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조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한승조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정치학자이다. 2005년 일본 월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일제강점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주장을 펼쳐 논란이 되었으며,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직에서 사퇴했다. 주요 저서로는 《박정희 붐 우연인가 필연인가》 등이 있으며, 1986년 국민훈장모란장을 수여받았다.

한승조
한승조
기본 정보
출생1928년 10월 2일
사망2017년 7월 25일 (향년 89세)
직업정치학자, 저술가
국적대한민국
학력
학교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뮌헨 대학교 대학원 졸업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 연구과정 수료
경력
주요 경력서울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한국정치학회 회장
민족문화연구소 이사장
주요 저서
저서《한국의 정치와 이념》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와 전망》
《새로운 민족주의를 찾아서》
기타
수상대한민국학술원상
국민훈장모란장
논란친일반민족행위자 논란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식민지근대화론 - 오선화
    오선화는 대한민국 출신으로 일본으로 귀화한 평론가이자 작가, 대학교수로, 호스티스 경험을 바탕으로 작가 데뷔 후 한일 관계와 한국 사회, 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저술 및 강연 활동을 했다.
  • 식민지근대화론 - 안병직
    안병직은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자 역사학자로,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와 뉴라이트재단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고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집필에 참여했으나, 일제강점기 경제사 및 위안부 문제 관련 주장이 논란을 빚고 있다.
  • 청주 한씨 - 한덕수
  • 청주 한씨 - 한승헌
  • 반공주의자 - 김성수 (언론인)
    김성수는 인촌이라는 호를 사용한 언론인이자 기업인, 정치인으로, 경성방직 설립, 동아일보 창간, 보성전문학교 인수 및 발전에 기여했으며 제2대 부통령을 역임했으나 친일 논란이 있다.
  • 반공주의자 - 장기영 (1903년)
    장기영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 제헌 국회의원, 외무부 차관보, 체신부 장관,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했으며, 이승만 측근으로 활동하다 결별 후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2. 생애 및 학력

고려대학교 정치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7년부터 1995년까지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정경대학장을 역임했다. 퇴임 후에는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미화하는 글을 쓴 것이 문제가 되어 명예교수직에서 사퇴했다. 한국정치학회 회장, 국민윤리학회 회장, 보수단체인 자유시민연대 공동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다.

2.1. 주요 경력

* 고려대학교 정치학과 대학원 졸업
* 미국 유학,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정치학 박사
* 1967년 ~ 1995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고려대학교 정경대학장 역임
* 한국정치학회 회장 역임
* 국민윤리학회 회장 역임
* 자유시민연대 공동대표 역임
*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퇴임 후 ~ 2005년)

2.2. 학력

*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 고려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석사
*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정치학 박사

3. 주요 활동 및 논란

한승조는 고려대학교 정치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7년부터 1995년까지 고려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정경대학장을 역임하고 퇴임 후 명예교수가 되었다. 한국유신학술원 회원, 한국정치학회 회장, 국민윤리학회 회장, 자유시민연대 공동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다.

2005년, 일본 산케이 신문의 자매지인 세이론에 "공산주의·좌파사상에 기인한 친일파 단죄의 어리석음: 한일 병합을 재평가하자"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하여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이 글에서 "식민지 지배는 축복"이라는 등의 주장을 펼쳐 대한민국 내 여론의 거센 비난을 받았고, 결국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직에서 사퇴했다.

3.1. 세이론 기고 및 파장

고려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였던 한승조는 2005년 일본 산케이 신문의 자매지인 세이론(正論) 4월호에 "공산주의·좌파사상에 기인한 친일파 단죄의 어리석음: 한일 병합을 재평가하자"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하였다. 이 글에서 그는 "식민지 지배는 축복"이라는 주장을 펼쳐 대한민국 내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2005년 3월 1일, 한승조는 일본 월간지 「정론」에 기고한 글에서 한일 병합은 한국인에게 축복이며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하여 한국 내에서 격렬한 비판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쓴 글이므로 후회는 없으며, 오히려 이 문제가 공론화되기를 바란다고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3월 6일, 한승조는 자신이 공동 대표로 있던 자유시민연대 대표직에서 사퇴했지만, 자유시민연대 비상대책위원회는 그의 회원 자격 박탈과 지도부 공동 사퇴를 요구했다. 고려대학교는 기고 내용이 대학 측의 입장과 다르다고 긴급 발표했으며, 같은 날 한승조는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직에서 사퇴했다.

