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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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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성당은 주교 또는 대주교의 의자가 있는 교회로, 어원은 '좌석'을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 'καθέδρα'에서 유래했다.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 개신교 등 다양한 종교에서 각기 다른 의미와 역할을 가지며, 건축 양식, 조직, 기능 등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가톨릭에서는 주교좌 성당을, 성공회에서는 주교좌 성당과 동의어로 사용하며, 정교회에서는 주교좌와 별개로 크고 중요한 성당을 의미한다. 대성당은 종교적 기능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하며, 역사적 사건 기록, 지역 사회 봉사, 시민 생활 등 다양한 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대성당 건물은 건축 및 장식 예술의 중요한 사례이며, 많은 대성당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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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지도 정보
개요
유형기독교 교회
역할주교의 좌석이 있는 교회
어원라틴어 "cathedra" (좌석)
설명
정의교구의 주요 교회
주교의 역할주교가 공식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곳
중요성교구의 행정 및 예배 중심지
차이점일반 교회와 달리 주교의 '좌석'을 갖춘 것이 특징
건축학적 특징
규모일반적으로 큰 규모와 웅장한 건축 양식
특징제단, 성가대석, 세례반 등의 시설 포함
역사적 맥락
기원초기 기독교 시대부터 존재
역할 변화중세 시대 이후 권위의 상징으로 발전
다른 종교의 유사 개념
불교사원의 주요 전각
이슬람주요 모스크

2. 어원 및 정의

'대성당'이라는 단어는 프랑스어 cathédrale프랑스어를 거쳐 라틴어 ecclesia cathedralisla 및 cathedrala(좌석)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고대 그리스어 καθέδρα|kathédra|카테드라grc(좌석, 벤치)에서 나왔다. καθέδρα|kathédra|카테드라grc는 κατά|kata|카타grc(아래)와 ἕδρα|hedra|헤드라grc(좌석, 바닥, 의자)가 합쳐진 단어이다. 이 단어는 주교 또는 대주교의 의자(옥좌)가 성직자와 평신도 모두 위에 놓여 있고, 원래는 제대 뒤에서 회중을 향해 있었다는 점에서 주교의 교사로서의 역할과 교구를 다스리는 권위를 상징한다.[6]

라테라노 대성당은 로마 교황의 주교좌 성당이다.


이탈리아 네피의 산타 마리아 아순타 대성당


브라질리아 대성당은 현대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서방 교회에서는 대성당 교회를 두오모it(이탈리아어) 또는 돔de(독일어, 네덜란드어 등)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라틴어 domus ecclesiaela(교회의 집) 또는 domus episcopalisla(주교의 집)에서 유래했다. 이베리아 반도의 일부 지역에서는 episcopalis sedesla(주교 좌석)에서 유래한 ''Sé''(포르투갈어), ''Seu''(카탈루냐어, 스페인어 형태는 ''Seo'')를 사용하기도 한다.

동방 정교회에서는 '카테드랄'에 해당하는 카톨리콘cu(소보르sla)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주교가 없더라도 수도원이나 다른 주요 교회에도 이 명칭을 사용한다. 대주교수도권 주교가 주재하는 교회는 kathedrikós naóscu(kathedrikós naós|카테드리코스 나오스|대성당 사원cu)라고 한다.

주교만이 대성당을 만들 수 있다는 원칙은 주교의 옥좌가 구현하며, 이는 더 이상 주교가 없더라도 과거 주교가 주재했던 대성당의 존엄성과 기능을 유지하는 교회에도 적용된다. 옥좌는 또한 대성당이 주교를 만든다는 원칙을 구현할 수도 있는데, 특히 주교가 대성당에서 선출되고 성직자와 평신도의 환호 속에 대성당에서 즉위하는 경우, 그리고 주교의 필수 자격인 규칙적인 기도, 고등 교육 및 음악 예배가 수세기 동안 주로 대성당 기능을 통해 접근 가능했기 때문이다.[6]

가톨릭 교회에서는 교구 주교의 좌석을 보관하는 교회에만 '대성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임시 대성당, 공동 대성당, 원 대성당 등의 용어도 사용한다. 대주교의 대성당 교회는 '대주교 대성당'이라고 한다.

'대성당'이라는 용어는 건물의 크기나 화려함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많은 대성당은 교구 축하 행사에 필요한 수용력 때문에 인상적인 건축물인 경우가 많다.

