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세뤼지에
1. 개요
폴 세뤼지에는 프랑스의 화가로, 파리에서 태어나 아카데미 쥘리앙에서 수학했으며, 퐁타방에서 폴 고갱의 지도를 받았다. 고갱의 지도 아래 그린 《탈리스만》은 순수한 추상에 가까운 클루아조니슴 기법을 시도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피에르 보나르, 모리스 드니 등과 함께 나비파를 결성하여 탈인상주의 화가로 활동했으며, 퐁타방파, 나비파 시기를 거쳐 교육 활동과 저술 활동을 했다. 주요 저서로는 《ABC 회화 첫걸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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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출생 -
막스 베버
막스 베버는 독일 출신의 사회학자, 경제학자, 역사학자, 법학자로서, 종교사회학, 정치 체제 등을 연구하고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자본주의 발전에 미친 프로테스탄티즘의 영향을 분석했으며, 권위의 유형을 구분하고 사회과학 연구의 객관성과 가치 중립성을 강조했다. -
1864년 출생 -
이승훈 (1864년)
이승훈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교육자, 기업인으로, 오산학교를 설립하여 인재 양성에 힘썼으며, 신민회 활동, 3·1 운동 참여 등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물이다. -
프랑스의 화가 -
장 아르프
장 아르프는 프랑스-독일계 예술가로,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여하여 콜라주, 부조, 조각 등의 작품 활동을 했으며, 베네치아 비엔날레 그랑프리 등을 수상했다. -
프랑스의 화가 -
폴 들라로슈
폴 들라로슈는 프랑스의 역사 화가로, 파리 국립미술학교에서 수학하고 살롱전에 데뷔하여 역사적 사건을 묘사한 작품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국립미술학교 교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
19세기 화가 -
폴 들라로슈
폴 들라로슈는 프랑스의 역사 화가로, 파리 국립미술학교에서 수학하고 살롱전에 데뷔하여 역사적 사건을 묘사한 작품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국립미술학교 교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
19세기 화가 -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는 이탈리아 출신의 화가로, 파리에서 활동하며 가늘고 긴 목과 달걀형 얼굴의 인물화를 주로 그렸으며, 34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으나 사후에 높은 평가를 받았다.
2. 생애
폴 세뤼지에는 파리에서 태어나 아카데미 쥘리앙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1888년 여름, 브르타뉴의 퐁타방으로 여행을 떠나 폴 고갱을 만나 그의 지도를 받으며 클루아조니즘 기법의 대표작인 《탈리스만》(The Talisman)을 그렸다. 이 경험은 그가 후기 인상주의 화가 그룹인 나비파를 결성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세뤼지에는 고갱과 함께 그룹의 이름을 지었다. 피에르 보나르, 에두아르 뷔야르, 모리스 드니 등이 이 그룹의 주요 멤버가 되었다.
1892년에는 스코틀랜드 예술가 찰스 호지 매키와 교류하며 1895년 에든버러에서 출판된 책에 삽화를 기고하기도 했다. 이후 세뤼지에는 아카데미 랑송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1921년에는 자신의 회화 이론을 담은 책 《회화 첫걸음》(ABC de la peinture프랑스어)을 출판했다. 그는 브르타뉴의 모를레에서 사망했다.
2.1. 초기 생애와 교육
폴 세뤼지에는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향수 회사를 운영하는 사업가였다. 세뤼지에는 파리의 명문 고등학교에서 철학과 고전어를 공부한 후, 잠시 아버지 친구의 회사에서 일했다. 1885년에 그는 파리의 사립 미술 학교인 아카데미 쥘리앙에 입학하여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아카데미 쥘리앙에서 그는 쾌활한 성격 덕분에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으며, 1880년대 중반에는 반장 또는 지도교수 역할을 맡기도 했다. 이 시기에 그는 나중에 나비파의 주요 멤버가 되는 화가 모리스 드니와 친구가 되었다.
