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의 활동과 분변토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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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지렁이의 활동과 분변토의 형성은 찰스 다윈이 지렁이의 생태학적 역할과 토양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다윈은 지렁이가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고, 지표면의 물체를 가라앉게 하는 점진적인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을 관찰하고, 실험을 통해 이를 입증했다. 다윈은 40년 이상 지렁이를 연구했으며, 지렁이의 행동과 먹이 선호도에도 주목했다. 이 연구는 지렁이의 생태학적 중요성을 밝히고, 토양 과학 발전에 기여했으며, 사회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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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의 활동과 분변토의 형성 - [서적]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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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제목 | 지렁이의 활동을 통한 분변토 형성, 그 습성에 대한 관찰 |
원제 | The Formation of Vegetable Mould Through the Action of Worms, with Observations on their Habits |
저자 | 찰스 다윈 |
삽화가 | 해당사항 없음 |
표지 화가 | 해당사항 없음 |
국가 | 영국 |
언어 | 영어 |
시리즈 | 해당사항 없음 |
주제 | 지렁이 |
장르 | 해당사항 없음 |
출판사 | 존 머레이 |
발행일 | 1881년 10월 |
판본 | 초판 |
페이지 | 326쪽 |
ISBN | 해당사항 없음 |
OCLC | 해당사항 없음 |
이전 작품 | 식물의 운동력 |
2. 찰스 다윈의 지렁이 연구
찰스 다윈은 1837년 런던 지질학회에서 〈비옥토의 형성〉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후, 1882년 사망할 때까지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렁이를 연구했다. 다윈은 지렁이가 흙을 순환시키고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사람들은 이러한 주장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윈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지렁이의 활동을 객관적이고 정량적으로 증명하는 데 힘썼다. 지표면에 있던 물체가 땅속으로 매몰되는 현상을 관찰하고, 일정 시간 동안 배설되는 분변토의 양을 측정했다.
1880년, 다윈은 가족과 함께 애빙거의 로마 유적에서 흙 샘플을 채취하는 등 연구에 몰두했다.[12] 그는 지렁이가 에이커당 53,767마리가 서식하며 흙을 재활용한다는 사실을 계산해 냈고,[14] 실내 실험을 통해 지렁이의 습성을 관찰했다. 그는 지렁이가 강한 빛을 싫어하고, 생 당근을 가장 좋아하며, 짝짓기를 할 때는 빛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14][15]
다윈은 스톤헨지를 방문하여 거석들이 지렁이 배설물에 묻히는 과정을 관찰하기도 했다.[11]
2. 1. 비글호 항해와 초기 연구
다윈은 1831년부터 1836년까지 비글호 탐사 원정에 참여한 후, 지질학자로서 명성을 쌓는 데 몰두했다.[2] 항해에서 돌아온 다윈은 건강이 악화되어 1837년 9월 20일 의사의 권고로 슈루즈베리에 있는 그의 집과 스태퍼드셔의 메어 홀에 있는 외삼촌 조시아 웨지우드의 집에서 요양을 했다.[3] 외삼촌은 다윈에게 농업용 석회와 재가 뿌려진 땅이 흙 속으로 사라져 양토의 최상층 아래에 층을 이루는 것을 보여주며, 이것이 지렁이의 활동 때문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3]
다윈은 외삼촌의 제안에 흥미를 느껴, 1837년 11월 1일 런던 지질학회에서 지렁이가 부식을 형성하는 것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4][5] 이 논문은 지렁이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지만, 당시 학회에서는 다소 평범한 주제로 여겨졌다.[3] 그러나, 선도적인 지질학자 윌리엄 버클랜드는 다윈의 논문을 "지구 표면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하는 새롭고 중요한 이론—사실 새로운 지질학적 힘"이라고 칭찬하며 출판을 추천했다.[6]
