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퍼 애덤스
1. 개요
페퍼 애덤스(1930-1986)는 미국의 재즈 바리톤 색소폰 연주자이자 작곡가이다. 1957년 다운비트의 뉴 스타 상을 수상했으며, 하드 밥 스타일로 활동하며 스탠 켄턴 오케스트라, 도널드 버드 퀸텟, Thad Jones/Mel Lewis 빅 밴드 등에서 연주했다. 그는 1986년 폐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솔로 활동과 다양한 재즈 뮤지션과의 협연을 통해 활발하게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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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파크 프레더릭 아담스 3세 |
|---|---|
| 출생 | 1930년 10월 8일 |
| 출생지 | 미국미시간주하이랜드 파크 |
| 사망 | 1986년 9월 10일 |
| 사망지 | 미국뉴욕주브루클린 |
| 국적 | 미국 |
| 직업 | 음악가, 작곡가 |
| 악기 | 바리톤 색소폰, 클라리넷 |
| 장르 | 재즈, 하드 밥, 빅 밴드 |
| 활동 기간 | 1947년 - 1986년 |
| 레이블 | Savoy Prestige Blue Note Warwick Riverside Enja Muse |
| 이전 소속 그룹 | Thad Jones/Mel Lewis Big Band |
| 웹사이트 | PepperAdam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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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으로 죽은 사람 -
정태인
정태인은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위를 취득하고 참여정부에서 경제 정책에 영향을 미쳤으나 행담도 개발 사업 논란으로 물러난 후, 한미 FTA를 비판하고 진보신당 창당에 참여한 경제학자이자 대학교수, 정치인이다. -
폐암으로 죽은 사람 -
장택상
장택상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 임시정부 활동, 수도경찰청장, 초대 외무부 장관, 국무총리,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이승만 지지 후 야당 정치인으로 반독재 투쟁을 전개했다. -
1930년 출생 -
오극렬
오극렬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에 걸쳐 북한 핵심 요직을 역임한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군사 및 정치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불법 활동 의혹으로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
1930년 출생 -
강능수
강능수는 일제강점기 평양 출신으로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조선작가동맹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문화상과 내각 부총리를 지낸 북한의 정치인이자 문학가이다. -
미시간주 출신 -
클로드 섀넌
클로드 섀넌은 정보 이론의 창시자이자 디지털 회로 설계의 선구자로, 정보 엔트로피 개념을 도입하여 정보 이론을 개척하고 디지털 회로 설계의 이론적 기반을 마련했으며, 암호학, 인공지능, 컴퓨터 체스 연구에도 기여하여 현대 디지털 시대의 기반을 구축했다. -
미시간주 출신 -
그레고리 자비스
그레고리 자비스는 미국의 우주비행사이자 엔지니어였으며,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 사고로 사망한 후 미국 의회 우주 훈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
페퍼 애덤스는 미시간주 하이랜드 파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였다. 뉴욕주 로체스터에서 테너 색소폰과 클라리넷을 시작했으며, 듀크 엘링턴, 콜먼 호킨스 등의 영향을 받았다. 1946년 디트로이트로 이주한 후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했으며, 특히 바리톤 색소폰 연주자로 두각을 나타냈다. 미국 육군 복무 후 디트로이트 재즈 씬에서 활동하다가 스탠 켄턴 오케스트라에 합류하며 전국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트럼펫 연주자 도널드 버드와 퀸텟을 이끌며 활발히 활동했고, 이후 1965년부터 1976년까지 Thad Jones/Mel Lewis 빅 밴드의 창립 멤버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 시기 그는 독특하고 힘 있는 바리톤 색소폰 연주 스타일로 '칼(The Knife)'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1977년부터는 솔로 활동에 집중하며 찰스 밍거스, 쳇 베이커 등 다양한 거장들과 협연하고 유럽 등지에서 활발한 투어를 펼쳤다. 1983년 심각한 다리 부상을 겪었으나 회복 후 연주 활동을 재개했으며, 1985년 폐암 진단을 받은 후에도 투병 중 연주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다. 그는 1986년 9월 뉴욕 브루클린에서 세상을 떠났다.
