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고이즘
1. 개요
징고이즘은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러시아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용어로, 자국의 우월성과 이익을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 용어는 1877-78년 러시아-튀르크 전쟁 당시 유행했던 노래 가사에서 유래되었으며, 정치적 용어로 굳어졌다. 징고이즘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헨리 하인드먼 등 정치인들의 사례와 북한의 선군정치, 하와이 병합 지지 등 외교 정책, 군사 분야 등에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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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파시즘 -
쇼비니즘
쇼비니즘은 특정 집단에 대한 맹목적인 헌신과 우월 의식을 뜻하며, 외부 집단에 대한 편견이나 적대감을 포함하고, 국민주의, 남성, 여성 쇼비니즘 등으로 나타난다. -
애국주의 -
사회주의적 애국주의
사회주의적 애국주의는 사회주의 이념과 애국심을 결합하여 특정 국가의 노동 계급과 발전에 초점을 맞추는 이데올로기이지만, 국가주의적 변질과 민주주의적 가치와의 충돌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어 비판적 검토가 필요하다. -
애국주의 -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라인홀드 니부어의 저서인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는 개인과 사회 집단의 도덕성 차이를 분석하여 사회 정의 실현의 어려움을 강조하며 정치, 윤리학, 사회학에 큰 영향을 미친 대표작이다. -
배외주의 -
성 차별
성차별은 성별에 기반한 차별, 편견, 고정관념으로, 여성과 소녀에게 주로 나타나지만 모든 성적 다양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인권 문제이며, 여성주의는 이를 남성이 비남성을 억압하는 구조로 보고, 개인적, 제도적 수준에서 임금 격차, 정치적 불평등, 폭력 등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 법률 및 제도 개선, 교육 및 사회 의식 개선 등 다양한 노력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
배외주의 -
탄소 쇼비니즘
탄소 쇼비니즘은 칼 세이건이 외계 생명체 상상력의 제한을 지적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로, 탄소의 대체 물질인 실리콘이 가지는 불안정성과 희소성 때문에 탄소 기반 생명체의 고유한 특성이 제약된다는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을 의미한다.
2. 어원
1877년~1878년 러시아-튀르크 전쟁을 계기로, 영국에서 러시아에 대한 강경책을 주장하는 여론이 힘을 얻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G. H. 맥더모트가 부르고 G. W. 헌트가 작곡한 노래가 유행했는데, 이 노래의 후렴구에 등장하는 "바이 징고(by Jingo)"라는 표현에서 '징고이즘'이라는 용어가 유래했다. "바이 징고"는 "바이 예수"를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다.
당시 영국은 러시아 제국이 콘스탄티노폴을 점령하여 지중해로 진출하는 것을 막고자 했다. 산 스테파노 조약으로 러시아의 목표 달성이 가까워지자, 영국은 외교적 압력과 전쟁 위협을 통해 러시아를 압박했다.
1878년 영국의 급진주의 정치 활동가 조지 홀리요크는 이 노래 가사에 나오는 "바이 징고(by Jingo)"라는 구절에서 착안하여 "징고이즘"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2.1. 노래 가사
1877년~1878년 러시아-튀르크 전쟁 당시 G.H.맥더모트와 G.W. 헌트가 작곡한 노래가 영국 대중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이 노래의 가사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우리는 싸우고 싶지 않다, 그러나 징고(예수)의 뜻이라면!
싸우겠다면 싸우자, 우리에겐 배도 있고, 군대도 있고, 돈도 있다!
"징고(Jingo)"는 '예수'를 의미하는 완곡한 표현으로, 바스크어 "Jinkoa"(신)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
2.2. 용어의 등장
가수 G. H. 맥더모트가 대중화하고 작곡가 G. W. 헌트가 작곡한 노래의 후렴구는 1877-78년 러시아-튀르크 전쟁 당시 영국 선술집과 뮤직 홀에서 흔히 불렸는데, 이 노래로 인해 징고이즘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노래 가사에는 다음과 같은 후렴구가 있었다.
우리는 싸우고 싶지 않지만, 바이 징고 만약 우리가 싸운다면
우리에게는 배가 있고, 병사가 있고, 돈도 있지
우리는 전에 곰(러시아)과 싸웠고, 우리가 진정한 영국인인 한
러시아는 콘스탄티노폴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바이 징고"라는 문구는 "바이 예수"를 대신하여 사용된, 문서화가 거의 되지 않은 완곡 어구였다. 이 용어는 바스크어 Jinkoa: "신"에서 유래되었을 수 있다.
