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라다 (방호순양함)
1. 개요
팔라다 (방호순양함)은 1890년대 말 러시아 해군이 극동 지역 전력 강화를 위해 건조한 팔라다급 방호순양함 중 하나이다. 1901년 러시아 해군에 인도되어 발트 함대에 편입되었으며, 1902년 극동으로 이동하여 러일 전쟁에 참전했다. 1904년 뤼순 항에서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손상되었고, 황해 해전에 참가했으나 뤼순 항에 갇혔다. 이후 육상 방어 강화에 사용되다 12월 일본군의 포격으로 침몰했다. 1905년 일본 해군에 노획되어 '쓰가루'로 개명되었고, 훈련함, 부설함으로 사용되다 1924년 자침 처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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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명 | 팔라다 |
|---|---|
| 함명 유래 | 팔라스 |
| 건조 국가 | 러시아 제국 |
| 건조 조선소 | 상트페테르부르크 아드미랄티 조선소 |
| 기공 | 1895년 12월 1일 |
| 진수 | 1899년 8월 |
| 최후 | 1904년 12월 8일 침몰 |
| 노획 국가 | 일본 제국 |
|---|---|
| 함명 (일본어) | 쓰가루 |
| 획득 | 1905년, 전리품으로 획득 |
| 퇴역 (일본) | 1922년 |
| 최후 (일본) | 1924년, 표적함으로 사용 |
| 함급 | 팔라다급 방호순양함 |
|---|---|
| 추진 | 3축, 3 x 3단 팽창 증기 엔진 |
| 동력 | 24 x 벨레빌 보일러, 13000 |
| 승무원 | 578명 |
| 무장 | 8 × {{convert 포 24 × {{convert 포 8 × 포 3 × 어뢰 발사관 |
| 장갑 | 갑판: 조타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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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제국 해군의 순양함 -
바랴크 (방호순양함)
바랴크는 1901년 러시아 제국 해군에 취역한 방호순양함으로, 러일 전쟁 중 제물포 해전에서 자침되었고, 이후 일본 해군에서 운용되다 러시아에 재구매되었지만, 스코틀랜드 해안에서 좌초되어 해체되었다. -
러시아 제국 해군의 순양함 -
노비크 (방호순양함)
노비크는 러시아 제국 해군의 2등 방호순양함으로, 빠른 속력을 자랑하며 러일 전쟁에 참전했다가 일본 해군에 인양되어 스즈야로 개명 후 통보함으로 활용, 퇴역했다. -
1899년 선박 -
아사히 (전함)
아사히는 일본 제국 해군이 해군력 강화를 위해 영국에 발주한 전함으로, 러일 전쟁에서 공을 세웠으며 해방함, 연습 특무함, 잠수함 구조함, 공작함 등으로 용도가 변경되어 중일 전쟁에 투입되었다가 제2차 세계 대전 중 침몰했다. -
1899년 선박 -
바랴크 (방호순양함)
바랴크는 1901년 러시아 제국 해군에 취역한 방호순양함으로, 러일 전쟁 중 제물포 해전에서 자침되었고, 이후 일본 해군에서 운용되다 러시아에 재구매되었지만, 스코틀랜드 해안에서 좌초되어 해체되었다. -
러일 전쟁의 해군 함정 -
다카치호 (방호순양함)
다카치호는 일본 제국 해군의 방호순양함으로, 자매함 나니와와 함께 당시 세계에서 가장 진보된 순양함으로 평가받았으며 청일전쟁, 러일전쟁,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으나 칭다오 공략전 후 독일 해군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하여 일본 해군 군함 중 최초로 교전 중 격침된 함선이 되었다. -
러일 전쟁의 해군 함정 -
가스가 (장갑순양함)
일본 제국 해군의 장갑순양함 가스가는 아르헨티나 해군이 발주한 주세페 가리발디급 장갑순양함이었으나 러일 전쟁 직전 일본이 구매하여 취역, 러일 전쟁, 제1차 세계 대전, 시베리아 간섭 등 다양한 작전에 참여 후 1942년 무장 해제, 부유 막사로 사용되다 1945년 요코스카 공습으로 침몰했다.
2. 건조 배경 및 제원 (팔라다급)
팔라다급 방호순양함은 극동 지역의 러시아 함대 전력 강화를 위해 건조되었다. 1895년 12월에 팔라다와 Диана러시아어가 기공되었고, 1897년 6월에는 Аврора러시아어가 기공되었다. 팔라다는 1899년 8월에, 디아나는 1899년 10월에, 아브로라는 1900년 5월에 각각 진수되었다. 1902년 준공된 팔라다와 디아나는 만주 포트 아서에 주둔한 러시아 제1 태평양 전대에 배속되었다.