2.1. 초기 생애 (1930-1946)
페퍼 애덤스는 미시간주 하이랜드 파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가구점 매니저였던 파크 애덤스 2세였고, 어머니는 클레오 마리 코일이었다. 부모님은 모두 미시간 대학교를 다닌 대학 졸업생이었다.
미국 대공황이 시작되자, 아버지가 지역에 구애받지 않고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부모님은 헤어졌다. 1931년 가을, 애덤스는 어머니와 함께 인디애나주 콜럼비아 시티 근처 친척의 농장으로 이사했는데, 그곳에서는 식량과 지원을 더 쉽게 얻을 수 있었다. 1933년에 애덤스는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가족과 다시 합류한 후, 1935년에는 뉴욕주 로체스터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테너 색소폰과 클라리넷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2년 뒤, 애덤스는 팻스 월러의 라디오 쇼를 매일 들으며 음악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또한 어린 시절 플레처 헨더슨의 빅 밴드 라디오 방송과 지미 런스포드, 듀크 엘링턴, 캡 캘러웨이의 음악을 들으며 영향을 받았다. 애덤스는 훗날 "여덟 살 정도까지는 그냥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필수품 구매에 보태기 위해 담배와 사탕을 집집마다 팔며 가족 수입에 기여했다.
애덤스는 6학년 때 음악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는데, 당시 공립학교에서는 악기를 빌려주고 학교 밴드에 가입하면 추가적인 음악 교육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트럼펫을, 그 다음에는 트롬본을 선택했지만 결국 학교 밴드에서 연주하게 된 클라리넷으로 정착했다. 이듬해, 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스타 선수였던 페퍼 마틴이 고향 마이너 리그 팀인 로체스터 레드 윙스의 감독 겸 선수로 계약하자, 애덤스의 급우들은 둘 사이에 비슷한 점을 발견하고 그에게 "페퍼"라는 별명을 붙여주었고, 이 별명은 평생 따라다니게 되었다. 나중에 그는 함께 연주하는 음악가들을 압도하는 연주 스타일 때문에 "칼(The Knife)"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1943년, 애덤스는 듀크 엘링턴이 지역에서 공연하는 것을 보기 위해 일주일 동안 학교를 결석했다. 그는 결국 렉스 스튜어트를 만나 해리 카니를 비롯한 다른 밴드 멤버들을 소개받았다. 이를 계기로 애덤스는 당시 엘링턴 밴드의 테너 색소폰 연주자였던 스키피 윌리엄스에게 레슨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애덤스는 1943년 가을에 테너 색소폰으로 악기를 바꾸었다. 그는 재즈 상점의 택배실에서 상자를 자르는 일과 영화관 안내원으로 일하며 악기를 살 돈을 마련했다. 재즈 상점에서 일하면서 최신 재즈 음반들을 모두 들을 수 있었고, 1945년에는 지역에서 연주를 들었던 콜먼 호킨스를 모방하게 되었으며, 돈 바이어스의 음악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의 첫 고정 공연은 1946년 벤 스미스가 이끄는 6인조 그룹과 함께였는데, 이로 인해 주 6일 일하게 되면서 1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었다.