"징고이즘"이라는 용어는 1878년 3월 13일, 영국의 급진주의자 조지 홀리요크가 데일리 뉴스에 보낸 편지에서 정치적 꼬리표로 사용하면서 유래되었다. 홀리오크는 러-투르크 전쟁 당시 선술집이나 뮤직홀에서 인기를 얻었던 G. H. 맥더모트의 합창곡의 한 구절에서 이 용어를 착안했다. 이노세 쿠미에의 저서 『흥망의 세계사 제16권 대영제국이라는 경험』(고단샤, 2007년)에 따르면, 해당 가사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싸우고 싶지 않아, 하지만 강경하게 (by Jingo)! 해야 한다면,
배도 병사도 돈도 있어.
조금 전에도 곰과 싸운 적이 있지.
우리, 진정한 영국인은 러시아 놈들에게 콘스탄티노플을 넘겨주지 않을 거야!
3. 역사적 배경
19세기 후반,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 러시아는 유럽의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로 여겨졌으며, 특히 영국의 인도에 대한 이해 관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상황은 1878년 러시아-투르크 전쟁으로 이어지는 국제적 위기를 초래했고, 베를린 회담에서 서구 강대국 간의 이해에 따른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에 대한 강경책을 주장하는 서구 강대국, 특히 영미권의 대중적 여론몰이가 이루어졌으며, 이는 이후 영미권 문화의 우월성과 이익을 반영하는 맹목적 확신에 의한 행동을 표현하는 용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당시 가수 G. H. 맥더모트가 대중화시킨 작곡가 G. W. 헌트의 노래 합창구는 1877-78년 러시아-튀르크 전쟁 당시 영국 선술집과 뮤직 홀에서 흔히 불렸는데, 이 노래로 인해 '징고이즘'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가사에는 다음과 같은 합창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바이 징고"라는 문구는 "바이 예수"를 대신하여 사용된, 문서화가 거의 되지 않은 완곡 어구였다. 이 용어는 바스크어 Jinkoa: "신"에서 유래되었을 수 있다.
"징고이즘"이라는 특정 용어의 사용은 1878년 3월 13일, 영국의 저명한 급진주의자 조지 홀리요크가 데일리 뉴스에 보낸 편지에서 정치적 꼬리표로 이 용어를 만들면서 유래되었다.
4. 용어의 사용 및 사례
징고이즘은 정치,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난다. 1880년대 사회 민주 연맹의 지도자 헨리 하인드먼은 국제주의에 반대하고 민족주의 및 반유대주의가 혼합된 형태의 사회주의를 옹호했다. 캐나다 육군의 창립자 중 한 명인 토마스 블랜드 스트레인지는 "징고 스트레인지"라는 별명을 얻었고, 1893년 자서전 제목을 포병 징고의 주빌리라고 붙였다.
하와이 왕국 전복과 하와이 병합 제안 당시, 벤자민 해리슨 대통령과 미국 상원의 공화당원들은 합병을 지지하여 민주당 언론으로부터 징고이즘 혐의를 받았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1895년 뉴욕 타임스 기사에서 "만약 '징고이즘'이 미국인들이 결의와 상식으로 외국 세력에 의해 우리의 권리가 존중되도록 주장하는 정책을 의미한다면, 우리는 '징고'이다."라고 말했다.
조지 오웰은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정치 저널리스트의 전술을 비난하며 징고이즘을 비판했다. 히틀러에 대한 유화 정책은 독일의 침략에 직면했을 때 그러한 징고적인 태도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풍자적인 언급으로 이어졌다.
북한의 수사법은 징고주의적이라고 묘사되어 왔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역사학 교수 존 로버트 시리는 『영국 팽창사론』에서 "영국에 의한 식민지 제국의 확대는 영국 문명의 우월성의 발현이며, 역사의 필연이다"라는 주장을 하였다.
4.1. 정치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징고이즘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그는 1895년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 "징고이즘이 미국인들이 다른 외국의 세력들에 대항해 우리의 이익을 위한 해결법과 상식을 견지하는 정책을 의미한다면 우리는 징고들이 맞다"라고 주장했다.
1880년대 사회민주연맹의 지도자 헨리 하인드먼은 국제주의에 반대하고 민족주의 및 반유대주의가 혼합된 형태의 사회주의를 옹호했으며, 동료 사회주의자인 엘리너 마르크스를 반유대주의적 용어로 공격하기도 했다.
4.2. 외교 정책
1893년 하와이 왕국 전복 및 하와이 병합 제안 당시, 공화당 소속 벤자민 해리슨 대통령과 공화당원들은 합병을 지지하여 민주당 언론으로부터 징고이즘 혐의를 받았다.
4.3. 군사
캐나다 육군의 창립자 중 한 명이자 영국 포병 소장인 토마스 블랜드 스트레인지는 괴팍하고 다혈질적인 군인이었다. 그는 "징고 스트레인지"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1893년 자서전 제목을 포병 징고의 주빌리라고 붙였다.
히틀러에 대한 유화 정책은 독일의 침략에 직면했을 때 그러한 징고적인 태도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풍자적인 언급으로 이어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