이러한 주장에 책임을 지고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직에서 사퇴하였으나, 일본의 우파는 그를 “양심적 한국인”이라고 평가했다.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른바 신친일파라고 불리기도 한다.

3월 11일, 고려대학교 총학생회는 “제2의 한승조”가 나오지 않도록 민족문제연구소 등 단체와 공동으로 친일 행적이 명확한 전·현직 교수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3.2. 비판과 반론

한승조는 2005년 3월 1일, 일본 월간지 「정론」 2005년 4월호에 “공산주의·좌파 사상에 뿌리를 둔 친일파 단죄의 어리석음, 한일 병합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제목으로 기고문을 냈다. 이 기고문에서 그는 한일 병합은 한국인에게 축복이며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하여 한국 내 여론으로부터 격렬한 비판을 받았다.

기고문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한국의 민족 문화가 일제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성장하였고, 한국의 역사와 언어, 문학 등 한국학 연구의 기초를 세운 것은 오히려 일본인 학자와 그들의 한국인 제자들이었다.
* 1930년대, 한국인을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 변방으로 이주시키고 농민 학살을 자행했던 러시아에 병합되었더라면 3·1 운동과 같은 사건 당시 훨씬 더 큰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다.
* 한국에서 한글 교육을 폐지한 것은 1937년부터였으며, 태평양 전쟁이 끝난 후 한국 문학이 큰 손실을 입지는 않았다.
*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지 않았다면 러시아가 지배했을 것이고, 공산화되어 스탈린의 민족 분산 정책으로 한 민족은 뿔뿔이 흩어졌을 것이다. 일본 통치 시대의 조선(일본의 식민 지배)은 오히려 민족 의식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 최근에는 진상 규명 등을 명분으로 친일 행위를 한 사람들을 반민족 행위라고 매도하고 있지만, 그것은 당시 상황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며, 최남선, 이광수 등 민족 문화에 헌신한 인물들을 이해해야 한다.
*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과 같은 여론몰이식 인민재판은 나라를 망치는 망국의 길이다.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승조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쓴 것이므로 후회는 전혀 없으며, 오히려 이 문제가 공론화되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그는 자신이 공동 대표를 맡고 있던 자유시민연대 대표직에서 사퇴했지만, 자유시민연대 비상대책위원회는 회원 자격 박탈과 지도부 공동 사퇴를 요구했다. 고려대학교는 기고 내용은 대학 측의 입장과 다르다고 긴급 발표했고, 같은 날, 한승조는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직에서 사퇴했다.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일제의 식민 통치는 한국 민중의 피와 땀을 착취했다. 한국을 일제의 부속물로 삼음으로써, 국민 국가 수준의 완전한 자생적 근대화의 길을 막았다. 민족을 갈라놓고, 참혹한 민족 간의 전쟁인 한국 전쟁과 60년에 걸친 분단의 씨앗을 뿌린 것도 일제의 한국 강점이다."라며 한승조의 주장을 비판했다.