2.2. 초기 연주 경력 (1946-1956)
16세에 어머니와 함께 디트로이트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윌리 웰스와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는 웰스가 플레처 헨더슨, 팻츠 나바로, 토미 플래너건, 윌리 앤더슨 등과 연주하는 것을 들은 경험이 있었다. 간간이 워델 그레이와 빌리 미첼에게 지도를 받았고, 리틀 존 윌슨이 이끄는 그룹과도 협연했다. 디트로이트의 악기점 '그리넬스'에서 일하며 얻은 직원 할인을 통해 그의 주 악기가 될 바리톤 색소폰을 마련했다. 처음에는 중고 번디 바리톤 색소폰을 사용했으나, 1948년에 새 셀머 '밸런스 액션' E-플랫 바리톤으로 교체하여 1978년까지 사용했다. 이 악기 전환은 성공적이어서 곧 럭키 톰슨의 밴드에 합류하게 되었다. 디트로이트 시절, 애덤스는 트럼펫 연주자 도널드 버드를 비롯해 훗날 함께 활동하게 될 여러 재즈 음악가들을 만났다. 그는 웨인 주립 대학교에 다니기도 했다. 애덤스는 워델 그레이의 색소폰 연주 스타일에 매료되었으며, 나중에 그레이와 해리 카니를 자신의 주요 음악적 영향으로 꼽았다. 그는 미국 육군 밴드에서 복무했으며, 짧은 기간 동안 한국에서 복무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돌아온 후, 애덤스는 디트로이트의 블루 버드 인에서 연주를 시작했고, 그곳에서 세드 존스와 함께 활동했다. 존스가 카운트 베이시 밴드로 떠나자 애덤스가 블루 버드의 음악 감독직을 맡았다. 1954년 말, 애덤스는 블루 버드를 떠나 디트로이트의 클라인스 쇼 바에서 케니 버렐의 그룹에 합류했으며, 버렐이 떠난 후에는 그 자리에서 음악 감독이 되었다.
친구인 오스카 페티포드의 추천을 받아 1956년 스탠 켄턴 오케스트라에 합류하여 그 해 대부분을 함께 연주했다. 이후 로스앤젤레스에서 리 캐츠먼, 멜 루이스와 새로운 앙상블을 결성하기 위해 켄턴 오케스트라를 떠났다. 캘리포니아로 이주하기 전에는 케니 클라크, 커티스 풀러, 퀸시 존스와 함께 녹음 작업을 진행했다.
2.3. 전성기 (1956-1976)
애덤스는 1958년부터 1962년까지 도널드 버드와 함께 퀸텟을 공동으로 이끌었으며, 이 시기 엘빈 존스가 참여한 라이브 앨범 10 to 4 at the 5 Spot (Riverside)과 블루 노트 레코드에서 여러 앨범을 녹음했다.
이후 그는 Thad Jones/Mel Lewis 빅 밴드의 창립 멤버가 되어 1965년부터 1976년까지 이 밴드에서 활동했다. 그는 밴드 활동 중에도 자신의 앨범에 Thad Jones의 곡들을 계속 녹음했다. 빅 밴드 활동 중에도 다른 뮤지션들과 활발히 협연했는데, 1965년 8월에는 와일드우드의 다이아몬드 비치 클럽에서 Sal Salvador 빅 밴드와 함께 연주했고, 1966년 초에는 테디 찰스, 1967년에는 엘라 피츠제럴드와 함께 연주했다.
Thad Jones/Mel Lewis 빅 밴드의 대부분 공연은 뉴욕 시의 빌리지 뱅가드에서 열렸으며, 미국, 유럽, 아시아의 많은 대학 및 기타 장소에서도 공연했다. 밴드가 빌리지 뱅가드에서 정기 공연을 하지 않을 때는 거의 끊임없는 투어를 다녔으며, 미국 외에서는 덴마크 코펜하겐의 몽마르트르 등에서 자주 공연했다.
2.4. 솔로 활동 및 말년 (1977-1986)
애덤스는 1977년 캘리포니아에서 존과 론 마라부토와 함께 지내며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곧 밍거스, 베이커, 햄프턴과 함께 공연했으며, 1978년에는 햄프턴과 함께 두 달간 유럽 투어를 진행했다. 1978년 3월 18일, 애덤스는 1948년부터 사용해 온 자신의 오리지널 색소폰을 대체할 임시 백업 악기로 새로운 셀머 바리톤 색소폰을 구입했다. 1979년에는 페르 허스비와 함께 노르웨이에서 여러 차례 공연했다. 1980년 6월 5일, 애덤스가 32년간 사용했던 베르그 라르센 마우스피스가 마침내 부러지자, 그는 이를 듀코프 D-5 마우스피스와 바리 플라스틱 리드로 교체했다. 다음 날인 6월 6일, 애덤스는 워싱턴 D.C.의 원 스텝 다운(One Step Down) 클럽에서 새로운 세팅으로 첫 공연을 가졌다.
