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무원
1. 개요
표무원은 일제강점기 일본군 특별지원병 출신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국군준비대에서 활동하다가 육군에 입대하여 조선경비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제8연대 제1대대장을 지냈다. 1949년 5월, 부대원들을 속여 38선 이북으로 월북하여 조선인민군에 투항했으며,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북한군 대대장 등을 역임했다. 휴전 후 소장으로 진급, 북한에서 여러 직책을 거쳐 1996년 중장으로 재입대하여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강사로 활동하며 김일성 훈장 등을 받았다.
-
대한민국의 망명자 -
이승만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독립운동가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역임하고 해방 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독재적 통치와 부정부패에 대한 비판도 받으며 4·19 혁명 후 하와이로 망명하여 서거하였다. -
대한민국의 망명자 -
성혜림
성혜림은 일제강점기 조선 출신으로 배우로 활동하다 김정일과의 관계를 통해 북한 사회에서 주목받았으며, 김정남을 낳았으나 김일성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모스크바에서 사망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 -
남일
남일은 소련군 장교 출신으로, 북한으로 파견되어 조선인민군 창설에 기여하고 한국 전쟁 당시 참모총장, 외무상, 부총리 등을 역임한 북한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 -
김책
일제강점기 항일 무장 투쟁가이자 북한의 군인, 정치인인 김책은 만주에서 항일 투쟁 후 소련에서 김일성과 함께 활동했으며, 해방 후 북한 건국에 참여하여 부수상 겸 산업상, 한국 전쟁 전선사령관을 역임했고 사후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았다. -
2006년 사망 -
타우파하우 투포우 4세
타우파하우 투포우 4세는 살로테 투포우 3세의 아들로 태어나 통가의 총리를 지냈고, 1965년부터 2006년까지 통가의 국왕으로 재임하며 1970년 통가의 완전한 독립을 이끌어냈다. -
2006년 사망 -
노재원
노재원은 1954년 고등고시 합격 후 외무부에서 다양한 요직을 거쳐 주영국 참사관, 주이란 및 주쿠웨이트 대사를 지냈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활동 경력이 있지만, 외무부 차관, 주캐나다 대사, 초대 주중국 대사를 역임하며 한중 관계 발전에 기여한 외교관이다.
2. 생애
1925년 경상북도 대구시(현재 대구광역시)에서 출생하였다. 도쿄의 다이세이 중학교를 졸업했다. 일본군 특별지원병 출신으로 군조(軍曹)까지 지냈다.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좌익계 국군준비대 대구 지구대에서 활동하다가, 제6연대의 창설에 참여하고 있던 대구 출신이면서 학병 소위 출신이었던 하재팔 참위의 추천으로 군인으로 입대한다. 하재팔은 좌익 성향이 강했던 인물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대구에서 사설단체인 ‘국군준비대’를 조직, 참모장을 하면서 좌익 청년들을 규합했었다. 미군정이 불법단체로 몰자, 육사의 전신인 군사영어학교에 1기로 들어가 수료, 육군 참위(參尉.소위)가 되어 정식으로 6연대 창설에 나선 인물이다. 표무원은 제6연대에 지원 입대하여 좌익 김종석 정위(金鍾碩 正尉. 대위) 중대의 하사관으로 근무하다가 좌익 최남근 부위(崔楠根 副尉. 중위)의 추천으로 조선경비사관학교 2기에 입교했다.
조선경비사관학교 졸업 후, 춘천시 제8연대 제1대대장에 취임하여, 1949년 5월 4일 오후 행군과 야간 훈련을 한다는 명목으로 휘하 장병을 기만하여 대대 병력 455명을 집결시켰다. 이후 38선 이북으로 월북하여 조선인민군에 포위되자 투항하여 월북하였다. 장교 4명과 사병 213명이었다. 최동섭·한정희 중위 인솔 아래 일부 병력은 탈출을 감행하여 239명은 귀환하였다. 표무원의 고향 친구 제2대대장 강태무 소령이 같은 방식으로 월북했다. 표무원은 여수·순천 사건을 계기로 숙군이 단행되어 최남근, 오일균, 김종석 등이 차례로 체포되자, 숙청의 예감에 월북을 결심했다고 한다. 또한 월북 전 군수품 횡령 의혹으로 육군 본부의 수사 대상이 될 것이라는 소문에 불안감을 느껴 월북을 결심했다고 알려져있다.
1949년 5월 5일 월북한 강태무와 함께 '의거 월북의 영웅'으로 환영받고 평양 학원에서 재교육을 받았다. 월북한 한국군 병사는 제19독립대대에 배속되었고, 표무원도 대대장이 되어 북한과 만주 간의 국경 경비 임무를 맡았다. 한국 전쟁에선 제766연대 제424대대장으로 삼척시 임원진에 상륙했다. 1950년 7월, 제101독립연대장이 되었고, 대령으로 진급했다. 1951년 포로수용소에 강사로 파견되어 국군 포로의 사상 교육을 실시했다. 1952년 국군 포로 출신들로 구성된 조선인민군 제22여단(여단장 송호성)에서 대대장을 맡았다.