2. 1. 가톨릭 교회

가톨릭교회에서는 주교좌성당(카테드랄)을 가리킨다. 제대의 내진 중앙에 설치되는 주교가 앉는 의자 즉 주교좌(라틴어로 cathedra)를 가진 성당(교회당)이며, 주교가 장(長)을 맡는 성당이다. 유럽 등에서는 예로부터 시청 등과 함께 도시 중심부에 있는 광장에 접하여 지어지는 것이 관례였다.

국내에서 일반적으로 “대성당”이라고 부르는 것은 서울대교구의 명동성당을 비롯하여 주교좌성당들이다.[21] 또한, 예외적으로 가톨릭 숙천동성당(성 테레지아 대성당)은 현재는 주교좌성당이 아니지만 1945년부터 1963년까지 대구대교구의 임시 주교좌가 설치되었기 때문에, 지금도 “대성당”이라고 불리는 경우가 있다.

가톨릭교회에서 특별히 중요한 성당으로는, 카테드랄 외에 바실리카라고 불리는 종류가 있다. 카테드랄이면서 동시에 바실리카이기도 한 성당도 존재한다. 카테드랄이기도 한 성당은 일본어로는 대개 “대성당”으로 번역되지만, 현지어로는 카테드랄이 아닌 바실리카라고 명칭하는 경우도 있다.[22] 독일어권에서는 돔(Dom)이 일반적이지만,[23] 뮌스터(Münster)의 예도 볼 수 있다.[24] 이탈리아어로는 카테드랄레(Cattedrale) 또는 두오모(Duomo)라고도 불린다.

일본어 문맥에서는 “대성당”이라는 어휘를 단순히 “큰 성당”을 의미하는 어휘로 오용하여, 큰 애비(승원)이나 패리시 처치(본당)를 “대성당”이라고 소개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애비는 교구나 교회구와 같은 담당 지역을 가지지 않는 종교 시설(수도원), 패리시 처치는 주교좌성당의 하위 교회로 주교가 아닌 성직자가 담당하는 교회구(본당)의 교회이며, “카테드랄”이 아니다.

파리노트르담 대성당 야경
(가톨릭교회)


아르헨티나, 살타바실리카
(가톨릭교회)

2. 2. 정교회

정교회에서는 주교좌가 있는 성당뿐만 아니라, 크고 중요한 성당을 '대성당'이라고 부른다.

주교좌 성당이 아니더라도 러시아어 'собо́р|사보르ru'는 도시나 수도원에 있는 크고 중요한 성당을 가리키며, '대성당'으로 번역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아가 주교좌 성당이라 하더라도 규모가 작은 성당은 '대성당'이라고 부르지 않는 경우가 있다. 정교회에서는 주교가 관할하는 것을 의미하는 '주교좌'와 대형 성당을 의미하는 '대성당'은 다른 말로 취급되며, '대성당'인지 '성당'인지는 규모에 따라 기술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주교좌가 아닌 대성당'(예: 성 사바 대성당)과 '주교좌 성당(대성당이 아님)'이 정교회에는 존재한다.

그리스어 'καθεδρικός|카세드리코스el'와 러시아어 'кафедра́льный|카피드랄리느이ru'는 '카테드랄'과 어형상으로는 동일하지만, 의미상으로는 '대성당'이 아니라 '주교좌'(καθέδρα|카세드라el, ка́федра|카페드라ru)에 대응하며, 형용사이므로 단독으로는 사용되지 않는다. 한편, 그리스어 'ναός|나오스el', 러시아어 'собор|소보르ru', 'храм|흐람ru'에 '대성당'의 번역어가 대응한다. 단, 'ναός|나오스el', 'храм|흐람ru'은 대성당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성당에도 사용되는 말이며, 기독교 이외의 신전·사원의 명칭이기도 하다.

영어에는 대응하는 어구의 용법 구분이 없다. "καθεδρικός ναός|카세드리코스 나오스el"(그리스어), "кафедральный собор|카테드랄니 소보르ru"(러시아어)는 일본어로는 '주교좌 대성당'이 아니라 단순히 '대성당'으로 표기·통칭되는 경우가 많지만, 여러 가지 예외적인 표현이 존재한다. 또한 그리스어·러시아어 매체에서도 주교좌 대성당을 가리켜 '주교좌' 부분을 생략하고 단순히 '대성당'에 해당하는 말로 부르는 사례가 많이 존재한다(오히려 일반적이다).

