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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로파블롭스크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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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페트로파블롭스크 성당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정교회 대성당으로, 성 베드로와 성 바울로에게 봉헌되었다. 표트르 1세의 명령으로 1712년부터 1733년까지 건설되었으며, 123m 높이의 첨탑과 꼭대기의 천사 조각상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상징 중 하나이다. 이 성당은 러시아 황실 묘소로, 표트르 1세부터 니콜라이 2세와 그의 가족의 유해를 포함한 거의 모든 러시아 황제와 여제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운영되면서 2000년부터 종교 의식이 재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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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로파블롭스크 성당
기본 정보
페트로파블롭스크 성당
페트로파블롭스크 성당
공식 명칭페트로파블롭스크 성당
로마자 표기Petropavlovskiy sobor
러시아어 명칭Петропавловский собор
종교러시아 정교회
위치러시아
수호 성인베드로와 바울로
건축가도메니코 트레지니
건축 양식페트린 바로크
기공1712년
완공1733년

2. 역사

대성당은 요새의 수호성인인 성 베드로와 성 바울로에게 봉헌되었다. 성 베드로는 도시의 수호성인이다. 표트르 대제가 도시를 건설한 직후에 지어진 첫 번째 건물은 1704년 4월 노브고로드의 대주교 이오브에 의해 봉헌되었다.

이 대성당은 수석 사도인 성 사도페트르(베드로의 교회 슬라브어 표기)와 성 사도 파벨 (바울의 교회 슬라브어 표기)을 기념하기 위해 표트르 1세의 명령에 의해 1712년부터 1733년에 걸쳐 건설되었다. 첨탑의 높이는 123m로, 정교회 성당으로는 세계적인 높이를 자랑한다. 최고부에는 십자가에 매달린 천사의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다. 이 천사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이다.

표트르 1세가 이 요새를 건설한 주요 이유는 대북방 전쟁에서 스웨덴해군의 공격이 있을 경우 방어 시설로 삼기 위함이었다.

1998년 7월,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이자 처형된 니콜라이 2세와 가족의 유해가 대성당에 매장되었다.

2006년 9월, 니콜라이 2세의 어머니인 마리아 표도로브나의 유해가 덴마크에서 반환되어 대성당에 매장되었다.

2. 1. 도시의 대성당

대성당은 요새의 수호성인인 성 베드로와 성 바울로에게 봉헌되었다. 성 베드로는 도시의 수호성인이다. 표트르 대제가 도시를 건설한 직후에 지어진 첫 번째 건물은 1704년 4월 노브고로드의 대주교 이오브에 의해 봉헌되었다.

이 대성당은 1859년까지 도시의 대성당(주교의 자리) 역할을 수행했으며, 이후 성 이삭 성당이 도시의 대성당이 되었다. 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대성당은 넵스키 대로에 있는 카잔 성당이다.

1919년에 폐쇄되어 1925년에 박물관으로 전환되었다. 현재도 공식적으로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2000년부터 종교 의식이 재개되었다.

3. 건축

현재 건물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최초의 석조 교회로, 도메니코 트레치니가 설계하여 1712년에서 1733년 사이에 지어졌다. 금색으로 칠해진 첨탑은 123m 높이에 이르며, 꼭대기에는 십자가를 든 천사가 있다. 이 천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가장 중요한 상징 중 하나이다.

페테르부르크와 바울 대성당


대성당 건축은 또한 독특한 이콘(성상) 칸막이(교회의 본당을 성소에서 분리하는 칸막이)를 특징으로 한다. 동방 정교회에서 이콘 칸막이는 일반적으로 세 개의 문이 있는 평평한 벽이나 칸막이로, 중앙의 성문은 매우 엄숙한 입장에만 사용되며, 두 개의 측면 문은 성직자 등이 성소에 들어가고 나가는 데 사용된다. 그러나 성 베드로와 바울 대성당의 경우, 이콘 칸막이는 성소 위에 일종의 탑을 형성하도록 솟아 있다.

대성당에는 전형적인 플랑드르식 카리용이 있으며, 이는 플랑드르의 도시인 메헬렌의 선물이다.

카리용


카리용의 가장 큰 종


종탑 (첨탑 포함)은 이 대성당과 요새의 주요 특징이다. 구조의 일부로서 여러 기능을 수행한다.

  • 건축 상징으로서, 건물 형태와 페테르부르크 및 바울 요새의 중요한 부분이다.
  • 황실 묘의 일부로서, 묘는 1층에 있다.
  • 대성당을 보호하는 피뢰침이다.
  • 12:00부터 18:00까지 매시간 관광객들이 모이는 전망대이다.
  • 정기적으로 콘서트가 열리는 카리용이 설치되어 있다.


1997년, 개보수 작업자들이 첨탑의 천사를 청소하다가 천사의 옷 주름 속에 남겨진 병 속의 쪽지를 발견했다. 쪽지에는 1953년의 개보수 작업자들이 자신들이 서둘러 부실하게 작업한 것에 대해 사과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소련 수상 니키타 흐루쇼프는 그 해 도시 2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천사를 개조하길 원했다). 1997년의 개보수 작업자들은 미래 세대를 위한 또 다른 메시지를 남겼다고 전해지지만, 그 메시지의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3. 1. 이콘 칸막이

3. 2. 카리용

1698년 표트르 1세는 네덜란드를 방문하여 카리용의 소리에 감명을 받고, 1720년 네덜란드에서 카리용을 주문했다.[1] 1756년 화재로 카리용이 소실되었으나,[1] 1757년 새로운 카리용이 주문되어 1776년에 설치되었다.[1]

2001년, 네덜란드에서 제작된 51개의 새로운 종 세트가 설치되었다.[1] 이 카리용은 플랑드르 도시 메헬렌에서 선물 받은 전형적인 플랑드르식 카리용이다.[1] 4옥타브 범위를 가지며, 다양한 클래식 및 현대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1]

4. 황실 묘소

성당 내부의 무덤


성 카트린 예배당에 있는 차르 니콜라이 2세와 그의 가족의 매장을 표시하는 묘비


이 성당에는 표트르 대제부터 니콜라이 2세와 그의 가족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러시아 황제와 여제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표트르 대제 이후의 통치자 중 표트르 2세와 이반 6세만 이곳에 묻히지 않았다. 표트르 2세는 모스크바 크렘린의 미하일 대천사 대성당에 묻혔고, 이반 6세는 처형되어 슐리셀부르크 요새 또는 홀모고리에 묻혔다.

2006년 9월 28일, 사망 78년 만에 러시아 여제 마리아 표도로브나가 성 베드로와 바울 대성당에 재안장되었다. 알렉산드르 3세 차르의 아내이자 니콜라이 2세 (마지막 러시아 차르)의 어머니인 마리아 표도로브나는 1928년 10월 13일 고향인 덴마크에서 망명 생활 중 사망하여 덴마크 로스킬레 대성당에 묻혔다. 2005년, 덴마크와 러시아 정부는 여제의 유해를 남편 곁에 안장하고 싶다는 그녀의 뜻에 따라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려보내기로 합의했다.

5. 갤러리



네바강 건너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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