한국 전쟁 휴전 후에는 강태무와 함께 소장 칭호를 받았고, 군사 대학에 배속되었다. 1954년 재북의거자 정치학교 교장, 1961년 군인민위원회 부위원장, 1977년 평안북도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1996년 다시 입대하여 중장의 계급으로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강사로 활동했으며 체제에 기여한 공로로 '김일성 훈장'과 '조국통일상'을 받았다.
2.1. 대한민국 국군 장교 시절
표무원은 1925년 경상북도 대구시에서 태어나 도쿄의 대성중학교를 졸업했다. 일본특별지원병 출신으로 군조(軍曹)까지 지냈다.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좌익계 국군준비대 대구 지구대에서 활동하다가, 하재팔 참위의 추천으로 제6연대에 입대하여 김종석 정위 중대의 하사관으로 근무했다. 이후 최남근 부위의 추천으로 조선경비사관학교 2기에 입교했다.
조선경비사관학교 졸업 후, 춘천시의 제8연대 제1대대장에 취임한 표무원은 1949년 5월 4일, 휘하 장병들을 속여 38선 이북으로 월북, 조선인민군에 투항했다. 장교 4명과 사병 213명이 함께 월북했으며, 일부 병력은 탈출하여 귀환했다. 표무원의 고향 친구이자 제2대대장인 강태무 소령도 같은 방식으로 월북했다.
2.2. 강태무와 함께 월북
표무원은 1949년 5월 4일 춘천의 제8연대 제1대대장으로 취임하여, 휘하 장병들을 속여 대대 병력 455명을 집결시킨 후 38선 이북으로 월북하여 조선인민군에 투항하였다. 이 과정에서 장교 4명과 사병 213명이 함께 월북하였으며, 일부 병력은 탈출하여 239명이 귀환하였다. 표무원은 여수·순천 사건 이후 숙군이 진행되면서 최남근, 오일균, 김종석 등이 체포되자, 숙청에 대한 불안감으로 월북을 결심했다고 한다.
표무원은 월북 다음 날인 5월 5일, 고향 친구이자 제2대대장인 강태무 소령과 함께 '의거 월북의 영웅'으로 환영받았다. 이후 평양 학원에서 재교육을 받았으며, 한국 전쟁에서는 제766연대 제424대대장으로 삼척시 임원진에 상륙했다. 1951년에는 포로수용소에 강사로 파견되어 국군 포로의 사상 교육을 실시했고, 1952년에는 국군 포로 출신들로 구성된 조선인민군 제22여단(여단장 송호성)에서 대대장을 맡았다.
2.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의 활동
표무원은 1949년 5월 4일 춘천 제8연대 제1대대장으로 재직 중, 휘하 장병들을 속여 월북을 감행했다. 행군과 야간 훈련을 명목으로 455명의 병력을 집결시킨 후 38선을 넘어 조선인민군에 투항했다. 이 과정에서 장교 4명과 사병 213명이 함께 월북했으며, 일부 병력은 탈출하여 239명이 귀환했다. 표무원은 월북 전 군수품 횡령 의혹으로 육군 본부의 수사 대상이 될 것이라는 소문에 불안감을 느껴 월북을 결심했다고 알려져있다.
다음 날인 5월 5일, 표무원은 고향 친구이자 같은 방식으로 월북한 제2대대장 강태무 소령과 함께 '의거 월북의 영웅'으로 환영받았다. 이후 평양 학원에서 재교육을 받았으며, 월북한 한국군 병사들은 제19독립대대에 배속되었고, 표무원도 대대장이 되어 북한과 만주 간의 국경 경비 임무를 맡았다.
한국 전쟁 발발 후, 표무원은 제766연대 제424대대장으로 삼척시 임원진에 상륙했다. 1950년 7월, 제101독립연대장이 되었고, 대령으로 진급했다. 1951년에는 포로수용소에 강사로 파견되어 국군 포로의 사상 교육을 실시했으며, 1952년에는 국군 포로 출신들로 구성된 조선인민군 제22여단(여단장 송호성)에서 대대장을 맡았다.
휴전 이후, 표무원은 강태무와 함께 소장 칭호를 받았고, 군사 대학에 배속되었다. 1954년 재북의거자 정치학교 교장, 1961년 군인민위원회 부위원장, 1977년 평안북도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1996년 다시 입대하여 중장 계급으로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강사로 활동했으며, 체제에 기여한 공로로 '김일성 훈장'과 '조국통일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