3. 러시아 해군 소속 팔라다
1901년 11월 2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가레루누이 · 오스토로보쿠 조선소 (현재 아드미럴티 조선소)에서 건조되어 발트 함대에 편입되었고, 1903년 5월 뤼순 항에 도착하여 태평양 함대에 소속되었다.
1902년 11월 13일 전함 레트비잔, 포베다, 순양함 다이아나, 보가티리와 함께 리바바에서 극동으로 출발, 1903년 5월 4일 "팔라다"는 "레트비잔"과 함께 뤼순에 도착했다. (또는 5월 5일 아침 뤼순 근처 정박)
3.1. 러일 전쟁
1904년 2월 6일, 러일 전쟁이 시작되었다. 개전 초, 뤼순 항 바깥에 정박해 있던 팔라다는 일본 구축함의 기습 공격을 받았다. 가스미로 추정되는 구축함이 발사한 어뢰가 좌현 중앙부에 명중하여 석탄고에서 화재가 발생했지만, 침수로 진화되어 큰 피해는 없었다. 이 공격으로 승조원 2명이 사망했다.
8월 10일, 팔라다는 황해 해전에 참가했다. 그러나 다른 러시아 순양함들과 함께 일본 함대의 봉쇄를 뚫지 못하고 뤼순 항으로 돌아왔다. 이후 팔라다는 항구에 갇혔고, 함포는 육상 방어를 위해 제거되었으며, 승무원 대부분은 보병으로 재배치되었다.
12월 9일, 뤼순 항에 정박해 있던 중 일본 육군의 포격을 받고 침몰했다. 12월 7일 11인치 포탄 4발을 맞고 좌현 탄약고가 관통되어 침수되면서 함선의 대부분이 물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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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일본 해군 소속 쓰가루
1905년 1월 1일, 뤼순 요새 함락으로 뤼순항을 점령한 일본군에 의해 팔라다가 나포되었다. 일본 해군은 7월 4일 팔라다 부양 작업에 착수하여, 8월 12일에 부양에 성공하였다. 8월 22일, 일본 제국 해군에 편입되어 쓰가루 해협에서 이름을 딴 쓰가루로 명명되고, 2등 순양함으로 분류되어 사세보 진수부 소속이 되었다. 메이지 천황에게 주청한 후보 함명에는 '하코다테', '하루코마', '나코소'도 있었다.
1906년 6월 25일, 쓰가루는 친젠에 예인되어 구축함 유구레의 호위를 받으며 뤼순을 출발하여, 6월 29일 사세보에 도착했다.
4.1. 운용
1908년 수리가 완료된 후, 주로 기관 기술 훈련함으로 사용되었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다. 1915년부터 1918년까지 대대적인 개보수 공사를 거쳐 부설함으로 개조되었다. 1920년 4월 1일 부설함으로 함종이 변경되었다.
4.2. 퇴역 및 최후
1922년 4월 1일 함적에서 제적되어 잡역선으로 분류되었다. 1924년 5월 27일 폐선 후 사루시마 부근에서 격침 처분되었다.
쓰가루 함체 인양을 둘러싸고 '쓰가루 의혹 사건'이라는 뇌물 스캔들이 발생했다는 내용은 원본 소스에서 찾을 수 없어 생략한다.
5. 동형함
* 디아나
* 아브로라
6. 평가 및 의의
팔라다는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 해군의 주력함 중 하나였으나, 일본 해군의 우세로 인해 큰 활약을 하지 못하고 격침되었다. 이후 일본 해군에 노획된 팔라다는 '쓰가루'로 이름이 바뀌어 훈련함 및 부설함으로 운용되었으며,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는 등 러시아와 일본 양국 해군에서 모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팔라다/쓰가루의 역사는 당시 열강들의 제국주의적 팽창 경쟁과 동아시아에서의 세력 다툼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의 입장에서 팔라다/쓰가루의 노획 및 운용은 일본의 군사력 강화와 한반도 침략의 역사적 맥락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904년 2월 6일 러일 전쟁이 발발했고, 12월 9일 여순항에 정박 중이던 팔라다는 일본 육군의 포격으로 침몰했다. 1905년 1월 1일 여순항을 점령한 일본군은 팔라다를 포획했다. 이후 일본은 팔라다를 인양하여 '쓰가루'로 개명하고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시키는 등 자국의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했다. 이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팽창 정책과 그 과정에서 한국이 겪어야 했던 역사적 아픔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