애덤스는 1980년 7월 29일 짧은 유럽 투어를 위해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어반 드림스(Urban Dreams)"라는 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또한 그는 31년 동안 사용했던 오리지널 셀머 E♭ '밸런스드 액션' 바리톤 색소폰을 1980년 12월에 마침내 교체했다. 1981년에는 레인 데 그라프(Rein de Graaff) 트리오, 페르 허스비 트리오, 그리고 프랑코 드 안드레아(Franco D'Andrea) 트리오와 함께 세 차례의 짧은 유럽 투어를 가졌다. 뉴욕에 머무는 동안 애덤스는 그의 경력 전반에 걸쳐 여러 차례 팻 튜스데이(Fat Tuesday's) 클럽에서 공연했으며, 그중 하나인 컨저레이션: 팻 튜스데이 세션 음반은 1984년 그래미 최우수 재즈 기악 솔로 연주 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몇 년간 애덤스는 여러 차례 잉글랜드와 유럽 본토를 투어하며 현지 리듬 섹션과 협연했고, 니스에서 열린 그랑드 퍼레이드 뒤 재즈(Grande Parade du Jazz)에서는 카운트 베이시 트리뷰트 밴드와 함께 공연했다.
1983년 12월, 애덤스는 심각한 다리 부상을 입으면서 삶에 큰 변화를 맞았다. 경사진 차고 주차장에서 자동차의 주차 브레이크가 풀리면서 차가 그를 차고 문에 밀어붙여 다리가 으스러지는 사고를 당했고, 이로 인해 5개월 동안 침상 안정을 취해야 했다. 부상에서 회복하는 기간은 길었지만, 애덤스는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1984년 10월에는 뉴욕에서 싱가포르까지 비행하여 하룻밤 공연을 하고 이틀 만에 돌아오는 등 연주에 대한 강한 열정을 보여주었다. 그는 1년 넘게 회복에 힘쓴 끝에 1985년 1월에는 휠체어나 지팡이 없이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다리 힘을 회복했다.
애덤스는 평생 연쇄 흡연자였다. 1985년 3월 스웨덴에 머물던 중, 친구 구스타프 빈달(Gustaf Lindvall)의 권유로 흉부 전문의를 찾았다가 폐암 진단을 받았다. 그는 그달 말 뉴욕에서 검사를 위해 입원했으며, 그해 여름에는 두 달 동안 방사선 치료를 받기 위해 공연과 여행을 중단해야 했다.
1985년 9월 29일, 뉴욕시에서는 애덤스를 위한 자선 콘서트가 열렸다. 이 콘서트에는 디지 길레스피, 프랭크 포스터, 케니 버렐, 토미 플래너건, 멜 루이스 재즈 오케스트라 등 유명 재즈 뮤지션들이 참여했다. 여러 건강 문제에도 불구하고 애덤스는 전문 연주자로서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이는 1986년 4월 4일부터 6일까지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3일 동안 다섯 개의 다른 밴드와 함께 다섯 차례의 공연을 펼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애덤스는 1986년 4월에 흉막염 진단을 추가로 받았고, 결국 1986년 9월 10일 뉴욕 브루클린에서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마지막 공연은 1986년 7월 2일 몬트리올 국제 재즈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스펙트럼에서 열렸다. 그는 첫 곡을 시작하기도 전에 관객들로부터 기립 박수를 받았다.