이 논문은 1838년 ''런던 지질학회 회보''에 실렸고,[5] 1840년 ''지질학회 회보''에 목판화 삽화와 함께 출판되었다.[7] 다윈은 이후에도 지렁이 연구를 계속하여, 1842년 12월에는 집 근처 목초지에 부서진 백악을 뿌려 지렁이에 의해 묻히는 깊이를 관찰하기도 했다.[8]
2. 2. 지렁이의 역할에 대한 다윈의 주장
찰스 다윈은 1837년부터 1882년 사망하기 전까지 40년 넘게 지렁이를 연구했다. 다윈은 지렁이가 땅속에 굴을 파 땅을 갈아엎고, 흙을 먹고 배설해 분변토를 만들어 땅을 비옥하게 한다고 주장했다.[3] 또한 지렁이의 활동이 지표면의 물체를 땅속으로 매몰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다윈과 지렁이의 만남은 1837년, 그가 박물학자 자격으로 비글호 탐사를 마치고 돌아온 직후였다. 외삼촌 조시아 웨지우드는 다윈에게 몇 년 전 뿌린 잿가루와 벽돌 조각이 땅 밑 몇 인치 아래 묻힌 것을 보여주며, 지렁이가 분변토를 지표면에 배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3] 다윈은 이회토나 재가 몇 년 뒤 잔디밭 아래 수인치 깊이에 층을 이루는 현상에 주목했고, 이를 바탕으로 1837년 런던 지질학회에서 <비옥토의 형성>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토양의 표층을 만드는 것이 지렁이의 활동이라고 굳게 믿었다.[5]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지렁이의 역할을 단순하게 여겼고, 다윈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다윈은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고, 지표에 있던 물체가 지렁이 분변토에 의해 묻히는 속도를 조사했다.[6]
다윈은 지렁이가 흙을 옮긴다는 사실을 객관적, 정량적으로 증명하고자 했다. 그는 지표면에 있던 물체가 땅속에 매몰되는 현상을 조사하고, 지표에 배설되는 똥의 양을 측정했다. 다윈은 지렁이가 땅속의 흙을 분변토로 지표면에 배설하여 땅속 공간이 붕괴되고, 이로 인해 지표면의 물체가 서서히 가라앉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로마 시대 유적, 스톤헨지의 거석 등 여러 현장을 관찰하여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다.[11]
2. 3. 연구의 지속과 발전
찰스 다윈은 1837년 런던 지질학회에서 〈비옥토의 형성〉이라는 짧은 논문을 발표한 이후, 1882년 사망하기 전까지 40년 넘게 지렁이 연구를 지속했다.[2] 당시 사람들은 지렁이의 역할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다윈은 지렁이가 흙을 순환시켜 땅을 비옥하게 만든다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다윈은 지렁이의 활동을 객관적이고 정량적으로 실증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표면에 있던 물체가 땅속에 매몰되는 현상을 조사하고, 지표면에 배설되는 똥 한 무더기의 양을 1년 단위로 측정했다.[14] 그는 스톤헨지를 방문하여 거석들이 지렁이 배설물에 묻히는 과정을 관찰하기도 했다.[11]
다윈은 실험을 통해 지렁이가 에이커당 53,767마리가 서식하며 흙을 재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지렁이가 강한 빛을 싫어하고, 생 당근을 가장 좋아하며, 짝짓기를 할 때는 빛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14]
3. 지렁이의 생태학적 역할
지렁이는 토양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1837년 찰스 다윈은 런던 지질학회에서 지렁이의 활동과 관련된 <비옥토의 형성>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5] 당시 사람들은 지렁이의 역할에 대해 다윈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다윈은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고 연구를 계속했다.[3]
다윈은 지렁이가 흙을 옮긴다는 사실을 객관적이고 정량적으로 증명하려 했다. 지렁이는 잡식성 동물로 많은 흙을 삼키고 거기서 음식을 추출한다. 주로 반쯤 썩은 잎을 먹고, 섭취하기 전에 췌액에 의해 부분적으로 소화시킨다. 얇은 잎은 입으로 잡고, 두꺼운 잎은 진공 상태를 만들어 끌어당긴다. 잎과 돌은 굴을 막는 데 사용되는데, 이는 포식자를 막고, 물을 막고, 차가운 공기를 막는 역할을 한다.[14]