영어에서는 단순히 "Cathedral"로만 표기되는 경우가 많으며, 그리스어·러시아어·일본어와 같은 '주교좌'와 '대성당'의 용법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

'''정교회에서의 대성당 관련 용어 목록'''(예외도 존재한다)
그리스어러시아어일본어영어
καθεδρικός ναός|카세드리코스 나오스elкафедра́льный собо́р|카테드랄니 소보르ru(주교좌) 대성당cathedral
ναός|나오스elсобо́р|소보르ruхрам|흐람ru대성당
-성당church
chapel
παρεκκλήσιο|파레클리시오elчасо́вня|차소브냐ru성당(소예배당)



2. 3. 성공회

성공회(잉글랜드 국교회) 및 앵글리칸 공동체의 일원인 대한성공회에서는 가톨릭 교회와 거의 같은 의미로 “대성당”(영어: Cathedral)을 사용한다. 주교좌 성당과 대성당은 거의 동의어이며, 작은 성당이라도 주교좌 성당이라면 대성당이라고 불린다.[25]

드문 예로, 주교좌는 있지만 상주 주교가 없는 교회당인 더블린 성 패트릭 대성당이 대성당으로 불린다.[26]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 (뉴질랜드)과 같이 해외 성공회 주교좌 성당도 대성당으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다.

더블린 성 패트릭 대성당(아일랜드 국교회)


캔터베리 대성당(성공회)

2. 4. 개신교

개신교에서는 감독제를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아, '대성당'이라는 용어는 가톨릭이나 성공회와는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27] 주교좌성당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대형 교회에 '대성당'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독일복음주의교회(베를린-브란덴부르크-슐레지엔 상라우지츠 복음주의교회)의 베를린 대성당(Berliner Dom|베를리너 돔de)이나 핀란드복음루터교회의 헬싱키 대성당(Helsingin tuomiokirkko or Suurkirkko|헬싱긴 투오미오키르코 또는 수우르키르코fi) 등이 그 예이다.

헬싱키 대성당
(핀란드복음루터교회)

3. 역사

사모사타의 바울은 경건한 여성들과 지나치게 친밀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당시 주교는 결혼한 상태에서 선출되었으나, 주교가 되면 아내와 성적인 접촉을 중단하고 더 이상 동거하지 않았다. 바울이 다른 여성들과 계속 교제하여 잠재적인 스캔들을 일으킬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9] 이를 방지하기 위해 새로운 대성당에는 주교와 직원들을 위한 남성 전용 거처, 즉 '주교 관저(episcopium)'가 필요했다. 서방 교회에서는 사제집사도 서품 후에는 아내와 떨어져 살아야 했기 때문에 주교 관저는 상당히 크게 지어졌다. 주교 관저는 개인 식당, 개인 예배실, 목욕탕 등을 갖추고 있었다.

대성당의 재산과 기부금은 주교, 교구와 구분 없이 공동 기금으로 관리되었다. 지출은 주교, 대성당 성직자, 건물 및 조명, 자선 기부금 등 네 가지 영역으로 나뉘었다. 제국의 보조금, 사적인 유증, 정기적인 자선 기부 등으로 수입이 크게 증가했다.[9]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수입이 아버지의 20배에 달한다고 추산했는데, 이는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부유한 주교가 아니었음에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주교들에게 민정 관리의 지위를 인정하여, 주교들은 새로운 지위에 맞는 지출을 하고 법률 평가관을 고용하는 등의 의무를 이행해야 했다.

대성당의 건축 양식은 지역과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발전했다.

동유럽과 동지중해 지역에서는 동방교회(정교회, 동방 여러 교회)에 의해 비잔틴 건축을 기반으로 발전했지만, 키예프 루스 전래 이후 독자적인 양식으로 발전했다. 캅카스 지역의 조지아 정교회발칸반도 지역의 불가리아 정교회, 세르비아 정교회, 루마니아 정교회 등도 비잔틴 건축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독자적인 양식을 발전시켰다.

서유럽에서는 서방교회(가톨릭교회, 성공회, 프로테스탄트)에 의해 다양한 발전이 이루어졌다.

