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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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목판화는 나무판에 그림을 새겨 넣어 인쇄하는 판화 기법이다. 재료로는 판목, 조각도, 형지(바렌) 등이 사용되며, 제작 과정은 밑그림, 조판, 쇄판의 순서로 진행된다. 목판화는 동아시아, 유럽 등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왔으며, 특히 한국에서는 민중미술 운동의 중요한 표현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현대에는 다양한 기법과 경향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백선 목판화, 명암 목판화, 다색 목판화 등 다양한 기법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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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판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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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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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 |
유형 | 볼록판화 |
기법 | 나무판에 칼이나 조각칼로 그림을 새기고 잉크를 묻혀 종이에 찍어내는 기법 |
특징 | 선의 강렬함과 단순함 흑백의 대비 |
제작 시기 | 1496년 ~ 1498년경 |
역사 | |
기원 | 아시아 |
발전 | 동아시아에서 발달 유럽으로 전파 |
유럽 | 15세기부터 예술적 표현 수단으로 사용 서적 삽화 및 대중적 이미지 제작에 활용 |
용도 | 예술 작품 제작 서적 삽화 대중적인 이미지 생산 |
참고 | |
관련 기법 | 목판 인쇄 |
유사 기법 | 목판 조각 |
2. 재료 및 도구
원판은 '''판목''', '''조판''', '''형목''', '''즐리형목''' 등[29]이라고 부르며, 주로 조각칼로 홈을 파서 요철을 만드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판재는 서양 목판화에서는 텟게(ツゲ) 등을 사용하지만, 일본 전통 목판화에서는 벚나무 판목판을 사용한다.[30]
목판 조각에 사용되는 조각도는 칼끝 모양에 따라 창칼, 평도, 둥근칼, 삼각도 등으로 나뉜다.
종류 | 설명 |
---|---|
창칼 | 칼끝이 창 모양이며, 판목도(版木刀)라고도 한다. |
평도(平刀) | 칼끝이 넓적하다. |
둥근칼 | 둥근 홈 모양의 칼날을 가지고 있다. |
삼각도(三角刀) | 각진 홈 모양의 칼날을 가지고 있다. |
이 외에도 큰 작업을 위한 평칼을 크게 만든 평도·평착(끌)·겨냥끌, 날끝이 둥근 끌, 둥근 칼의 대형인 환도·둥근끌 등이 있다. 목절면 목판용으로는 세모칼의 오목한 곳을 메운 듯한 뷰란, 톱니가 달린 연발도, 원통 모양의 둥근끌 등이 있으며, 손바닥에 쥘 수 있는 특수 손잡이가 붙어 있다.
형지(型紙)는 바렌(馬楝, ばれん일본어)이라고도 하며, 쇄압(刷壓)을 위한 탄력을 가진 특수한 도구이다. 바렌은 잉크나 물감을 묻힌 판목 위에 종이를 놓고 문질러 찍어낼 때 사용한다. 한지, 대나무 껍질, 감물, 옻칠 등을 재료로 하여 만든다.
2. 1. 판목
판목은 널빤지를 깎고 다듬어 매끄럽게 만든 것이다. 판목 재료로는 벚나무, 후박나무, 계수나무가 대표적이며, 그 밖에도 참피나무, 회양목, 각종 합판도 사용된다. 나뭇결과 목질의 경도 차이가 적어 줄지 않는 재료라면 모두 사용할 수 있다. 특수한 효과를 위해 나뭇결이 흥미롭거나, 평활하지 않거나, 무른 널빤지를 사용하기도 한다. 벚나무는 붉은 기가 돌고 광택이 아름다우며, 경도에 따라 묵판(선 조각용), 색판궤판(넓은 색면용) 등으로 구분된다. 후박나무는 녹회색, 계수나무는 적갈색을 띠며 둘 다 연하여 다루기 쉽다. 회양목은 목절면 목판의 판목으로 알려져 있으며, 나뭇결용으로도 경질이므로 치밀한 작업이 가능하다.[1]18세기 영국의 뷰익크(Bewick)는 딱딱한 나이테 면을 사용하는 목판화를 발명했다. 이때 회양목, 벚나무, 배나무, 동백나무 등 치밀한 나이테를 가진 나무를 사용한다. 나이테 면은 흡수성이 크기 때문에 유성 잉크를 사용한다. 조각은 특수한 손잡이가 달린 자루를 손바닥에 대고, 손가락 끝을 도신에 붙이고 방향을 조절하면서 밀며 파나간다. 주된 도구는 조각동판에서 온 뷰란이며, 한 번 밀면 몇 가닥의 선이 파지는 연발식도 많이 사용된다. 음각된 백선의 밀도로 명암의 톤을 표현하며, 이를 백선조라고 한다.[1]
2. 2. 조각도
판목을 조각하는 데 사용되는 조각도는 여러 종류가 있다. 일반적인 형태는 4가지로, 칼끝 모양에 따라 구분된다.종류 | 설명 |
---|---|
창칼 | 칼끝이 창 모양이며, 판목도(版木刀)라고도 불린다. |
평도(平刀) | 칼끝이 넓적하다. |
둥근칼 | 둥근 홈 모양의 칼날을 가지고 있다. |
삼각도(三角刀) | 각진 홈 모양의 칼날을 가지고 있다. |
이 외에도 큰 작업을 위해 평칼을 크게 만든 평도·평착(끌)·겨냥끌, 날끝이 둥근 끌, 둥근 칼의 대형인 환도·둥근끌 등이 있다. 목조도나 목인도도 사용된다.
목절면 목판용으로는 세모칼의 오목한 곳을 메운 듯한 뷰란, 톱니가 달린 연발도, 원통 모양의 둥근끌 등이 있으며, 손바닥에 쥘 수 있는 특수 손잡이가 붙어 있다.
나이테 면을 사용하는 목판화는 18세기 영국 뷰익크(Bewick)가 발명했다. 회양목, 벚나무, 배나무, 동백나무 등 치밀한 나이테를 가진 나무를 사용한다. 나이테 면은 흡수성이 커서 유성 잉크를 사용한다. 조판(彫版)은 특수 손잡이가 달린 자루를 손바닥에 대고, 손가락 끝을 칼 몸에 붙이고 방향을 조절하며 밀어서 파 나간다. 주로 동판화에서 사용하는 뷰란을 사용하며, 한 번 밀면 여러 가닥의 선이 파지는 연발식도 많이 사용된다. 음각된 백선(白線)의 밀도로 명암을 표현하는 백선조(白線彫)가 특징이다.
