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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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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축법호는 233년경 둔황에서 태어난 불교 승려로, 중앙아시아 언어에 능통하여 많은 불교 경전을 한역했다. 그는 8세에 출가하여 서역을 여행하며 36개 언어에 통달했으며, 266년 장안에서 번역 활동을 시작하여 뤄양, 둔황 등을 오가며 약 150부 300권의 경전을 번역했다. 그의 번역은 중국 불교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법화경과 십지경은 중국 불교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는 '둔황 보살'로 존경받았으며, 그의 번역은 구마라집 이전의 고역 경전의 중심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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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법호

2. 생애

담마락사는 파르티아인에서 호탄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중국인 및 외국인 조력자들과 함께 불교 경전을 번역했다.[4] 그의 가장 두드러진 조력자 중 한 명은 서기이자 편집자 역할을 한 중국의 우바사카 섭승원(聶承遠)이었다.[5] 당시 사람들은 축법호를 존칭하여 "둔황 보살"이라고 불렀으며, 『출삼장기집』에는 경전이 중화에 널리 통하게 된 것은 오로지 축법호의 힘에 의한 것이라는 평가가 기록되어 있다. 그는 78세의 나이로 병을 앓아 사망했는데, 사망 장소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다.[8]

2. 1. 출생과 출가

그는 233년경 둔황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가족은 둔황의 월지(중앙아시아 민족) 출신으로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2][13] 8세에 출가하여 주고좌(竺高座|축고좌중국어)를 스승으로 모셨기 때문에 "축(竺)"씨 성을 사용하게 되었다.[3] 경전 연구에 전념하다가 방등경전이 서역에 있다는 것을 듣고 스승과 함께 서역으로 유랑을 떠났으며, 그 과정에서 36개국 서역 언어에 통달하게 되었다. 이후 범협(불교 경전)을 가지고 중국으로 돌아왔다.[4]

어린 시절 담마락사는 매우 총명했다고 전해지며, 스승과 함께 서역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중앙아시아 언어와 문자를 배웠다.[4]

2. 2. 서역 유학과 귀환

그의 가족은 233년경 그가 태어난 둔황에 살았다.[2] 8세에 그는 수련생이 되었고 인도 승려 주고좌(竺高座|축고좌중국어)를 스승으로 삼았다.[3]

어린 시절 담마락사는 매우 총명했다고 전해지며, 그의 스승과 함께 서역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중앙아시아 언어와 문자를 배웠다. 그 후 그는 다량의 불교 경전을 가지고 중국으로 돌아와 파르티아인에서 호탄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중국인 및 외국인 조력자들과 함께 번역했다.[4] 그의 가장 두드러진 조력자 중 한 명은 서기이자 편집자 역할을 한 중국의 우바사카 섭승원(聶承遠)이었다.[5]

266년에 장안(현재의 시안)에서 처음 번역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새롭게 건국된 진나라의 수도인 뤄양으로 옮겨갔다.[6] 그는 둔황에서도 한동안 활동했으며, 세 곳을 오갔다. 286년과 302년에 각각 법화경과 십지경을 처음으로 번역했는데, 이 두 경전은 후에 중국 불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7]

8세에 출가하여 축고좌를 스승으로 모셨기 때문에 "'''축'''" 성을 사용하게 되었다. 경전 연구에 전념하여, 방등경전이 서역에 있다는 것을 듣고, 스승과 함께 서역으로 유랑의 여정을 떠났다. 그 유랑 중에 36개국의 서역 언어에 통달하게 되었다. 그 후, 범협을 중국으로 가져왔다.

2. 3. 번역 활동

담마락사는 266년에 장안(현재의 시안)에서 처음 번역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새롭게 건국된 진나라의 수도인 뤄양으로 옮겨갔다.[6] 그는 둔황에서도 한동안 활동했으며, 세 곳을 오갔다. 286년과 302년에 각각 법화경과 십지경을 처음으로 번역했는데, 이 두 경전은 후에 중국 불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7] 그는 78세의 나이로 병을 앓다 사망했는데, 그의 사망 장소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다.[8]

총 154개 정도의 경전을 번역했다. 그의 많은 작품들은 큰 성공을 거두어 3세기 북중국에서 널리 유통되었으며, 4세기에는 중국 승려들의 주석 연구와 조사의 대상이 되었다.[9] 경전 번역과 강연을 통해 그는 중국에서 많은 사람들을 불교로 개종시켰으며, 당시 장안이 중요한 불교 중심지로 발전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10]