1888년 여름, 세뤼지에는 브르타뉴 지방의 예술가 마을인 퐁타방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곳에는 당시 에밀 베르나르와 폴 고갱을 중심으로 한 화가 그룹이 활동하고 있었다. 세뤼지에는 이 그룹에 합류하여 고갱의 지도를 받게 되었다. 퐁타방에 머무는 동안 그는 고갱의 면밀한 지도 아래 《탈리스만》(The Talisman)이라는 중요한 그림을 그렸다. 이 작품은 색면을 굵은 윤곽선으로 구분하는 클루아조니즘 기법을 극단적으로 사용하여 순수 추상에 가까운 형태를 보여주었다.
파리로 돌아온 세뤼지에는 《탈리스만》을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고갱에게서 배운 새로운 미술 이론과 기법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이는 이후 나비파라는 새로운 탈인상주의 화가 그룹이 결성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세뤼지에는 고갱과 함께 이 그룹의 이름을 '나비파'라고 지었다. 피에르 보나르, 에두아르 뷔야르, 모리스 드니 등도 나비파의 일원이 되었으나, 그룹 형성 초기에는 핵심적인 위치에 있지는 않았다.
2.2. 퐁타방 시기: 폴 고갱과의 만남과 《부적》
파리에서 태어난 폴 세뤼지에는 향수 회사를 경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 명문 고등학교에서 철학, 고전어 등을 배웠다. 잠시 아버지 친구의 회사에서 일한 후, 1885년 파리의 사립 미술 학교인 아카데미 쥘리앙에 입학했다. 그는 쾌활한 성격으로 교사와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으며, 1880년대 중반에는 반장(지도교수 역할)을 맡기도 했다. 이곳에서 그는 훗날 나비파의 동료가 되는 모리스 드니와 친구가 되었다.
1888년 여름, 세뤼지에는 브르타뉴의 예술가 마을인 퐁타방으로 여행을 떠났다. 당시 퐁타방에는 에밀 베르나르와 폴 고갱을 중심으로 한 소규모 미술가 그룹이 활동하고 있었다. 세뤼지에는 이 그룹에 합류하여 고갱의 지도를 받게 되었다. 퐁타방의 미술가 공동체에서 그는 고갱의 면밀한 지도 아래 《부적》(The Talisman)이라는 중요한 작품을 그리게 된다. 이 그림은 순수한 추상에 가까울 정도로 색채와 형태를 단순화한 클루아조니즘 기법을 극단적으로 시도한 작품이었다.
퐁타방에서 돌아온 세뤼지에는 파리의 친구들에게 고갱의 지도 아래 그린 《부적》을 보여주며 그에게서 배운 새로운 예술적 아이디어에 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다. 이는 곧 후기 인상주의 화가 그룹인 나비파 결성의 계기가 되었다. 세뤼지에는 폴 고갱과 함께 이 그룹의 이름을 지었으며, 피에르 보나르, 모리스 드니, 앙리 가브리엘 이베르, 폴 랑송 등이 초기 멤버로 참여했다. 이후 아르망 세갱, 에두아르 뷔야르, 케르 자비에 루셀 등이 합류했다. 보나르, 뷔야르, 드니는 나중에 그룹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 되었지만, 초기에는 핵심 그룹에서 다소 주변적인 위치에 있었다.
1889년 여름, 세뤼지에는 다시 퐁타방에 머물렀고, 그가 묵었던 풀뒤 마을의 여관은 '퐁타방파' 화가들의 거점이 되었다. 그러나 1891년 고갱이 타히티로 이주하면서 나비파 그룹의 결속력은 점차 약해졌고, 화가들은 각자 독자적인 화풍을 추구하게 되었다. 1892년 세뤼지에는 퐁타방 대신 브르타뉴의 위엘고아에서 여름을 보냈다.
2.3. 나비파 결성
폴 세뤼지에는 1885년 파리의 사립 미술 학교인 아카데미 쥘리앙에 입학하여 공부했으며, 쾌활한 성격으로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고 반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는 이곳에서 나비파의 미래 멤버가 되는 모리스 드니와 같은 화가들과 교류했다.
1888년 여름, 세뤼지에는 브르타뉴의 예술가 마을인 퐁타벤으로 여행을 떠나 폴 고갱을 중심으로 한 소규모 화가 그룹에 합류했다. 당시 퐁타벤에는 에밀 베르나르와 고갱을 중심으로 한 화가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세뤼지에는 고갱의 면밀한 지도를 받아 순수한 색채와 형태를 강조하는 클루아조니슴 기법이 두드러진 그림 《탈리스만》(The Talisman)을 그렸다. 이 작품은 거의 순수 추상에 가까운 극단적인 클루아조니슴 시도로 평가받는다.
