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연수
1. 개요
파연수는 전한 시대의 관료로, 승상사직, 집금오, 위위를 역임했다. 원강 2년(기원전 64년) 조광한이 위상의 부인을 모함한 사건에서 조광한을 탄핵하여 주살하게 했으며, 오봉 2년(기원전 56년)에는 소망지를 탄핵하여 태자태부로 좌천시켰다. 이후 어사대부로 승진했으나 3년 후 병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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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3년 사망 -
전한 원제
전한의 제11대 황제인 원제는 유교를 숭상했으나 환관의 발호와 파벌 정치로 국정을 혼란에 빠뜨렸고 흉노와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왕소군을 시집보냈으며 아들 유오가 성제로 즉위했다. -
한나라의 정치인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
한나라의 정치인 -
석편
석편은 전한 시대의 관료로, 기원전 138년에 내사에 임명되어 석경의 뒤를 이어 내사를 지냈으며, 정당시가 그의 후임자이다. -
중국에 관한 -
신도가
신도가는 전한 시대의 무관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과 영포의 난에 참여하고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승상에 올랐으며, 청렴한 성품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등통을 처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을 맞이하여 절후의 시호를 받았다. -
중국에 관한 -
카자흐인
카자흐인은 15세기 카자흐 칸국 건국 이후 명칭이 사용된 튀르크계 중앙아시아 북부 유목민족으로, "자유로운 자"를 뜻하는 카자흐라는 명칭은 권위에 저항하는 집단을 지칭하는 용어에서 유래했으며, 카자흐 초원을 중심으로 실크로드 무역을 통해 번성했고, 유목 생활과 튀르크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현재 여러 국가에 디아스포라가 거주하고 있다.
2. 생애
예전에, 승상 위상의 총애를 받은 계집종이 죄를 지어 자살한 일이 있었다. 이 일을 들춰낸 경조윤 조광한은 위상의 부인이 계집종을 시기하여 죽였다고 고발하고, 몸소 병졸을 대동하고 승상부에 쳐들어가 위상의 부인을 문초하고 종들을 연행하였다. 위상은 조광한이 부인을 무고하였다고 선제에게 글을 올렸고, 정위 우정국이 알아본 결과 정말로 위상의 부인은 살인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승상사직 파연수는 조광한을 탄핵하였고, 결국 조광한은 주살되었다. 원강 2년(기원전 64년) 겨울의 일이었다.
오봉 2년(기원전 56년), 승상 병길의 병이 위독해졌는데, 평소 병길을 백안시하던 어사대부 소망지는 문병도 하지 않고 그를 비난하였다. 승상사직 파연수는 소망지를 탄핵하였고, 결국 소망지는 태자태부로 좌천되었다.
이후로도 계속 승상사직을 지낸 파연수는 집금오·위위를 역임하였고, 건소 3년(기원전 36년) 어사대부로 승진하였으나 3년 후 병으로 죽었다. 대신들은 후임자로 풍야왕을 추천하였으나, 원제는 장담을 임명하였다.
2.1. 조광한 사건
원강 2년(기원전 64년) 겨울, 경조윤 조광한은 승상 위상의 부인이 계집종을 시기하여 죽였다고 고발하고, 병졸을 대동하여 승상부를 쳐들어가 위상의 부인을 문초하고 종들을 연행하였다. 위상은 조광한이 부인을 무고하였다고 선제에게 글을 올렸고, 정위 우정국이 조사한 결과 위상의 부인은 살인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승상사직 파연수는 조광한을 탄핵하였고, 결국 조광한은 주살되었다.
2.2. 소망지 사건
원강 2년(기원전 64년) 겨울, 승상 위상의 총애를 받은 계집종이 죄를 지어 자살한 일이 있었다. 경조윤 조광한은 위상의 부인이 계집종을 시기하여 죽였다고 고발하고, 병졸을 대동하여 승상부를 쳐들어가 위상의 부인을 문초하고 종들을 연행하였다. 위상은 조광한이 부인을 무고하였다고 선제에게 글을 올렸고, 정위 우정국이 조사한 결과 위상의 부인은 살인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승상사직 파연수는 조광한을 탄핵하였고, 결국 조광한은 주살되었다.
오봉 2년(기원전 56년), 승상 병길이 병이 위독해졌는데, 평소 병길을 백안시하던 어사대부 소망지는 문병도 하지 않고 그를 비난하였다. 승상사직 파연수는 소망지를 탄핵하였고, 결국 소망지는 태자태부로 좌천되었다.
2.3. 이후 행적
원강 2년(기원전 64년) 겨울, 승상 위상의 총애를 받은 계집종이 죄를 지어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을 들춰낸 경조윤 조광한은 위상의 부인이 계집종을 시기하여 죽였다고 고발하고, 병졸을 이끌고 승상부에 쳐들어가 위상의 부인을 문초하고 종들을 연행하였다. 위상은 조광한이 부인을 무고하였다고 선제에게 상소하였고, 정위 우정국이 조사한 결과 위상의 부인은 살인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승상사직이었던 파연수는 조광한을 탄핵하였고, 결국 조광한은 주살되었다.
오봉 2년(기원전 56년), 승상 병길의 병이 위독해졌는데, 평소 병길을 백안시하던 어사대부 소망지는 문병도 하지 않고 그를 비난하였다. 파연수는 소망지를 탄핵하였고, 소망지는 태자태부로 좌천되었다.
이후로도 계속 승상사직을 지낸 파연수는 집금오, 위위를 역임하였고, 건소 3년(기원전 36년) 어사대부로 승진하였으나 3년 후 병으로 죽었다. 대신들은 후임자로 풍야왕을 추천하였으나, 원제는 장담을 임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