비유적 인물을 통해 그러한 불확정적인 사람들을 이론화했다. 게오르크 지멜의 사회학과 자크 데리다의 철학을 바탕으로, 낯선 사람을 현재 존재하지만 친숙하지 않은, 사회의 ''결정 불가능한 존재''로 묘사했다. 바우만은 현대 사회가 낯선 사람에게 취하는 다양한 접근 방식에 대해 설명하며, 소비 지향적 경제에서 낯설고 친숙하지 않은 것은 항상 매력적이라고 주장했다. 다양한 음식 스타일, 유행, 관광에서 낯선 것의 매력을 경험할 수 있지만, 통제하거나 질서 있게 만들 수 없기에 낯선 사람은 항상 두려움의 대상이며, 사회 경계 밖에 있는 잠재적 강도로서 끊임없는 위협이 된다고 보았다.[33]

바우만의 가장 유명한 책 중 하나인 ''근대성과 홀로코스트''는 그러한 두려움의 위험을 설명하려는 시도였다. 한나 아렌트와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전체주의와 계몽에 관한 책을 바탕으로, 홀로코스트를 단순히 유대인 역사의 사건이나 근대 이전 야만성으로의 퇴보가 아니라 근대성과 질서 형성 노력과 깊이 관련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절차적 합리성, 노동의 세분화, 다양한 종의 분류학적 범주화, 규칙 준수를 도덕적으로 훌륭하게 여기는 경향 모두 홀로코스트 발생에 역할을 했다고 보았다. 현대 사회가 홀로코스트의 교훈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으며, 벽에 걸린 그림처럼 거의 교훈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바우만의 분석에서 유대인들은 유럽 최고의 '낯선 사람'이 되었고,[34] 최종 해결책은 사회가 불편하고 불확정적인 요소를 제거하려는 극단적인 예였다. 바우만은 조르조 아감벤처럼 홀로코스트의 배제 과정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35]

1990년대 중후반, 바우만은 '포스트모더니티'와 '소비주의'를 탐구하기 시작했다.[36] 그는 20세기 후반 현대 사회가 생산자 사회에서 소비자 사회로 변화했다고 주장하며, 이 변화가 프로이트의 "현대적" 타협, 즉 더 많은 자유(구매, 소비, 삶을 즐기는 자유)를 얻기 위해 안전을 포기하는 것을 뒤집었다고 보았다. 1990년대 저서에서 바우만은 이를 "근대성"에서 "포스트모더니티"로의 변화로 기술했다.

밀레니엄 이후 그의 저서들은 "포스트모더니티"라는 용어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유동적" 및 "고체적" 근대성이라는 은유를 사용했다. 현대 소비주의에 관한 저서에서 바우만은 "고체적" 근대성에 관한 글에서 묘사했던 불확실성을 다루지만, 이 책들에서는 두려움이 더욱 확산되고 파악하기 어려워지는 것에 대해 쓴다. 그의 책 "유동적 두려움"에서는 무정형이고 쉽게 식별할 수 없는 기준이 없는 아동 성애에 대한 두려움을 예로 든다.[37]

바우만은 유대인을 "타자"(Other)로 보는 친유대주의 및 반유대주의 태도를 모두 포함하는 "동종반유대주의"라는 용어를 만들었다.[38][39]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얼굴만 반영"하는 '덫'으로 소셜 미디어를 비난하며, 유권자 선택에 미치는 부정적인 정치적 영향을 예측했다.[40]

바우만 (2015년 베를린)


바우만의 저서 중 하나는 감정의 유동성에 영향을 받는 예술 개념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는 끊임없는 '되어감', 즉 영구적인 '되어감'의 성향으로 구성되는 실현을 갈망하고 추구한다"는 생각을 제시하며,[41] 우리의 목표는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동경 행위 자체이고, 최악의 위험은 완전한 만족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 틀에서 바우만은 예술이 덧없는 것이 지배적인 패러다임인 세상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할 수 있는지 탐구하며, 예술이 거의 모든 것에 불멸성을 부여하는 데 기여한다고 보았다. "예술이 덧없는 것을 영원한 것으로 변형시킬 수 있는가?"라고 질문하며,[41] 현재 현실은 영원하고 절대적이며 확립된 가치와 관련 맺을 시간이나 공간이 없는 개인들로 특징지어진다고 결론짓는다. 예술과 사람들의 관계, 예술 창조와 참여 모두 극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한나 아렌트를 인용하며, "어떤 사물이 지속된다면 문화적인 것이며, 일시적인 측면, 즉 영속성은 기능적인 것과 반대된다. [...] 오늘날 생산된 것과 과거의 것 모두 세상의 모든 사물이 사회적 생존 과정에 대한 유용성이라는 관점에서만 배타적으로 고려될 때 문화는 스스로 위협받는다"고 주장한다.[41] 문화와 예술 개념은 유동적 사회에서 전통적 이해를 버리고 해체적 접근 방식을 채택할 때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며, 마놀로 발데스, 자크 빌레글레, 허먼 브라운-베가의 예술 작품을 예로 든다.