3. 스타일
페퍼 애덤스는 여러 면에서 멜로디컬한 쿨 재즈를 선호했던 동시대의 바리톤 연주자 제리 멀리건과 세르주 샬로프와는 대조적인 스타일을 가졌다. 그는 다루기 힘든 바리톤 색소폰을 하드 밥의 매우 빠른 템포로 연주하는 데 능숙했다. 애덤스의 전기 작가 게리 카너는 그의 스타일을 "매우 길고, 쏟아지는, 더블 타임 멜로디 라인, 그리고 그 날것의, 날카로운, 짖는 듯한 음색"이라고 묘사했다. 그는 "눈부신 속도, 관통하는 음색, 독특한 사운드, 조화로운 독창성, 정확한 발음, 자신감 있는 타임 필, 그리고 멜로디 패러프레이즈"를 사용하여 바리톤 색소폰을 다른 솔로 악기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애덤스는 경력 전반에 걸쳐 금전적 보상보다 음악적 표현을 일관되게 선택했다. 그는 "음악적 표현에 집중하는 그룹에서 연주하기로 결정한 것을 매우 만족스럽게 여러 번 회상했다. 이는 현재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백인 음악가들과 더 나은 급여를 받는 직업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의 스타일을 바꾸는 것보다 나았다"고 여겼다. 그의 매력 중 하나는 "엄청난 힘과 스윙으로 낮게 불 수 있는 놀라운 능력"으로, 이는 빅 밴드 리드 섹션에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그는 소규모 그룹에서도 똑같이 지배적인 목소리를 내며 "맹렬한 흥분과 스태미나"를 더했다.
하드 밥 연주에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애덤스는 발라드와 느린 곡에서도 능숙함을 보였다. 한 예로, 그는 체트 베이커의 앨범 체트 (1958)에 기여했는데, 비터스위트한 곡 "얼론 투게더"에서의 솔로 연주는 평론가 데이브 네이선에 의해 "앨범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로 꼽혔다.
4. 수상 및 영예
페퍼 애덤스는 음악 경력 동안 다수의 상을 받으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재즈 잡지 다운비트(DownBeat)로부터 여러 차례 수상했다. 1957년에는 뉴 스타 상을 받았고, 1967년에는 더 넓은 인정을 받을 만한 재능 상을 수상했다. 1979년부터 1982년까지 4년 연속으로 다운비트 국제 재즈 평론가 투표에서 최고의 바리톤 색소폰 연주자로 선정되었는데, 애덤스 본인은 이를 유럽 순회 공연 덕분으로 돌렸다. 또한 1980년에는 같은 매체에서 올해의 바리톤 솔리스트로 뽑혔으며, 1982년 12월에는 다운비트 독자 투표에서 1953년부터 1위를 지켜온 제리 멀리건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바리톤 색소폰 연주자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그래미상에서는 1979년에 두 번 후보에 올랐다. 앨범 Reflectory로 최고의 재즈 기악 솔로 연주 부문에, 앨범 The Master...로는 최고의 재즈 솔리스트 부문에 각각 노미네이트되었다.
이 외에도 1975년 플레이보이(Playboy) 매거진의 연례 음악 투표에서 '올스타 중의 올스타'로 선정되기도 했다.
