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멘트 그린버그
1. 개요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20세기 미국의 영향력 있는 미술 평론가로, 추상표현주의를 옹호하고 모더니즘 미술 이론을 정립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아방가르드와 키치" 에세이에서 아방가르드 예술과 키치를 대비시키며, 모더니즘이 소비 사회의 문화 타락에 저항하는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그린버그는 잭슨 폴록을 비롯한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을 지지하며, 회화의 평면성을 강조하는 매체 특수성 개념을 발전시켰다. 또한, 포스트 회화적 추상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2세대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을 평가했다. 그린버그의 형식주의 비평은 1960~70년대 미술계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포스트모더니즘과 사회 참여적 예술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로 인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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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이름 | 클레멘트 그린버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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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일 | 1909년 1월 16일 |
| 출생지 | 미국 뉴욕 |
| 사망일 | 1994년 5월 7일(85세) |
| 사망지 | 미국 뉴욕 |
| 교육 | 시러큐스 대학교 (AB) |
| 직업 | 미술 평론가 에세이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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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조 | 추상 표현주의 후기 회화적 추상 색면 회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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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자료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ArtForu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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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인물 | 잭슨 폴록 줄스 올리츠키 케네스 놀런드 헬렌 프랑켄탈러 모리스 루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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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음 | IPA: /ɡriːnbɜːr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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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미술 평론가 -
프랭크 오하라
프랭크 오하라는 미국의 시인, 작가, 큐레이터로, 뉴욕에서 활동하며 자전적인 시를 통해 예술계와 교류했고, 현대미술관에서 일하다가 사고로 사망했다. -
미국의 미술 평론가 -
트리나 로빈스
트리나 로빈스는 미국의 만화가, 작가, 저술가, 페미니스트 운동가로서 언더그라운드 코믹스에서 여성 만화가로 활동하며 여성 만화 제작 및 홍보에 기여했고, 여성 만화가의 역사를 다룬 논픽션 서적을 저술하는 등 업적을 인정받았다. -
1909년 출생 -
이병철
대한민국 기업인인 이병철은 삼성그룹의 창업주로, 무역업을 시작으로 제조업, 전자산업, 금융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여 한국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 -
1909년 출생 -
딘 러스크
딘 러스크는 미국의 정치인이자 외교관으로, 케네디 및 존슨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역임하며 쿠바 미사일 위기 외교적 해결 지지, 베트남 전쟁 미국 군사 개입 확대 옹호 등의 활동을 했다. -
브롱크스 출신 -
로라 니로
로라 니로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활동하며 독창적인 음악 스타일로 명성을 얻었고, 1997년 난소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페미니즘과 동물 권리 운동에 참여한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다. -
브롱크스 출신 -
리처드 헌트
리처드 헌트는 《세서미 스트리트》, 《머펫 쇼》, 《프래글 록》 등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한 미국의 인형극 배우, 연출가, 성우로, 짐 헨슨 사단의 일원으로서 활동하며 인기를 얻었으나 1992년 HIV/AIDS 관련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2. 어린 시절
1909년 뉴욕 브롱크스에서 중산층 유대인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세 아들 중 장남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즐겼으나, 이후 문학에 집중하게 되었다. 에라스무스 홀 고등학교, 마퀀드 남자 학교를 거쳐 시라큐스 대학교에서 1930년 우등으로 문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파이 베타 카파 학회 회원이었다.
대학 졸업 후, 이미 이디시어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던 그린버그는 프랑스어, 라틴어 외에 이탈리아어와 독일어를 독학했다. 이후 몇 년 동안 아버지의 건어물 사업을 위해 미국을 여행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번역가로 전향했다. 1934년에 결혼하여 이듬해 아들을 낳았으나, 그 다음 해에 이혼했다. 1936년에는 미국 연방 정부에서 공무원 관리국, 재향 군인 관리국, 1937년에는 세관 감정부 등에서 일했다.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여, 곧 소수의 작은 잡지와 문학 저널에 글이 실리기 시작했다.
3. 아방가르드와 키치
그린버그는 1939년 파티잔 리뷰에 처음 게재된 그의 에세이 "아방가르드와 키치"를 통해 시각 예술 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이 에세이에서 그는 진정한 아방가르드 예술은 계몽주의의 비판적 사고 혁명의 산물이며, 주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회의 문화 타락에 저항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키치를 산업화와 도시 노동 계급의 도시화의 산물로 정의했다.
그린버그에 따르면 아방가르드와 모더니즘은 소비 사회에서 비롯된 문화의 "덤빙 다운(dumbing down)"에 저항하는 수단이었다. 그는 대중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독일어 단어 "키치(kitsch)"를 사용했으며, 모더니즘은 철학과 마찬가지로 세상을 경험하고 이해하는 틀을 탐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방가르드와 키치"는 정치적 동기에서 쓰인 논문으로, 나치 독일과 소비에트 연방이 모더니즘을 탄압하고 국책 "아리아 미술"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대체한 것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4. 추상표현주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그린버그는 미국이 '선진 예술'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잭슨 폴록을 당대 최고의 화가로 칭송했으며, 빌럼 데 쿠닝, 한스 호프만, 바넷 뉴먼, 클리포드 스틸 등의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을 모더니스트 미술의 다음 단계로 이끄는 주요 인물로 평가했다. 1955년 에세이 "미국식 회화"에서 그린버그는 이들이 그림 평면의 "평면성"을 더욱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린버그는 각 예술 매체 고유의 특성을 살려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매체 특수성 개념을 명확히 제시했다. 회화의 경우, 르네상스 시대의 원근법과는 달리, 평면성이라는 2차원적 현실을 강조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전후 미국의 진보적 예술의 수호자가 되었다는 그린버그의 주장은, 추상표현주의를 문화적 프로파간다에 이용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5. 포스트 회화적 추상
1960년대에 들어,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추상표현주의가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비판하며, 주제나 작가성, 필치 등을 배제한 새로운 세대의 미술가들에게 주목했다. 그는 이러한 경향을 '포스트 회화적 추상'이라고 명명하고, 추상표현주의와 구별했다. 그린버그는 이 과정을 통해 캔버스의 진실성과 평면성을 드러내는 순수한 예술 형식에 도달했다고 주장했다.
포스트 회화적 추상은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나뉜다.
* [[하드 에지 회화]]: 엘스워스 켈리와 프랭크 스텔라로 대표되며, 형태와 가장자리의 긴밀한 관계성을 탐구했다. 특히 스텔라는 표면에 묘사된 형태와 지지체의 문자 그대로의 형태 사이의 관계를 탐구했다.
* [[색면 회화]]: 헬렌 프랭켄탈러와 모리스 루이스로 대표되며, 캔버스에 묽게 희석한 물감을 부어 순수하고 유동적인 색채를 추구했다. 케네스 놀랜드와 같은 예술가들은 두 흐름의 특징을 모두 사용하기도 했다.
포스트 회화적 추상은 일반적으로 자기 비판이라는 모더니즘의 변증법을 이어가는 것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