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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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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부르주아지는 프랑스어로 '성'을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하여, 자본가 계급을 의미하며 프롤레타리아와 대립되는 개념이다. 중세 시대에는 도시의 상공업 종사자를 지칭했고, 근세 시대에는 상업과 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계층을 가리켰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는 산업 자본가를 포함하는 자산 계급을 의미하게 되었고,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자본과 부를 소유한 지배 계급으로 비판받았다. 부르주아 문화는 과시적 소비와 물질주의를 특징으로 하며, 예술 작품에서 풍자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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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지
사회 계층
부르주아지사회 계층
부르주아프랑스어 부르주아에서 유래
어원'성읍 사람'을 뜻하는 고대 프랑스어 'burgeis'에서 유래
정의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프롤레타리아를 착취하는 지배 계급
중산층
상업, 산업의 중심 계급
봉건제 붕괴 이후 사회 지배 계층
역사
봉건 사회상인, 수공업자 등 도시 거주민
봉건제 붕괴부를 축적하고 영향력 증대
자본주의 사회생산수단 소유, 지배 계급으로 부상
마르크스주의프롤레타리아와 대립하는 자본가 계급
역사 발전의 동력으로 인식
마르크스주의 관점
계급 투쟁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 간의 투쟁
착취부르주아지가 프롤레타리아의 노동을 착취하여 이윤을 추구
혁명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해 부르주아지 지배 종식 주장
사회주의 사회생산 수단의 사회화를 통해 계급 없는 사회 건설 주장
기타
문화적 특징개인주의
물질주의
경쟁주의
소비 문화 주도
관련 개념프롤레타리아
자본주의
계급 투쟁
사회주의
마르크스주의

2. 어원과 역사

부르주아지는 프랑스어로 ‘성(城)’을 뜻하는 bourg에서 유래했다. 부를 축적한 계급은 안전하고 윤택한 성내에 살고 그렇지 못한 계급은 위험하고 척박한 성외에서 살았으므로 생긴 명칭이다.[3] 이 유래를 좇아 부르주아는 자본가 계급을, 반의어는 무산자를 뜻하는 프롤레타리아를 뜻하게 되었다.

자본가나 자본주의 개념은 프랑스 혁명 이후에도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귀족을 선망하는 경우가 있었다. 미국에서도 초기 자본가들은 귀족의 칭호로 불리기도 했다. 카를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나 자본가 정체성 혹은 개념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도 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도 이 개념을 사용했다. 귀족들과 대립하던 부르주아들도 자신들을 대중들과 분리했으며 민중보다는 귀족 문물을 수용해서 자신들의 방식으로 재탄생시키기도 했다. 빌런이란 단어의 유래가 촌락민일 정도로 당시 하류층 수준은 좋지 않았다.

자본가들은 지성적인 편이었는데, 흑인뿐만 아니라 백인들 역시 가치[31]를 계산하여 부리기도 했다. 흑인 노예제 타도를 위하여 노력했던 토마스 클라크슨은 노예선에서 매질을 당하는 영국 백인들을 보았으며, 이들은 등에 고온의 타르가 끼얹어지거나 갑판에 며칠씩 쇠사슬로 묶이기도 했다. 계약 조건과 의식주도 형편없어서 질병에 걸려 죽기도 했다. 노예무역 항로에서 흑인 수준으로 백인 선원 20%가 항해 중 죽었다. 네덜란드의 식민지 총독이었던 팔케니르는 인도네시아의 식민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32]을 하던 화교들이 학살당하고 반란을 일으키면서 설탕 산업에 차질이 생기자 분노한 자본가들에 의해 사형을 당했다.

민주주의가 발달하기 전 자본가들은 고귀한 태생인 경우가 많았다. 귀족의 후손인 카네기[33]나 J.P 모건은 물론 록펠러조차 일반인들에 비해 높은 가문의 후손이었다.

현대 프랑스어 bourgeois프랑스어는 고대 프랑스어 borgeisfro 또는 borjoisfro('도시 거주자')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다시 고대 프랑스어 bourgfro('장터 마을')에서, 그리고 고대 프랑크어 burgfrk('도시')에서 유래했다.