원판은 '''판목''', '''조판''', '''형목''', '''즐리형목''' 등[29]이라고 부르며, 주로 조각칼로 홈을 파서 요철을 만든다. 판재는 서양 목판화에서는 텟게(ツゲ) 등을 사용하지만, 일본 전통 목판화에서는 벚나무 판목판을 사용한다.[30]
2. 3. 형지 (바렌)
형지(型紙)는 쇄압(刷壓)을 위한 탄력을 가진 특수한 도구로, 바렌(馬楝, ばれん일본어)이라고도 한다. 바렌은 잉크나 물감을 묻힌 판목 위에 종이를 놓고 문질러 찍어낼 때 사용한다.바렌은 한지, 대나무 껍질, 감물, 옻칠 등을 재료로 하여 만든다. 대나무 껍질 속에 있는 막을 벗겨 섬유를 가늘게 째고, 몇 개를 합쳐 한지로 꼰 노끈을 소용돌이 모양으로 만든 다음 감물을 칠해 심으로 사용한다. 안피지(雁皮紙)를 원통 모양의 목형을 사용하여 원형으로 여러 겹 덧붙이고 옻칠을 한 접시 모양의 형지받침에 심을 합친다. 그 위에 대나무 껍질을 넓혀 안쪽으로 엎어놓고 끝을 서로 합쳐 묶어서 만든다.
간단한 바렌은 대나무 껍질 섬유 대신 한지로 꼰 노끈을 사용하고, 형지받침에는 판지(板紙)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유성 그림물감 등이 흔히 사용됨에 따라 목판 프레스기도 등장하고 있다.[1]
3. 제작 과정
목판화 제작은 크게 밑그림(판하화), 조판, 쇄판의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 밑그림(판하화): 판목에 밑그림을 그리는 단계로, 판목에 직접 그리거나 얇은 종이에 그린 그림을 판목에 옮긴다.
- 조판: 칼 등을 사용하여 판을 새기는 단계이다. 판화 제작의 핵심 과정으로, 밑그림의 선을 따라 나무를 파내어 판을 만든다.
- 쇄판: 판면에 잉크나 물감을 묻혀 종이나 천에 찍어내는 단계이다.
벚나무, 후박나무, 계수나무 등이 판목 재료로 주로 사용되며, 참피나무, 회양목 등도 사용된다. 벚나무는 붉은 기가 돌고 광택이 아름다우며, 후박나무는 녹회색, 계수나무는 적갈색을 띠고 연하여 다루기 쉽다. 회양목은 목절면 목판의 판목으로 알려져 있으며, 나뭇결용으로도 경질이므로 치밀한 작업이 가능하다.
유럽과 동아시아에서는 전통적으로 예술가가 목판화 디자인만 담당하고, 판화를 새기는 작업은 formschneiderde (판화 조각가)라고 불리는 전문 장인에게 맡겼다. 이들은 작업장을 운영하며 인쇄업자이자 출판업자로도 활동했다. formschneiderde는 다시 판화를 전문 인쇄업자에게 넘겼으며, 빈 나무판을 만드는 전문가들도 있었다. 이러한 분업은 예술가가 목공 도구 사용법을 배우지 않고도 목판화 제작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20세기 초에는 일부 예술가들이 모든 과정을 직접 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운동을 창작 판화라고 불렀으며, 전통적인 방법을 유지한 신판화와는 구별되었다.
인쇄 방법에는 찍어내기, 문지르기, 프레스 인쇄의 세 가지가 있다.
- 찍어내기: 초기 유럽 목판화에 사용된 방법으로, 종이나 직물을 평평한 표면에 놓고 그 위에 판을 올린 다음 판의 뒷면을 눌러 인쇄한다.
- 문지르기: 극동 지역에서 종이 인쇄에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었으며, 15세기 후반 유럽 목판화와 목판 인쇄물에도 사용되었다. 판을 테이블 위에 놓고 그 위에 종이나 직물을 올린 후, 뒷면을 단단한 패드나 바렌과 같은 도구로 문질러 인쇄한다.
- 프레스 인쇄: 인쇄기를 사용하는 방법으로, 유럽에서는 15세기 후반부터 판화와 목판 인쇄물에 사용되었다.
색채 목판화는 고대 중국에서 처음 등장했으며, 가장 오래된 것은 10세기에 제작된 불교 이미지이다. 유럽에서는 16세기 초 독일에서 발명되었으며, 키아로스쿠로 목판화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는 니시키에라고 불리는 색채 기법이 18세기 후반부터 널리 퍼져 인쇄물에 사용되었다.


3. 1. 밑그림 (판하화)
판하화(版下畵)는 판목에 밑그림을 그리는 것을 말하며, 조판(彫版)을 시작하기 전의 모든 작업을 통틀어 일컫기도 한다. 판목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방법과 얇은 종이에 그린 그림을 판목에 옮기는 방법이 있다.직접법은 먹과 붓을 사용하여 판목에 직접 그리는 방식이다. 기준을 잡기 위해 연필이나 목탄으로 미리 그려 놓는 것도 가능하다. 다 그린 후에는 말린 위에 전체적으로 엷은 먹을 칠하는데, 이는 조판 작업의 진행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이다.
전사법은 쇄판(刷版) 시 화면이 좌우 반대로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얇은 종이에 먹으로 그린 그림을 뒤집어서 판면에 붙이는 방식이다. 이때 뒷면에서 그림이 잘 보이도록 반투명하고 튼튼한 종이가 필요하며, 얇은 미농지(美濃紙)나 안피지(雁皮紙)가 주로 사용된다. 풀은 종이면에 바르지 않고 엷게 판면에 고르게 펴 바른 후, 종이를 엎어 놓고 주름이 지지 않도록 잘 밀착시킨다. 간단하게는 카번지(먹지)를 사용하여 트레이싱 페이퍼 등에 그린 약도(略圖)를 판면에 베끼고, 먹과 붓으로 직접법과 같이 완성하기도 한다.