프랑스의 샤르트르 대성당, 순례자와 예술 애호가 모두를 끌어들이는 유명한 랜드마크

3. 1. 초기 기독교 시대

4세기 이전에는 주교가 회중 예배를 이끌 때 높은 단상에 서서 주례했으나, 이후 주교좌가 설치되면서 대성당의 형태가 갖춰지기 시작했다.[9]

3세기에는 "플랫폼에 오르다"라는 의미의 "ad pulpitum venire"라는 표현이 기독교 서품의 표준 용어가 되었다. 256년 두라 에우로포스 공성전 당시 발굴된 기독교 가정 교회(도무스 에클레시아에)는 두 개의 방을 합쳐 60~75명이 서서 들어갈 수 있는 집회장을 만들었고, 안뜰 반대편 방에는 침례당을 설치하고 벽화를 그렸다. 큰 방 한쪽 끝에는 펄피툼(pulpitum)이 있었지만, 왕좌를 놓을 만큼 높지 않았고 제단을 둘 만큼 크지도 않았다.

269년, 사모사타의 바울은 황실과의 접촉으로 두케나리우스(ducenarius)라는 민간 직책을 받았는데, 안티오크 교회에 자신을 위한 울타리(세크레툼)를 세우고 왕좌를 설치하여 예배를 주관했으며, 자신이 만든 찬송가를 부르는 여성 합창단을 훈련시켰다. 이는 세속적인 로마 관직의 상징을 교회 의식에 도입한 혁신적인 관행으로 비난받았다. 그러나 100년 후에는 지중해 세계의 모든 주교들이 대성당을 가지게 되었고, 모두 울타리가 쳐진 성소 공간 안에 있는 왕좌에 앉았으며, 훈련된 합창단을 설립했다.

이러한 변화는 주교들이 제국으로부터 공직(magistrate)에 적합한 직무, 품위 및 휘장을 채택하라는 제안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로마 관리는 바실리카라고 불리는 크고 화려하게 장식된 통로가 있는 직사각형 홀에서 주재했고, 주교들도 그렇게 하게 되었다.

아드리아 해 북쪽 끝에 있는 아퀼레이아 대성당 아래에는 초기 바실리카식 대성당의 유적이 남아 있다. 313년과 319년 사이의 모자이크 비문에 따르면, 이 복합 건축물은 크기가 비슷한 두 개의 평행한 동서향 통로 홀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를 연결하는 세 번째 작은 남북향 횡단 홀이 있는데, 이는 주교 관저(에피스코피움)의 접견실로 해석되었다. 밀라노, 트리어, 파비아에도 비슷한 이중 바실리카와 침례당을 갖춘 대성당이 세워졌지만, 이후 단일 바실리카 교회가 더 일반적인 대성당 모델이 되었다.

콘스탄티누스 1세의 기독교에 대한 제국의 호의 선언은 기독교 생활의 모든 측면을 변화시켰다. 기독교는 도시 지역과 제한된 사회 집단에 국한되고 공식적인 적대감과 때때로 박해를 받는 소수 종교에서 확장되면서, 4세기 내내 관련 교회 시설의 건물, 자금 및 인력이 급격히 확장되었다. 최초의 대성당은 이러한 확장을 보여준다.

대성당 단지는 항상 주교 관저를 포함했다. 사모사타의 바울에 대한 비난 중에는 경건한 여성들과의 과도한 친밀함이 있었는데, 주교로 선출될 때 결혼했었고, 주교에게 기대되었던 것처럼, 아내와의 성적 접촉을 중단했고 더 이상 동거하지 않았다. 그러나 고발자들은 그가 다른 여성들과 계속 교제함으로써 용납할 수 없는 잠재적 스캔들을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대성당은 주교와 그의 전체 직원을 위한 남성 전용 거처를 만들 필요가 있었고, 서방 교회에서 모든 사제집사도 서품 후에는 아내와 떨어져 사는 것이 기대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거처인 ''주교 관저(episcopium)''는 규모가 상당히 컸다. 주교 관저는 주교의 향상된 사회적 지위에 기대되는 환대를 위한 개인 식당, 주교를 위한 개인 예배실 또는 예배당, 그리고 종종 목욕탕을 제공하기도 했다.

