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인 박씨
1. 개요
태인 박씨는 신라 대장군 박욱의 후손으로, 고려 말 박거인이 태인으로 유배된 것을 시작으로 한다. 조선 시대에는 박연생이 세조의 왕위 찬탈에 반대하여 벼슬을 버리고 태인에 은거하면서 태인 박씨를 본관으로 삼았다. 이후 박연생의 후손들은 호남과 영남 지역에서 번성했으며, 1831년 일부 후손들이 밀양 박씨로 복관하면서, 현재는 태인 박씨와 밀성 박씨 돈재공파로 나뉘어 있다. 주요 인물로는 조선 시대 청백리 박수량, 독립운동가 박은용 등이 있으며, 문과 1명, 무과 3명 등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다. 집성촌은 전라남도 장성군, 나주시, 영광군, 광산군,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부안군, 경상북도 안동시, 봉화군 등에 형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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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인 박씨 -
박수량
조선 중기의 문신 박수량은 승문원 관직 생활을 시작으로 여러 요직과 고부군수, 함경도 경차관 등을 역임하며 청렴하고 강직한 관리로 이름을 알렸고 사후 청백리에 녹선되었으며 그의 청렴함을 기리는 장성 박수량 백비는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2. 역사
보첩에 전하는 상계는 신라 중엽 대장군 박욱(朴郁)이 요동독포사(遼東督捕使) 박난(朴瀾)을 낳았는데, 이후 24세까지는 기록이 전하지 않으며 도평의사 박언상(朴彦祥)으로부터 시작한다.
7대를 전하여 박거인(朴居人)이 고려 말에 벼슬을 사양하다가 인의현(현 태인)으로 유배되어 그곳에 살게 되었다. 박거인의 차자 박승봉(朴承奉)은 고려가 망하자 벼슬할 마음을 버리고 경서를 읽으며 지냈고, 그의 아들 박덕명(朴德明)은 장성으로 이주하여 터전을 마련하고 1402년(태종 2) 무과에 합격하여 우령부사정을 역임하였다.
단종 때 절충장군 충무시위사 대호군이었던 박연생(朴衍生)은 세조가 영의정이 되어 단종의 왕위를 빼앗으려 하자 벼슬을 버리고 호남으로 내려갔다. 1455년(단종 3) 세조가 왕위에 오른 후 여러 차례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고, 1458년(세조 4) 이등공신과 좌익원종공신의 녹훈을 내렸으나 끝까지 나아가지 않고 담양 땅 월산리에 은거하다 세상을 떠났다. 이때 호를 돈재(遯齋)라 하고, 본관을 태인으로 하였다. 이후 후손들은 태인을 본관으로 하고, 돈재공 박연생을 기세조로 하여 호남과 영남에서 번성하였다.
2.1. 상계
보첩에 전하는 상계는 신라 중엽 대장군 박욱(朴郁)이 요동독포사(遼東督捕使) 박난(朴瀾)을 낳았는데, 이후 24세까지는 기록이 전하지 않으며 도평의사 박언상(朴彦祥)으로부터 시작한다.
7대를 전하여 박거인(朴居人)이 고려 말에 벼슬을 사양하다가 인의현(현 태인)으로 유배되어 그곳에 살게 되었다.
박거인의 차자 박승봉(朴承奉)은 고려가 망하자 벼슬할 마음을 버리고 경서를 읽으며 서산과 율리를 사모하며 이조(李朝) 섬기기를 부끄러워하자 가까운 사람들이 의사(義士)라 불렀다.
박승봉의 아들 박덕명(朴德明)은 처음으로 장성 고을 소곡(小谷, 현 황룡면 아곡리 하남)으로 이주하여 터전을 마련하였는데, 1402년(태종 2) 무과에 합격하여 우령부사정을 역임하고, 별세하자 고을 호산마을 자좌에 장사되었다.
2.2. 기세조
단종 때 절충장군 충무시위사 대호군이었던 박연생(朴衍生)은 세조가 영의정이 되어 단종의 왕위를 빼앗으려 하자 벼슬을 버리고 호남으로 내려갔다.