유럽과 동아시아에서는 전통적으로 예술가가 목판화 디자인만 담당하고, 판화를 새기는 작업은 formschneiderde (판화 조각가)라고 불리는 전문 장인에게 맡겼다. 이들 중 일부는 독자적인 명성을 얻기도 했는데, 16세기 히에로니무스 안드레아에(Hieronymus Andreae), 한스 뤼첼부르거(Hans Lützelburger), 요스트 드 네커(Jost de Negker)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작업장을 운영하며 인쇄업자이자 출판업자로도 활동했다. formschneiderde는 다시 판화를 전문 인쇄업자에게 넘겼고, 빈 나무판을 만드는 전문가도 있었다.[1]
이러한 분업은 훈련된 예술가가 목공 도구 사용법을 배울 필요 없이 비교적 쉽게 목판화 제작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예술가의 디자인을 조각가가 따라 새길 수 있도록 나무판에 옮기는 방법으로는 도안을 나무판에 직접 그리거나, 종이에 그린 도안을 나무판에 붙이는 방법 등이 있었다. 어떤 방법이든 조각 과정에서 예술가의 그림은 파괴되었다.[1]

20세기 초, 유럽과 동아시아에서는 일부 예술가들이 전체 과정을 직접 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운동을 창작 판화라고 불렀으며, 전통적인 방법을 유지한 신판화와는 구별되었다. 서구의 많은 예술가들은 더 쉬운 린올리움판화 기법을 사용하기도 했다.[2]

에도 시대에는 히시카와 모로노부의 먹그림에서 시작하여 단에, 홍에, 칠에, 홍즐에를 거쳐 다색 인쇄인 니시키에가 스즈키 하루노부 등에 의해 창시되었다. 도슈사이샤라쿠 등에게 계승된 우키요에 판화는 대부분 목판화였으며, 여러 개의 목판을 사용하여 다색 인쇄를 할 수 있었지만, 목판이 마모되는 등의 문제가 있어 인쇄 수에 제한이 있었다. 현대의 목판화에는 일련번호 등을 부여하여 판수 관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3]
현재도 이러한 전통적인 기법을 사용한 목판화는 벚나무의 무구판(無垢板)이 사용되며, 판목의 두께는 판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휨을 고려하여 중판 정도라도 2cm~3cm 정도 된다. 도쿄 메지로에 있는 아다치 전통 목판화 보존 재단과 교토의 다케나카 목판다케사사도에서는 키타가와 우타마로나 가츠시카 호쿠사이 등의 원판에서 새로운 목판에 판하를 조각가가 조각하고, 인쇄공이 색을 칠하여 많은 작품을 복각, 완성하고 있다. 근대 이후에는 현대 서양화가에게 오리지널 판하를 의뢰하여 복각판과 마찬가지로 에도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기술로 제작하기도 한다.[4]
3. 2. 조판
조판(彫版)은 칼 등을 사용하여 판을 만들어 나가는 작업으로, 판화 제작의 중심이다. 밑그림의 선에 칼이 그대로 따라갔다고 하더라도 칼이 만들어내는 선은 붓의 선을 넘어선다. 조판의 기본적인 기법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판목도(版木刀)로 파넣고 파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평도·환도·삼각도 등의 강면(鋼面)을 위로 해서 밀어나가며 파는, 이른바 찔러파기(突彫)이다.창칼(版木刀)을 쥐는 방법은 크게 팔 때는 손잡이를 손 전체로 꼭 쥔다. 변화 있는 선이나 작게 파넣을 때는 연필이나 펜을 쥘 때와 마찬가지로 한쪽 손을 곁들여 미묘한 단계에서 조절한다. 어느 것이나 다 밑그림의 선에 따라서 선의 방향으로 칼을 기울이면서 널빤지로 먹어 들어가게 한다. 경사가 직각에 가까울수록 깊이 파들어가게 되고 기울일수록 얕게 파진다. 직각을 넘어서 거꾸로 내경(內傾)하면 철면(凸面)의 모서리가 달아나 버리게 된다. 이 파들어가기에 예각으로 교차되도록 파내면 나무 부스러기가 잘려져서 구상(溝狀)에 요부가 생겨 철부가 떠올라 판이 되어 간다. 끝칼·둥근칼·세모칼의 종류는 이 파들어가기·파내기의 조각을 한꺼번에 하는 폭이다. 판면에 대한 각도가 깊을수록 요부도 깊게 되는데 지나치게 깊으면 앞으로 밀어지지 않는다. 나무결에 따르는 경우와 거슬리는 경우는 힘주는 방법도 다르지만 날끝이 잘 들면 칼을 쥔 쪽에 다른 쪽 손을 곁들이기만 해도 밀어나가면서 쉽게 파진다. 커다란 면을 파내는 둥근 끌 등에서는 나무망치를 가볍게 사용한다.
