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도 루고
1. 개요
페르난도 루고는 파라과이의 전 대통령으로, 사제였으며 정치인이다. 그는 1977년 사제로 서품받아 에콰도르에서 선교 활동을 했으며, 1994년부터 2005년까지 산페드로 교구의 주교를 역임했다. 2008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어 파라과이 역사상 최초의 자유 선출 좌파 대통령이 되었으나, 2012년 탄핵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상원 의원으로 선출되어 정치 활동을 이어갔으며, 비호지킨 림프종 진단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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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페르난도 아르민도 루고 멘데스 |
|---|---|
| 출생일 | 1951년 5월 30일 |
| 출생지 | 산솔라노, 파라과이 |
| 서명 | Firma de Fernando Lugo.png |
| 임기 시작 | 2008년 8월 15일 |
|---|---|
| 임기 종료 | 2012년 6월 22일 |
| 부통령 | 페데리코 프랑코 |
| 대통령 직무 대행 | 페데리코 프랑코 |
| 이전 대통령 | 니카노르 두아르테 |
| 다음 대통령 | 페데리코 프랑코 |
| 임기 시작 | 2011년 10월 29일 |
| 임기 종료 | 2012년 6월 22일 |
| 이전 의장 | 바라트 자그데오 |
| 다음 의장 | 오얀타 우말라 |
| 임기 시작 | 2017년 6월 30일 |
| 임기 종료 | 2018년 6월 30일 |
| 이전 의장 | 로베르트 아세베도 |
| 다음 의장 | 실비오 오벨라르 |
| 임기 시작 | 2013년 6월 30일 |
| 임기 종료 | 2023년 6월 30일 |
| 정당 | 과수 전선 (2010년 이후) |
|---|---|
| 기타 정당 | 기독교 민주당 (2007–2010) 변화를 위한 애국 동맹 (2007–2010) |
| 모교 | 아순시온 가톨릭 대학교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 |
| 직함 | 산페드로 교구 주교 |
|---|---|
| 소속 교회 | 로마 가톨릭 교회 |
| 교구 | 산페드로 교구 |
| 임기 시작 | 1994년 3월 5일 |
| 임기 종료 | 2005년 1월 11일 |
| 이전 주교 | 오스카르 파에스 가르세테 |
| 다음 주교 | 아달베르토 마르티네스 플로레스 |
| 사제 서품 | 1977년 8월 15일 |
| 주교 서임 | 1994년 4월 17일 |
| 서임 집전자 | 호세 세바스티안 라보아 |
| 환속 | 2008년 6월 30일 |
-
탄핵 절차를 통해 파면된 공직자 -
지우마 호세프
지우마 호세프는 브라질의 정치인으로, 학생 운동과 무장 투쟁에 참여한 후 대통령을 역임했으나 탄핵되었고, 현재 신개발은행 총재로 활동하고 있다. -
탄핵 절차를 통해 파면된 공직자 -
롤란다스 팍사스
롤란다스 팍사스는 리투아니아의 정치인이자 전직 곡예 비행사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탄핵되었으며, 곡예 비행 국가대표, 빌뉴스 시장, 총리를 역임한 후 질서와 정의당을 창당했으나 러시아 사업가와의 연루 의혹으로 탄핵되어 유럽 최초로 탄핵된 국가 원수가 되었다. -
파라과이의 대통령 -
오라시오 카르테스
파라과이의 사업가 출신 정치인 오라시오 카르테스는 환전 사업과 은행 설립, 기업 인수 등으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여러 논란 속에서 콜로라도당에 입당하여 대통령을 역임하며 경제 성장과 빈곤 퇴치를 추진했으나, 보수적인 입장과 재선 시도, 부패 혐의 등으로 비판을 받았다. -
파라과이의 대통령 -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는 1954년부터 1989년까지 파라과이를 철권 통치한 독재자로,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반공주의를 내세워 장기 집권하며 인권 유린, 부정부패, 경제적 불평등을 초래했다. -
살아있는 사람 -
릴 테르셀리우스
릴 테르셀리우스는 위키백과 문서에서 관련 문서와 추가 자료를 제시하는 데 사용되는 구성 요소이다. -
살아있는 사람 -
마그달레나 툴
폴란드의 가수 마그달레나 툴은 2007년 데뷔 앨범 발매 후 2011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폴란드 대표로 참가했으며, 이후에도 앨범 발매와 유로비전 관련 활동, 방송 출연 등 다양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2. 초기 생애 및 사제 시절
페르난도 루고는 1994년 산페드로 교구(w:Diocese of San Pedro) 주교로 서품되어 2005년까지 재임했다. 2005년 1월 11일, 루고는 산페드로 교구장직을 사임하고 선거 출마를 위해 사제직 박탈을 요청했다. 그러나 교황청은 주교는 사제직에서 박탈될 수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고, 민선 공직 출마에 필요한 교회법상 허가도 내주지 않았다. 이후 루고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자, 교황청은 2008년 6월 30일 그의 사제직 박탈을 승인했다.