2. 1. 중세

고대부터 중세에 걸친 경제적 침체가 끝나고 중세 도시에 상공업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프랑스어에서 이러한 중세 도시의 "성벽 안의 주민"을 가리켜 귀족도 농민도 아닌 존재를 "부르주아지"라고 불렀다. 이는 후기 라틴어 burgus(그리스어 pygros, 게르만어 burg)에서 유래한 단어이다.[3]

2. 2. 근세

근세 대항해시대가 시작되면서 항구 도시에서는 무역으로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절대주의 시대에는 중앙집권화로 특히 수도가 경제적 중심이 되면서, 부를 축적하는 자들이 나타났다. 근세의 "중상주의" 정책은 그들의 성장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했다.[7] 당시 권력 주체였던 귀족 계급, 성직자와 도시의 노동자, 민중, 농민 사이에 위치하는 도시의 부유한 상인을 가리켜 부르주아지라고 하게 되었다. 부르주아지 중에는 막대한 부를 축적하여 귀족에 편입되거나 귀족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 자들도 나타나면서, 새로운 지배 계급을 형성해 나가고 있었다.

이들은 시민혁명의 주체가 되어, 그때까지 귀족과 성직자가 주체였던 체제를 혁명으로 전복시켰다. 시민혁명을 "부르주아 혁명"이라고도 한다. 이 경우의 "시민"은 "부르주아지"를 의미하며 현재의 "시민" 개념과는 다르다. 현재의 "시민" 개념에 가까운 말로는 Citoyen|시투아양프랑스어이 있었다.

2. 3. 산업 혁명 이후

산업혁명(1750~1850) 이후, 19세기 중반까지 부르주아지 사회 계급은 사업 활동과 경제적 기능에 따라 상류 부르주아지프랑스어(은행가와 산업가)와 소부르주아프랑스어(상인과 사무직 근로자)로 나뉘었다.[4][5][6] 19세기 말, 자본가들(원래의 부르주아지)은 상류 계급으로 올라섰고, 기술 및 기술직의 발전은 노동 계급 남녀가 부르주아지의 하층 계급으로 상승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진보는 우연적인 것이었다.

3. 부르주아지에 대한 비판

칼 마르크스는 산업혁명 이후 부르주아지가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노동자 계급을 착취하는 지배 계급이 되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부르주아지가 노동자와 끊임없이 계급 투쟁을 벌이며, 그들의 부는 노동자 착취의 결과라고 주장했다.[10][11] 마르크스는 부르주아의 근면성을 인정하면서도, 소비주의적 삶의 방식과 도덕적 위선을 비판했다.

나치즘마르크스주의의 계급 투쟁 개념을 거부하고 "국가 간 계급 투쟁"을 지지했으며, 아돌프 히틀러는 국가 주도 경제를 선호했다.[15] 파시즘 정권의 베니토 무솔리니는 부르주아 계급을 근대주의의 장애물로 여겼지만, 이탈리아 상류층과 하류층을 조종하기 위해 그들의 물질주의적 정신을 이용하기도 했다.[17]

3. 1. 초기 자본가들의 행태

초기 자본가들은 흑인뿐만 아니라 백인 노동자들도 가치를 매겨 부렸다.[31] 토마스 클라크슨은 흑인 노예제 폐지를 위해 노력했지만, 노예선에서 영국 백인들이 매질당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들은 등에 뜨거운 타르를 붓거나 며칠씩 갑판에 쇠사슬로 묶이는 등 가혹 행위를 당했다. 계약 조건, 의식주 환경도 열악하여 질병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많았다. 노예무역 항로에서는 백인 선원 20%가 항해 중 사망했는데, 이는 흑인 노예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네덜란드 식민지 총독 팔케니르는 인도네시아 식민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던 화교들이 학살당하고 반란을 일으켜 설탕 산업에 차질이 생기자, 분노한 자본가들에 의해 사형당했다.[32]

민주주의 발달 이전, 자본가들은 평민들 사이의 소문과 달리 고귀한 혈통인 경우가 많았다. 카네기[33], J.P. 모건, 록펠러 모두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 비록 후손들이 가난하고 힘든 환경에 처했더라도,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정신적 유산은 컸다.