한나라당의 원희룡 의원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합리화하여 국민의 분노를 산 한승조 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사건의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 가칭 '일제 침략 행위 왜곡 및 옹호 방지법'을 신설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3.3. 사회적 영향

2005년 산케이 신문의 자매지인 세이론(正論) 4월호에 "공산주의·좌파사상에 기인한 친일파 단죄의 어리석음: 한일 병합을 재평가하자"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하였다. 이 글에서 "식민지 지배는 축복"이라는 구절 등이 문제가 되어 대한민국 내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른바 신친일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주장에 책임을 지고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직에서 사퇴하였다. 그러나 한국 국내의 움직임과는 반대로 일본의 우파는 “양심적 한국인”이라고 평가했다.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였던 한승조는 2005년 3월 1일, 일본 월간지 「정론」 2005년 4월호에 “공산주의·좌파 사상에 뿌리를 둔 친일파 단죄의 어리석음, 한일 병합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제목으로 기고하여, 한일 병합은 한국인에게 축복이며 감사해야 할 일이라는 주장을 펼쳐 한국 내 여론으로부터 격렬한 비판을 받았다.

2005년 3월 4일, 한승조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쓴 것이므로 후회는 전혀 없으며, 오히려 이 문제가 공론화되기를 바란다고 중앙일보 취재에 답했다. 2005년 3월 6일에는 자신이 공동 대표를 맡고 있던 자유시민연대 대표직에서 사퇴했지만, 청년 회원들로 구성된 자유시민연대 비상대책위원회는 회원 자격 박탈과 지도부 공동 사퇴를 요구했다. 소속 기관인 고려대학교는 기고 내용은 대학 측의 입장과 다르다고 긴급 발표했다. 같은 날,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직에서 사퇴했다.

2005년 3월 11일에는 고려대학교 총학생회가 “제2의 한승조”가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며 “친일 교수 명단”을 민족문제연구소 등 단체와 공동으로 친일 행적이 명확한 전·현직 교수 명단을 곧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2005년 3월 20일, 한나라당의 원희룡 의원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합리화하여 국민의 분노를 산 한승조 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사건의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 가칭 '일제 침략 행위 왜곡 및 옹호 방지법'을 신설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해당 법안은 언론 출판 및 집회를 통해 일제 침략 기간 중의 반민족 행위나 전쟁 범죄 등을 찬미하거나 옹호하는 것을 표현의 자유의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간주하여 처벌하도록 규정할 것이라고 한다.

조선일보는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이토록 터무니없다. 일제의 식민 통치는 한국 민중의 피와 땀을 착취했다. 한국을 일제의 부속물로 삼음으로써, 국민 국가 수준의 완전한 자생적 근대화의 길을 막았다. 민족을 갈라놓고, 참혹한 민족 간의 전쟁인 한국 전쟁과 60년에 걸친 분단의 씨앗을 뿌린 것도 일제의 한국 강점이다. 문제의 발언을 한 당사자도 이러한 간단한 역사적 사실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4. 저서 및 논문

한승조는 여러 저서와 논문을 발표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박정희 붐 우연인가 필연인가》(1999), 《인류역사와 세계문명》(1998), 《한국민주주의와 정치발전(증보판)](1974), 《한국정치의 지도자들》(1992) 등이 있다.

공저로는 《남북한의 인성 사상교육》(1998), 《동북아 정세변화와 한일관계》(1995), 《21세기의 도전과 한국의 대응》(1993), 《해방전후사의 쟁점과 평가》(1990)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평화통일을 위한 정치사상>이 있다.

4.1. 저서

* 《박정희 붐 우연인가 필연인가》 (1999)
* 《인류역사와 세계문명》 (1998)
* 《한국민주주의와 정치발전(증보판)》 (1974)
* 《한국정치의 지도자들》 (1992)
* 《한국정치의 지도자들:대정진신서 1》 (1992)

4.2. 공저

👆
좌우로 밀어서 보기
한승조 공저 목록
제목출판년도
《남북한의 인성 사상교육: 아산재단연구총서 제42집》1998
《동북아 정세변화와 한일관계: 아산재단연구총서 22》1995
《21세기의 도전과 한국의 대응》1993
《해방전후사의 쟁점과 평가》1990
《해방전후사의 쟁점과 평가》 21990

4.3. 논문

<평화통일을 위한 정치사상>

5. 상훈

1986년 국민훈장 모란장