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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올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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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토니 올리바는 1938년 쿠바에서 태어나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 선수로 활동했다. 1961년 미네소타 트윈스와 계약하며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1964년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과 타격왕을 동시에 수상했으며, 통산 3번의 타격왕을 차지했다. 1966년에는 골드글러브를 수상했고, 1964년부터 1971년까지 8년 연속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선수 은퇴 후에는 트윈스 코치로 활동했으며, 1991년 그의 등번호 6번은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2021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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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올리바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토니 올리바 1965
1965년 미네소타 트윈스 시절 올리바
포지션우익수 / 지명 타자
타석/투구좌타/우투
출생일1938년 7월 20일
출생지쿠바 피나르델리오
프로 데뷔MLB / 1962년 9월 9일
마지막 경기MLB / 1976년 9월 29일
선수 경력미네소타 트윈스 (1962–1976)
코치 경력미네소타 트윈스 (1976 - 1977, 1985 - 1991)
명예의 전당 헌액2022년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 (골든 데이스 에라 위원회)
수상 경력
올스타 선정8회 (1964–1971)
월드 시리즈 우승2회 (1987, 1991)
AL 올해의 신인상1964년
골드 글러브 상1966년
AL 타격왕3회 (1964, 1965, 1971)
영구 결번미네소타 트윈스 No. 6
명예의 전당미네소타 트윈스 명예의 전당
통계 (MLB)
타율.304
홈런220
타점947

2. 초기 생애

토니 올리바는 1938년 쿠바 피나르델리오 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담배 공장 노동자이자 전직 준프로 야구 선수로, 올리바에게 야구를 가르쳐 "피나르델리오 최고의 타자"로 만들었다.[5][6] 올리바는 가족 농장 근처 공터에서 아버지, 형제, 이웃들과 함께 매주 야구를 했다.[5][6]

2. 1. 쿠바 시절

1938년 쿠바 피나르델리오 주에서 태어났다. 가족 농장 근처 공터에서 아버지, 형제, 이웃들과 함께 매주 야구를 했다. 올리바의 아버지는 담배 공장에서 일하며 최고의 시가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했고, 전직 준프로 선수이기도 했다. 그는 토니에게 야구를 가르쳐 "피나르델리오 최고의 타자"가 되도록 도왔다.[5][6] 미네소타 트윈스의 스카우트가 이 젊은 선수를 눈여겨보고 그를 프로 선수로 뛰게 하려고 미국으로 데려왔다. 토니는 부모님과 아홉 명의 형제자매를 떠나는 것을 꺼려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가 미국에서 "부유하고 유명해지도록" 격려했다.[6]

2. 2. 미국 진출

미네소타 트윈스의 스카우트가 이 젊은 선수를 눈여겨보고 프로 선수로 뛰게 하려고 미국으로 데려왔다. 토니 올리바는 부모님과 아홉 명의 형제자매를 떠나는 것을 꺼려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가 미국에서 "부유하고 유명해지도록" 격려했다.[6] 세미프로 야구 선수였던 아버지의 권유로 MLB미네소타 트윈스 스카우트인 조 캠브리아와 1961년 2월에 계약을 맺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3. 프로 야구 선수 경력

토니 올리바는 1964년 미네소타 트윈스에서 데뷔하여 거의 만장일치로 아메리칸 리그(AL) 신인상을 수상했고, 올스타전에 선출되었다.[10] AL 타율 1위(.323)를 기록하여 신인상과 AL 타격왕을 동시에 차지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2] 안타(217개), 2루타(43개), 장타(84개), 총 루타(374개), 득점(109개), 득점 창출(133개)에서도 AL 1위를 차지했다.[2]

