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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 드 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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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트 드 베르는 점토나 왁스로 원형을 만들고, 내화 석고로 주형을 제작한 다음, 다양한 색상의 유리 가루를 채워 넣어 가마에서 소성한 후 연마하여 완성하는 유리 공예 기법이다. 도자기와 유리의 장점을 융합한 방식으로, 섬세하고 표현력 있는 작품 제작이 가능하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시대부터 존재했으나, 불어 유리 기법의 발달로 쇠퇴했다가 아르 누보 시대에 부활했다. 이후 여러 작가들을 통해 발전했지만, 기법의 비밀 유출로 인해 다시 쇠퇴했다. 현재는 현대 유리 공예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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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 드 베르

2. 제법 및 특징

파트 드 베르는 점토왁스 등으로 원형을 만들고, 내화 석고 등으로 주형을 제작한 후, 유리 가루 반죽을 채워 넣어 가마에서 소성하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도자기와 유리의 장점을 모두 갖춘 제작 방법으로 여겨진다.[1][2] 취입 유리로는 만들기 어려운 섬세한 표현이 가능하며,[3] 취입 유리나 유리구슬에 비해 비교적 안전하게 제작할 수 있지만, 많은 수고와 시간, 섬세한 기술이 요구된다.

2. 1. 제작 과정

점토왁스 등으로 작품의 원형이 되는 소상을 만들고, 그것을 바탕으로 내화 석고 등으로 주형을 만든다. 그 후 다양한 색상의 유리 가루에 풀을 더해 반죽한 것(베르)을 채워 넣고, 가마에서 소성한다. 이후 식힌 다음 주형에서 꺼내어 표면을 연마하여 마무리한다. 이러한 제작 방식은 도자기와 유리의 장점을 모두 갖춘 중간적인 방법으로 여겨진다.[1][2]

주형에 채워 넣는 유리 가루는, 그 목적에 맞춰 입자의 굵기나 색상의 종류·농담 등을 자유롭게 배합할 수 있다. 더욱이 세부적인 부분까지 자유자재로 색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취입 유리로는 만들 수 없는 극히 섬세하고 표현력이 풍부한 작품 제작이 가능하다.[3]

취입 유리나 유리구슬 등의 "핫 워크"라고 불리는 기법과는 달리, 조형 과정에서 뜨겁게 녹은 유리를 다루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하게 제작할 수 있다. 반면, 원형과 주형 제작, 유리 가루 채워넣기와 소성, 연마 등 많은 수고와 시간이 소요되며, 미묘하고 섬세한 기술이 요구된다.

2. 2. 장점 및 특징

파트 드 베르는 도자기와 유리의 장점을 모두 갖춘 제작 방법으로 여겨진다.[1][2] 유리 가루는 입자의 굵기, 색상의 종류와 농담 등을 자유롭게 배합할 수 있고, 세부적인 부분까지 색을 낼 수 있다. 따라서 취입 유리로는 만들기 어려운 섬세하고 표현력이 풍부한 작품을 제작할 수 있다.[3]

취입 유리나 유리구슬 등 뜨겁게 녹은 유리를 다루는 "핫 워크" 기법과 달리, 파트 드 베르는 조형 과정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원형과 주형 제작, 유리 가루 채워넣기, 소성, 연마 등 많은 수고와 시간이 필요하며, 섬세한 기술이 요구된다.

2. 3. 단점

취입 유리나 유리구슬 등 "핫 워크"라고 불리는 기법과는 달리, 조형 과정에서 뜨겁게 녹은 유리를 다루지 않아 비교적 안전하게 제작할 수 있다. 반면, 원형과 주형 제작, 유리 가루 채워넣기와 소성, 연마 등 많은 수고와 시간이 소요되며, 미묘하고 섬세한 기술이 요구된다.[1][2][3]

3. 역사

파트 드 베르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 시대부터 금속 주조 기술을 응용하여 만들어졌다.[4] 그러나 고대 로마 시대에 더 크고 쉬운 대량 생산이 가능한 불어 유리 기법이 발명되면서 쇠퇴하여 실전되었다.[6] 이후 아르 누보 유행과 함께 1885년경 프랑스 도예가 앙리 크로에 의해 부활하였으나, 작가들이 비법을 전수하지 않아 다시 사라지게 되었다.

3. 1. 고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 시대부터 금속 주조 기술을 응용한 "주조 유리"로 전해져 내려왔다.[4]

과거에는 파낸 돌이나 구운 점토로 만든 틀에 석영(석영 모래)이나 수정, 착색을 위한 미량의 금속 광석 등을 가루로 만들어 채워 넣고, 틀째로 가마에 넣어 약 750°C 이상에서 용융하는 과정을 반복하여 유리를 소성했다고 한다.[5] 비즈, 펜던트, 접시, 사발, 술잔, 항아리 등 다종다양한 것들이 만들어졌지만, 유리를 꺼내는 과정에서 틀을 부숴야 했고, 작품마다 틀을 새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대량 생산에는 적합하지 않아 고급품으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고대 로마 시대(기원전 1세기)에 더 크고, 더 쉽게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불어 유리 기법이 발명되면서, 그 유행에 따라 "주조 유리" 제작법은 쇠퇴했고, 문헌도 남겨지지 않은 채 완전히 실전되어 "환상의 기법"이라고 불리게 되었다.[6]

3. 2. 중세 및 실전

고대 로마 시대(기원전 1세기)에 더 크고, 더 쉽게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불어 유리 기법이 발명되면서, 그 유행에 따라 "주조 유리" 제작법은 쇠퇴했고, 문헌도 남겨지지 않은 채 완전히 실전되어 "환상의 기법"이라고 불리게 되었다.[6]