1455년(단종 3) 세조가 왕위에 오른 후 여러 차례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고, 1458년(세조 4) 이등공신과 좌익원종공신의 녹훈을 내렸으나 끝까지 나아가지 않고 담양 땅 월산리에 은거하다 세상을 떠났다. 이때 호를 돈재(遯齋)라 하고, 본관을 태인(泰仁)으로 하였다.
이후 후손들은 태인(泰仁)을 본관으로 하고, 돈재공 박연생(朴衍生)을 기세조로 하여 호남과 영남에서 번성하였다.
2.3. 분파
중시조 박현손의 아들 박수온, 박수량, 박수공, 박수검 4형제가 가문을 크게 일으켰다. 박수량은 청백리로 이름을 떨쳤으며 정혜공파의 파조가 되었다. 박수공은 독행군자로 일컬어졌으며 목우당파의 파조가 되었다. 박수온의 손자 박상의는 풍수지리에 정통하였으며 백우당파의 파조가 되었다. 또 다른 손자 박상지는 학문으로 벼슬을 하였으며 눌헌공파의 파조가 되었다. 박상의의 손자 박행중은 송시열의 문인으로, 태인 박씨 족보를 발간하였으며 매헌공파의 파조가 되었다.
3. 본관
태인(泰仁)은 전라북도 정읍시에 속해 있는 지명이다. 1409년(태종 9) 태산현(泰山縣)과 인의현(仁義縣)을 합하여 태인현(泰仁縣)이라 하였다. 지금의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을 뜻한다.
태산현은 본래 백제의 대시산현(大尸山縣)을 신라 경덕왕이 태산(太山)으로 고쳐 대산(大山)·태산(泰山) 등으로 불리다가 고려 공민왕 때 군으로 승격되었으며, 인의현은 백제 때 빈굴(賓屈)·빈성(斌城)·부성(賦城) 등으로 불리다가 신라 때 무성(武城)으로 고쳤다가 고려 때 인의(仁義)로 고쳤다. 1409년(태종 9) 태인현이 되고, 1895년(고종 32) 전주부 태인군으로 승격되었으나, 1914년 정읍군에 합해져 태인면이 되었다.
4. 본관 양분
1453년 계유정난 이후 돈재공 박연생이 본관을 태인으로 하였다.
1687년 8대손 매헌 박행중(朴行重)이 박연생 자손만으로 합보한 태인 박씨 족보를 발간하였는데, 1세조를 박연생으로 하고 중시조는 손자 박현손으로 하였다.
이후 400여 년 동안 본관을 태인으로 하여 오다가 1831년 박수량의 9세손 박규혁 등이 중심이 되어 예조에 상소하여 본관을 밀성으로 복관하였다.
돈재공 박연생의 종손 참봉 박수온의 후손들 중 백우당 박상의 후손들을 중심으로 한 후손들은 조상의 뜻을 받들어 현재에도 여전히 본관을 태인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복관 상소파인 『밀성 박씨 돈재공파』와 잔류파인 『태인 박씨』가 공존하고 있다.
이들은 한 본관으로부터 분적된 것이 아니라, 한 조상으로부터 후손들끼리 양분되어 본관을 달리하고 있을 뿐이다.
5. 주요 인물
=== 고려 ===
* 박승봉(朴承奉, ?~?): 호는 의재(義齋). 지기가 청백하고 위엄이 출중, 고려가 망하자 절개를 지켜 은거하며 벼슬을 하지 않아 고려 의사(義士)로 칭해짐.
=== 조선 ===
* 박연생(朴衍生): 단종 때 절충장군 충무시위사 대호군이었으나,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빼앗으려 하자 벼슬을 버리고 호남으로 낙향. 세조가 여러 차례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고 담양 땅 월산리에서 은거하다 세상을 떠남. 호는 돈재(遯齋)이며, 이때 본관을 태인(泰仁)으로 함.
* 박수온(朴守溫): 경학으로 천거, 선교랑 경기전 참봉, 후손 고창군 거주.