삼각도는 예리한 V자형의 흠이, 평도나 둥근칼은 U자형의 홈이 생기고, 끝칼로는 난 폭만큼의 편편한 오목부가 생긴다. 창칼에 의한 선각(線刻) 사이를 오목하게 할 뿐 아니라 이들 밀어내는 홈은 독특한 선과 면이 되었을 때의 변화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의 단독 사용으로 판의 효과를 노릴 수도 있다. 끌칼은 또한 판농담법(板濃淡法)이라고 하여 창칼로 파고들어간 선을 향하여 편편한 면을 만듦으로써 쇄판에서의 농담(濃淡)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쇄판할 때의 그림물감이나 잉크의 종류에 따라서는 너무 지나치게 좁은 흠이 메워질 것도 생각할 수 있고, 넓은 요부에 나타나기도 한다. 합판을 사용할 때는 제일 층을 파내면 부분의 상태에 따라서 크게 벗겨지는 일이 있으므로 너무 깊게는 팔 수가 없다.[29]
3. 3. 쇄판
판면에 잉크나 물감을 묻혀 종이나 천에 찍어내는 과정을 쇄판이라고 한다. 쇄판 작업은 판면에 남은 밑그림 종이나 나무 부스러기를 정리하고, 판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솔에 물을 묻혀 판면을 쓸어 습기를 주고, 먹이나 그림물감은 접시에 풀어 소량의 풀을 섞어 농도를 조절한다.[1] 풀을 판면에 직접 떨어뜨리는 방법도 가능하다. 흡수성 종이는 물을 뿌리거나 뿜어 물기를 주고, 마른 종이를 덮은 다음 바렌(baren, 馬楝, ばれん일본어)을 재빨리 움직여 쇄압을 가한다. 바렌은 대나무 껍질, 한지, 감물, 옻칠 등으로 만든 쇄압용 도구이다.[1]
물기를 적게 하고 쇄압을 강하게 하지 않고 가볍게 누르면 농담쇄(濃淡刷) 효과가 나타난다. 넓은 면에 칠한 그림물감 가장자리를 천으로 훔쳐내고 찍는 일문자(一文字) 또는 식농담(拭濃淡) 기법도 있다.[1]
그림물감을 칠하지 않고 찍는 공쇄(空刷)는 판면의 볼록한 부분이 종이에 새겨지도록 하는 기법이다. 강하게 쇄압을 가하면 광택이 난다. 아교만으로 찍은 위에 운모 가루를 뿌리는 운모쇄(雲母刷) 기법도 있다.[1]
수성 그림물감이나 먹 외에 유성 재료를 사용하기도 한다. 유성 그림물감의 농도는 테레핀유 등으로 조절하며, 판면은 벤젠 등으로 씻어 준비한다.[1] 최근에는 목판 프레스기도 사용되고 있다.
4. 역사
목판화는 고대 중국에서 섬유 및 종이에 인쇄하는 방법으로 시작되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 조각은 한나라(220년 이전) 시대의 것으로, 세 가지 색상의 꽃이 인쇄된 비단이다.[3] 13세기에 중국의 목판 인쇄 기술이 유럽으로 전파되었다.[4] 종이는 중국에서 알-안달루스(al-Andalus)를 거쳐 유럽에 조금 늦게 도착했으며, 13세기 말에는 이탈리아에서, 14세기 말에는 부르고뉴와 독일에서 제조되고 있었다.
유럽과 동아시아 모두에서 전통적으로 예술가는 목판화 디자인만 담당했고, 판화를 새기는 작업은 formschneiderde (판화 조각가)라고 불리는 전문 장인에게 맡겼다. 이들 중 일부는 독자적인 명성을 얻기도 했는데, 대표적으로 16세기의 히에로니무스 안드레아에(Hieronymus Andreae), 한스 뤼첼부르거(Hans Lützelburger), 요스트 드 네커(Jost de Negker)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작업장을 운영했고 인쇄업자이자 출판업자로도 활동했다. formschneiderde는 다시 판화를 전문 인쇄업자에게 넘겼으며, 빈 나무판을 만드는 전문가들도 있었다.
20세기 초, 유럽과 동아시아에서는 일부 예술가들이 전체 과정을 직접 하기 시작했다. 서구에서는 많은 예술가들이 더 쉬운 린올리움판화 기법을 사용했다.
판화 기법인 에칭이나 조각과 비교하면, 목판화는 낮은 압력만으로 인쇄가 가능하다. 돋을새김 방식이기 때문에, 판에 잉크를 묻히고 종이 또는 천에 단단하고 고르게 접촉시키기만 하면 인쇄가 가능하다. 유럽에서는 황양목을 비롯해 배나 체리와 같은 여러 가지 견과류와 과일 나무가 흔히 사용되었고,[1] 일본에서는 벚나무 종류의 나무가 선호되었다.
인쇄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 찍어내기: 많은 직물과 초기 유럽 목판화(1400~1440년)에 사용되었다. 종이 또는 직물을 평평한 표면에 올려놓고 그 위에 판을 올린 다음 판의 뒷면을 누르거나 두드려 인쇄하였다.
- 문지르기: 모든 시대에 걸쳐 극동의 종이 인쇄에서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었다. 15세기 후반 유럽 목판화와 목판 인쇄물, 그리고 직물에도 널리 사용되었다. 1910년경부터 현재까지 많은 서구 목판화에도 사용되었다. 판을 테이블 위에 놓고 그 위에 종이 또는 직물을 올린 후, 뒷면을 "단단한 패드, 평평한 나무 조각, 광택기 또는 가죽 프로톤"으로 문지른다.[2] 이를 위해 사용되는 전통적인 일본 도구는 바렌이라고 한다. 후에 일본에서는 목판을 고정하고 적절한 압력을 가하는 복잡한 목재 기구를 사용했는데, 이는 여러 가지 색상을 정확하게 적용할 때 유용했다.
- 프레스 인쇄: 프레스는 비교적 최근에 아시아에서만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유럽에서는 1480년경부터 판화와 목판 인쇄물에 인쇄기가 사용되었고, 그 이전에는 목판 인쇄 책 삽화에 사용되었다. 인쇄기 이전에 유럽에서는 간단한 무게추 프레스가 사용되었을 수도 있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다.
일본의 목판 인쇄는 '목판화'(moku-hanga)라고 불리며, 17세기에 책과 예술 모두에 도입되었다. 우키요에(Ukiyo-e)는 17세기 후반에 시작되었으며, 단색(Monochrome) 또는 두 가지 색상의 판화가 사용되었다. 때로는 인쇄 후 손으로 색칠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여러 색상의 판화가 개발되었다. 일본 목판화는 주요 예술 형식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회화보다 훨씬 낮은 지위를 부여받았다.