그의 주요 번역본은 다음과 같다.[1][11]

경전 이름원어 제목 및 음역비고
묘법연화경Saddharmapundarika Sūtra|산스크리트어 발음sa"법화경"
대품반야경Pañcaviṃśatisāhasrikā Prajñāpāramitā Sūtra|산스크리트어 발음sa25,000 게송의 지혜 완성을 설하는 경전
십지경Dasabhūmika-sūtra|산스크리트어 발음sa십지경
과거인과경Lalitavistara Sūtra|산스크리트어 발음sa
유마힐소설경Vimalakīrtinirdeśa|산스크리트어 발음sa
여래비밀경Tathāgataguhyaka Sūtra|산스크리트어 발음sa여래의 비밀
현겁경Bhadrakalpikasūtra|산스크리트어 발음sa
수능엄삼매경Śūraṅgama Samādhi Sūtra|산스크리트어 발음sa
불설불퇴전법륜경Akṣayamatinirdeśa|산스크리트어 발음sa



구마라집 이전의 역경을 '''고역'''(古譯)이라고 부르는데, 축법호의 역경은 고역 경전의 중심을 이룬다. 축법호의 역경 활동은 『출삼장기집』의 기록에 따르면 266년(태시 2년)부터 308년(영가 2년)까지 약 40년에 걸쳐 이루어졌다. 또한, 그 역경 장소를 보면, 둔황·주천·장안·낙양 등 각지를 유랑하면서 역경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축법호가 번역한 경전은 양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정법화경』은 구마라집이 번역한 『묘법연화경』이 등장하기 이전에 법화 신앙 및 관음 신앙을 중국에 가져온 경전이다. 『유마경』은 청담이 성행했던 서진에서 동진에 걸친 귀족 사회의 풍조에 맞는 가르침으로 깊이 침투했다. 『광찬반야경』도 노장사상이 숭상되었던 서진의 사상계에 받아들여진 반야 경전이다.

3. 주요 번역 경전

축법호는 총 154개 정도의 경전을 번역했다. 그의 많은 작품들은 큰 성공을 거두어 3세기 북중국에서 널리 유통되었으며, 4세기에는 중국 승려들의 주석 연구와 조사의 대상이 되었다.[9] 경전 번역과 강연을 통해 그는 중국에서 많은 사람들을 불교로 개종시켰으며, 당시 장안이 중요한 불교 중심지로 발전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10]

그의 주요 번역본은 다음과 같다.[1][11]


  • 묘법연화경(Saddharmapundarika Sūtra)
  • 대품반야경(Pañcaviṃśatisāhasrikā Prajñāpāramitā Sūtra) (25,000 게송의 지혜 완성을 설하는 경전)
  • 십지경(Dasabhūmika-sūtra)
  • 과거인과경(Lalitavistara Sūtra)
  • 유마힐소설경(Vimalakīrtinirdeśa)
  • 여래비밀경(Tathāgataguhyaka Sūtra)
  • 현겁경(Bhadrakalpikasūtra)
  • 수능엄삼매경(Śūraṅgama Samādhi Sūtra)
  • 불설불퇴전법륜경(Akṣayamatinirdeśa)


축법호가 한역한 경전은 약 150부 300권으로 일컬어진다. 주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

  • 『광찬반야경』
  • 『정법화경』
  • 유마경
  • 『대보적경』
  • 『보요경』
  • 『생경』


구마라집 이전의 역경을 '''고역'''(古譯)이라고 부르는데, 축법호의 역경은 고역 경전의 중심을 이룬다.

축법호의 역경 활동은 『출삼장기집』의 기록에 따르면 266년(태시 2년)부터 308년(영가 2년)까지 약 40년에 걸쳐 이루어졌다. 또한, 그 역경 장소는 둔황·주천·장안·낙양 등 각지를 유랑하면서 이루어졌다.

축법호가 번역한 경전은 양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정법화경』은 구마라집이 번역한 『묘법연화경』이 등장하기 이전에 법화 신앙 및 관음 신앙을 중국에 가져온 경전이다. 『유마경』은 청담이 성행했던 서진에서 동진에 걸친 귀족 사회의 풍조에 맞는 가르침으로 깊이 침투했다. 『광찬반야경』도 노장사상이 숭상되었던 서진의 사상계에 받아들여진 반야 경전이다.