3. 2. 마르크스주의적 관점

칼 마르크스에 따르면, 중세 시대의 부르주아는 일반적으로 상인, 은행가 또는 기업가와 같은 자영업자였다.[31] 이들의 사회적 역할은 봉건 지주와 그 영지에서 일하는 농민 사이의 금융 중개자였다. 그러나 18세기 산업혁명(1750~1850)과 산업 자본주의 시대가 되면서, 부르주아는 생산 수단(자본과 토지)을 소유하고 군대, 사법 제도, 경찰, 교도소 등의 강제 수단을 통제하는 경제적 지배 계급이 되었다.[32][33]

이러한 사회에서 부르주아는 생산 수단을 소유함으로써, 유일한 경제적 수단이 노동인 임금 노동자 계급(도시 및 농촌)을 고용하고 착취할 수 있었다. 또한 부르주아가 강제 수단을 통제함으로써 하층 계급의 사회 정치적 도전을 억압하고 경제적 현상 유지를 보존했다. 즉, 노동자는 노동자로, 고용주는 고용주로 남게 되었다.[10]

19세기에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자본가를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 생산 수단의 사업 관리자인 기능적 자본가
  • 부동산 지대 또는 금융, 자본 등에서 발생하는 이자 소득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지대 수취 자본가[11]


노동 계급과 부르주아는 경제적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계급 투쟁을 벌인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를 착취하고, 노동자들은 경제적 착취에 저항한다. 노동자는 생산 수단을 소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 부르주아 자본가에게 고용될 수밖에 없다. 노동자는 고용주의 재산인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고용주는 이를 판매한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부르주아"라는 용어는 생산 수단을 소유한 사회 계급을 묘사하는 것 외에도, 자본부동산 소유에서 비롯된 소비주의적 삶의 방식을 설명하기도 한다. 마르크스는 부를 창출한 부르주아의 근면성을 인정했지만, 부의 진정한 기원이 도시와 농촌 노동자인 프롤레타리아의 착취에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부르주아의 도덕적 위선을 비판했다. 또한 "부르주아"는 "부르주아적 자유", "부르주아적 독립", "부르주아적 개인성", "부르주아적 가족" 등 자본과 재산 소유에서 파생된 이데올로기적 개념을 설명하는데, 이는 "실질적인 자유"와 대조되는 것으로 여겨진다(1848년 ''공산당 선언'' 참조).

3. 3. 나치즘과 파시즘

나치즘마르크스주의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와 계급 투쟁 개념을 거부하고, "국가 간 계급 투쟁"을 지지했다. 나치당은 노동 계급과 중산층의 지지를 받았으며,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실업자와 노숙자를 위한 사회 정책을 실현했다.[14]

아돌프 히틀러는 자본주의가 자기중심적이라는 이유로 신뢰할 수 없다고 보았고, 민족의 이익에 종속된 국가 주도 경제를 선호했다.[15] 히틀러는 베니토 무솔리니에게 자본주의가 "그 시대를 끝냈다"고 말했다.[15]

3. 4. 20세기 이후의 상황

칼 마르크스는 중세 시대의 부르주아가 상인, 은행가, 기업가와 같이 스스로 일하는 사람이라고 보았다. 이들은 봉건 영주와 농민 사이에서 금융 거래를 중개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산업혁명(1750~1850)과 산업 자본주의 시대가 되면서 부르주아는 생산 수단(자본과 토지)을 소유하고, 군대, 사법 제도, 경찰, 교도소 등을 통제하는 경제적 지배 계급이 되었다.[10]

이러한 사회에서 부르주아는 생산 수단을 소유하여 임금 노동자 계급(도시 및 농촌)을 고용하고 착취할 수 있었다. 또한, 강제 수단을 통제하여 하층 계급의 저항을 억압하고 경제적 현상 유지를 가능하게 했다. 노동자는 노동자로, 고용주는 고용주로 남게 되었다.[10]

19세기에 마르크스는 두 가지 유형의 부르주아 자본가를 구분했다.