1860년대, 일본 판화가 유럽에 전해지면서 특히 프랑스에서 매우 유행하게 되었다. 이는 에두아르 마네, 피에르 보나르,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 에드가 드가, 폴 고갱, 빈센트 반 고흐, 펠릭스 발로통, 메리 카사트 등 많은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1872년, 쥘 클라레티는 이러한 경향을 "자포니즘(Le Japonisme)"이라고 불렀다.[5]
목판화는 20세기 초중반 멕시코에서 인기 있는 예술 형태가 되었다.[15] 특히 멕시코 혁명(1910~1920) 이후 정치적 불안을 전달하는 수단이자 정치적 활동의 한 형태로 사용되었다. 호세 과달루페 포사다(José Guadalupe Posada)는 멕시코 민속 및 원주민 예술을 대중화하고, 멕시코 예술과 문화에서 두드러지는 해골(''calaveras'') 인물 목판화를 제작하여 멕시코 그래픽 아트 및 판화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17][18][19]
1921년 프랑스 판화가 장 샤를로(Jean Charlot)가 멕시코시티로 이주하여 코요아칸(Coyoacán)의 야외 미술학교에서 목판화 기법을 가르쳤다. 페르난도 레알을 포함한 많은 젊은 멕시코 예술가들이 이 수업에 참석했다.[17][18][20] 멕시코 혁명 이후, 멕시코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격변의 시기를 겪었다. 노동자 파업, 시위, 행진이 벌어졌으며, 정보를 신속하고 저렴하게 전달하기 위해 벽에 붙이거나 나눠줄 수 있는 대량 생산된 시각 인쇄물이 필요했다.[17]
4. 1. 동아시아
동아시아에서 목판화는 고대 중국에서 시작되어 섬유와 종이에 인쇄하는 방법으로 발전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 조각은 중국 한나라(220년 이전) 시대의 것으로, 세 가지 색상의 꽃이 인쇄된 비단이다.[3] 현재 알려진 가장 오래된 목판화는 중국 돈황의 금강반야경 표지 그림으로, 당나라 함통 9년(866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는 매우 정교한 작품이므로, 실제 목판화의 탄생은 이보다 수백 년 더 앞선 것으로 생각된다. 이후 중국과 일본 모두 제지 기술이 발달하면서 목판 기술도 발전했지만, 대부분은 종교와 관련이 있었다. 중국에서는 주로 배나무나 대추나무를 판목으로 사용했다.제작 연대가 확인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은 일본 법륭사 등에 소장된 「백만탑다라니경」이다.[27] 이는 764년 효겸천황/쇼토쿠 천황이 4종의 경전을 목판으로 인쇄하여 목제탑에 넣은 것이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융통염불연기화권』이 판화 화권으로 간행되기도 했다(1391년, 다이넨부쓰지 소장).
일본에서는 게이초 시대 교토에서 각구라 소안에 의해 사가본에 최초로 판화 삽화가 삽입되었다. 이후 이하라 사이카쿠 등의 가나소시 삽화에도 목판 기술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만지, 간분 무렵에는 출판 문화의 중심이 교토에서 에도로 옮겨가면서 긴페이본이나 각종 평판기가 출판되어 활황을 보였다. 엔보 시대에는 우키요에시 히시카와 모리노부의 이름을 기록한 먹그림에 의한 책자 삽화가 나타났고, 여기서부터 독립하여 감상용 목판화인 일점 그림이 간행되었다. 그 후, 단에, 홍에, 칠에, 홍스리에, 니시키에로 발전해 갔다.
4. 1. 1. 한국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은 통일신라 시대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751년 이전)이다.[3] 이는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에서 발견되었으며,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이다. 이 경전은 닥나무 종이에 인쇄되었으며, 목판 인쇄술이 한국에서 8세기 이전에 이미 높은 수준으로 발전했음을 보여준다.고려 시대에는 불교 경전 인쇄를 위해 목판 인쇄술이 더욱 발전하였다. 특히, 팔만대장경(1236년~1251년)은 고려 시대 목판 인쇄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해인사에 보관된 팔만대장경은 8만여 장의 목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방대한 규모와 정교함으로 인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불교 경전뿐만 아니라 유교 경전, 서적, 민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목판 인쇄술이 활용되었다. 특히 민화는 서민들의 삶과 문화를 반영하는 그림으로, 목판으로 대량 제작되어 널리 보급되었다. 조선 시대 민화 목판화는 단순하면서도 해학적인 표현과 강렬한 색채가 특징이다.
4. 1. 2. 중국
중국에서 목판화는 섬유와 종이에 인쇄하는 방법으로 시작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 조각은 중국 한나라(220년 이전) 시대의 것으로, 세 가지 색상의 꽃이 인쇄된 비단이다.[3]현재 알려진 가장 오래된 목판화는 중국 돈황(敦煌)에서 발견된 금강반야경 표지 그림으로, 당나라 함통 9년(866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는 매우 정교한 작품이기 때문에, 실제 목판화의 탄생은 이보다 수백 년 더 앞선 것으로 생각된다. 이후 중국에서는 제지 기술이 발달하면서 목판 기술도 발전했지만, 대부분 종교와 관련이 있었다. 중국에서는 주로 배나무나 대추나무를 판목으로 사용했다.
4. 1. 3. 일본
에도 시대 히시카와 모로노부의 먹그림에서 시작하여 단에, 홍에, 칠에, 홍즐에를 거쳐 다색 인쇄인 니시키에가 스즈키 하루노부 등에 의해 창시되었다.[27] 도슈사이샤라쿠 등에게 계승된 우키요에 판화는 대부분 목판화였다. 여러 목판을 사용하여 다색 인쇄를 할 수 있었지만, 목판 마모 등의 문제로 인쇄 수에 제한이 있었다. 현대 목판화는 일련번호 등으로 판 수를 관리하기도 한다.
현재도 벚나무 무垢판을 사용한 전통 목판화 기법이 사용된다. 판목 두께는 판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휨을 고려하여 중판 정도는 2~3cm이다. 도쿄 메지로의 아다치 전통 목판화 보존 재단과 교토 다케나카 목판다케사사도는 우키요에 복각판을 제작한다. 키타가와 우타마로, 가츠시카 호쿠사이 등의 원판에서 새 목판에 판하를 조각하고 인쇄공이 색을 칠해 복각한다. 근대 이후에는 현대 서양화가에게 오리지널 판하를 의뢰, 에도 시대부터의 기술로 제작하기도 한다.