파리로 돌아온 세뤼지에는 고갱에게 배운 새로운 예술적 아이디어를 친구들에게 열정적으로 전파하며 《탈리스만》을 보여주었다. 이를 계기로 세뤼지에는 피에르 보나르, 모리스 드니, 앙리 가브리엘 이베르, 폴 랑송 등 아카데미 쥘리앙 시절부터 친구였던 화가들과 함께 후기 인상주의 화가 그룹인 [[나비파]](Les Nabis)를 결성했다. '나비'(Nabis)는 히브리어로 '예언자'를 뜻하며, 이 이름은 세뤼지에와 고갱이 함께 지은 것이다. 나중에 아르망 세갱, 에두아르 뷔야르, 케르 자비에 루셀 등이 그룹에 합류했다. 피에르 보나르, 에두아르 뷔야르, 모리스 드니는 이후 나비파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인물들이 되었지만, 결성 당시에는 그룹 내에서 핵심적인 위치는 아니었다.
1889년 여름, 세뤼지에는 다시 퐁타벤에 머물렀고, 그가 묵었던 풀두(Pouldu) 마을의 여관은 '퐁타벤파'의 거점이 되었다. 그러나 1891년 고갱이 타히티로 이주하면서 그룹의 결속력은 점차 약해졌고, 화가들은 각자 독자적인 화풍을 추구하게 되었다. 1892년 세뤼지에는 퐁타벤 대신 브르타뉴의 위엘고아(Huelgoat)에서 여름을 보냈다. 같은 해, 프랑스로 신혼여행을 온 스코틀랜드 출신 예술가 찰스 호지 매키 부부를 만나 친분을 쌓았고, 이는 1895년 에든버러에서 패트릭 게디스 등이 출판한 The Evergreen: A Northern Seasonal: The Book of Spring에 삽화 '파스토랄 브르통'(Pastorale Bretonne프랑스어)을 기고하는 계기가 되었다.
2.4. 나비파 이후의 활동
1891년 폴 고갱이 타히티로 이주한 후, 나비파 그룹의 결속은 점차 느슨해졌고, 각 화가들은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1892년, 세뤼지에는 이전에 자주 방문했던 퐁타방 대신 브르타뉴의 위엘고아에서 여름을 보냈다. 이후 파리로 돌아와 배우이자 연출가인 뤼니에-포(Lugné-Poe)의 무대 미술 작업을 돕기도 했다.
같은 해인 1892년, 세뤼지에는 프랑스로 신혼여행을 온 스코틀랜드 출신 예술가 찰스 호지 매키와 그의 아내를 만나 친분을 쌓았다. 이 인연으로 1895년에는 에든버러에서 패트릭 게디스와 그의 동료들이 출판한 The Evergreen: A Northern Seasonal: The Book of Spring이라는 책에 '파스토랄 브르통'(Pastorale Bretonne프랑스어)이라는 삽화를 기고했다.
후기에는 아카데미 랑송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1921년에는 자신의 회화 이론을 담은 책 《회화 첫걸음》(ABC de la peinture프랑스어)을 출판했다. 그는 브르타뉴의 모를레에서 생을 마감했다.
2.5. 교육 활동과 저술
나중에 그는 아카데미 랑송에서 가르쳤으며, 1921년에는 그의 저서 ABC de la peinture프랑스어를 출판했다. 이 책은 이후 여러 차례 재판되었다.
3. 작품 세계
(내용 없음 - 하위 섹션에서 상세히 다루므로 중복 서술 생략)
3.1. 퐁타방 시기 (1888-1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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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나비파 시기 (1891-1900년대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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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나비파 이후 (1900년대 초-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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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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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저서
* ABC de la peinture프랑스어, La Douce France & Henri Floury, 파리, 1921년
:* 제2판: 모리스 드니의 세뤼지에 생애와 작품 연구 수록, Librairie Floury, 파리, 1942년
:* 제3판: P. 세뤼지에 부인이 수집하고 H. Boutaric이 주해한 미간행 서신 수록, Librairie Floury, 파리, 195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