3. 1. 토양 순환과 비옥도 증진
지렁이는 땅속에 수많은 굴을 파서 흙을 섞고 땅을 갈아엎는 효과를 낸다. 또한, 유기물을 섭취하고 배설하여 분변토를 만드는데, 이는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2] 이러한 지렁이의 활동은 멈춰있는 것처럼 보이는 땅이 실제로는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찰스 다윈은 지렁이가 토양의 가장 비옥한 표층을 형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굳게 믿었다.[2]다윈은 에이커당 53,767마리의 지렁이가 토양을 재활용하고 있다고 계산했다. 지렁이는 흙 속의 영양분을 섭취하며, 특히 극한 조건에서는 약 1.83m 이상 깊이에서도 발견된다. 지렁이의 굴은 안쪽이 덮여 있으며, 돌이나 씨앗으로 덮인 방에서 끝나는데, 이는 여러 기능을 수행한다.[2] 지렁이가 표면으로 가져온 흙의 양은 상당하며, 이는 지표면의 물체가 묻히는 속도에 영향을 미친다. 다윈은 자신의 집 근처 밭에서 29년간 분필을 이용한 실험을 통해 이를 확인했다.[2]
지렁이는 땅 속에 많은 고대 물체를 보존하는 데에도 기여한다. 다윈은 서리 애빙어와 햄프셔의 보울리 수도원에 있는 고대 로마 유적을 예시로 들며, 지렁이가 콘크리트 벽과 모르타르, 타일 사이의 틈을 침투하여 유적을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2]
지렁이에 의해 생성된 부식산은 암석을 분해하며, 지렁이의 굴착 행동은 이 과정을 가속화한다. 지렁이는 소화를 돕기 위해 단단한 물체(예: 돌)를 삼키는데, 이는 그러한 물체의 마모를 유발하여 지질학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2]
다윈은 지렁이가 "처음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세계의 역사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결론 내렸다. 지렁이는 암석 분해, 토양의 점진적인 박리, 고고학적 유물 보존, 식물 성장을 위한 토양 조건 개선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2]
3. 2. 지표면 변화와 고대 유물 보존
지렁이는 땅속에 굴을 파면서 지표면에 있던 물체를 서서히 땅속으로 가라앉게 만든다. 이 과정은 수백 년에서 수만 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므로 사람의 눈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찰스 다윈은 로마 시대 유적, 스톤헨지 등 다양한 현장을 관찰하여 지렁이의 활동이 고대 유물 보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입증했다.[11]1837년, 다윈은 외삼촌 조시아 웨지우드 2세의 집에서 몇 년 전에 뿌려둔 잿가루와 벽돌 조각이 땅 밑 몇 인치 아래 묻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외삼촌은 지렁이가 지속적으로 지표면에 분변토를 배출하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3] 다윈은 이 현상에 깊은 인상을 받아 같은 해 런던 지질학회에서 <비옥토의 형성>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5]
다윈은 지렁이가 흙을 옮긴다는 사실을 객관적이고 정량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지표면에 있던 물체가 땅속에 매몰되는 현상을 조사하고, 지표면에 배설되는 똥 한 무더기의 양을 1년 단위로 측정했다. 그 결과, 지렁이가 땅속의 흙을 분변토로 지표면에 배설하면서 땅속에 공간이 생기고, 이 공간이 붕괴되면서 지표면의 물체가 자연스럽게 매몰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다윈은 스톤헨지를 방문하여 일부 돌들이 부분적으로 묻혀 있고, 잔디가 돌을 만나기 위해 위로 기울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지렁이가 돌 주변의 흙을 파내고 분변토를 쌓아 올리면서 돌이 서서히 가라앉은 결과였다.
지렁이는 로마 시대 유적 보존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윈은 햄프셔의 보울리 수도원과 서리 애빙어의 고대 로마 별장 유적을 조사하여 지렁이가 콘크리트 벽과 모르타르까지 침투하여 유적을 덮고 보존하는 과정을 관찰했다.[12] 그의 아들들과 동료들은 글로스터셔의 체드워스 로마 별장, 와이트 섬의 브래딩 로마 별장, 햄프셔의 실체스터 로마 타운, 슈롭셔의 비로코니움 코르노비오룸 유적 등을 조사하여 지렁이의 활동이 고대 유물 보존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했다.