4. 2. 유럽
유럽에서 발견되는 가장 오래된 목판화는 14세기 말의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28] 유럽에서는 배나무, 호두나무 또는 측백나무가 판목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동양에서 사용된 벚나무, 배나무, 대추나무와는 달랐다. 조각칼은 동양의 것과 비슷한 것이 사용되었고, 종이를 올려놓고 붓이나 탬포(헝겊이나 털을 가죽으로 감싼 도구)와 같은 것으로 문질렀던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채색을 하게 된 것도 일본 초기 목판화와 비슷했다. 그러나 구텐베르크에 의해 1434년에서 1444년경에 인쇄기가 발명되면서 판목이 금속 활자와 함께 유성 잉크로 인쇄되기 시작했고, 붓으로 문지르는 대신 프레스라는 방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판목이 동판화로 대체됨에 따라 동판화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이 점은 동양의 경우와 확연히 달랐다.초기에는 종교적인 주제를 다룬 목판화가 많았는데, 매우 작은 크기의 것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많은 판화가 순례자들에게 목적지에서 판매되었고, 집 벽에 붙이거나 상자 뚜껑 안에 넣거나, 심지어 상처 위에 붕대를 감는 데 사용되기도 했는데, 이는 치유에 도움이 된다는 미신적인 믿음 때문이었다.
15세기 중반 저렴한 목판화의 판매 폭발은 표준의 하락으로 이어졌고, 많은 대중 인쇄물은 매우 조잡했다. 미하엘 볼게무트(Michael Wolgemut)는 약 1475년부터 독일 목판화를 더욱 정교하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에르하르트 로이비히(Erhard Reuwich)는 교차 해칭(조각이나 에칭(Etching)보다 훨씬 어려운 기법)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이었다. 세기 말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는 서구 목판화를 아마도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단일 잎" 목판화(즉, 별도로 판매되는 이미지)의 지위를 크게 높였다. 그는 잠시 동안 조각과 동등한 수준의 품질과 지위를 목판화에 부여했지만, 이후 그는 직접 조각으로 눈을 돌렸다.
16세기 전반기에는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고품질의 목판화가 계속 제작되었으며, 티치아노(Titian)와 다른 예술가들이 일부 제작을 의뢰했다. 관심의 대부분은 여러 색상으로 인쇄된 여러 개의 판을 사용하는 명암 목판화(Chiaroscuro woodcut)를 개발하는 데 있었다.
목판화와 활자 인쇄는 모두 릴리프 인쇄이기 때문에 쉽게 함께 인쇄할 수 있다. 그 결과 목판화는 16세기 후반까지 책 삽화의 주요 매체였다. 최초의 목판화 책 삽화는 활자 인쇄 시작 후 불과 몇 년 후인 약 1461년 알브레히트 프피스터(Albrecht Pfister)에 의해 밤베르크(Bamberg)에서 인쇄되었다.
5. 현대의 목판화
20세기 초중반, 멕시코에서 목판화는 인기 있는 예술 형태였다.[15] 특히 멕시코 혁명(1910~1920) 이후, 목판화는 정치적 불안을 전달하고 정치 활동을 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같은 시기 유럽, 러시아, 중국에서도 목판화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반파시즘과 같은 좌익 정치를 전파하는 데 사용되었다.[16]
호세 과달루페 포사다(José Guadalupe Posada)는 멕시코에서 목판화 예술 양식을 유행시켰다. 그는 멕시코 그래픽 아트 및 판화의 아버지이자 최초의 멕시코 현대 예술가로 알려져 있다.[17][18] 멕시코 혁명 전후로 풍자 만화가이자 판화가였던 그는 멕시코 민속 및 원주민 예술을 대중화했다. 그는 오늘날 멕시코 예술과 문화에서 두드러지는 상징적인 해골(''calaveras'') 인물의 목판화를 제작했으며(디즈니 픽사의 코코와 같은),[19] 포사다의 ''calaveras''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라 칼라베라 카트리나(La Calavera Catrina)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21년 프랑스 판화가 장 샤를로(Jean Charlot)가 멕시코시티로 이주하여 포사다 목판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코요아칸(Coyoacán) 야외 미술학교에서 목판화 기법을 가르쳤다. 페르난도 레알을 포함한 많은 젊은 멕시코 예술가들이 이 수업에 참석했다.[17][18][20]
멕시코 혁명 이후, 멕시코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격변을 겪었다. 노동자 파업, 시위, 행진이 벌어졌고, 이러한 사건들에는 벽에 붙이거나 시위 중에 나눠줄 수 있는 저렴하고 대량 생산된 시각 인쇄물이 필요했다.[17] 정보는 일반 대중에게 신속하고 저렴하게 전파되어야 했다.[17] 당시 많은 사람들이 문맹이었고, 혁명 이후 전국적인 교육에 대한 움직임이 있었다. 1910년에는 멕시코 인구의 20%만이 읽을 수 있었다.[21] 예술은 이러한 대의에 매우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정치 예술가들은 저널과 신문을 사용하여 그림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다.[18] ''엘 마체테(El Machete)''(1924~1929)는 목판화를 사용한 인기 있는 공산주의 저널이었다.[18] 목판화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대중적인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효과적이었다.
예술가와 활동가들은 타예르 데 그라피카 포풀라르(Taller de Gráfica Popular)(TGP)(1937년~현재)와 트레인타트레인티스타스(The Treintatreintistas)(1928~1930)와 같은 집단을 만들어 사회주의적이고 공산주의적인 가치를 반영하는 판화(그중 많은 것이 목판화)를 제작했다.[22][20] TGP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판화가 엘리자베스 캐틀릿(Elizabeth Catlett)을 포함하여 전 세계의 예술가들을 끌어들였는데, 그의 목판화는 나중에 1960년대와 1970년대 미국의 사회 운동 예술에 영향을 미쳤다.[15] 트레인타트레인티스타스는 노동자와 어린이에게도 가르쳤다. 목판화 도구는 쉽게 구할 수 있었고 기법도 배우기 쉬웠다. 그것은 대중을 위한 예술로 간주되었다.[20]
5. 1. 한국의 현대 목판화
1980년대 민중미술 운동과 함께 한국 현대 목판화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민중의 삶과 현실을 생생하게 담아낸 목판화는 민주화 운동과 사회 변혁을 위한 강력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당시 목판화는 민중미술 운동의 중심에서 민주화 운동과 사회 변혁을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이 시기 목판화는 단순한 예술 작품을 넘어, 사회적 발언과 저항의 메시지를 담은 강력한 매체로 기능했다. 민중의 고통과 희망, 저항 정신을 간결하면서도 힘 있는 이미지로 표현하여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참여를 이끌어냈다.