2.1. 초기 생애
페르난도 루고는 엔카르나시온의 종교 학교에서 기본 교육을 받았고, 거리에서 간식을 팔았다.
그의 가족은 종교적이지 않았으며, 그의 말에 따르면 아버지가 교회에 가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가족들은 콜로라도당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의 외삼촌 에피파니오 멘데스 플레이타스는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너의 집권에 기여한 1954년 파라과이 쿠데타의 공모자였으나, 이후 스트로에스너의 총애를 잃고 파라과이를 떠나 반체제 인사가 되었다. 페르난도의 아버지는 20번이나 투옥되었고, 그의 형제 자매 중 일부는 망명 생활을 했다.
파라과이 이타푸아주 산페드로데파라나구 산솔라노 출생으로,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전반에 걸쳐 에콰도르의 빈민가에서 선교 활동을 하면서 해방 신학에 공감하게 되었다.
2.2. 사제 서품 및 활동
아버지는 루고가 변호사가 되기를 원했지만, 18세에 루고는 사범학교에 입학하여 시골 지역 사회에서 교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매우 종교적인 그 지역 사회에서 잘 받아들여졌지만, 그곳에는 사제가 없었다. 그는 나중에 그 경험에 감동을 받았고, 그래서 로마 가톨릭 사제직에 대한 자신의 소명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19세에 그는 성言회에서 운영하는 신학교에 입학했다. 1977년 8월 15일 성언회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에콰도르로 파견되어 5년 동안 선교사로 일했다. 에콰도르에서 그는 해방 신학에 대해 배우고 키토에 있는 센트로 비블리오 베르보 디비노에서 강의를 했다.
루고는 1982년 파라과이로 돌아왔고, 1년 후 더 많은 학업을 위해 로마로 파견되었다. 루고는 스트로에스너 독재 정권이 무너지기 2년 전인 1987년에 파라과이로 돌아왔다. 1994년 4월 17일 주교로 서품되었고, 파라과이 산페드로 교구에서 국가 최빈곤 교구를 맡았다.
3. 정치 경력
루고는 농민들의 더 나은 토지 분배 요구를 지지하며 전국 정치 무대에 등장했고, "가난한 자들의 주교"로 알려지며 콜로라도당의 지배에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다. 라틴 아메리카의 좌파 지도자들과 거리를 두고 파라과이의 사회적 불평등에 더 초점을 맞췄다. 2007년에는 정치 활동 중 받은 사망 위협 때문에 파라과이 내무부의 경호를 받기도 했다.
2008년 대통령 선거에서 루고는 42.3%의 득표율로 당선되어 61년 만에 콜로라도당의 정권 교체를 이루어냈다. 이는 파라과이 역사상(1811년 독립) 처음으로 집권당이 야당의 당선자에게 평화적으로 권력을 이양한 사례였다. 그는 파라과이 역사상 두 번째 좌파 대통령이자 최초의 자유 선출 좌파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루고는 부패 방지와 토지 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고, 저소득 주택 투자, 공공 병원 무료 진료 도입, 빈곤층 현금 지원 등 빈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여러 가지 계획을 도입했다.
그러나 2009년 루고가 주교 시절 여러 여성과 관계를 맺고 자녀를 두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일었고, 2012년에는 농민과 경찰 간의 충돌로 인한 사망 사건의 책임을 물어 탄핵되어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다. 루고는 이를 쿠데타라고 비난했다.