이처럼 지렁이는 단순한 생물이 아니라, 지표면의 변화와 고대 유물 보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존재이다. 다윈은 지렁이의 역할을 밝혀냄으로써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3. 3. 지렁이의 행동과 생리
다윈은 지렁이가 강한 빛을 받으면 굴로 들어가는 행동을 보였지만, 열과 소리에는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을 관찰했다.[14] 지렁이는 생당근을 가장 선호하는 등 먹이를 선택하는 행동을 보였다.[14]다윈은 지렁이의 행동에 매료되었는데, 지렁이는 "먹는 즐거움" 때문에 "빛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성적 열정과 사회적 감정("서로의 몸 위를 기어다니는 것")을 보였다.[15] 지렁이는 잎을 굴로 끌어들일 때 뾰족한 끝을 사용하여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끌어들이는 등, 물체의 모양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15]
지렁이는 눈이 없지만 빛의 강도와 지속 시간에 반응하고, 온도에도 천천히 반응한다.[14] 청각은 없지만 진동에 민감하며, 후각은 미약하지만 선호하는 음식을 찾을 수 있다.[14] 지렁이의 석회선은 주로 배설을 위해, 부차적으로 소화를 돕기 위해 존재한다고 다윈은 믿었다.
4. 다윈의 지렁이 연구의 의의와 영향
찰스 다윈은 1837년 런던 지질학회에 〈비옥토의 형성〉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지렁이의 활동이 토양 형성에 기여한다는 주장을 처음으로 제시했지만, 당시 사람들은 지렁이의 역할을 단순하게 여겨 그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5][6] 다윈은 이에 굴하지 않고 40년 이상 지렁이 연구를 지속하며, 지렁이가 흙을 옮기고 분변토를 만들어 땅을 비옥하게 하는 과정을 객관적이고 정량적으로 증명하려 노력했다.
다윈의 지렁이 연구는 스톤헨지와 로마 시대 유적 등 여러 현장 관찰을 통해 지렁이의 활동이 오랜 시간에 걸쳐 지표면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11] 지렁이의 행동과 먹이 활동 관찰을 통해 단순한 생물로 여겨졌던 지렁이의 생태학적 중요성을 밝혀냈다.
1881년 출판된 ''지렁이의 활동과 분변토의 형성''은 출간 직후 대중의 큰 관심을 받으며 베스트셀러가 되었고,[15] 다윈은 지렁이에 대한 수많은 편지를 받았다.[19] 이는 지렁이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기여했으며, 사소해 보이는 존재도 지구 생태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4. 1. 과학적 기여
다윈은 1837년부터 1882년 사망하기 전까지 40년 넘게 지렁이를 연구했다.[3] 외삼촌 조시아 웨지우드의 제안으로 지렁이가 토양 형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3] 지렁이가 흙을 먹고 배설하여 분변토를 만들고, 땅을 비옥하게 하는 과정을 관찰했다.1837년 11월 1일, 다윈은 런던 지질학회에서 〈비옥토의 형성〉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지렁이의 활동이 토양 형성에 기여한다는 주장을 처음으로 제시했다.[5] 당시 사람들은 지렁이의 역할을 단순하게 여겼기 때문에 다윈의 주장은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다윈은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고 연구를 계속했다.[6]
다윈은 지렁이가 흙을 옮긴다는 사실을 객관적이고 정량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표면에 있던 물체가 땅속에 매몰되는 현상을 조사하고, 일정 면적에서 일정 시간에 배설되는 분변토의 양을 측정했다. 그는 스톤헨지와 로마 시대 유적 등 여러 현장을 관찰하여 지렁이의 활동이 오랜 시간에 걸쳐 지표면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보여주었다.[11]
다윈은 지렁이의 행동과 먹이 활동에도 주목했다. 지렁이가 빛, 소리, 진동, 온도 등에 반응하고, 특정 음식을 선호하며, 짝짓기를 위해 빛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등의 행동을 관찰했다. 그는 지렁이가 잎을 굴로 끌어들이는 방식에서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고 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반 지능적인" 행동을 발견했다.