1965년에도 .321의 타율로 2년 연속 AL 타격왕을 차지했는데, 이는 야구 역사상 최초의 기록이었다. 당시 AL에서 .300 이상의 타율을 기록한 선수는 칼 야스트렘스키(.312)와 빅 다발로(.301)뿐이었다. 16홈런, 98타점, 107득점을 기록했으며, 안타(185개), 득점 창출(108개), 희생 플라이(10개)에서 AL 1위를 차지했다. MVP 투표에서는 팀 동료 베르사유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1966년, .307의 타율로 프랭크 로빈슨에 이어 AL 타율 2위를 기록했지만, 3년 연속으로 AL 안타(191개) 1위를 차지했다. 유일한 골드 글러브 상을 수상했고, MVP 투표에서 6위를 기록했다. 1966년 6월 9일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와의 경기에서는 하먼 킬러브루, 돈 민처, 리치 롤린스, 베르사유와 함께 한 이닝에 5개의 홈런을 쳐 MLB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다.[11]

1967년 다소 부진한 시즌을 보낸 후, 1968년 부상으로 인해 재기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1969년 .309의 타율로 AL 3위를 차지하며 다시 폼을 되찾았다. 1970년에는 .325의 타율로 AL 3위를 기록했고, 5번째로 AL 안타(204개) 1위를 차지하며 MVP 투표에서 부그 포웰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1971년, .337의 타율로 세 번째 AL 타격왕을 차지하고 장타율(.546)에서 리그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심각한 무릎, 다리, 어깨 부상으로 인해 남은 선수 생활에 지장을 받았다.[13] 1972년에는 단 10경기에 출전한 후 수술을 받았다.

1973년 아메리칸 리그에 지명타자 제도가 도입되면서, 트윈스의 지명타자로 활약하게 되었다. 1973년 4월 6일, 리그 경기에서 DH로 첫 홈런을 쳤다.[14] 1973년 7월 3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경기에서 3개의 홈런을 친 최초의 DH가 되었다.[15][16] 1976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통산 타율 .304, 220홈런, 947타점을 기록했다. 3번의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1964년, 1965년, 1971년)을 차지했고, 8번의 올스타(1964년~1971년)에 선정되었으며, 1966년에는 골드 글러브를 1회 수상했다.[2]

통산 성적[2]
연도경기타수득점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도루도루 실패볼넷삼진타율출루율장타율OPS실책수비율
151,6766,3018701,917329482209478655448645.304.353.476.83061.975


3. 1. 마이너 리그 시절

올리바는 1961년 봄에 미국에 도착했다. 그 해 스프링 트레이닝 기간 동안 트윈스의 마지막 세 경기에 출전하여 10번의 타석에서 7개의 안타를 기록했다. 그러나 트윈스는 이미 마이너 리그 로스터를 채웠고, 올리바를 방출했는데, 일부에서는 그의 좋지 않은 외야 수비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5][6] 갈 곳이 없었던 올리바는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으로 가서 미네소타 트윈스 클래스 A 팜 팀에서 뛰는 친구와 함께 훈련했다. 그의 빠른 손목, 긴 신체, 그리고 "길들여지지 않은 힘"은 샬럿 단장 필 하우저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그는 트윈스에 전화하여 잠재적인 스타를 재계약하도록 설득했다.

올리바가 미국에 도착했을 때, 메이저 리그 스카우트에게 더 어리게 보이기 위해 그의 동생 페드로 주니어(1941년생)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반영하도록 서류를 고쳤다. 그래서 많은 신문들이 21세의 토니를 18세의 동생으로 보도했다.[5][7] 이 이름이 굳어져 올리바는 1990년대 후반에 공식적으로 이름을 ''토니 페드로 올리바''로 변경했다.[7]

트윈스는 올리바를 애팔래치아 리그의 D급 버지니아주 와이츠빌 트윈스에 배정했고, 그는 64경기에 출전하여 .410의 타율로 리그를 이끌었지만, .854의 낮은 수비율을 기록했다.[8] 푸에르토리코 리그에서 겨울 리그 타율 2위를 올랜도 세페다에 이어 기록한 후, 올리바는 싱글 A 사우스 애틀랜틱 리그의 샬럿으로 보내져 127경기에 출전하여 .350의 타율, 17개의 홈런, 93타점을 기록했다. 그는 9경기를 남겨두고 메이저 리그로 콜업되었고, 1962년 9월 9일에 트윈스에서 데뷔하여 12번의 타석에서 .444의 맹타를 휘둘렀다.[2]