3. 3. 아르 누보 시대의 부활

1885년경, 아르 누보의 유행과 함께 프랑스 도예가 앙리 크로 (1840-1907)에 의해 부활하면서, 다양한 작가들의 손에 의해 많은 고급 미술품이 만들어졌다.[1]

가브리엘 앙지-루소 (1885-1953)는 투명하고 다채롭고 섬세한 소지로 램프나 상시 등과 같은 작품을 만들었다. 앙리 베르제 등의 조각가로부터 원형을 제공받아 도마뱀, 물고기, 여성상 등을 장식한 재떨이나 소품 등의 작품을 남긴 빅토르 아말릭 발터 (1869-1959), 인면이나 곤충의 문양을 다색으로 부조하고 투명한 얼룩 무늬가 있는 단색 바탕을 특징으로 하여 장식 패널과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에 파트 드 베르를 응용한 프랑수아-에밀 데콜슈몽 (1880-1971), 인체를 모델로 한 조상에 수작이 많은 조르주 데프레 (1862-1952), 우아한 색조의 매우 가볍고 얇은 작품을 남긴 알베르-루이 다무즈 (1848-1926) 등이 알려져 있다.[1] 그러나 각 작가들이 철저하게 비밀주의를 취하며 후세에 남기지 않아, 그 기법은 다시 사라지게 되었다.

3. 4. 근대 이후의 발전

일본에서는 이와키 유리 제작소가 1933년경부터 이 기법의 재현에 착수했다. 특별히 편성된 연구팀에 의한 약 4년간의 노력 끝에, 코시바 소토이치(1901-1973) 등에 의해 일본에서 처음으로 그 제작에 성공했다. 코시바는 제2차 세계 대전 후에 독립한 후에도 파트 드 베르 제작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아, 전후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아르 누보적인 작풍과 일본적인 뉘앙스를 함께 갖춘 독창적인 작품을 계속 발표했다.[7]

1962년에 미국의 하비 K. 리틀턴과 도미니크 라비노에 의한 유리의 소형 용해로 개발로 개인 작가에 의한 독창적이고 다채로운 작품 제작이 가능해지면서, 이를 계기로 한 "스튜디오 글래스 운동(글래스 아트 운동)"이 세계적으로 전개되었다. 미국 정부의 예술 진흥 정책의 시작과 맞물려, 많은 학교와 개인 스튜디오에 용해로가 설치되어 제작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되었다.[8] 한국에서도 이 영향을 받아, 각지의 공방과 작가에 의한 다채로운 제작 활동이 시작되었다.

1970년대에는 유미즈 츠네오(1936년 - )에 의해 실험 고고학 분야에서 메소포타미아 시대의 파트 드 베르 제작 기법이 복원되었다.[9] 다양한 작가가 그 기법에서 아이디어와 모티프를 찾아, 자신의 작품의 독창성으로 전개하는 등, 파트 드 베르를 도입한 작품 제작이 시작되었다.

현재에는, 작가마다 다양한 개량이 더해져 그 작풍과 기법이 다양화되어, 현대 유리 안에 새로운 장르를 구축하고 있다.[10]

4. 한국에서의 파트 드 베르

한국에서는 근대 시기 일본을 통해 파트 드 베르 기법이 유입되었다. 이와키 유리 제작소가 1933년경부터 이 기법의 재현에 착수했으며, 코시바 소토이치(1901-1973) 등이 약 4년간의 연구 끝에 일본에서 처음으로 제작에 성공했다.[7] 코시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도 파트 드 베르 제작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아, 전후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아르 누보적인 작풍과 일본적인 뉘앙스를 함께 갖춘 독창적인 작품을 계속 발표했다.[7] 그의 이러한 활동은 한국의 초기 파트 드 베르 공예에도 영향을 주었다.

1962년 미국의 하비 K. 리틀턴과 도미니크 라비노가 유리의 소형 용해로를 개발하면서, 개인 작가도 독창적이고 다채로운 작품을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8] 이를 계기로 "스튜디오 글래스 운동(글래스 아트 운동)"이 세계적으로 전개되었고, 한국에서도 이 영향을 받아 각지의 공방과 작가들이 다양한 파트 드 베르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8]

현재 한국에서는 여러 공방과 작가들이 다양한 파트 드 베르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10] 이들은 전통적인 기법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하여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다.

5. 주요 작가

이름출생사망
알베르 루이 다무즈1848년1926년
빅토르 아마리크 발테르1869년1959년
가브리엘 앙지-루소1885년1953년
조르주 데프레1862년1952년
프랑수아 에밀 데코르슈몽1880년1971년


참조

[1] 서적 世界ガラス工芸史 カラー版 美術出版社 2000-03
[2] 서적 キルンワーク 電気炉を使った手作りガラス工房 ほるぷ出版 2008-03
[3] 서적 ガラスと文化 その東西交流 日本放送出版協会 1997-09
[4] 서적 シルクロードのガラス 時空を超えた魅惑の輝き 山川出版社 2007-07
[5] 서적 ガラスの技術史 アグネ技術センター 2005-07
[6] 서적 古代ガラスの技と美 現代作家による挑戦 山川出版社 2001-05
[7] 서적 世界ガラス工芸史 カラー版 美術出版社 2000-03
[8] 서적 世界ガラス工芸史 カラー版 美術出版社 2000-03
[9] 서적 ガラスと文化 その東西交流 日本放送出版協会 1997-09
[10] 서적 古代ガラスの技と美 現代作家による挑戦 山川出版社 2001-05
[11] 서적 世界ガラス工芸史 カラー版 美術出版社 2000-03
[12] 서적 キルンワーク 電気炉を使った手作りガラス工房 ほるぷ出版 20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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