3.1. 정계 입문
루고는 농민들의 더 나은 토지 분배 요구를 지지하며 전국 정치 무대에 등장했다. 2006년, Diario ABC Color 신문이 발표한 여론 조사는 그를 야당의 대통령 후보로 거론했다. "가난한 자들의 주교"로 알려진 루고는 그 후 몇 달 동안 파라과이 정치에서 콜로라도당의 지배에 가장 심각한 위협으로 여겨졌다. 그는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행보에 흥미를 느낀다고 말했지만, 라틴 아메리카의 좌파 지도자들과 거리를 두고 파라과이의 사회적 불평등에 더 초점을 맞췄다.
2007년 2월 23일, Prensa Latina 기사는 파라과이 내무부가 정치 활동 중 받은 사망 위협 때문에 루고에게 경호를 제공했다고 보도했다.
3.2. 2008년 대통령 선거
2007년 2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그는 37%가 넘는 지지율로 2008년 4월 대통령 선거의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2007년 10월 29일, 기독교민주당(CDP)에 입당 등록하여 후보 등록을 할 수 있었다.
기독교민주당(CDP)은 10개 이상의 야당과 사회 운동이 루고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 변화를 위한 애국 동맹의 핵심이 되었다. 파라과이 최대 야당인 진정한 급진 자유당의 페데리코 프랑코가 부통령 후보였다.
헌법 제235조는 어떤 종교의 성직자도 선출직 공직을 맡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며,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루고의 사제직 사임을 거부했기 때문에 루고의 후보 자격의 적법성이 문제되었다. 그러나 2007년 11월 16일, 니카노르 두아르테 프루토스 대통령(콜로라도당 당수 겸임)은 루고의 후보 자격에 반대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2008년 7월, 교황은 루고를 속화시켜 이 문제는 무의미해졌다.
| | 직책명 || 대수 || 정당 || 득표율 || 득표수 || 결과 || 당락 | |||||||
|---|---|---|---|---|---|---|---|
| 2008년 선거 | 파라과이의 대통령 | 52대 | 파라과이 기독교민주당 | 42.40% | 766,502표 | 1위 |
3.3. 대통령 재임 (2008-2012)
2008년 4월 20일, 루고는 42.3%의 득표율로 대선에서 승리했다. 콜로라도당 후보인 블랑카 오벨라는 루고의 압도적인 우세를 인정하고 경선 패배를 시인했다. 2시간 후, 두아르테 대통령은 콜로라도당이 61년 만에 처음으로 선거에서 패배했음을 인정했다. 루고의 취임은 파라과이 역사상(1811년 독립) 처음으로 집권당이 야당의 당선자에게 평화적으로 권력을 이양한 사례였다. 그는 파라과이 역사상 두 번째 좌파 대통령(첫 번째는 1936년부터 1937년까지 재임한 라파엘 프랑코)이자 최초의 자유 선출 좌파 대통령이 되었다.
루고는 대통령 선거 운동에서 부패 방지와 토지 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의 정부는 저소득 주택 투자, 공공 병원 무료 진료 도입, 파라과이의 가장 빈곤한 시민들을 위한 현금 지원 등 빈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여러 가지 계획을 도입했다.
2009년 4월, 루고가 주교 시절 여러 여성과 관계를 맺고 자녀를 두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내외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2012년 6월 15일, 타인의 토지를 불법 점거한 농민들과 이들을 강제로 철거하려는 경찰 간의 충돌로 17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6월 22일 상원에서 치안 악화에 대한 책임을 물어 탄핵 재판을 열어 대통령직에서 파면했다. 루고는 이를 쿠데타라고 비난했다. 이에 따라 부통령 페데리코 프랑코가 대통령으로 승격되었다.
3.3.1. 외교 정책
루고는 알레한드로 하메드를 외무장관으로 임명했다. 선거 운동 기간 동안 루고는 중화민국(대만)과의 외교 관계를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전환할 것을 시사했었다. 그러나 대만의 마잉주 대통령이 참석한 취임식 후, 루고는 외교 관계 전환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3.3.2. 내각 구성
루고는 2008년 8월 15일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더 겸손한 사람들에게 속한 것"이라는 이유로 대통령 연봉을 받지 않겠다고 발표했고, 다른 정치인들에게도 연봉을 거부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처음에 알레한드로 하메드를 외무장관으로 임명했다. 2008년 8월 18일에는 아체 원주민 부족 출신의 마르가리타 엠비왕기를 원주민 담당 장관으로 임명했는데, 이는 파라과이 역사상 최초의 원주민 장관이었다.