5. 음반
페퍼 애덤스는 재즈 바리톤 색소폰 연주자로서 활발한 음반 활동을 펼쳤다.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여러 앨범을 발표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뮤지션들과 공동 리더로서 협업하거나 사이드맨으로 참여하여 수많은 음반에 기여했다. 그의 주요 음반 목록은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
5.1. 리더/공동 리더
| 발매 연도 | 앨범 제목 | 레이블 | 비고 |
|---|---|---|---|
| 1957 | 바리톤과 프렌치 혼 | Prestige (16rpm LP) | Prestige All Stars와 함께; 애덤스가 이끈 세션의 일반적인 LP 발매, 존 콜트레인의 이름으로 다카르 발매 |
| 1957 | 페퍼 애덤스 퀸텟 | Mode | |
| 1957 | 비평가들의 선택 | 퍼시픽 재즈 | |
| 1957 | 페퍼 애덤스의 시원한 사운드 | Regent/세보이 | |
| 1958 | 페퍼-크네퍼 퀸텟 | 메트로재즈 | 지미 크네퍼와 함께 |
| 1958 | 5 스폿에서 10시부터 4시까지 | 리버사이드 | |
| 1960 | 모터 시티 씬 | 베들레헴 | 도널드 버드와 함께 |
| 1961 | 아웃 오브 디스 월드 | 워릭 | 도널드 버드와 함께 |
| 1963 | 페퍼 애덤스 찰리 밍거스의 작품을 연주하다 | 워크숍 재즈 | |
| 1966 | 네가 말하는 대로 | 마일스톤 | 새드 존스와 함께 |
| 1968 | 만남! | 프레스티지 | |
| 1973 | 에페메라 | 스포트라이트 | |
| 1975 | 줄리안 | 엔자 | |
| 1975 | 12번가 & 핑그리 | Enja | |
| 1977 | 바리톤 매드니스 | 비 하이브 | 닉 브리그놀라와 함께 |
| 1978 | 반영 | 뮤즈 | |
| 1979 | 비밥? | 무지카 | 배리 알추울과 함께 |
| 1980 | 마스터 | 뮤즈 | |
| 1981 | 어반 드림스 | 팔로 알토 | |
| 1983 | 캘리포니아 쿠킹 | Interplay | |
| 1983 | 마법: 팻 튜스데이 세션 | 레저버 | |
| 1985 | 제너레이션스 | 뮤즈 | 프랭크 포스터와 함께 |
| 1985 | 애덤스 효과 | 업타운 | 1988년 발매 |
5.2. 사이드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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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티스트 | 참여 앨범 |
|---|---|
| 레이 알렉산더 | Cloud Patterns (Nerus, 1983) |
| 모즈 앨리슨 | Hello There, Universe (Atlantic, 1970) |
| 진 에이먼스 | The Big Sound (Prestige, 1958) Groove Blues (Prestige, 1958) Blue Gene (Prestige, 1958) |
| 쳇 베이커 | Theme Music from "The James Dean Story" (World Pacific, 1956) – with 버드 생크 Chet (Riverside, 1959) Chet Baker Plays the Best of Lerner and Loewe (Riverside, 1959) |
| 월터 비숍 주니어 | Cubicle (Muse, 1978) |
| 조슈아 브레이크스톤 | Echoes (Contemporary, 1987) |
| 레이 브라이언트 | MCMLXX (Atlantic, 1970) |
| 도널드 버드 | Byrd in Hand (Blue Note, 1959) Off to the Races (Blue Note, 1959) At the Half Note Cafe (Blue Note, 1960) Chant (Blue Note, 1961) Royal Flush (Blue Note, 1961) The Cat Walk (Blue Note, 1961) The Creeper (Blue Note, 1967) Electric Byrd (Blue Note, 1970) |
| 행크 크로포드 | Double Cross (Atlantic, 1968) Mr. Blues Plays Lady Soul (Atlantic, 1969) Help Me Make it Through the Night (Kudu, 1972) |
| 리처드 데이비스 | Muses for Richard Davis (MPS, 1969) |
| 메이너드 퍼거슨 | Ridin' High (Enterprise, 1967) |
| 돈 프리드먼 | Hot Knepper and Pepper (Progressive, 1978 [1980]) |
| 지미 포레스트 | Soul Street (Prestige, 1958 [1962]) |
| 커티스 풀러 | Four on the Outside (Timeless, 1978) |
| 레드 갈랜드 | Red's Good Groove (Jazzland, 1962) |
| 디지 길레스피 | Live at the Village Vanguard (Solid State, 1968) |
| 바비 해킷 | Creole Cookin' (Verve, 1967) |
| 자니 해먼드 | Wild Horses Rock Steady (Kudu, 1971) The Prophet (Kudu, 1972) |
| 배리 해리스 | Luminescence! (Prestige, 1967) Bull's Eye! (Prestige, 1968) |