주교 관저가 대성당 건물 단지 내에 필수적인 부분이었던 것처럼, 주교, 교구 및 대성당의 재산과 기부금 사이에도 차이가 없었다. 모든 교구 수입은 공동 기금에 지불되었고, 지출의 주요 영역 각각에 대해 네 가지 고정된 몫(주교 자신, 대성당 성직자, 대성당과 시 교회의 건물 및 조명, 자선 기부금)으로 나뉘었다. 교회의 평화와 함께 수입이 엄청나게 증가했는데, 부분적으로는 현물로 지급되는 제국의 보조금 때문이었지만, 주로 사적인 유증과 정기적인 사적인 자선(종종 '첫 열매'라고 불림) 때문이었다.

3. 2. 중세 시대

중세 시대에는 대성당이 종교, 사회,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수도원과 연계된 대성당과 세속 성직자들이 관리하는 대성당으로 구분되었다.

10세기와 11세기 동안 대성당 성직자들은 더욱 명확하게 조직되었고 두 계급으로 나뉘었다. 하나는 베네딕토회와 같은 인정받는 수도회의 수도원 시설이었고, 다른 하나는 서임 서약 외에는 어떤 서약에도 얽매이지 않지만 성규 또는 교회법 규정에 따라 통치되는 성직자 집단으로, "사제"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이러한 방식으로 수도원 대성당 교회와 세속 대성당 교회의 구분이 생겨났다. 영국을 제외하고는 몬레알레(시칠리아)와 다운패트릭(아일랜드)에서만 수도원 대성당이 알려져 있다.[10]

수도원 대성당 교회의 경우, 내부 통치는 그 장이 속한 수도회의 것이었고 모든 구성원은 영구 거주했다. 반면 세속 장이 다스리는 대성당은 수도원장, 수도원장, 전례 담당자, 사제, 재무관 등의 직책이 교회와 그 예배의 규정과 질서를 위해 생겨났으며, 성직자들의 영구 거주가 아니라 비거주가 규칙이 되어 그들의 의무를 교회 예배에서 그들을 대신하여 집전하는 "부제" 집단이 수행하게 되었다.

3. 3. 종교 개혁 이후

니달로스 대성당, 노르웨이, 종교 개혁으로 루터교가 되었다


종교 개혁 이전 서유럽의 모든 대성당은 로마 가톨릭교회 소속이었다. 잉글랜드에서는 잉글랜드 종교 개혁 기간 동안 수도원과 대성당 제도의 많은 부분이 재편되었다. 대성당은 독립적이고 국교화된 잉글랜드 교회에 의해 유지되었지만, 수도원 대성당 장들은 헨리 8세에 의해 해체되었고, 배스와 코번트리를 제외하고는[11] 그가 대성당 장을 장관으로, 다른 성직자들을 소성직자로 하는 장(chapter)으로 재설립하였다.

독일과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는 루터교회의 확산과 함께 노르웨이의 니달로스 대성당과 독일의 뤼벡 대성당과 같은 일부 고대 교회들이 잉글랜드처럼 프로테스탄트 주교좌가 되었다. 지역 행정 기능을 하는 많은 새로운 교회가 대성당으로 건립되었다. 그러나 주교좌 역할을 하는 모든 교회가 "대성당"으로 알려져 있는 것은 아니다. 관습은 지역 전통에 따라 장소마다 다르다. 덴마크올보르에 있는 루터교 대성당인 부돌피 교회에서처럼 일부는 단순히 "교회"로 지정된다.

4. 조직 및 역할

대성당은 주교를 중심으로 한 성직자 조직에 의해 운영되며, 예배, 교육, 사회 봉사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대성당 단지는 주교 관저를 포함하고 있었는데, 사모사타의 바울의 사례처럼 주교는 결혼한 상태에서 선출되기도 했지만, 이후에는 아내와 성적인 접촉을 중단하고 별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10] 이는 주교와 직원들을 위한 남성 전용 거처, 즉 ''주교 관저(episcopium)''의 필요성을 낳았다. 주교 관저는 주교의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개인 식당, 예배실, 목욕탕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원칙적으로 모든 교구 수입은 공동 기금에 지불되었고, 주교, 대성당 성직자, 건물 및 조명, 자선 기부금 등 네 가지 주요 영역에 사용되었다. 많은 교구는 이미 상당한 기부금을 보유하고 있었고, 교회의 평화와 함께 제국의 보조금과 사적인 유증, 자선 등으로 수입이 크게 증가했다.[10]

주교는 모든 중요한 문제에 대해 수도원 대성당 장(章) 또는 세속 성직자 장(章)과 상의해야 했다. 이들 장(章)은 주교의 자문회의(consilium) 역할을 수행했다.[12] 장(章)은 법인격으로서 교구의 공석(sede vacante)을 맡았지만, 영국에서는 이 관습이 시행되지 않았다.[12]