루고 대통령 내각의 구성원은 다음과 같다.
| 직책 | 이름 | 비고 |
|---|---|---|
| 외무장관 | 알레한드로 하메드 프랑코(Alejandro Hamed Franco) | |
| 에크토르 라코냐타(Hector Lacognata) | ||
| 호르헤 라라 카스트로(Jorge Lara Castro) | ||
| 재무장관 | 디오니시오 코르넬리오 보르다(Dionisio Cornelio Borda) | |
| 내무장관 | 라파엘 필리졸라(Rafael Filizzola) (PDP) | |
| 국방장관 | 루이스 바레이로 스파이니(Luis Bareiro Spaini) | |
| 세실리오 페레스 보르돈(Cecilio Pérez Bordón) | ||
| 카탈리노 루이스 로이(Catalino Luis Roy) | ||
| 농업축산부 장관 | 칸디도 베라 베하라노(Cándido Vera Bejarano) (PLRA) | |
| 엔조 카르도조(Enzo Cardozo) | ||
| 산업통상부 장관 | 마르틴 하이제케(Martín Heisecke) (PLRA) | |
| 법무노동부 장관 | 블라스 야노(Blas Llano) (PLRA) | |
| 움베르토 블라스코(Humberto Blasco) | ||
| 건설교통부 장관 | 에프라인 알레그레(Efraín Alegre) (PLRA) | |
| 세실리오 페레스 보르돈(Cecilio Pérez Bordón) | ||
| 보건복지부 장관 | 에스페란사 마르티네스(Esperanza Martínez) (프렌테 과수)(Frente Guasú) | |
| 교육문화부 장관 | 오라시오 갈레아노 페로네(Horacio Galeano Perrone) (ANR) | |
| 루이스 리아르트(Luis Riart) (PLRA) | ||
| 빅토르 리오스(Víctor Ríos) | ||
| 여성부 장관 | 글로리아 고도이 데 루빈(Gloria Godoy de Rubin) | |
| 대통령실 비서실장 | 미구엘 안헬 로페스 페리토(Miguel Ángel López Perito) | |
| 공직 관리부 장관 | 릴리안 소토(Lilian Soto) (쿠냐 피렌다)(Kuña Pyrenda) | |
| 호세 토마스 산체스(José Tomás Sánchez) | ||
| 기술기획부 장관 | 카를로스 산체스(Carlos Sánchez) | |
| 베르나르도 에스키벨 바스켄(Bernardo Esquivel Vasken) | ||
| 환경부 장관 | 호세 루이스 카사시아(José Luis Casaccia) (ANR) | |
| 사회복지부 장관 | 파울리노 카세레스(Paulino Cáceres) (테코호하)(Tekojoja) | |
| 문화부 장관 | 티시오 에스코바르(Ticio Escobar) | |
| 재난관리청 장관 | 카밀로 소아레스(Camilo Soares) (P-MAS) | |
| 글라디스 메르세데스 카르도조 사카리아스(Gladys Mercedes Cardozo Zacarías) | ||
| 아동청소년부 장관 | 리즈 토레스(Liz Torres) | |
| 마약단속국 국장 | 세사르 다미안 아키노(César Damián Aquino) | |
| 국립원주민연구소 소장 | 마르가리타 엠비왕기(Margarita Mbywangi) (테코호하)(Tekojoja) |
3.4. 탄핵 (2012)
2012년 6월 15일, 무지주 농민들과 경찰 간의 충돌로 17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각에서는 이 사건이 루고 대통령을 축출하기 위한 구실로 이용되었다고 주장한다. 6월 21일 하원은 이 사건과 함께 불안정한 치안, 측근 비리 등을 이유로 루고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가결했다. 다음 날 상원은 탄핵안을 심의하여 찬성 39표, 반대 4표로 루고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했고, 페데리코 프랑코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루고는 법적 방어를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며 헌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미주인권재판소에 제소하겠다고 발표했고, 그의 지지자들은 시위를 이어갔다.