5. 2. 세계의 현대 목판화
20세기 초중반, 목판화는 멕시코에서 인기 있는 예술 형태였다.[15] 특히 멕시코 혁명(1910~1920) 이후, 정치적 불안을 전달하고 정치 활동을 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같은 시기 유럽, 러시아, 중국에서도 사회주의, 공산주의, 반파시즘과 같은 좌익 정치를 전파하는 데 목판화가 사용되었다.[16]
멕시코에서는 호세 과달루페 포사다(José Guadalupe Posada)가 목판화 예술 양식을 유행시켰다. 그는 멕시코 그래픽 아트 및 판화의 아버지이자 최초의 멕시코 현대 예술가로 알려져 있다.[17][18] 멕시코 혁명 전후로 풍자 만화가이자 판화가였던 그는 멕시코 민속 및 원주민 예술을 대중화했다. 그는 오늘날 멕시코 예술과 문화에서 두드러지는 상징적인 해골(''calaveras'') 인물의 목판화를 제작했으며(디즈니 픽사의 코코와 같은),[19] 포사다의 ''calaveras''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라 칼라베라 카트리나(La Calavera Catrina)를 참조하라.
1921년 프랑스 판화가 장 샤를로(Jean Charlot)가 멕시코시티로 이주하여 포사다 목판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코요아칸(Coyoacán) 야외 미술학교에서 목판화 기법을 가르쳤다. 페르난도 레알을 포함한 많은 젊은 멕시코 예술가들이 이 수업에 참석했다.[17][18][20]
멕시코 혁명 이후, 멕시코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격변을 겪었다. 노동자 파업, 시위, 행진이 벌어졌고, 이러한 사건들에는 벽에 붙이거나 시위 중에 나눠줄 수 있는 저렴하고 대량 생산된 시각 인쇄물이 필요했다.[17] 정보는 일반 대중에게 신속하고 저렴하게 전파되어야 했다.[17] 당시 많은 사람들이 문맹이었고, 혁명 이후 전국적인 교육에 대한 움직임이 있었다. 1910년에는 멕시코 인구의 20%만이 읽을 수 있었다.[21] 예술은 이러한 대의에 매우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정치 예술가들은 저널과 신문을 사용하여 그림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다.[18] ''엘 마체테(El Machete)''(1924~1929)는 목판화를 사용한 인기 있는 공산주의 저널이었다.[18] 목판화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대중적인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효과적이었다.
예술가와 활동가들은 타예르 데 그라피카 포풀라르(Taller de Gráfica Popular)(TGP)(1937년~현재)와 트레인타트레인티스타스(The Treintatreintistas)(1928~1930)와 같은 집단을 만들어 사회주의적이고 공산주의적인 가치를 반영하는 판화(그중 많은 것이 목판화)를 제작했다.[22][20] TGP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판화가 엘리자베스 캐틀릿(Elizabeth Catlett)을 포함하여 전 세계의 예술가들을 끌어들였는데, 그의 목판화는 나중에 1960년대와 1970년대 미국의 사회 운동 예술에 영향을 미쳤다.[15] 트레인타트레인티스타스는 노동자와 어린이에게도 가르쳤다. 목판화 도구는 쉽게 구할 수 있었고 기법도 배우기 쉬웠다. 그것은 대중을 위한 예술로 간주되었다.[20]
당시 멕시코는 정체성을 발견하고 통일된 국가로 발전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목판화의 형태와 스타일은 다양한 주제와 시각 문화를 통합된 모습으로 보이게 했다. 전통적인 민속 이미지와 아방가르드적인 현대 이미지는 나무에 새겨질 때 유사한 미학을 공유했다. 시골과 전통적인 농부의 이미지는 도시의 이미지와 비슷하게 보였다.[20] 이러한 상징성은 통일된 국가를 원하는 정치인들에게 유익했다. 나무를 조각하고 목판화를 인쇄하는 물리적인 행위는 많은 사람들이 수동 노동과 노동자 권리 지지에 대해 가지고 있던 가치를 뒷받침했다.[20]
6. 기법
목판화는 나무판에 그림을 새겨 잉크를 묻혀 찍어내는 판화 기법이다. 에칭이나 조각과 같은 다른 판화 기법에 비해 낮은 압력으로도 인쇄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목판화 인쇄에는 크게 세 가지 방법이 있다.
- 찍어내기: 초기 유럽 목판화(1400~1440년)나 직물 인쇄에 주로 사용되었다. 판을 평평한 곳에 놓고 그 위에 종이나 직물을 올린 후, 판의 뒷면을 눌러 찍어내는 방식이다.
- 문지르기: 동아시아에서 종이에 인쇄할 때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었다. 15세기 후반 유럽의 목판화와 직물 인쇄에도 사용되었으며, 1910년경부터는 서양에서도 많이 사용되었다. 판 위에 종이나 직물을 놓고 뒷면을 바렌과 같은 도구로 문질러 잉크를 묻힌다.
- 프레스 인쇄: 인쇄기를 사용하는 방법으로, 아시아에서는 비교적 최근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유럽에서는 1480년경부터 판화와 목판 인쇄물에 사용되었다.
유럽에서는 황양목을 비롯한 배, 체리 등 견과류와 과일 나무가, 일본에서는 벚나무 종류의 나무가 주로 사용되었다.[1]
전통적으로 목판화 제작은 예술가와 전문 장인 사이에 분업이 이루어졌다. 예술가는 디자인만 담당하고, '''formschneiderde''' (판화 조각가)라고 불리는 장인이 나무판에 그림을 새기는 작업을 맡았다. 이들 중에는 히에로니무스 안드레아에, 한스 뤼첼부르거, 요스트 드 네커와 같이 독자적인 명성을 얻은 인물도 있었다. 이들은 작업장을 운영하며 인쇄업자나 출판업자로도 활동했다. 이후 완성된 판을 인쇄 전문가에게 넘겼고, 빈 나무판을 만드는 전문가도 따로 있었다.[2]
하지만 20세기 초부터는 유럽과 동아시아 모두에서 예술가가 직접 모든 과정을 담당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을 창작판화(創作版画)라고 불렀으며,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한 신판화(新版画)와 구분되었다. 서양에서는 많은 예술가들이 린올리움판화와 같이 다루기 쉬운 기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색채 목판화는 고대 중국에서 처음 등장했으며, 10세기에 제작된 불교 이미지 세 점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에서는 1508년 독일에서 발명된 키아로스쿠로 목판화가 색채 목판화의 시초이다. 그러나 색채 목판화는 일본의 우키요에와 같이 표준적인 기법으로 자리 잡지는 못했다.