| 엘빈 존스 | Poly-Currents (Blue Note, 1969) Merry-Go-Round (Blue Note, 1971) |
| 필리 조 존스 | Showcase (Riverside, 1959) |
| 퀸시 존스 | I/We Had a Ball (Limelight, 1965) Gula Matari (CTI, 1970) |
| 스래드 존스/ 멜 루이스 오케스트라 | Opening Night (Alan Grant Presents, 1966) Presenting Thad Jones/Mel Lewis and the Jazz Orchestra (Solid State, 1966) Presenting Joe Williams and Thad Jones/Mel Lewis, the Jazz Orchestra (Solid State, 1966) Live at the Village Vanguard (Solid State, 1967) The Big Band Sound of Thad Jones/Mel Lewis featuring Miss Ruth Brown (Solid State, 1968) Monday Night (Solid State, 1968) Basle, 1969 (TCB Music, 1969) Consummation (Solid State/Blue Note, 1970) Suite for Pops (A&M Horizon, 1972) Live in Tokyo (Denon Jazz, 1974) Potpourri (Philadelphia International, 1974) Thad Jones/Mel Lewis and Manuel De Sica (Pausa, 1974) New Life (A&M / Horizon, 1976) Thad Jones/Mel Lewis Orchestra with Rhoda Scott (Barclay (France), 1976) Live in Munich (Horizon, 1976) It Only Happens Every Time (EMI/Inner City, 1977) |
| 스탠 켄턴 | Kenton with Voices (Capitol, 1957) |
| 피터 리치 | Exhilaration (Reservoir, 1991) |
| 허비 맨 | Our Mann Flute (Atlantic, 1966) |
| 아리프 마딘 | Journey (Atlantic, 1974) |
| 하워드 맥기 | Dusty Blue (Bethlehem, 1960) |
| 헬렌 메릴 | Chasin' the Bird (EmArcy, 1979) |
| 찰스 밍거스 | Blues & Roots (Atlantic, 1959) The Complete Town Hall Concert (Blue Note, 1962 [1994]) |
| 블루 미첼 | A Sure Thing (Blue Note, 1962) Boss Horn (Blue Note, 1966) Heads Up! (Blue Note, 1967) |
| The Mitchells: 레드 미첼, 화이티 미첼, 블루 미첼, 그리고 앙드레 프레빈 | Get Those Elephants Out'a Here (MetroJazz, 1958) |
| 행크 모블리 | Poppin' (Blue Note, 1957) |
| 델로니어스 몽크 | The Thelonious Monk Orchestra at Town Hall (Riverside, 1959) |
| 리 모건 | The Cooker (Blue Note, 1957) Standards (Blue Note, 1967) |
| 올리버 넬슨 | More Blues and the Abstract Truth (Impulse!, 1964) |
| 듀크 피어슨 | Dedication! (Prestige, 1970, rec. 1961), 발매 당시 프레디 허바드 이름으로 발매됨 Honeybuns (Atlantic, 1965) Introducing Duke Pearson's Big Band (Blue Note, 1967) Now Hear This (Blue Note, 1968) |
| 휴스턴 퍼슨 | Blue Odyssey (Prestige, 1968) |
| 포니 포인데스터 | Pony's Express (Epic, 1962) |
| 쇼티 로저스 | Shorty Rogers Plays Richard Rodgers (RCA 빅터, 1957) Portrait of Shorty (RCA Victor, 1957) |
| A. K. 살림 | Pretty for the People (Savoy, 1957) |
| 랄로 쉬프린 | Black Widow (CTI, 1976) |
| 벤 시드란 | Too Hot to Touch (Windham Hill Records, 1988) |
| 다코타 스톤 | I Want a Country Man (Groove Merchant, 1973) |
| 이드리스 술리만 | Roots (New Jazz, 1957) with the Prestige All Stars |
| 토츠 틸레망 | Man Bites Harmonica! (Riverside, 1957) |
| 미키 터커 | Mister Mysterious (Muse, 1978) |
| 스탠리 터렌타인 | The Spoiler (Blue Note, 1966) |
| 지미 위더스푼 | Blues for Easy Livers (Prestige, 1965) |
| 조 자비눌 | Money in the Pocket (Atlantic, 196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