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당
1. 개요
평당은 전한 시대의 관료로, 대행치예승을 시작으로 대홍려, 박사를 거쳐 급사중이 되었다. 그는 유민 이주, 염지 개방 건의 등 여러 업적을 세웠으며, 승상사직, 광록훈, 어사대부를 거쳐 승상에 이르렀다. 승상 재임 중 열후에 봉해지기 전에 사망하여 전한 승상 중 유일하게 열후에 봉해지지 못한 인물이 되었다. 그의 아들 평안 또한 대사도까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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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년 사망 -
헤로데 1세
헤로데 1세는 로마의 지원으로 하스몬 왕조를 무너뜨리고 유대의 왕이 되어 경제적 기반을 확충하고 영토를 확장했으나, 폭압적인 통치와 유아 학살 사건으로 비판받는 인물이다. -
기원전 4년 사망 -
유강 (창성질후)
유강은 전한 시대에 아버지 유응의 뒤를 이어 창성후에 봉해졌으나 건평 3년에 사망하여 아들이 없어 봉국이 폐지되었고, 봉작 전 세 아들 중 유흠이 후에 창성후 작위를 이었다. -
전한의 관내후 -
병창
병창은 전한 시대에 관내후를 계승하고 중랑장, 박양후, 태상을 지냈으나 동군태수로 좌천되어 사망한 인물로, 그의 행적은 《한서》에 기록되어 있다. -
전한의 관내후 -
이저
이저는 전한 시대 경제를 섬긴 인물로, 무제 시기 강노장군으로서 흉노 정벌에 공을 세워 관내후에 봉해졌으며, 이후 여러 전투에서 흉노를 무찌르고 좌풍익을 지냈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2. 생애
평당은 젊은 시절 대행치예승이 되었고, 대홍려 문학을 거쳐 현장·현령으로 출세했으며, 경서에 밝아 박사가 되었다. 이후 대신의 추천으로 급사중이 되었다. 천재지변이 있을 때마다 경서에 비추어 해석하고 정치 문제를 진술했다.
원제 때 승상 위현성이 태상황의 묘를 폐지하려 하자, 평당은 태상황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원제가 이를 따랐다.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애제 즉위 후 승상까지 이르렀으나 병으로 사망하였다. 아들 평안은 경서에 밝아 평제 때 대사도를 지냈다.
2.1. 관직 생활
젊어서 대행치예승(大行治禮丞)이 되었고, 대홍려문학(大鴻臚文學)으로 옮겨간 후 지방관을 거쳤다가 경서에 밝아 박사(博士)가 되었다. 이후 대신들의 추천으로 급사중(給事中)이 되었다. 나라에 천재지변이 일어날 때마다 경서를 인용하여 해석하였고, 정치상의 문제를 아뢰었다.
원제 때 승상 위현성이 유태공의 종묘를 폐지하려 하였는데, 평당은 이에 반대하였고, 원제는 평당의 말을 따랐다.
이후 사자가 되어 유민들을 유주로 이주시켰을 때, 자사와 태수들 중 근면한 자를 찾아내어 보고하였고 또 발해의 염지(鹽池)를 개방하여 백성을 구제할 것을 건의하였다. 이때 파견된 열한 명의 사자들 중 가장 높은 실적을 쌓아, 승상사직으로 승진하였다. 이후 법에 걸려 삭방자사로 좌천되었으나, 다시 중앙으로 돌아와 장신소부·대홍려·광록훈으로 승진하였다.
순우장이 창릉(昌陵; 성제의 능묘) 조성을 멈추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을 때, 평당은 이에 반대하였다. 그러나 결국 조성을 멈추는 쪽으로 결정되었고, 순우장은 공적을 인정받아 열후에 봉해졌다. 평당은 다시 순우장이 비록 좋은 진언을 하였으나 열후가 되기에는 알맞지 않다고 하였고, 결국 노여움을 사 거록태수로 좌천되었다. 이후 하수의 치수를 담당하여, 하수의 제방 관련 업무를 맡았다.
애제 즉위 후, 중앙으로 들어와 광록대부·제리(諸吏)·산기(散騎)가 되었다. 이후 다시 광록훈이 되었고, 어사대부·승상에까지 이르렀다. 본래 승상은 열후에 봉해지는 것이 관례였는데, 평당이 취임했을 당시는 겨울이었기 때문에 일단 관내후에 봉하고, 봄이 되는 대로 열후에 봉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취임 이듬해 초에 평당은 큰병에 걸렸고, 책봉을 위한 사자가 왔을 때 응대하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평당은 사직을 청원하였고, 애제는 이를 만류하였으나 한 달만에 죽고 말았다. 전한의 승상들 중 열후에 봉해지지 못하고 죽은 자는 평당이 유일하다.
2.2. 승상 임명과 죽음
애제 즉위 후, 중앙으로 들어와 광록대부·제리(諸吏)·산기(散騎)가 되었다. 이후 다시 광록훈이 되었고, 어사대부를 거쳐 승상에까지 이르렀다. 본래 승상은 열후에 봉해지는 것이 관례였는데, 평당이 취임했을 당시는 겨울이었기 때문에 일단 관내후에 봉하고, 봄이 되는 대로 열후에 봉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취임 이듬해 초에 평당은 큰 병에 걸렸고, 책봉을 위한 사자가 왔을 때 응대하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평당은 사직을 청원하였고, 애제는 이를 만류하였으나 한 달 만에 죽고 말았다. 전한의 승상들 중 열후에 봉해지지 못하고 죽은 자는 평당이 유일하다.
아들 평안 또한 경서에 밝아 출세하였고, 평제 때 대사도를 지냈다.
3. 출전
반고의 한서 권71 준소우설평팽전에 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