  • 생산 수단의 사업 관리자인 기능적 자본가
  • 부동산의 지대 또는 금융, 자본 등에서 발생하는 이자 소득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지대 수취 자본가.[11]


노동 계급과 부르주아는 끊임없이 계급 투쟁을 벌였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를 착취하고, 노동자들은 그들의 경제적 착취에 저항했다. 노동자는 생산 수단을 소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 부르주아 자본가에게 고용될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는 고용주의 재산인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고용주는 그것을 가격에 팔아 이윤을 남겼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부르주아"라는 용어는 생산 수단을 소유한 사회 계급을 묘사하는 것 외에도, 자본부동산 소유에서 비롯된 소비주의적 삶의 방식을 설명하기도 한다. 마르크스는 부를 창출한 부르주아의 근면성을 인정했지만, 그들의 부의 진정한 기원인 도시와 농촌 노동자의 착취를 무시하는 부르주아의 도덕적 위선을 비판했다. 또한 "부르주아"는 "실질적인 자유"와 대조되는 "부르주아적 자유", "부르주아적 독립", "부르주아적 개인성", "부르주아적 가족" 등 자본과 재산 소유에서 파생된 이데올로기적 개념을 설명한다(1848년 ''공산당 선언'' 참조).

이탈리아 파시즘(1922~1945) 정권에서 총리 베니토 무솔리니는 부르주아 계급을 근대주의의 장애물로 간주했다.[17]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시스트 국가는 이탈리아 부르주아 계급과 그들의 물질주의적 정신을 이용하여 이탈리아 상류층(귀족)과 하류층(노동자) 계급을 더 효율적으로 문화적으로 조종했다.

1938년 무솔리니는 연설에서 자본주의(부르주아의 사회적 기능)와 부르주아(사회 계급으로서) 사이의 명확한 이데올로기적 차이를 설정하고, 그들을 도덕적 범주와 정신 상태로 축소하여 비인간화했다.[17] 무솔리니는 부르주아를 파시스트 이탈리아 국가와 "국민"에 기생하는 사회적 기생충으로 묘사함으로써 이탈리아 사회에서 고립시켰다. 이는 일반적으로 이탈리아 사회, 특히 노동 계급의 잠재력을 고갈시키는 착취자로, 쾌락주의와 물질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삶의 태도로 이탈리아 국가를 희생시키는 자들로 묘사했다.[17] "파시스트는 안락한 삶을 경멸한다"는 슬로건은 반부르주아 원칙을 구체화했지만, 무솔리니 파시스트 정권은 상호 이익과 이윤을 위해 이데올로기를 넘어 무솔리니의 정치적, 재정적 이익과 부르주아, 이탈리아의 지배 계급을 구성하는 가톨릭 사회계층의 정치적, 재정적 이익을 합병했다.

철학적으로, 물질주의적 존재로서 부르주아 남성은 비종교적인 것으로 고정관념화되었다. 주세페 마리노 신부는 《문화의 자급자족: 1930년대 지식인과 파시즘》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초자연적 신앙과 세속 종교의 물질주의적 신앙 사이의 차이를 언급했다.

문화적으로 부르주아 남성은 여성적이거나 유아적이거나 허세를 부리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로베르토 파라베세는 Bonifica antiborgheseit (1939)에서 그의 평민주의를 설명했다.

부르주아의 경제적 안정, 재정적 자유, 사회적 이동성은 이탈리아 파시즘의 철학적 완전성을 위협했다. 부르주아에 의한 정당한 정치적 권력의 장악은 정치적 통일 –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하나의 지도자 –을 통한 사회적 통제를 위한 파시스트의 토탈리타리즘 국가 권력의 상실을 의미했다. 사회학적으로 파시스트에게 부르주아가 되는 것은 남성적 신비주의에 내재된 성격 결함이었다. 따라서 이탈리아 파시즘의 이데올로기는 부르주아 남성을 "정신적으로 거세된" 존재로 경멸적으로 규정했다.[19]

4. 부르주아 문화

18세기 프랑스 혁명(1789~1799) 이전 앙시앵 레짐 하에서 부르주아(bourgeois)와 부르주아지(bourgeoise)는 도시와 시골의 제삼신분에 속했던 비교적 부유한 남녀를 지칭했다. 이들은 프랑스 왕국의 일반 백성으로서, 부르봉 왕 루이 16세의 절대 군주제와 성직자, 귀족들을 혁명을 통해 제거했다.[4][5] 19세기 이후, "부르주아"는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 상류층과 동의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6]