다윈은 에이커당 53,767마리의 지렁이가 토양을 재활용하고 있다고 계산했다. 그는 실내 실험을 통해 지렁이의 자극 반응, 음식 선호도 등을 연구했다. 그는 지렁이가 잡식성이며, 많은 양의 흙을 삼켜 영양분을 추출하고, 반쯤 썩은 잎을 먹는다는 것을 밝혔다. 또한, 지렁이의 석회선이 배설과 소화를 돕는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다윈은 지렁이가 전 세계적으로 발견되며, 육상 동물이지만 반수생 동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렁이가 눈이 없지만 빛에 반응하고, 청각은 없지만 진동에 민감하며, 후각은 미약하지만 선호하는 음식을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다윈은 지렁이가 가져온 흙의 양을 추정하기 위해, 땅에 가라앉는 물체의 속도와 일정 시간 동안 올라온 흙의 무게를 측정했다. 그는 농부로부터 얻은 정보와 자신의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계산을 수행했다. 그는 지렁이가 큰 돌을 가라앉히는 과정을 설명하고, 스톤헨지의 돌들이 부분적으로 묻힌 이유가 지렁이의 활동 때문이라고 주장했다.[11]
다윈은 지렁이가 고대 유물을 보존하는 데 기여했다고 설명하며, 애빙어, 보울리 수도원, 체드워스 로마 별장, 브래딩 로마 별장, 실체스터 로마 타운, 비로코니움 코르노비오룸 등 여러 유적지를 예로 들었다. 그는 지렁이와 다른 요인들이 이러한 유적을 묻었다고 결론 내렸다.
다윈은 지렁이의 활동이 암석 분해, 토양 침식, 고고학적 유물 보존, 식물 성장에 유리한 토양 조건 형성 등 여러 면에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렁이가 "처음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세계의 역사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결론지었다.
4. 2. 사회적 영향
찰스 다윈은 1837년부터 1882년 사망할 때까지 40년 넘게 지렁이를 연구했다. 당시 사람들은 지렁이의 역할에 대한 다윈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다윈은 동료들의 비판에 위축되지 않고 연구를 계속했다.[2] 그는 지렁이가 흙을 옮긴다는 사실을 객관적, 정량적으로 실증하려 노력했다.[11] 다윈은 지렁이의 먹이 활동과 짝짓기 등 행동에 매료되었고,[15] 지렁이를 "눈이 멀고 귀가 먹은 사람"에 비유하며 "감사해야 한다"고 느꼈다.[14]1881년 10월에 출간된 ''지렁이의 활동과 분변토의 형성''은 다윈이 "중요성이 적은 작은 책"이라고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출간 후 몇 주 만에 수천 부가 판매되었다.[15] 이 책은 대중의 큰 관심을 받았으며, 다윈은 지렁이에 대한 수많은 편지를 받았다.[19]
4. 3. 한국 사회에 주는 교훈
Charles Darwin영어은 1837년부터 1882년 사망하기 전까지 40년 넘게 지렁이를 연구했다. 지렁이는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데, 땅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지렁이에 의해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다.[1]당시 사람들은 지렁이의 역할에 대한 다윈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다윈은 동료들의 비판에 위축되지 않고 자기 생각이 옳다고 굳게 믿었다. 그리고 지표에 있던 물건이 지렁이 분변토에 의해 묻히는 속도를 확인하기보다는 일정한 면적에서 일정한 시간에 배설되는 분변토 양을 조사하기로 한다.[1]
겉으로 보기에 땅의 표면은 변동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지렁이가 땅속의 흙을 분변토로 지표면에 배설하기 때문에 땅속에 공간이 생겼다가 붕괴되어 자연적으로 매몰된다. 이러한 영향으로 지표면에 있던 물체는 서서히 가라앉는다. 이러한 현상은 수백 년 혹은 수만 년에 걸쳐 일어나므로 보통 사람의 눈으로는 보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다윈은 로마 시대의 유적에서 스톤헨지의 거석에 이르기까지 여러 현장을 관찰해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1]
이러한 지렁이 연구는 사소해 보이는 존재도 지구 생태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는 현재 과도한 개발과 환경 오염으로 인해 급격한 환경 변화에 직면해있는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참조
[1]
학술지
Review of ''The Formation of Vegetable Mould, through the action of Worms, with observations on their Habits''
https://babel.hathit[...]
1882-01
[2]
서적
[3]
서적
[4]
서적
[5]
서적
[6]
간행물
Darwin Correspondence Project – Letter 404 – Buckland, William to Geological Society of London, 9 Mar 1838
http://www.darwinpro[...]
2008-12-23
[7]
서적
[8]
서적
[9]
서적
[10]
서적
[11]
서적
[12]
서적
[13]
서적
[14]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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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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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17]
서적
[18]
서적
[19]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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