4. 1. 성직자 구성

대성당에는 주교 외에도 다양한 직책의 성직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각자 고유한 역할을 맡았는데, 사모사타의 바울의 사례에서 보듯 주교는 종종 결혼한 상태에서 선출되었지만, 이후에는 아내와 성적인 접촉을 중단하고 별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10] 이러한 관행은 주교와 그의 직원들을 위한 남성 전용 거처, 즉 ''주교 관저(episcopium)''의 필요성을 낳았다. 주교 관저는 주교의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시설들을 갖추고 있었다.

4세기 말부터 교회의 사명이 확대되면서, 멀리 떨어진 마을에도 '세례당 교회'가 설립되었고, 이 교회 성직자들도 '카노니치'(canonici)로 간주되어 봉급을 받았다.[10]

주교는 ''주교좌 성당''(episcopium)에 거주하며 다른 남성 성직자들은 그의 공식적인 ''가족''(familia)으로 인정받아 삭발을 했다. 하급 성직이 추가되면서 성직자들은 "성직자 군대"로 불리기도 했다. 여성 직책은 주교의 가족 밖에 있었고 삭발을 하지 않았다.[10] 유스티니아누스는 성 소피아 대성당의 성직자 수를 525명으로 제한하기도 했다.[10]

주교는 지역 교회의 수장이었지만, ''쿠르수스 호노룸''(cursus honorum)에는 속하지 않았다. 주교 임명은 지역 성직자와 주민들의 선거로 이루어졌는데, 성직자들은 대성당 사제 중에서, 평신도들은 외부 인물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10]

주교는 성찬식과 세례의 집례자였으며, 대주교(archpriest)는 의례 문제에서 주교의 대리인이었다. 대부제(archdeacon)는 행정 및 재정, 특히 자선 모금과 전달을 담당했다.[10] 성가대학교(Schola Cantorum)는 그레고리오 대왕에 의해 개혁되었는데, 이는 성가 전승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10]

대성당에 소속된 성직자 집단의 역사는 지역마다 달랐지만, 초기에는 주교와 성직자들이 일종의 종교 공동체를 형성했다.[10] 8세기에 크로데강이 대성당 성직자들을 위한 규칙을 편찬했고, 10세기와 11세기에는 성직자들이 수도원 시설과 세속 성직자 집단으로 나뉘었다.[10]

세속 대성당의 장(章)은 네 명의 고위 성직자로 구성되었는데, 이들은 학장(dean), 예배 담당관(precentor), 서기관(chancellor), 재무관(treasurer)이었다.[10] 이들은 교회의 ''quatuor majores personae''(네 명의 주요 인물)로 불렸다.[10]

  • 학장(Dean): 장의 의장이자 대성당 내 예배 진행을 담당했다.
  • 예배 담당관(Precentor): 예배의 음악적 부분을 규정했다.
  • 서기관(Chancellor): 대성당 학교 감독, 신학 강의, 성가대 독서 감독 등을 맡았다.
  • 재무관(Treasurer): 교회 건물과 가구, 성찬식 준비 등을 관리했다.


비거주는 세속 성당의 문제점이었고, 이는 거주 대수도사와 비거주 대수도사의 구분, 그리고 성가대 대리 사제(vicars choral) 제도로 이어졌다.[10]

장(章)은 법인격으로서 교구의 공석(sede vacante)을 맡았지만, 영국에서는 이 관습이 시행되지 않았다.[12]

4. 2. 주요 기능

대성당은 정기적인 예배와 성사 집행을 통해 신앙 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한다. 시민 사회와 연계하여 사회적 약자를 돕고, 문화 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한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역할도 담당한다.[14]

기능설명
전례적 기능
성사 집행
연례 행사
기록 보관
시민적 기능
사회적 기능


5. 건축

피사 대성당은 주요 관광지이자 세계유산 중 하나이다.


성슈테판 대성당 내부에는 풍부한 예술품이 있다.