1963년, 그는 트윈스의 스프링 트레이닝에 초청받았고, 구단은 좌타자인 올리바가 우타 거포 밥 앨리슨과 하먼 킬브루의 균형을 맞춰주기를 희망했다.[9] 그곳에서 그는 팀 동료이자 같은 쿠바 출신인 유격수 조일로 베르사예스와 친구가 되었고, 베르사예스는 올리바가 타격 능력, 속도, 강한 어깨의 유사성을 들어 올리바가 "새로운 타이 콥"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9] 그러나 올리바는 트윈스의 메이저 리그 팀에 합류하지 못하고 퍼시픽 코스트 리그의 구단 클래스 AAA 제휴팀인 댈러스-포트워스 레인저스로 배정되었다. 실망한 올리바는 시즌 초반 부진하여 처음 두 달 동안 .235의 타율을 기록했다.[9] 그러나 그는 회복하여 마이너 리그 시즌을 .304의 타율, 23개의 홈런, 74타점으로 마쳤다.[8] 이로 인해 그는 1963년 메이저 리그 시즌의 마지막 몇 경기에 콜업되었다. 그는 다시 한 번 맹타를 휘둘러 단 7번의 타석에서 .429의 타율을 기록했다.

3. 2. 메이저 리그 시절

토니 올리바는 1964년 미네소타 트윈스에서 데뷔하여 거의 만장일치로 아메리칸 리그(AL) 신인상을 수상했다.[10]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올스타전에 선출되었으며, AL 타율 1위(.323)를 기록하여 신인상과 AL 타격왕을 동시에 차지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2] 그는 안타(217개), 2루타(43개), 장타(84개), 총 루타(374개), 득점(109개), 득점 창출(133개)에서도 AL 1위를 차지했다.[2]

1965년에도 올리바는 .321의 타율로 2년 연속 AL 타격왕을 차지했는데, 이는 야구 역사상 최초의 기록이었다. 당시 AL에서 .300 이상의 타율을 기록한 선수는 칼 야스트렘스키(.312)와 빅 다발로(.301)뿐이었다. 올리바는 16홈런, 98타점, 107득점을 기록했으며, 안타(185개), 득점 창출(108개), 희생 플라이(10개)에서 AL 1위를 차지했다. MVP 투표에서는 팀 동료 베르사유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1966년, 올리바는 .307의 타율로 프랭크 로빈슨에 이어 AL 타율 2위를 기록했지만, 3년 연속으로 AL 안타(191개) 1위를 차지했다. 또한, 유일한 골드 글러브 상을 수상했고, MVP 투표에서 6위를 기록했다. 1966년 6월 9일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와의 경기에서는 하먼 킬러브루, 돈 민처, 리치 롤린스, 베르사유와 함께 한 이닝에 5개의 홈런을 쳐 MLB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다.[11]

1967년 다소 부진한 시즌을 보낸 후, 1968년 부상으로 인해 재기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1969년 .309의 타율로 AL 3위를 차지하며 다시 폼을 되찾았다. 1970년에는 .325의 타율로 AL 3위를 기록했고, 5번째로 AL 안타(204개) 1위를 차지하며 MVP 투표에서 부그 포웰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1971년, 올리바는 .337의 타율로 세 번째 AL 타격왕을 차지하고 장타율(.546)에서 리그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심각한 무릎, 다리, 어깨 부상으로 인해 남은 선수 생활에 지장을 받았다.[13] 1972년에는 단 10경기에 출전한 후 수술을 받았다.