역사적으로 중세 프랑스어 bourgeois프랑스어는 bourgs프랑스어(성벽으로 둘러싸인 장터 마을)의 주민, 수공업자, 장인, 상인 등을 가리켰다. 이들은 노동자와 생산 수단 소유주, 봉건 귀족 사이의 사회경제적 계급이었다. "부르주아"라는 용어는 장터 마을이 도시로 발전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 자본을 축적, 관리, 통제한 중산층 사업가들을 가리키는 의미로 발전했다.[7]

현대에는 "부르주아"와 "부르주아적"(명사)은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 계급"을, "부르주아적"(형용사/명사 수식어)은 경제적 유물론과 소시민 정신에 의해 사고방식이 결정된 남성과 여성의 Weltanschauungde(세계관)을 설명한다.[6] 이는 몰리에르의 희극 시민 귀족프랑스어(1670)에서 귀족 신분을 얻으려는 사회적 상승을 풍자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18세기에는 drame bourgeois프랑스어(부르주아 희곡) 및 "부르주아 비극"과 같은 장르에서 부르주아적 가치에 대한 부분적인 재평가가 있었다.

1970년대에 등장한 "bougie"는 중산층적이고, 허세 부리는 교외의 태도를 가리키는 속어가 되었다.[8] 2016년, 힙합 그룹 Migos는 "boujee"로 의도적으로 잘못 철자된 단어를 사용한 노래 Bad and Boujee를 제작했다.[8] 이 용어는 상류층을 모방하는 허세스러운 활동을 하는 저소득층 또는 중산층 사람을 가리킨다.[9]

이탈리아 파시즘(1922~1945) 정권에서 베니토 무솔리니는 부르주아 계급을 근대주의의 장애물로 간주했다.[17] 파시스트 국가는 이탈리아 부르주아 계급과 그들의 물질주의적 중산층 정신을 이용하여 이탈리아 상류층과 하류층을 문화적으로 조종했다. 무솔리니는 부르주아를 비인간화하고, 이탈리아 사회에서 고립시키려 했다.[17] 그는 부르주아를 쾌락주의와 물질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삶의 태도로 이탈리아 국가를 희생시키는 착취자로 묘사했다.[17] 그러나 무솔리니 정권은 상호 이익을 위해 부르주아 지배 계급과 정치적, 재정적 이익을 합병했다.

철학적으로, 부르주아 남성은 비종교적인 것으로 고정관념화되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실존주의에서 초자연적 신앙과 세속 종교의 물질주의적 신앙 사이의 차이를 설정하기 위해 부르주아를 반부르주아적이라고 주장했다.[18] 문화적으로 부르주아 남성은 여성적이거나 유아적이거나 허세를 부리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19] 부르주아의 경제적 안정, 재정적 자유, 사회적 이동성은 이탈리아 파시즘의 철학적 완전성을 위협했다.

4. 1. 문화적 헤게모니

칼 마르크스는 사회 문화가 지배 계급의 관습에 의해 지배되며, 그들의 가치관이 사회 전체에 강요된다고 주장했다.[20] 그는 현대 사회가 초기 근대 프랑스의 소규모 상점 문화의 관습을 따르는 정도로 부르주아적이라고 보았다. 에밀 졸라는 22편의 소설 시리즈(1871~1893) 《루공·막카르 가문》에서 이를 자연주의적으로 제시하고, 분석하고, 풍자했다. 이 작품의 주제는 삶의 사회적 영역에 경제적 영역을 종속시킴으로써 사회적 진보를 이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20]

4. 2. 과시적 소비

발터 벤야민은 부르주아의 상업 문화가 거실을 개인 및 가족 생활의 중심으로 확립했으며, 과시적 소비를 통해 지위를 나타낸다고 분석했다. 19세기 초 부르주아의 집에는 손으로 그린 도자기, 기계로 인쇄한 면직물, 기계로 인쇄한 벽지, 셰필드 강철 (용광로 및 스테인리스)로 채워지고 장식된 가정이 있었다. 이러한 것들의 실용성은 실질적인 기능에 내재되어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이 되자 부르주아의 집은 과시적 소비에 의해 개조된 가정을 포함하게 되었다. 벤야민은 여기서 상품이 실용성보다는 부를 과시하기 위해 (임의 소득) 구매되었다고 주장한다. 부르주아는 상점 진열대의 상품을 거실로 옮겨, 과시적인 어수선함이 부르주아의 성공을 나타냈다고 보았다.[21]

4. 3. 예술에서의 풍자와 비판

몰리에르의 희극 시민 귀족프랑스어(1670)은 귀족이 되고자 하는 부르주아 쥐르댕 씨를 풍자한다.[29] 쥐르댕 씨는 귀족처럼 보이기 위해 춤, 펜싱, 철학 등을 배우고, 딸의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을 꾀한다.