대성당 건물은 특히 중세 시대에 교구와 국가에서 가장 웅장한 교회인 경우가 많다. 영국, 북부 프랑스, 벨기에, 스페인, 포르투갈, 독일, 시칠리아의 고대 대성당, 남미의 바로크 양식 대성당, 그리고 이탈리아와 유럽 다른 지역의 많은 대성당은 가장 크고 훌륭한 종교 건물 중 하나로 손꼽힌다. 많은 대성당은 건축물 자체나 조각, 스테인드글라스, 프레스코화와 같은 장식적 특징으로 유명하다.

일반적으로 대성당 건물은 크기가 큰 경향이 있지만, 크기와 웅장함이 필수적인 요구 사항은 아니었다. 초기 켈트족앵글로색슨족 대성당은 크기가 작았으며, 아테네의 비잔틴 양식 "작은 대주교 대성당"도 마찬가지였다. 이탈리아에서는 피렌체 대성당밀라노 대성당과 같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대성당이 많으며, 수도원이나 큰 본당 교회와 형태 및 크기가 비슷한 경우가 많다. 현대에는 기능성이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이며, 많은 국가에서 교회 출석률이 낮기 때문에 대성당은 소박한 구조일 수 있다.

수도원 설립 대성당과 일부 세속 성직자 대성당에는 회랑이 있는데, 이는 전통적으로 바람과 비로부터 보호되는 세속 활동이 이루어지는 개방된 공간이다. 일부 대성당에는 장이 모일 수 있는 장회의실도 있다. 영국에서는 이러한 건물들이 보존되어 있으며 종종 팔각형이다. 대성당은 피렌체처럼 마을의 중앙 광장에 자리 잡거나, 캔터베리처럼 벽으로 둘러싸인 "클로즈"에 위치할 수 있다. 또한 여러 개의 관련된 수도원이나 성직자 건물, 주교궁, 그리고 종종 합창단원을 교육하는 학교가 있을 수 있다.

초기 대성당에는 주교 관저를 포함한 단지가 필요했다. 사모사타의 바울은 주교로 선출될 때 결혼했고, 주교에게 보편적으로 기대되었던 것처럼 아내와의 성적 접촉을 중단하고 더 이상 동거하지 않았다. 그러나 새로운 대성당은 주교와 그의 전체 직원을 위한 남성 전용 거처를 만들 필요가 있었고, 이러한 거처인 ''주교 관저(episcopium)''는 규모가 상당히 컸다. 주교 관저는 주교의 향상된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환대를 위한 개인 식당, 주교를 위한 개인 예배실 또는 예배당, 그리고 종종 목욕탕을 제공하기도 했다.

5. 1. 동방 교회 건축

동유럽과 동지중해 지역에서는 동방교회(정교회, 동방 여러 교회)에 의해 다양한 발전이 이루어졌다. 동지중해 지역의 대성당 양식은 비잔틴 건축을 기반으로 하지만, 키예프 루스에 전래된 이후의 교회당 건축과 대성당 건축은 동로마 제국에서 발전한 양식의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독자적인 양식을 발전시켜 나갔다. 캅카스 지역의 조지아 정교회발칸반도 지역의 불가리아 정교회, 세르비아 정교회, 루마니아 정교회 등의 여러 정교회 또한 독자적인 양식을 발전시켜 비잔틴 건축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동지중해 지역 건축 양식의 틀에 국한되지 않는 풍부한 다양성을 보여준다.

5. 2. 서방 교회 건축

서유럽의 대성당은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 다양한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21] 이러한 건축 양식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게 발전해 왔다.

5. 3. 상징적 의미

대성당 건물은 물리적인 존재를 통해 하느님과 교회의 영광을 상징한다.[13] 대성당은 종종 도시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오래된 건물 중 하나이며, 그 웅장함과 화려함은 도시 자체에 비해 지나칠 정도일 수 있다. 건물에 투입된 돈과 재능은 하느님을 공경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후원자들의 헌신과 지위를 보여준다.

대성당은 종종 동쪽/서쪽 방향으로 배치되어 예배자들이 떠오르는 태양을 향하게 하는데, 이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건물의 건축 양식은 대부분 십자가 형태의 평면도를 가지고 있다. 이 형태는 기능적이면서도 상징적이며,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십자가를 가리킨다. 십자가 형태는 건물을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 서로 다른 활동이 이루어지거나 성직자, 성가대, 평신도와 같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차지할 수 있게 하여 예배 기능적으로도 유용하다.

시드니 성모 마리아 대성당(St. Mary's Cathedral, Sydney)은 전형적인 십자가 형태의 평면도를 가지고 있다.