4. 평가 및 영향

축법호는 총 154개 정도의 경전을 번역했다. 그의 많은 작품들은 큰 성공을 거두어 3세기 북중국에서 널리 유통되었으며, 4세기에는 중국 승려들의 주석 연구와 조사의 대상이 되었다.[9] 경전 번역과 강연을 통해 그는 중국에서 많은 사람들을 불교로 개종시켰으며, 당시 장안이 중요한 불교 중심지로 발전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10]

축법호가 한역한 경전은 약 150부 300권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번역은 구마라집 이전의 번역을 의미하는 '''고역'''(古譯) 경전의 중심을 이룬다.

축법호의 주요 번역본은 다음과 같다.[1][11]

한문 제목산스크리트어 제목내용
묘법연화경Saddharmapundarika Sūtra법화경
대품반야경Pañcaviṃśatisāhasrikā Prajñāpāramitā Sūtra25,000 게송의 지혜 완성을 설하는 경전
십지경Dasabhūmika-sūtra십지경
과거인과경Lalitavistara Sūtra과거인과경
유마힐소설경Vimalakīrtinirdeśa유마힐소설경
여래비밀경Tathāgataguhyaka Sūtra여래의 비밀
현겁경Bhadrakalpikasūtra현겁경
수능엄삼매경Śūraṅgama Samādhi Sūtra수능엄삼매경
불설불퇴전법륜경Akṣayamatinirdeśa불설불퇴전법륜경


  • 『광찬반야경』
  • 『정법화경』
  • 유마경
  • 『대보적경』
  • 『보요경』
  • 『생경』


축법호의 역경 활동은 『출삼장기집』의 기록에 따르면 266년(태시 2년)부터 308년(영가 2년)까지 약 40년에 걸쳐 이루어졌다. 또한, 번역 장소는 둔황, 주천, 장안, 낙양 등 각지를 다니면서 번역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축법호가 번역한 경전은 양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정법화경』은 구마라집이 번역한 『묘법연화경』이 등장하기 이전에 법화 신앙 및 관음 신앙을 중국에 가져온 경전이다. 『유마경』은 청담이 성행했던 서진에서 동진에 걸친 귀족 사회의 풍조에 맞는 가르침으로 깊이 침투했다. 『광찬반야경』도 노장사상이 숭상되었던 서진의 사상계에 받아들여진 반야 경전이다.

참조

[1] 웹사이트 Dharmarakṣa - Buddha-Nature https://buddhanature[...] 2022-06-08
[2] 서적 Buddhist Translation Procedures in Third-Century China: A Study of Dharmaraksa and His Translation Idiom UMI Microform 1996
[3] 서적 Buddhist Translation Procedures in Third-Century China: A Study of Dharmaraksa and His Translation Idiom UMI Microform 1996
[4] 서적 Buddhist Translation Procedures in Third-Century China: A Study of Dharmaraksa and His Translation Idiom UMI Microform 1996
[5] 서적 The Silk Road: Two THousand Years in the Heart of Asia https://archive.org/[...]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2
[6] 서적 Buddhist Translation Procedures in Third-Century China: A Study of Dharmaraksa and His Translation Idiom UMI Microform 1996
[7] 서적 Buddhist Translation Procedures in Third-Century China: A Study of Dharmaraksa and His Translation Idiom UMI Microform 1996
[8] 서적 Buddhist Translation Procedures in Third-Century China: A Study of Dharmaraksa and His Translation Idiom UMI Microform 1996
[9] 서적 Buddhist Translation Procedures in Third-Century China: A Study of Dharmaraksa and His Translation Idiom UMI Microform 1996
[10] 서적 Buddhist Translation Procedures in Third-Century China: A Study of Dharmaraksa and His Translation Idiom UMI Microform 1996
[11] 간행물 CHINA AT THE CROSSROADS: A FESTSCHRIFT IN HONOR OF VICTOR H. MAIR Academia Sinica 2006
[12] 서적 'シリーズ・東アジア仏教第1巻 東アジア仏教とは何か' "[[春秋社]]" 1995
[13] 서적 仏教用語の基礎知識 "[[角川書店]]" 2000
[14] 웹인용 竺法護(축법호) http://buddha.donggu[...] 운허 & 동국역경원 2011-03-17
[15] 문서 '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 교 > 불교의 역사 > 중국의 불교 > 축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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