19세기 유럽에서는 크로목시로그래피라고 불리는 다양한 색채 목판화 기법이 개발되었다. 조지 벡스터는 잉크 선판을 사용하고 최대 20가지 색상으로 덧씌우는 방법을 특허받았다. 에드먼드 에반스는 릴리프와 목판을 모두 사용하여 최대 11가지 색상을 표현했으며, 랜돌프 칼데콧, 월터 크레인, 케이트 그리너웨이와 같은 예술가들은 자포니즘의 영향을 받아 평평한 색면을 활용하는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20세기에는 다리 그룹의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가 브러시로 판에 다른 색을 칠한 다음 인쇄하는 단일 블록을 사용, 색채 목판화를 제작하는 공정을 개발했다(''알라 뿌페'').[8]
6. 1. 백선 목판화 (White-line woodcut)
백선 목판화는 이미지를 주로 가는 선으로 조각하는 기법으로, 매우 조잡한 조판화와 유사하다. 판목은 일반적인 방식으로 인쇄되므로 인쇄물 대부분은 검은색을 띠고 이미지는 흰색 선으로 나타난다. 이 기법은 16세기 스위스 예술가 우르스 그라프가 고안했지만, 19세기와 20세기에 들어 일반적인 흑선 스타일 영역과 대조되는 넓은 흰색 선 영역을 활용하는 변형된 형태로 널리 사용되었다. 이러한 변형은 펠릭스 발로통에 의해 개척되었다.
6. 2. 명암 목판화 (Chiaroscuro woodcuts)
명암 목판화는 목판화 기법을 사용하여 두 개 이상의 판으로 서로 다른 색으로 인쇄된 옛 거장 판화이다. 명암 목판화가 반드시 명암의 강한 대비를 특징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이 기법은 명암 그림과 유사한 효과를 얻기 위해 처음으로 제작되었다.[10] 몇몇 초기의 책 인쇄 실험 이후, 두 개의 판으로 고안된 진정한 명암 목판화는 1508년 또는 1509년에 독일의 루카스 크라나흐에 의해 발명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는 자신의 초기 판화 중 일부에 날짜를 거꾸로 기입하거나 단색 인쇄용으로 처음 제작된 일부 판화에 색조 판을 추가하기도 했다. 한스 부르크마이어는 루카스 크라나흐의 뒤를 바로 따랐다.[10] 조르조 바사리가 이탈리아의 우고 다 카르피의 선행을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 즉 최초의 이탈리아 예시는 1516년경에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다.[11][12]
이 기법을 사용한 판화가들로는 한스 발둥과 파르미자니노가 있다. 독일에서는 16세기 초 수십 년 동안 주로 이 기법이 사용되었지만, 이탈리아에서는 1세기 내내 계속 사용되었으며, 나중에 헨드릭 골치우스와 같은 화가들도 때때로 이 기법을 사용했다. 독일식에서는 한 판은 일반적으로 선만 있고 "선판"이라고 불리는 반면, 다른 판 또는 판들은 평평한 색 영역을 가지고 있으며 "색조 판"이라고 불린다. 이탈리아인들은 일반적으로 매우 다른 효과를 위해 색조 판만을 사용했는데, 이는 원래 용어가 사용되었던 명암 그림이나 수채화에 훨씬 더 가까웠다.[13]
스웨덴의 판화가 토르스텐 빌만은 1930년대와 1940년대에 일반 인쇄 잉크로 여러 가지 회색 음영을 사용하는 변형된 명암 기법을 개발했다. 스톡홀름 국립박물관의 미술사가인 구나르 융마르커는 이 기법을 "그리자유 목판화"라고 불렀다. 이것은 흑백 주요 판 외에 여러 개의 회색 나무 판을 사용하는 독점적으로 수작업 인쇄를 위한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인쇄 과정이다.[14]
6. 3. 다색 목판화
여러 개의 판을 사용하여 다양한 색상을 표현하는 다색 목판화는 중국에서 시작되어 일본에서 크게 발전했다. 일본의 니시키에 기법은 다색 목판화의 정점으로 평가받는다.[6][7]일본에서 완전히 발달된 형태인 니시키에(錦絵, "비단 그림")는 1760년대부터 널리 퍼져 인쇄물에 사용되었다. 우키요에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색상과 기법의 복잡성이 점점 더 요구되었으며, 19세기까지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색채로 작업했다. 다색 목판화의 발전 단계는 다음과 같다.
단계 | 설명 |
---|---|
스미즈리에(墨摺り絵, "먹 인쇄 그림") | 검은 먹물만 사용하는 단색 인쇄 |
베니즈리에(紅摺り絵, "붉은색 인쇄 그림") | 인쇄 후 손으로 붉은색 잉크 세부 사항 또는 강조 표시 추가. 때때로 녹색도 사용됨. |
탄에(丹絵) | 탄이라는 붉은 안료를 사용한 주황색 강조 표시 |
아이즈리에(藍摺り絵, "쪽빛 인쇄 그림"), 무라사키에(紫絵, "보라색 그림") | 검은 먹물 대신 또는 검은 먹물과 함께 단색을 사용 |
우루시에(漆絵) | 잉크를 농축시키는 접착제를 사용하여 이미지를 강조하는 방법. 금, 운모 등을 사용하여 이미지를 더욱 향상시키기도 함. 우루시에는 칠을 사용한 그림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칠은 인쇄물에 거의 사용되지 않음. |
니시키에(錦絵, "비단 그림") | 이미지의 각 부분에 여러 개의 판을 사용, 다양한 색상을 사용하여 복잡하고 세밀한 이미지를 만듦. 각 색상에 지정된 부분에만 적용하도록 별도의 판을 조각함. 켄토(見当)라는 표시를 통해 각 판의 위치를 맞춰 인쇄함. |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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