1973년 아메리칸 리그에 지명타자 제도가 도입되면서, 올리바는 트윈스의 지명타자로 활약하게 되었다. 1973년 4월 6일, 리그 경기에서 DH로 첫 홈런을 쳤다.[14] 1973년 7월 3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경기에서 3개의 홈런을 친 최초의 DH가 되었다.[15][16]

올리바는 1976년 현역에서 은퇴할 때까지 지명타자로 활약했다. 은퇴 후에는 트윈스의 코치로 활동하며 1987년 타격 코치, 1991년 벤치 코치로 월드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3. 2. 1. 주요 기록

통산 타율 .304, 220홈런, 947타점을 기록했다. 3번의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1964년, 1965년, 1971년)을 차지했고, 8번의 올스타(1964년~1971년)에 선정되었으며, 1966년에는 골드 글러브를 1회 수상했다.[2]

통산 성적[2]
연도경기타수득점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도루도루 실패볼넷삼진타율출루율장타율OPS실책수비율
151,6766,3018701,917329482209478655448645.304.353.476.83061.975



연도별 타격 성적
연도소속팀경기타수득점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도루도루 실패볼넷삼진타율출루율장타율OPS
1962MIN91293410053000030020.444.583.5561.139
19637770300031000000020.429.429.429.857
19641617196721092174393237494126333486689 .323.359.557.916
1965149647576107185405162839819921055124648 .321.378.491.870
196615967762299191327253128713726421057216.307.353.502.854
19671466155577616134617258831131544128619.289.347.463.810
196812852847054136245182246810915451676110.289.357.477.833
19691536926379719739424316101101325451236610.309.355.496.851
197015767462896204367233231075414381236716.325.364.514.878
1971126518487731643032226681410425824421 .337.369 .546.915
197210302819100101000020051.321.367.357.724
19731466245716316620016234922104451444413.291.345.410.754
19741274944594313116213190570124271123114.285.325.414.739
197513151545546123100131725801064115134510.270.344.378.722
19766712812332630132160001212132.211.234.260.495
MLB:15년16766880630187019173294822030029478655145744813159645139.304.353.476.830


  • 각 연도의 '''굵은 글씨'''는 리그 최고
  • 수위 타자: 3회 (1964년, 1965년, 1971년)

3. 3. 코치 경력

2010년 사진

4. 수상 및 영예

Tony Oliva영어는 1964년 아메리칸 리그(AL) 신인상을 수상했다. 20표 중 19표를 얻어 거의 만장일치로 선정되었다.[10] 신인 시절 첫 올스타전에 선출되었지만, 4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AL 타율 1위(.323)를 기록하여 신인상과 AL 타격왕을 모두 수상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10] 그는 또한 AL에서 안타(217개), 2루타(43개), 장타(84개), 총 루타(374개), 득점(109개), 득점 창출(133개)에서 1위를 차지했다.[2] 올리바의 총 루타 374개는 신인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다.

1965년, .321의 타율로 두 번째 AL 타격왕을 차지하며, 2년 연속 우승은 다시 한 번 야구 역사상 최초였다. 당시 AL 타자 중 .300을 넘긴 선수는 칼 야스트렘스키(.312)와 빅 다발로(.301)뿐이었다. 1966년에는 유일한 골드 글러브상을 수상했다.[11] 1971년에는 .337의 타율로 세 번째 AL 타격왕을 차지했고, 장타율(.546)에서 리그 1위를 차지했다.

Oliva영어는 선수 은퇴 후 미네소타 트윈스의 코치로 활동했다. 1987년 타격 코치, 1991년 벤치 코치로 미네소타 트윈스의 월드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1991년 7월 14일, 올리바의 등번호 6번은 미네소타 트윈스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32] 2000년에는 미네소타 트윈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42]

2022년, Oliva영어는 베테랑 위원회 선정을 통해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43]

올리바의 메이저 리그 수상 및 영예는 다음과 같다:[2]

수상 및 영예횟수날짜
아메리칸 리그 신인상11964
아메리칸 리그 올스타81964–1971
아메리칸 리그 골드 글러브(외야수)11966
아메리칸 리그 이주의 선수11974년 6월 30일