건물의 주요 부분으로 십자가의 긴 팔을 이루는 부분을 네이브(신랑)라고 하며, 예배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대성당은 상징적으로 하느님의 백성을 인생의 풍파 속에서 이끄는 배이다.[13] 네이브 양쪽의 측랑은 건물 내부에서 사람들의 이동을 용이하게 한다. 십자가의 팔을 트랜셉트(가로랑)라고 하며, 종종 여러 개의 예배당을 포함한다. 주 출입구에서 가장 먼 곳에는 성체(Blessed Sacrament)가 제단이나 성찬대에 안치되어 봉헌되는 ''성소(sanctuary)''가 있다.

서유럽 전통의 대성당 건물은 그리스도인의 영혼이 구원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상징한다. 동유럽 전통의 많은 대성당은 중앙 계획 방식으로 건설되었으며, 거의 항상 돔이 있다. 이러한 대성당 구조의 상징은 지구하늘의 계층이며, 종종 프레스코화나 모자이크로 건물 내부 장식을 통해 그 의미를 드러낸다.

6. 현대 사회와 대성당

현대 사회에서 대성당은 종교 시설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문화 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많은 대성당들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그 크기와 웅장함으로 인해 20세기까지 도시의 주요 랜드마크 역할을 해왔다. 쾰른 대성당의 경우처럼, 대성당의 전망을 보호하기 위한 시민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15]

대성당은 오랜 시간에 걸쳐 건설되고 장식되기 때문에, 그 자체가 중요한 예술적 투자가 된다. 건축적인 중요성 외에도 스테인드글라스, 석상, 목상, 역사적인 묘비, 정교하게 조각된 가구, 성유물함 등 다양한 예술품과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또한 명판, 비문, 묘비, 스테인드글라스, 그림 등을 통해 도시의 역사를 보여주는 역할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관광객들이 대성당을 방문하며, 대성당 측에서는 방문객들에게 입장료를 부과하거나 기부를 요청하기도 한다. 특히 인기 있는 대성당에서는 가이드, 안내 책자, 기념품, 카페 등을 제공하여 관광객들의 편의를 돕고 있다.

참조

[1] 서적 Shorter Oxford English Dictionary
[2] 백과사전 New Standard Encyclopedia Standard Educational Corporation 1998
[3] 웹사이트 What's the Difference Between a Church, Chapel, Cathedral, and Basilica? https://www.whatsthe[...] 2022-04-18
[4] 웹사이트 What is the difference between a church, a cathedral and a basilica? https://bitoftrivia.[...] 2022-04-18
[5] 뉴스 What is the difference between a church and a cathedral? https://timesofindia[...] 2022-04-18
[6] 서적 Renouncing the World yet leading the Church Harvard University Press 2004
[7] 웹사이트 St. Peter's Basilica in Vatican Is Not The Official Church Of The Pope http://www.todayifou[...] 2019-02-14
[8] 서적 Europe's 100 Best Cathedrals
[9] 서적 Life of Constantine
[10] 서적 The English Secular Cathedrals of the Middle Ages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67
[11] 서적 The Religious Orders in England Vol III
[12] 서적 York Against Durham: The Guardianship of the Spiritualities in the Diocese of Durham Sede Vacante Borthwick Institute Publications 1993
[13] 문서 Cathedrals, Luxury liners laden with souls, Holding to the East their hulls of stone
[14] 서적 The Cathedrals and Churches of Belgium
[15] 웹사이트 Our History http://www.stlouisca[...] St Louis Cathedral 2018-09-19
[16] 문서 仙台ハリストス正教会の聖堂 http://www8.ocn.ne.j[...]
[17] 웹사이트 御茶ノ水の泉通信 https://web.archive.[...]
[18] 웹사이트 東方正教リンク集 https://web.archive.[...]
[19] 웹사이트 聖イサアク大聖堂 http://www.cathedral[...]
[20] 서적 ロシア語ミニ辞典 白水社 2008-02-10
[21] 문서 司教座聖堂
[22] 문서 聖イシュトヴァーン大聖堂
[23] 문서 ケルン大聖堂, マインツ大聖堂
[24] 문서 フライブルク大聖堂
[25] 웹사이트 日本聖公会 東京教区 http://www.nskk.org/[...]
[26] 문서 聖パトリック大聖堂
[27] 문서 エヴァンジェリカル・オーソドックス教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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