'''주요 저작 목록'''

출판 연도원제한국어 번역 제목 (출판사, 출판 연도)
1972Between Class and Elite: The Evolution of the British Labour Movement: A Sociological Study
1973Culture as Praxis
1976Socialism: The Active Utopia
1976Towards a Critical Sociology: An Essay on Commonsense and Emancipation
1978Hermeneutics and Social Science
1982Memories of Class: The Pre-history and After-life of Class
1987Legislators and Interpreters: On Modernity, Post-Modernity and Intellectuals『立法者と解釈者――モダニティ・ポストモダニティ・知識人』(昭和堂, 1995)
1988Freedom
1989Modernity and The Holocaust『近代とホロコースト』(大月書店, 2006 / ちくま学芸文庫, 2021)
1990Thinking Sociologically『社会学の考え方――日常生活の成り立ちを探る』(HBJ出版局, 1993)
1991Modernity and Ambivalence
1992Mortality, Immortality and Other Life Strategies
1992Intimations of Postmodernity
1993Postmodern Ethics
1994Alone Again: Ethics After Certainty
1995Life in Fragments: Essays in Postmodern Morality
1997Postmodernity and its Discontents
1998Work, Consumerism and the New Poor『新しい貧困――労働、消費主義、ニュープア』(青土社, 2008)
1998Globalization: The Human Consequences『グローバリゼーション』(法政大学出版局, 2010)
1999In Search of Politics『政治の発見』(日本経済評論社, 2002)
2000Liquid Modernity『リキッド・モダニティ――液状化する社会』(大月書店, 2001)
2001Community: Seeking Safety in an Insecure World『コミュニティ――安全と自由の戦場』(筑摩書房, 2007 / ちくま学芸文庫, 2017)
2001The Individualized Society『個人化社会』(青弓社, 2008)
2002Society Under Siege
2003Liquid Love: On the Frailty of Human Bonds
2004Europe: An Unfinished Adventure
2004Identity: Conversations with Benedetto Vecchi『アイデンティティ』(日本経済評論社, 2007)
2004Wasted Lives: Modernity and its Outcasts『廃棄された生――モダニティとその追放者』(昭和堂, 2007)
2005Liquid Life『リキッド・ライフ――現代における生の諸相』(大月書店, 2008)
2006Liquid Fear『液状不安』(青弓社, 2012)
2007Liquid Times: Living in an Age of Uncertainty
2007Consuming Life
2008Does Ethics Have a Chance in a World of Consumers?
2008The Art of Life『幸福論――"生きづらい"時代の社会学』(作品社, 2009)
201044 Letters from the Liquid Modern World『リキッド・モダニティを読みとく――液状化した現代世界からの44通の手紙』(ちくま学芸文庫, 2014)
2011Collateral Damage: Social Inequalities in a Global Age『コラテラル・ダメージ――グローバル時代の巻き添え被害』(青土社, 2011)
2011Culture in a Liquid Modern World『リキッド化する世界の文化論』(青土社, 2014)
2012This is Not a Diary
2013Does the Richness of the Few Benefit Us All?
2014What Use is Sociology?: Conversations with Michael Hviid Jacobsen and Keith Tester『社会学の使い方』(青土社, 2016)
2016Strangers at Our Door『自分とは違った人たちとどう向き合うか――難民問題から考える』(青土社, 2017)


5. 수상

바우만은 1992년 유럽 아말피 사회학 및 사회과학상, 1998년 프랑크푸르트시 테오도르 아도르노 상, 2006년 비체 97상을 수상했다.[42] 2010년에는 알랭 투렌과 공동으로 아스투리아스 공주상 커뮤니케이션 및 인문학 부문을 수상했다.[43]

2015년 살렌토 대학교는 바우만에게 현대 언어, 문학 및 문학 번역 분야의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4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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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뉴스 Kim naprawdę jest Zygmunt Bauman? Przeczytaj tajny dokument bezpieki i tłumaczenia socjologa dla brytyjskiej prasy https://wpolityce.pl[...] 2020-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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