5. 플레이 스타일

올리바는 투수력이 강세를 보이던 시대에 뛰어난 타격 기록을 남겼다. 통산 타율 0.304, 220홈런, 947타점, 870 득점, 1,917 안타, 329 2루타, 48 3루타, 448 볼넷, 86 도루를 기록했으며, 1,676 경기에 출전했다.[2] 조 디마지오가 세운 이전 기록(6회)을 넘어, 첫 8시즌 동안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또한, 강한 어깨를 가진 골드 글러브 외야수였으며, 아메리카 리그 우익수 부문에서 6번의 아웃, 3번의 더블 플레이, 2번의 보살을 기록했다.

메이저 리그 경력에서 대타로 출전했을 때, 타율 0.340 (94타수 32안타), 2홈런, 27타점을 기록하며 매우 효과적인 모습을 보였다.[28]

수위 타자 경쟁의 단골이었지만, 엄청난 배드 볼 히터로 알려져 있었다.[44] 수뇌부로부터 "나쁜 공을 치지 않고 선구안을 갈고 닦으면 타율 4할도 꿈이 아니다"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지만, 악구를 치는 것만이 자신의 타격이라고 믿으며, 생애 동안 변하지 않았다.

1991년, 명예의 전당 헌액자인 캣피시 헌터는 "그는 어떤 공이든, 어디든 칠 수 있었고, 약점이 없었다"라며 올리바를 자신이 상대했던 가장 까다로운 타자로 꼽았다.[29] 2006년, 사이 영 상 수상자인 딘 찬스는 올리바와 칼 야스트렘스키를 자신의 선수 경력에서 가장 상대하기 어려웠던 두 타자로 꼽았다.[30] 2021년, 세 번의 올스타에 선정되었던 루이스 티안트는 올리바를 자신의 선수 경력에서 가장 상대하기 어려웠던 타자라고 썼다.[31]

6. 개인 생활

올리바는 1960년대 중반에 고데트(듀보이스)와 교제를 시작했다. 1968년 사우스다코타주 히치콕에서 결혼하여 미네소타주 블루밍턴에 정착했다. 그는 현재 1972년에 구입한 집에서 살고 있으며, 네 자녀 모두 부모로부터 약 16.09km 이내에 거주하고 있다.[5][32] 2015년 기준으로 올리바는 네 명의 손주도 두고 있다.[33]

1961년 미국으로 건너갈 때, 올리바는 1941년에 태어난 동생 페드로 주니어의 여권을 사용했으며, 서류는 페드로 주니어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나타내도록 위조되었다. 그러나 이름은 계속 사용되었고, 올리바는 1990년대 후반에 토니 페드로 올리바(Tony Pedro Oliva)로 정식 개명했다.[45][46]

참조

[1] 간행물 2020-01-23
[2] 웹사이트 Tony Oliva Statistics and History https://www.baseball[...] 2024-09-05
[3] 웹사이트 Tony Oliva: Minnesota Sports Hall of Fame inductee, Class of 1988 https://www.startrib[...] Star Tribune 2019-12-09
[4] 웹사이트 Oliva's legacy not just with Twins, but Minnesota https://www.mlb.com/[...] 2022-07-31
[5] 웹사이트 Oliva a legend rooted in Minnesota http://www.startribu[...] 2011-07-27
[6] 서적 Heroes of the Major Leagues https://archive.org/[...] Random House
[7] 웹사이트 Tony Oliva FAQ http://www.tonyoliva[...]
[8] 웹사이트 Tony Oliva Statistics http://www.thebaseba[...] 2007-01-14
[9] 문서 Peters (134–135)
[10] 서적 The American League Grosset & Dunlap
[11] 웹사이트 'Retrosheet – Box score: Minnesota Twins 9, Kansas City Athletics 4. Game Played on Thursday, June 9, 1966 (N) at Metropolitan Stadium' http://www.retroshee[...] Retrosheet.org 2011-07-27
[12] 웹사이트 1968 American League Batting Leaders https://www.baseball[...]
[13] 간행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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