토마스 만의 소설 ''부덴브룩가의 사람들''(1901)은 독일 상류 부르주아 가문의 4대에 걸친 몰락을 그린다. 이 소설은 물질적 풍요가 오히려 도덕적, 지적, 육체적 퇴폐를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27][28]

신클레어 루이스의 ''바빗''(1922)은 미국 중산층 부르주아 조지 F. 바빗의 순응주의적인 삶을 풍자한다. 바빗은 물질적 성공에 만족하지 못하고 진정한 삶을 추구하지만, 사회적 압력에 굴복하고 만다.

루이스 부뉴엘의 영화들은 부르주아의 위선과 소심함을 비판한다. 황금시대(1930)는 부르주아 사회의 광기를, 낮의 아름다움(1967)은 결혼에 지친 부르주아 여성의 일탈을 그린다.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1972)은 중산층 가치의 소심함을, 욕망의 모호한 대상(1977)은 결혼의 허상을 보여준다.[29]

참조

[1] 웹사이트 bourgeoisie Facts, information, pictures Encyclopedia.com articles about bourgeoisie http://www.encyclope[...] 2016-09-28
[2] 웹사이트 Bourgeois Society http://www.marxists.[...] 2021-11-15
[3] 서적 The Oxford Dictionary of English Etymology 1995
[4] 서적 Dictionary of Historical Terms Palgrave Macmillan 1983
[5] 서적 The Housing Question 1872
[6] 서적 Oxford English Reference Dictionary 1996
[7] 백과사전 Bourgeoisie 1994
[8] 웹사이트 What Does Boujee Mean And Who Said It First? https://www.dictiona[...] 2023-02-22
[9] 뉴스 What you're really saying when you call something 'bougie' https://www.usatoday[...] 2021-06-26
[10] 서적 The Class Struggles in France, 1848 to 1850 http://www.marxists.[...] 1850
[11] 서적 A Dictionary of Marxist Thought
[12] 서적 French Bourgeois Culture https://books.googl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20-10-16
[13] 웹사이트 the petite bourgeoisie https://www.merriam-[...] 2018-01-26
[14] 서적 The Third Reich: A New History Hill and Wang 2000
[15] 서적 The Essential Hitler: Speeches and Commentary
[16] 간행물 Kritika: explorations in Russian and Eurasian history, Volume 7, Issue 4 Slavica Publishers 2006
[17] 학술지 The Masculine Mystique: Anti-Modernism and Virility in Fascist Italy 2005
[18] 서적 L'autarchia della cultura. Intellettuali e fascismo negli anni trenta Editori Riuniti 1983
[19] 서적 Bonifica antiborghese Edizioni Roma 1939
[20] 서적 Le Rougon-Macquart 1871–1893
[21] 서적 The Halles Project
[22] 서적 The American Class Structure Wadsworth Publishing
[23] 서적 Marriages, Families & Intimate Relationships Pearson
[24] 서적 General economic history Allen & Unwin
[25] 서적 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1980
[26] 서적 Propertied of Different Kind: Bourgeoisie and Lower Middle Class in the Nineteenth-Century United States 2001
[27] 서적 The Stature of Thomas Mann 1968
[28] 서적 A history of German Literature: From the Beginnings to the Present Day Routledge 1993
[29] 웹사이트 The Discreet Charm of the Bourgeoisie movie review (1972) https://www.rogerebe[...] 2000-06-25
[30] 뉴스 中정계 정치인 2세 3세 승승장구 `홍색귀족` https://m.mk.co.kr/n[...] 2016-08-25
[31] 문서 이들은 가치가 높은 사람들에겐 상당히 친절했다.
[32] 문서 원주민들은 전쟁을 통하여 산업의 일부분을 받았으나 일을 잘 하지 않아서 결국 분노한 네덜란드인들에 의해 학살약탈을 당하고 일자리를 다시 빼앗겼다.
[33] 웹사이트 https://www.houseof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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