3.4.1. 탄핵에 대한 국내외 반응
2012년 6월 15일, 무지주 농민들과 그들을 강제로 퇴거시키려던 경찰 간의 충돌로 17명이 사망했다. 일각에서는 이 사건이 루고 대통령을 축출하기 위한 구실로 이용되었다고 주장한다. 하원은 이 사건과 함께 불안정한 치안, 측근 비리, 논란이 된 토지 매입을 이유로 2012년 6월 21일 76대 1로 루고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가결했다. 상원은 다음 날 이 사건을 심의했다. 탄핵 과정에는 남미 국가 연합의 다른 국가들에서 온 외교부 장관 대표단이 참석했다. 투표 결과 루고 대통령의 파면을 찬성하는 표가 39표, 반대 표가 4표였으며, 이로써 그의 임기는 종료되었고 페데리코 프랑코가 파라과이 신임 대통령이 되었다. 루고 전 대통령은 법적 방어를 준비할 시간이 고작 2시간에 불과했던 점을 들어 헌법 위반이라며 미주인권재판소에 이 사건을 제소하겠다고 발표했다. 루고 대통령의 파면 이후 그의 지지자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파라과이 인접국의 대통령들은 루고 대통령의 파면을 거부하고 쿠데타에 비유했다. 브라질 대통령 딜마 루세프는 파라과이의 메르코수르와 남미 국가 연합 회원 자격 정지를 제안했다. 아르헨티나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 도미니카 공화국의 레오넬 페르난데스는 프랑코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콜롬비아와 칠레 등 지역의 보수 정부들도 비난했다. 루고 대통령의 파면은 2009년 온두라스의 마누엘 셀라야 축출 사건과 비교되며, 루고 대통령의 파면과 마찬가지로 지지자들은 법적이고 헌법적인 절차였다고 주장했지만, 라틴 아메리카 전역의 정치계에서는 쿠데타로 비난받았다.
루고 전 대통령은 자신이 파면된 것을 받아들이면서, 파라과이 대법원이 그의 탄핵을 선언하고 파면을 확정했고 선거 법원이 프랑코 대통령을 새로운 대통령으로 인정했을 때 그를 복직시킬 수 있는 법적이고 현실적인 기회는 모두 끝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의회 쿠데타"라고 비난했다.
3.5. 탄핵 이후
2013년 선거에서 루고는 상원 의원 후보로 출마했으며, 좌익 연합 프렌테 과수를 대표하여 파라과이 상원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2012년 6월 15일, 타인의 토지를 불법 점거한 농민들과 이들을 강제로 철거하려는 경찰 간의 충돌로 17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치안 악화에 대한 책임을 물어 6월 22일 상원에서 탄핵 재판이 열렸고, 루고는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다. 루고는 이를 쿠데타라고 비난했다. 이후 부통령이었던 페데리코 프랑코가 대통령직을 승계받았다.
4. 사생활
루고는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누나인 메르세데스 루고를 파라과이 영부인으로 지명했다. 그는 그레고리오 교황청립대학교에서 공부했으며, 파라과이 이타푸아주 산페드로데파라나구 산솔라노 출생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전반에 걸쳐 에콰도르의 빈민가에서 선교 활동을 하면서 해방 신학에 공감하게 되었다.
4.1. 자녀 스캔들
루고는 결혼 외에 여러 아이들을 낳았는데, 그중 하나는 성폭행으로 인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루고가 독신 서약을 한 상태에서 자신의 아이들을 낳았다고 주장하는 네 명의 어머니들의 주장은 2008년 취임 직후에 제기되었다. 그중 한 아이는 24세 여성과의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이 여성은 자신이 16세(파라과이의 성년 나이는 14세임) 때 루고가 주교였을 당시 성관계를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2009년 4월, 루고가 주교 시절 여러 여성과 관계를 맺고 자녀를 두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내외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5. 역대 선거 결과
| 선거명 | 직책명 | 대수 | 정당 | 득표율 | 득표수 | 결과 | 당락 |
|---|---|---|---|---|---|---|---|
| 2008년 선거 | 파라과이의 대통령 | 52대 | 파라과이 기독교민주당 | 42.40% | 766,502표 | 1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