* 박수량(朴守良): 조선 중종 문과 급제, 좌찬성, 한성부 판윤, 의정부 우참찬, 지중추부사, 청백리. 정혜공파 파조.
* 박수공(朴守恭): 호 목우당(牧友堂), 증가선대부 참찬, 독행군자(篤行君子)라 일컬어짐. 목우당파 파조.
* 박수검(朴守儉): 참봉, 후손 광산군 삼도면 거주.
=== 근·현대 ===
* 박은용(朴殷容, 1880~1949): 독립운동가, 1919년 파리장서운동에 서명하고 독립군 자금 모집 활동.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됨.
* 박권상(朴權相, 1929~2014): 대한민국의 KBS 사장을 지낸 언론인.
* 박래호(朴來鎬, 1943~): 호는 노강(蘆江). 성균관 부관장, 장성 필암서원 선비학당 학장, (사)장성춘추회 회장을 역임.
5.1. 고려
박승봉(朴承奉, ?~?)은 박거인의 아들이며, 호는 의재(義齋)이다. 지기가 청백하고 위엄이 출중하였으며, 고려가 망하자 절개를 지켜 은거하며 벼슬을 하지 않아 고려 의사(義士)로 칭해졌다.
5.2. 조선
박연생(朴衍生)은 단종 때 절충장군 충무시위사 대호군으로 있었는데, 세조가 영의정이 되어 단종의 왕위를 빼앗으려 하자 사위 이석손과 함께 벼슬을 버리고 호남 땅으로 돌아갔다.
1455년(단종 3) 세조가 왕위에 오른 후 여러 차례 불렀으나 병을 이유로 나가지 않았으며, 1458년(세조 4) 이등공신의 녹훈을 내리고 또다시 동궁 때에 은혜가 있다 하여 좌익원종공신의 녹훈을 내렸으나, 끝까지 나아가지 않고 담양 땅 월산리 사위 이석손의 집에 숨어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때 호를 돈재(遯齋)라 하고, 본관을 태인(泰仁)으로 하였다.
이후 후손들이 관향을 태인(泰仁)으로 하고, 돈재공 박연생(朴衍生)을 기세조로 하여 호남과 영남에서 번성하였다. 중시조는 박연생의 손자 박현손(朴賢孫)이다.
박현손의 아들 4형제는 가문을 크게 일으켰다.
박수온의 손자 백우당 박상의(朴尙義)는 마음씨와 행동이 독실하고 아우에게 우애하는 것이 옛날 중국의 설포(薛包)와 같았으며 천문지리의학에 정통하여 사재감주부를 역임하였다. 손자 박상지(朴尙智)도 행실이 바르다 하여 여러 차례 천거되어 군자감 봉사와 예빈시제검을 지냈다.
박수량(朴守良)은 문과에 급제하여 한성판윤·중추부지사를 역임하고 문학과 예율과 효제와 청백으로 이름을 드러냈다. 그의 후손들의 주요 관직은 다음과 같다.
| 인물 | 관직 |
|---|---|
| 박사우(朴思愚) | 진사, 진안현감 |
| 박사노(朴思魯) | 봉사 |
| 박상경(朴尙敬) | 창평현령 |
| 박상근(朴尙謹) | 거창현감 |
| 박세대(朴世大) | 학자로 이름을 알림 |
박상의(朴尙義)의 손자 매헌 박행중(朴行重)은 우암 송시열의 문인으로 행동이 독실하고 예의를 좋아하였으며 송암 기정익, 각재 김기하와 도의적인 교분을 맺었다. 박상지(朴尙智)의 아들 박윤흠(朴允欽)도 학행으로 제용감 봉사를 지냈다.
5.3. 근·현대
* 박은용(朴殷容, 1880~1949): 족보명은 박위용(朴爲容)이다. 독립운동가로, 1919년 파리장서운동에 서명하고 기산도 등과 함께 독립군 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 박권상(朴權相, 1929~2014): 대한민국의 KBS 사장을 지낸 언론인이다.
* 박래호(朴來鎬, 1943~): 호는 노강(蘆江)이다. 성균관 부관장, 장성 필암서원 선비학당 학장, (사)장성춘추회 회장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